나 홀로 포항에서

선린병원에서 근무한 지 열흘이 다 되어 갑니다. 아직 적응기인지라 환자도 많지 않고 일이 힘든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좋은강안병원에서의 근무를 지난 2월 27일로 마치고 3월 1일부터 8일까지 서울 한남동에 있는 순천향대병원 소화기센터에서 한 주간동안 연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1. 서울에서(06.3.1-8)

사람이 살다 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이 돌아갈 때가 있나 봅니다. 이번 서울 연수 기회도 제가 낸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고생을 감내하며 다른 병원에 며칠씩 가 있을 만한 인물이 못 되는 제가 서울에 가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순천향대병원에서 소화기를 공부하셨던 선린병원 소화기내과 이지현 과장님의 권유가 가장 컸고 어차피 포항에서 근무하더라도 이사 전까진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이 틈을 이용해 좋은 경험을 쌓기로 한 것입니다. 새 병원에 들어 가기 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기 위한 일종의 전환점이 되어 줄 사건이 필요했는지도 모르죠.

순천향대병원에 가 있는 동안 위 종양 절제에 사용되는 점막하박리법 증례들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좋은강안병원에서도 이런 시술을 해 봤었기에 이 분야의 대가인 조주영-정인섭 교수님들이 하시는 술기를 직접 본 것은 앞으로도 큰 유익이 될 것 같습니다.

숙소는 순천향대병원 입구에 있는 여관을 이용했습니다. 이곳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결혼 후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레지던트 시절, 삼성 서울병원 파견때문에 서울에서 1주, 내과 전문의 시험 준비하느라 서울에서 3주, 군사훈련 받느라 대전에서 6주,  KOICA 국내훈련 받느라 서울에서 1주, 둘째 시은이 출산 때문에 한국과 카자흐스탄으로 떨어져 지낸 5주...이런 것들과 비교하면 이번 일 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하고 꾹 참았습니다. 하지만 가족없이 혼자 떨어져 지내는 것만큼 힘드는 일도 없습니다.

2. 나 홀로 포항에서(06.3.9-현재)

부산에 있는 가족들이 무척 보고 싶었지만 쓸쓸했던 서울 생활을 마친 3월 8일 수요일 오후엔 포항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9일부터 선린병원 근무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포항 비행장의 첫 인상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비행장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부 규모나 조용한 분위기도 닮았습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서 본 포항제철의 우뚝 솟은 건물들은 새로운 출발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관리팀과 연락되어 병원 게스트 하우스로 안내받고 그 곳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이미 와 있는 두 분 과장님(방사선과,신경외과)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대구에 집이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조만간 이사 올 계획이라고 하시더군요.

우리 가정도 3월 말에 선린병원 이비인후과 한영훈 선생님 가정이 사시던 사택으로 이사할 계획입니다. 한영훈 선생님은 TIM 파송 몽고 선교사로 4월 초 출국하시는데 3월 24일 쯤 몽고로 이삿짐을 부칠 예정입니다.   선교지로 나가는 분을 재촉할 수도 없기에 계획을 지켜 보고 있을 뿐이고 그 때까진 이렇게 게스트 하우스에 묵으며 주말 부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의 전세 아파트에도 새로운 세입자가 빨리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죠. 2개월 전부터 부동산 중개소에 내어 놓았지만 아직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화는 걱정도 안 되나 봅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거예요. 난 그런 확신이 있네요."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진료실도 없습니다. 3층에 새로운 내시경실을 만들면서 기존의 내시경실을 수리해서 제 진료실을 만들기로 했었는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공사가 계속 지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래 진료도 그 때마다 비는 다른 과장님 진료실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지난 3월 17일부터 새 내시경실 공사가 시작되었고 약 일주일 정도면 새 내시경실 개장과 함께 제 진료실 공사도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집도 없고 진료실도 없는데 제가 뭐하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네요...하나님도 참..."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입 밖에 나온답니다.

(병원 입구의 모습입니다. 여느 병원과 별 차이 없어 보이죠? 570 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입니다.)

선린병원은 그동안 내시경 장비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올림푸스 160 기종을 사용하고 있었죠. 이번에 제가 오는 시점에 맞춰 좀 더 고급 기종인 올림푸스 260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낯익은 260 모니터를 보니 숨이 트이는 것 같고 반갑기도 하고...선린병원 적응에 좀 더 자신감이 붙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병원, 선린병원의 영자 표기는 GOOD SAMARITAN HOSPITAL 입니다. 선린병원에 와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병원이 하나의 교회 같다는 느낌입니다. 병원 내부 연락망을 통해 매일 전해지는 소식들은 각종 기도회, 파송식 특송 연습, 선교지를 위한 영어 공부반, 찬양 연습, 단기 선교여행 준비 모임들이고 아침마다 8시 20분부터 30분 동안 아침 예배가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아침 예배는 찬양으로 시작됩니다. 요일별로 찬양을 인도하는 팀이 세분화되어 있을 만큼 예배를 섬기는 직원들도 많은데 월요일은 포항 시내의 여러 담임 목사님들이 돌아가며 말씀을 전해 주시고 나머지 날에는 원목사님이 설교를 맡고 계십니다.  임상 과장 회의를 시작해도 기도로 시작하고, 매월 있는 직원 조회도 찬송가로 시작하고...심지어 내과 의국에서 주 2회 시행하는 초독(staff lecture나 journal review) 시작시에도 발표자가 기도하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하니...교회인지 병원인지 구분 안 가는 곳이 선린병원입니다.

그래서 출근한지 열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병원에 오길 참 잘했다' 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정신이 없는 형식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하나님 사랑하는 맘으로 이런 형식들을 담고 있다면 예수님 말씀처럼 이것도 버리지 말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하겠죠. 경북의료선교교육훈련원이 있는 곳도 바로 이곳, 선린병원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우리 가정에게 선린병원을 보여 주셨습니다. 2003년 10월 말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귀국 직후 가장 먼저 방문했던 곳이 바로 포항에 있는 한동대 선린병원이었습니다. 부산의대기독학생회 선배인 신원혁 선생님이 "꼭 한 번 와서 보고 가라" 고 말해 주셔서 만삭의 선화와 함께 형민, 시은이를 데리고 저녁 늦게 도착한 곳이 바로 선린병원입니다. 당시 국제협력의사 출신 선생님들의 저녁 식사에도 초청 받았는데 많은 분들로부터 "꼭 다시 오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언젠가 우리도 이 병원에서 근무할 날이 있겠지?" "글쎄요.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요..." 라고 대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해가 바뀌어 부산대 소화기내과 전임의 시절에도 삼일절에 있었던 KOICA 협력의사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가 선린병원에서 제공한 버스 편으로 흥해 바닷가에서 식사를 하고 선린병원 소개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부산의료선교교육훈련원 같은 다른 모임을 통해서도 선린병원의 아름다운 소식을 듣기도 했었구요.

전 국제협력의사 7기입니다. 우리 기수는 모두 10명이 국외로 파견되었는데 이 중 7명이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 7명 중 4명이 한동대 선린병원을 거쳐 갔습니다. 한영훈(이비인후과,몽고), 박진영(응급의학과,방글라데시), 안성균(순환기내과,페루), 이성훈(소화기내과,카자흐스탄) 이렇게 네 사람입니다. 이 넷 중 가장 먼저 이곳에 왔던 한영훈 선생님은 앞서 말한대로 오는 4월 초 몽고 선교사로 파송됩니다. 선린병원에 오지 않은 3명의 크리스챤 중 한 분이 전북대병원 staff으로 있고 나머지 두 분은 조만간 선린병원으로 오실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수 말고도 선린병원에는 선배 협력의사들이 많이 계시는데 김동준(정형외과,가나), 강호석(소아과), 신원혁(호흡기내과,베트남), 한혁준(신장내과,도미니카 공화국) 선생님들이고 이 중 한혁준 선생님은 이미 재작년에  WEC 파송 선교사로 나가셨습니다. 나머지 분들도 국내에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하고 계시죠. 부산의대 선배이신 신원혁 선생님은 인터콥 메디칼 파트 팀장으로, 김동준 선생님은 선교병원인 선린병원의 실제적인 운영을 맡고 계십니다. 그러고 보니까....하나님은 내 삶에서 KOICA 협력의사 라는 방편을 통해 많은 구체적인 부분까지 이미 계획하셨나 봅니다. 주님은 이렇게 될 줄 아셨던 거지요. 젊은 시절, 과감하게 해외로 나갔던 경험이 있는 협력의사 출신들에겐 포항으로 오는 것도, 선교지로 나가는 것도 좀 더 쉬운 결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받은 명찰입니다. 아직 선린병원의 로고가 익숙하진 않지만 그 위에 새겨진 글자  <하나님은 치료 우리는 봉사> 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선린병원에는 이 외에도 CCC 아가페 출신 선생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아가페 모임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선교병원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 선린병원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어쨋든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기독의사들이 모여 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이 곳이 아름다와 보입니다.

(선린병원 1층 한 쪽에 걸려진 액자 - 병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병원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병원 로비에는 이렇게 선린병원 초기 의료 장비들을 전시하고 있는 의료선교 역사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좋은강안병원과는 달리 레지던트(전공의) 선생님들이 입원 환자 진료를 맡고 있다는 점도 무척 편한 근무 환경입니다. 전공의 선생님들과 함께 회진을 돌 때마다 항상 기도로 시작하고 치료 내시경 시술 전에는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 모두가 이곳 선린병원에 와서 새로 시작한 일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내 모습이지만 내 모습에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 보며 일하고 싶습니다.

되돌아 보면 이전에 일하던 좋은강안병원에선 너무도 많은 면에서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 힘으로 잘 해 보려 했었지만 환자 보는 것도, 영적인 면에서도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주님은 이곳 선린병원으로 인도하셔서 찢기고 갈급한 내 영을 치유하시고 싸매신 후 새로운 사명으로 입히시나 봅니다.

이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열흘입니다. 앞으로 어떤 풍파가 내 앞을 막아 설 지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꿈에도 잊을 수 없기에 용기백배해서 포항에서의 외로운 삶을 맞닥뜨리렵니다. 부산 집에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는 일도, 포항으로 이사오는 모든 과정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리라 믿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설사 이사가 늦어지더라도 그 분의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받아야 할 고통이 있다면 내 몫입니다.

앞으로 저희 가정의 소식, 선교지 소식과 아울러 선린병원 얘기도 이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될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의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 포항 생활...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이제 막 시작하고 있습니다.  06.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