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맵지만 참아야겠다

흔히 말하길 "자식 기를 때보다 손자 볼 때가 더 귀엽다" 합니다. 젊은 시절 자식 낳아 기를 때는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느라 그저 정신없이 흘러 보냈지만 나이 들어 손자가 태어나게 되면 아기 자라는 모습에서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이 새록새록 피어난다는 말이겠지요.

아이 하나 낳아 기르는 부모도 고생하고 아이 사랑하는 맘이야 똑같겠지만 요즘 우리 부부 눈에는 아이 자라는 모습이 이전보다 신비롭고 사랑스럽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우리에게도 그럴 만한 여유가 생긴 것도 이유겠지만...셋이나 낳아 기르다 보니 사람이 커 간다는게 얼마나 신비롭고 짜릿한지 반복 학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곱 살 형민, 다섯 살 시은, 세 살 성은이를 보며 "다른 아이는 이 맘 때 어땠다"며 옛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세 아이가 달리 가지고 있는 성품을 비교할 때마다 기쁨은 늘어 갑니다.  

첫째 형민이는 만 세 돌이 지나면서 양산의 예명어린이집에서 1년을 보냈고 부산으로 와서 대연동의 산성교회에 있는 '산성몬테소리선교원'에 1년 다녔습니다. 이제 곧 포항으로 가게 되면 또 다른 유치원에 가야겠지만 지난 2년간 너무도 많은 것을 이런 기관에서 배웠습니다.

형민이의 선교원에선 자주 발표회를 합니다. 합창 발표회, 영어 발표회, 공개 수업....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선화와 아이들은 총출동 하지요.

발표회 때마다 형민이는 열심히 연습합니다. 예를 들어 합창 발표회가 있으면 저녁마다 파이디온 어린이 찬양을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며 율동을 합니다. 형민이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우리도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모릅니다. 찬양 가사를 들으며... "온 세상을 지으신 크신 하나님/ 날 위하여 놀라운 꿈 갖고 계셔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삶을 살아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라/ 많이 가득 사랑하는 삶을 살아라/남들에게 축복 주는 삶을 살아라/ 어리지만 주의 꿈 품고 자라요/ 매일매일 주의 꿈 품고 살아요"(뜻을 세운 아이들, 꿈이 자라는 나무 中)

 

형민이 선교원 생활을 보며서 느끼는 건.... 웬만하면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나 선교원에 보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글쎄요...환경이나 기술적으로 더 좋은 곳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침마다 예배 드리던 예명 어린이집이나 교회에서 운영하는 선교원에 다니면서 이뤄지는 신앙 교육을 보며서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도 선교원에서 배워 오고 우리가 얘기해 주지 않은 성경 속 얘기들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형민이...매 달 교회 유치부에서 하는 성경 암송 습관처럼 가정 예배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가정의 신앙 교육에 큰 유익이 됩니다. 지난 성탄절에는 형민이에게 표준새번역 개정판 한글 성경을 선물로 줬습니다. 우린 8년 전 가정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표준새번역 성경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이제 형민이도 자기 성경책을 보면서 가정 예배에 참여하게 된 거지요. 7살이 되면서...

언젠가 돌아가며 성경을 읽기를 마치자 형민이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중간 정도까지는 따라갔는데..." 그 후론 형민이를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형민이는 요즘 배우려는게 많아졌습니다. 이미 형민이는 아빠에게 전자우편(E-mail)을 보낼 줄 압니다. 몇 군데 인터넷 사이트에는 영문자로 log-in 할 줄도 알지요(자판 사용법을 압니다). 심지어 핸드폰 문자 메시지도 보냅니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 힘내세요." 이런 글이 들어오면 다른 문자 메시지의 몇 백배 감동입니다.  

아빠가 컴퓨터로 플로피 디스켓에 자료를 옮기는 모습을 바라 보던 형민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나도 아빠처럼 하고 싶어요."

"형민아. 아빠가 나중에 다 가르쳐 줄거야"

"예...그런데 아빠가 돌아가기 전에 가르쳐 주세요."

'아빠가 돌아가기 전' 이란 단어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즉, '아빠가 죽기 전' 이란 뜻입니다. 벌써 1년 전부터 사람이 순서대로 태어나고 순서대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형민이는 아빠, 엄마가 언제가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약간 불안하게 의식합니다. 그럴 때마다 선화는 형민이에게 "형민이가 할아버지될 때까지 엄마는 같이 있을거야..." 라고 속삭여 주죠.(확신할 순 없지만...) 그러면 형민이는 빙긋 미소를 짓습니다.

전 형민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많은 걸 생각합니다. 그냥 감정이 울컥 복받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형민아, '돌아가기 전'이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 이라고 해야 돼"  라고 얘기하지만 속으론 내가 '돌아가기 전' 형민이에게 꼭 남겨야만 하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어쨋든 곧 형민이에게 USB 메모리 스틱 사용하는 법,  공 CD에 기록하는 법, 플로피 디스켓 사용하는 법을 가르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30년 전 우리 어릴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죠.

사진은 형민이가 연습하는 피아노를 동생들이 점령한 모습입니다.

형민이는 엄마에게서 피아노를 배웁니다. 싫증내지 않을 정도로만 가르치는데 개인적으론 사춘기 찾아 올 즈음(중학교)까지 피아노 공부를 계속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을 보니 초등학교 때만 피아노를 치고 그만 두는 건 별 도움이 안 되더군요. 중고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친구들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만큼 필요한 기술인 것 같습니다. (물론 타고나는 면도 있겠지만...) 한국 교회 상황이나 선교지에서도 아주 유용한 쓰이는 도구이자 다른 악기의 기본인 피아노...사춘기 시절까지 건반을 가까이 하도록 여유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아빠 욕심이지만...

또 형민이는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자주 조릅니다. 아빠가 기타를 칠 때마다 장식장 안에 있는 돔브라(카작 전통 현악기)를 꺼내 와서 피크를 들고 아빠 기타 소리에 맞춰 노래하지요. 기타를 무척 연주하고 싶어하는 형민이에게 중학생이 되면 꼭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도 좀 자라야 하기에 그 때가 되야 되겠죠?  

 시은이는 우리 부부에게 자주 함박 웃음을 선사합니다. 시은이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얼마나 귀엽고 우스운지...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우리 부부에게 소개함으로써 폭소를 자아내지요.

#1  풀로 봉한 카드 봉투 하나를 아빠에게 건네 주며

시은: 아빠..이거 아빠에게 주는 선물이예요

성훈: 고마워

시은: 그런데...아빠 이거 못 열어 봐요.

성훈: 왜?..

시은: 그거...시은이가 풀로 붙였거든요.

 #2 오랜만에 BBQ 치킨을 먹다가

(뭐든지 잘 먹는 시은이는 오늘도 닭고기를 열심히 먹습니다. 그러다가....)

시은: 좀 맵지만 그래도 참아야겠다.

 

#3 병원에 온 형민이와 시은

설 연휴 첫 날...중환자실 환자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가야 했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갔지요. 둘은 아빠를 잘 따라 나서거든요.

내과 외래 제 방에 들어가 전자 차트를 확인한 뒤 중환자실로 올라가기 전,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금방 갔다 올께..5층이니까 금방 온다. 30 까지 세면 아빠가 올거야

아이들: 예...

이제 일곱 살인 형민이와 다섯 살인 시은이기에 금방 갔다오면 되리라 생각하고 중환자실로 올라가서 환자를 본 뒤 금방 2층 내과 외래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2층 내과 외래 복도에 두 아이가 흐느끼며 서 있는게 아닙니까.

성훈: 아빠 금방 온다고 했잖아....방에 있지..

아이들: 흐흑...

성훈:(우습기도 하고 해서) 누가 먼저 울었어...

형민: 전화 소리가 났는데...시은이가 좀 무섭다고 하니까...나도 무서워서 울었어요. 흐흑....

 

어찌나 두 아이가 사랑스럽고 귀엽던지...

 우리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티없이 맑고 예쁜 아이들과 구김살없는 대화를 늘 나눌 수 있다니...

 주일이면 양산 교회에 갑니다. 양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 외갓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 오면 항상 밤 9시 남짓 됩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이미 모두 잠듭니다. 이렇게 세 아이가 모두 잠든 경우가 가장 어려운 경우입니다.

1년 전만해도 제가 형민이와 시은이 둘을 안고, 선화는 성은이를 업고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이제 훌쩍 커 버린 형민이와 시은이 둘을 동시에 안기엔 가슴이 너무 좁아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형민이를 차 안에 놔 두고 시은, 성은이만 올려다 놓은 뒤 다시 내려와 형민이를 데려 옵니다. 사진은 이렇게 데려 온 아이들을 침대에 눕힌 모습입니다.

1년 만에 잠든 두 아이를 안고 움직이는 건 어려운 일이 되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며 아빠가 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같이 행복한 시기가 천천히 지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