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의료선교여행기 ⑥ - 힘찬 독수리 같은 아스타나 UBF
아스타나 선교지 탐방 - 13. 아스타나 UBF의 도약
이번 이야기는 아스타나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아스타나 UBF 이야기입니다. 카자흐스탄은 다민족 국가로 130개 정도의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 종족은 인구의 53% 이상을 차지하는 카자흐 민족입니다. 카자흐 민족은 나면서 무술만이라고 믿고 있는 이슬람 신자들이죠.
2005년 현재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의 인구는 대략 90만 정도로 집계 되고 있고 다른 도시보다 카자흐인 비율이 높아 약 87%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카자흐 민족의 복음화 비율은 0.015% 구요.
지난 번 수이어스펜셜륵 교회 소개 때도 말씀드렸지만 카자흐 민족을 복음화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알마티에는 제법 큰 카자흐인 교회가 세워져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상황은 어렵기만 합니다. 그야말로 미전도종족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이죠.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카자흐인 젊은 층들을 파고 드는 복음의 특공대(?)가 있었으니 바로 UBF입니다.
다른 곳의 상황은 제가 보지 못해...뭐라고 말할 수 없으나 아스타나 UBF 만을 놓고 보면 가장 훌륭한 선교단체 중 하나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스타나 UBF에는 두 가정의 한국인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데 지난 2000년부터 아스타나에 도착하여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1:1 성경공부와 장막 생활(합숙 생활)을 통해 믿음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우리 팀은 진료팀이지만 2003년에 이어 이번에도 아스타나 UBF를 찾았습니다. 학생들 중에 질병이 있다면 도와 줄 수야 있겠지만 우리가 아스타나 UBF의 예배 처소이자 자매 숙소인 이 아파트를 찾아 온 목적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청년 크리스챤들이 함께 만나 교제하고 신앙 고백을 나누는 것에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UBF 선교사님들은 우리 팀을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사진은 수요 모임을 하고 있는 아스타나 UBF 의 모습입니다. 지금 모임을 하고 있는 이 건물도 일반 아파트 두 개를 터서 만든 것인데...큰 홀에서는 모임을 하고 작은 방들은 자매 숙소로 사용하고 있지요.
형제들은 최근 인근 아파트를 새로 구입하게 되었는데 아파트 구입 경비는 놀랍게도 UBF 형제들이 서로 힘을 합쳐 모은 돈이 3만 불에 이른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도움을 일방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기 쉬운 선교지에서 이같은 젊은이들을 만난다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아스타나 UBF 에는 변 다윗/폴린 선교사님 가정과 윤프란시스/수잔나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고 현지인 목자(요셉, 사라, 루스탐, 마리야)들도 함께 동역하고 있습니다. 변 다윗 선교사님이 러시아로 말씀을 전하셨던 이 날, 수잔나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온 우리 팀을 위해 한국어 통역을 해 주셨습니다. 자세한 배려에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우리 팀이 UBF 학생들 사이에서 예배를 드리는 동안, 전 다른 방에서 몇몇 아픈 학생들을 진료하기도 했습니다. 예배가 마친 뒤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찬양을 함께 하고 소개 및 간증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UBF는 인생 소감문을 자주 쓰고 발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곳 학생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의 자신의 삶과 이후의 변화된 삶에 대해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가장 놀라고 도전 받았던 이들이 바로 한국에서 온 우리 팀이었죠. 열등감과 패배감에 사로 잡혔던 과거의 삶을 던져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생명을 찬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카자흐인들이 이렇게 훈련될 수 있구나...놀랄 뿐이었습니다.
형제들의 간증도 놀라왔고 자매들의 간증도 능력 있었습니다. 2003년에 갔을 때는 자매들의 교세(?)가 훨씬 강했었는데...올해는 형제들도 많은 수가 모여 있었고 깊이 있는 간증으로 우리 맘을 뜨겁게 해 주었습니다. 고아라는 사실에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온 형제가 같은 무술만 국가를 위해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서 온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아스타나 UBF 학생들에 이어 한국 팀 학생들도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재치있게 소개했습니다. 아스타나의 지체들은 한국에 있는 학생들도 자신들과 비슷한 고민과 과정을 거치며 동일한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 하며 함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한국에서도 UBF에서 양육받는 많은 지체들이 인생 소감문을 씁니다. 아스타나 UBF에서 양육받는 카자흐 자매 보타와 아제르바이젠 태생의 형제 아질의 인생 소감문입니다.
고아가 하나님의 귀한 딸이 되었습니다 - 작성자: 가스펠(보타), 아스타나 UBF 1. 엄마 어디 계세요 저는 1981년에 태어났으며 아기 때부터 혼자였습니다. 어린이 집에서 자랐습니다. 세상도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 자랐습니다. 자주 병원에 누워지냈습니다. 병원에서는 제가 고아원 출신인 것이 알려질 까봐 두려웠습니다. 어디서 왔고 누구 딸이냐고 물어오면 엄마와 같이 산다고 거짓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엄마는 저를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저의 영혼은 외쳤습니다. 엄마 어디 계세요?. 저는 당당하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버림받고 아무에게도 필요없다는 생각에 지배되었습니다. 증오심 또한 자랐습니다. 8살 때 학교에 입학했는데 고아원 출신의 례나를 만났습니다. 저는 례나가 고아원출신인 것을 밝혔습니다. 례나는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증오심에 불타올랐습니다. 커서 꼭 복수를 해 주겠다고 별렀습니다. 저는 원한 많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든 자기유익을 구했습니다. 고아원의 그룹에서 저는 연장자였습니다. 동생들의 물건을 함부로 빼았았으며, 내놓지 않으면 모욕을 주었습니다. 스스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몰랐습니다. 자기와 자기 아픔만 생각했으므로 고아원 동생들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한 여동생을 거의 살인할 뻔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엉엉 울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우는 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소리지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을 베게로 쌌습니다. 아이가 숨을 헐떡 거리자 저는 놀라 베게를 떼어냈습니다. 저는 살인자처럼 악독했습니다.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제게 양심은 없었습니다. 제게 열등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 같은 반 여학생들이 남자아이들과 사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저도 그러고 싶어졌습니다. 포르노영화와 잡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은 육체의 정욕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형제와 사귀면서 완전히 육체의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죄가 하라는 대로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맛보고 싶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죄와 타협하였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미 더럽고 쓸데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수치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친 언니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언니는 가족과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저는 알마티로 올라왔으나 엄마가 어떻게 생긴 지도 그 만남이 어떻게 될지도 몰라 떨렸습니다. 제가 기차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엄마는 저를 알아보고 껴안고 입을 맞추더니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 저는 차갑고 교만하였습니다. 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남 동생이 아프자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계부는 엄마를 구타했고 항상 술에 취해 돌아왔습니다. 집엔 부채를 비롯해 여러 큰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를 돕고 싶어 돈을 500불 빌렸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나를 속이고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살수록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었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혼자 남았을 때 자주 자살 충동이 들었습니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죽어버리겠다고 고함치며 엉엉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인가 자살의 유혹으로부터 저를 제지하곤 하였습니다. 2.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하나님은 더러운 죄인을 2003년 봄 수양회에 초청하셨습니다. 자신을 모슬렘여인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교회에 왔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냥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에대하여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수양회 이후 성경공부에 초대받았습니다. 성경을 1:1로 공부하며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접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제 옆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영의 세계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저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던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 말씀을 암송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열어주신 은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메시지, 일용할 양식을 먹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양을 치는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아직 악의와 증오가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교만 때문에 사람들을 더 심하게 정죄하였습니다. 마음 속의 판단을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자매님들, 양들 모두와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반항적으로 거칠게 대하였습니다. 저는 죄로 눈먼 자였습니다. 목자님은 벧전 5: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말씀을 저녁 전 까지 5백 번 쓰는 훈련을 주었습니다. 저는 반항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썼습니다. 보란 듯이 5백번을 꼭 쓰고 말겠다고 별렀습니다. 그러나 139번까지는 말씀을 썼으나 더 이상은 쓸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말씀에 침잠하였습니다. 말씀은 저의 죄악된 심령을 때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목자님의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그 기도가 아니었더라면 반항의 영이 안 나갔을 것입니다. 반항이 영이 나가자 저의 진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의 죄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해되었습니다. 죄악을 회개하였습니다. 죄악된 삶을 버리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러자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저의 믿음이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위에 성장하도록 가스펠이란 이름을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셨고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좐나르 자매님과 다른 양들을 먹이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여름 수양회에서 좐나르 자매님안에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제 삶에 역사하시며 제가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3장. 두려워말고 잠잠하지 말라 수양회 이후 사단은 매우 강하게 저를 시기하였고 주위 사람들을 통해 핍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양들을 도우러 기숙사를 찾아갔을 때 모르는 학생들이 길을 막고 서서 질문하였습니다. «니가 보타냐?», «그렇습니다. 내가 보타입니다». 기숙사 사감도 찾아와서 공격적으로 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학생들을 초청하는 것이지?» 저는 «그들을 구원하려고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 두려웠으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말씀을 읽어주며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싶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갑자기 기숙사 수위 아주머니가 올라오더니 우리를 구타하고 카자흐 말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제가 또 다시 나타나면 경찰에 신고하겠으며 저의 양들을 기숙사에서 내 보내겠다고 위협하였고 저를 쫒아냈습니다. 저는 너무 놀랍고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다만 기도하였습니다. 양들은 자기 방에서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어찌하든지 양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고 무슨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숙사 수위와 학생들은 저의 출입을 저지하였습니다. 저의 내면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은 양들이 스스로 교회에 오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양들에게 마가복음 8장 35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사건 이후 직장에서는 핍박이 뒤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누르 자매님의 언니가 직장에서 저에 관해 나쁜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직장 상사는 제가 사회에서 더 이상 발을 못 붙히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이로인해 하나님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소망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주의 종들을 통해 사행 18장9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직장 상사는 제게 교회와 직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택하였습니다. 제 삶의 인도자인 하나님 아버지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좐나를 자매님은 학교에서 퇴학당할 것이고, 또 부모님들에게도 이런 소식이 들어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더 이상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제가 그녀를 끝까지 돕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훈련을 통해 제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용사가 되도록 키우셨습니다. 과거 저는 아무에게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찾아 오사 당신의 거룩한 일에 사용하십니다. 제가 의대 양들을 위한 기도의 어미가 되고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그리고 다른 형제 자매님들에게 이루고 계신 변화의 역사를 통해 카자흐스탄이 모슬렘권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가 될 소망을 봅니다. 제가 두려움없이 복음을 만민에게 증거하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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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질, 아스타나, 카자흐스탄 I. 알라의 제자 후보생 제 이름은 아딜 입니다. 훈련명은 겸손입니다. 저는 1983년에 태어났습니다. 13세까지 어린 시절을 아제르바이잔의 «이스마일리»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슬픔을 모르고 자랐고 행복했습니다. 어린 시절엔 말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제르바이잔 사람이고 어머니는 러시아인입니다. 식구들은 저를 사랑했고 외할머니는 유난히 더 사랑하셨습니다. 저는 아제르바이잔과 러시아의 양 문화를 접하면서 자랐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는 마음에 드는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저는 영웅이 되고싶었습니다. 5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때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시골 마을로 놀러 갔습니다. 그 분들의 요청에 따라 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모슬렘 선생님에게 가서 반드시 얼굴과 손을 씻고 하루 다섯 번씩 드리는 모슬렘 교인의 기도인 나마스를 배웠습니다. 코란을 공부하며 모슬렘의 기본 교리를 배웠습니다. 모슬렘 선생님은 저에게 알라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쳤으나 하나님의 긍휼과 죄사함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사람들에게 알라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습니다. 그를 섬기도록 초청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저의 종교적 열심을 높이 평가해주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나 시골에서 다시 집에 돌아오고나서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고 끊임없이 세수를 해야 하는 것이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뿐 만 아니라 상스러운 말로 욕하고 싸우고 담배를 피던 습관 때문에 알라를 섬기려는 소원이 사라졌습니다. 8학년(중등 2학년) 때 저는 부모님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이사하였습니다. 동년배들에게서 많은 인정을 받았던 저는 외로워졌고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되려고 노력했으며 제 생활은 무질서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디스코장에 가고 술을 마셨으며 마리화나도 피웠습니다. 정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8학년 때 처음으로 창녀와 잠을 잤습니다. 이후로 창녀들뿐 아니라 여러 명의 여자들과 죄를 지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포르노 영화를 보고 에로서적들을 읽었습니다. 정욕이 저의 삶을 지배하였고 이 때문에 양심에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2000년에 아스타나 소재 유라시대 대학 역사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그 때 새로운 곳, 새로운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영원히 무질서한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알라신이 저를 죄에서 구원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주리라는 소망을 갖고 다시금 모슬렘 사원을 다니며 기도 하였고, 모슬렘의 교리를 따랐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피고, 욕하고, 여자 친구들과 노니는 삶을 버리고 사람들을 사원으로 초청하며 알라신 앞에 의로운 삶을 살도록 전도했습니다. 입학 시험 며칠
전에도
입학
시험을
알라신에게 맡기고 사원의 모슬렘 신자들과 함께 알라신을 증거하기 위해 시골 동네로 전도나가려고 할 정도 였습니다. 저는 온
마음으로 알라신을 예배하고, 오직 알라신
한
분
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죄악된
소원
즉
안목의
정욕과
자위 행위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죄악된 소원
때문에
자신을
정죄하였습니다. 죄는 저를 사로 잡았고 대학에 입학 한지 한달 반 후에 한 자매와 죄를 짓고 나서 다시금 자위 행위와 술 취함과 감정대로 사는 과거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이후에도 때때로 알라신에게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죄 때문에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저를
용서하지 않고 받아 주지 않을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다른
모슬렘
신자들
앞에서
자신의
종교지식과 종교성을 자랑하고자 할 때만 알라신을 기억했습니다. 때로는 보드카를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 알라신 앞에 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는 죄 앞에서 매우 무력하였습니다. 내면으로는 옳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괴로웠습니다. 저를 모든
죄로부터 구원해 줄 진리를 갈급하였습니다.. II.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2003년 여름 저는 친구 카이라타의 초청으로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요한복음4장 13,14절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과 누가복음23장 34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제 안에 강력히 역사하셨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모두 고백하고려는 소원을 갖았습니다. 인생소감을 써서 발표했습니다. 이제 모두가 저를 정죄할 것이고 아무도 저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심령이 갑자기 기쁨으로 가득 찼고 일생 동안 괴롭히던 죄의 짐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기쁨으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저의 인격적인 주요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저의 죄를 사해주신 예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일생 동안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뜨거운 소원이 생겼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고 모든 친구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제가 신앙을 배반하고 이단자자 되었으며, 외국인에 매수되었다고 등 뒤에서 욕을 했습니다. 핍박도 있었습니다. 교련 선생님 중 몇 사람은 항상 트집을 잡아 구타하려고 했습니다. 몇몇 친구들과 어른들은 방황하지 말고 어서 알라신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하였습니다. 저는 이때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그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을 힘을 주셨고 조금씩 세상 친구들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주 예수님은 저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 (야고보서1:6,8). 저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긍휼을 체험하였습니다. 과거의 저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들끓는 악독과 증오로 고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만하고 성질 급한 저를 겸손하고 온유하며 평온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예수님과 같은 선한 목자가 될 소망을 두시고 제게 비탈리 형제를 양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비탈리 형제는 많은 시간과 돈을 클럽과 유흥비로 탕진하였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것을 하려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었습니다. 센터에 나오게 된 것도 하나님을 알고자 하기보다는 자기 유익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그가 제게서도 매번 자기 유익을 얻고자 하므로 그를 양으로 영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성령께서는 그를 희생적으로 섬길 힘을 주셨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성령께서 그의 심령에 역사하셨습니다. 나이트 클럽을 다니며 술 마시고 욕하던 자가 예배와 성경공부에 꼬박 꼬박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더니 그는 목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며 다른 양들을 강권하며 예배에 초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아르만, 유라, 페쟈, 아르만, 카이르켄, 아누아르와 같은 양들을 보내주시고 그들을 섬길 인내와 힘을 주셨습니다. 양들은 항상 말씀을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받아들이더라도 친척이나 친구들의 반대에 부딪치면 떠나버렸습니다. 그 때 마다 저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구속하기위해 피를 흘리며 못 박힌 나의 주 예수님을 볼 때 절망을 딛고 충성스럽게 말씀을 전할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목자생활을하면서 오직 성령을 의지하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본받아 끊임없이 충성스럽게 양들을 섬기는 것과 매일 죄에 대하여 죽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지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음으로 저의 인생을 변화시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의로운 모슬렘 신자가 되고자 하지만 죄로 인해 절망하고 인생의 참 의미를 잃었을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사랑과 진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저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을 믿을 때 자유와 참 기쁨을 얻었습니다. 주님은 아제르바이잔 백성을 구원하시고 그들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시고자 저를 아제르바이잔의 아브라함으로 세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파키스탄의 선교사가 되는 비젼도 주셨습니다. 제가 훈련받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히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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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아스타나 UBF와의 교제를 위해 워십댄스를 준비해 갔습니다. "we are the reason" 에 맞춰 그 동안 준비했던 하나님을 향한 몸짓을 표현했습니다. 그 답례로 사진처럼 아스타나 UBF 자매들의 특송..그리고 마리나 자매의 독창이 이어졌습니다. (마리나 자매는 정말 노래를 잘한답니다. 지난 2003년 가을 모스크바 UBF 출신의 요셉 목자와 결혼했습니다.)
아래 글은 2004년 아스타나 UBF에서 일어났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저희 가정도 아스타나에서 떠나 온 뒤라 이 글을 통해서만 근황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수련회 소식...그리고 루스탐/마리아 가정의 새 출발...그리고 형제 숙소 겸 성경 공부 장소를 위한 새로운 아파트 소식이 이어집니다.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변 다윗/폴린
선교사님 가정과 윤 프란시스/수잔나 선교사님 가정 아이들 모습입니다.
1) 제자 양성 역사 |
아스타나 UBF와의 모임이 마친 뒤 자유로운 포토 타임(photo time)과 교제가 이어졌습니다. 짧은 영어로 한국과 카자흐스탄 대학생들은 인사를 나누었답니다. 이 시간이 짧아 아쉬웠다는 후문이 들릴 만큼....
모임이 끝나고 난 뒤에도 변 선교사님은 우리 팀을 아스타나 시내의 모처로 초대해서 학생들의 궁금증을 나누고 자신의 경험들을 소상하게 들려 주시는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아스타나의 마지막 날에는 UBF 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아스타나 도시 관광을 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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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변다윗 선교사님, 우측은 윤프란시스 선교사님이..우리 팀을 위해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변 다윗/폴린 선교사님 아이들과 형민&시은의 모습입니다. 시은이는 얼굴을 가리고 있네요. 선물로 받은 인형이 너무 좋은가 봅니다.
변 다윗 선교사님네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첫 아이가 다윗이고 둘째 아이는 다니엘이죠. 선교사님은 늘 이 곳에 뼈를 묻을 거라는 얘기를 해 오셨고 자신의 아이들의 더 큰 선교사역을 감당할 거라며 하나님께 감사드리기도 하셨습니다.
이번에 변 선교사님을 만나면서 들었던 얘기 하나가 지금도 기억 납니다.
"이 선생님...지금까지의 제 사역을 보니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기만 합니다. 나의 작은 헌신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놀랍습니다. 나의 미약한 것을 주님께 내맡길 때 그 분은 너무도 놀랍게 사용하시고 채워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바로 오병이어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밖에 없었죠. 만약 그걸 그냥 갖고 있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걸 예수님께 가져 갔을 때 5천명을 먹이고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헌신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다른 이슬람 국가를 향한 제사장 나라로 세우겠다는 학생들의 고백을 들으며 오병이어의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변 선교사님의 말을 들으며 감동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작은 헌신이라도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픈 열정이 샘솟듯 올라 왔습니다.
2005년 아스타나 UBF 기도제목
1. 아스타나 지부장이신 변 다윗 선교사님께 강철같은 건강과 성령 충만함을
주시고, 매주 권세있고 은혜가 넘치는 주일메시지를 주시옵소서.
2. 변 폴린, 윤 프란시스, 윤 수산나 선교사님의
아름다운 동역 역사 이루어 주시옵소서.
3. 요셉, 사라, 루스탐, 마리야 목자님들의 아름다운 동역 역사 이루어
주시옵소서.
4. 카라간다市 까루구 캠퍼스 개척역사 이루어 주시옵소서.
5. 매주 70팀 1:1, 50명 예배 역사
이루어 주시옵소서.
6. 새 형제/자매 12/12 제자 역사 이루어 주시옵서서.
7. 카자흐스탄이 중앙아시아 5개국을
먹이는 왕같은 제사장나라가 되게 하시옵소서.
아래는 2005년도 아스타나 UBF의 근황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은 이번 여름 우리 팀이 방문하고 난 뒤 아스타나 UBF 팀이 참여했던 CIS권 UBF 연합 수련회 소식을 실었습니다.
2005년도
2005년 아스타나 UBF 3월 리더 수양회 저희 아스타나 센타는 지난 3월 7일- 8일 이틀 간 30 명이
참석한 가운데 리더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말씀은 CIS 선교사, 제자 수양회때 했던 말씀 사도행전 18,19장, 로마서 8장, 이사야
49장이었습니다. 저희는 3강을 분반 공부및 강의 그리고 모든 강의를 리더들이 소감을 깊이 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를 크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 각 리더들이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말씀이 충만한 가운데 두란노에서 제자 양성 역사를 이룬 사도 바울의 복음 정신과 제자
양성 스피릿을 깊이 배우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수양회를 축복하여 주시고 말씀 역사 ! 이뤄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7월 아스타나 여름 수양회 2005년 아스타나 여름 수양회가 7월
5일(화)-8일(금)에 카라간다 근교의 '좌르따스' 휴양소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제목으로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2달 전 부터 저희가
드린 간절한 합심 기도를 받으시고 많은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수양회 참석은 총 43명(모스크바 3명: Ms. Joshua Park,
Sh.Artyom Datsenko, Sh. Ivan Fominykh, 미국 1명: Sh.Sarah Martin, 알마타 1명: Ms.John
Mulyukov 포함)이 참석하였습니다.
11월
아스타나 가을 창세기 아카데미 |
2005.12.2
[UBF 러시아 수양회] 맨손 사역 13년…제자가 1000여명으로
[국민일보 2005-09-06 15:35] |
“주여,나를 보내소서. 내가 가겠나이다.” 후원자도,후원금도 없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보장된 명예와 안락한 생활에 연연하지 않는다. 단지 기도와 믿음으로 복음을 심겠다는 생각뿐. 맨손으로 선교지에 도착한 이들은 현지에서 언어를 배우며 생계를 꾸려갈 방법을 찾는다. 건물 청소,날품팔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현지 대학교를 찾아가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1대1 양육을 시작한다. 그 열매는 13년 만에 옛 소련지역에서만 1000여명에 달한다.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는 지난달 25∼2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2005 CIS(독립국가연합) 여름 성경수양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보고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우즈베키스탄 등지의 선교 상황은 말 그대로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은’ 경우였다. UBF 선교사가 옛 소련 지역 중에서 가장 먼저 발길을 내디뎠던 러시아에서는 이미 현지인 지도자들이 사역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 현지인 지도자 중 일부는 쿠바와 베트남 등지에서 선교 정탐을 하고 돌아왔다. 올해에는 그루지야에 사역자를 파송하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친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벱메예프씨는 “예수님을 영접한 처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로지 사랑과 위로만을 받기 원했고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기려 했다”며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온전히 버리도록 하셨고 이제 예수님 한 분만을 따라 전 세계의 복음 역사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2000년부터 60∼65개팀이 1대1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알마티에는 지부가 3개로 확장됐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와 이슬람권 선교를 목표로 제자들을 양육하고 있다. 2003년 모슬렘에서 개종한 한 학생은 “아제르바이잔과 파키스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죄로 절망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잃었을 때 만난 예수님을 모슬렘들에게 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부터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키예프에는 70여명의 학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35명의 사역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하리코프에는 2004년 지부가 개척됐고 현재 20여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 현지인 4명으로 첫 예배를 드린 오데사에는 10여명의 학생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키에프에서 생활하는 지마 살루크씨는 “형을 따라 UBF 모임에 나왔지만 한동안 겉만 바뀐 모습으로 지냈다”며 “그러다가 성경공부를 통해 내 안의 위선을 발견했고 이제 두려움 없이 예수님을 전할 수 있다”고 간증했다. 벨로루시의 민스크에서는 가톨릭과 예식이 다르다고 현지인들이 낯설어 해 어려움을 겪었다. 또 생활과 비자 등의 문제로 선교사들이 벨로루시를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현지인 제자 양성을 시작으로 다시 기초를 쌓아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치열한 영적 전투에 노출되어 있다. 많은 선교사가 독립 이후 구호단체로 등록하고 복음을 전해왔다. 그러나 지난해초 법무부에서 비정부기구(NGO) 관리를 맡게 되면서 선교사들의 활동과 자금 흐름을 차단하고 있다. 2명의 현지인들이 성경공부를 통해 제자로 양육되고 있는 상황이다. UBF 선교사와 현지인 사역자들은 1대1 성경공부와 인생소감(간증) 발표를 통해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제자로 헌신하고 있다. 월급 등 경제적인 관계로 현지인과 접촉하는 것과는 다르다. 현지인 사역자들 역시 UBF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옛 소련 지역으로 파송돼 활동하고 있다. 피부색 언어 생활 문화가 다른 한국인과 달리 현지인들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열매들이 다시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활동하는 한 선교사는 “공산권과 이슬람권 선교를 위해서는 옛 소련지역 현지인 사역자 양성은 필수적인 일”이라며 “가장 폐쇄적이라는 북한도 복음으로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스크바=전재우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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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F 모스크바 수양회] ‘북한 선교의지’ 러서 열광적 반응 | ||
[국민일보 2005-09-05 17:42] |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에게 복음을 전하다.’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파드모스코비예’에서 지난달 25∼28일 열린 대학생성경읽기회(UBF) 2005 CIS(독립국가연합) 국제여름수양회에 참가한 한국 안암센터 회원들이 선보인 선교 무용의 주제다. 짧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화동들은 한국의 한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음악을 반주로 흥겨운 춤을 선보이면서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피렐 카스트로 대통령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무대 좌우에서 나타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곧 김 국방위원장이 손에 든 성경을 카스트로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서로 포옹했다. 안암센터 회원들의 공연은 폭발적인 박수를 끌어냈고 객석에서는 연방 “앙코르”가 터져나왔다. 공연이 훌륭하고 예술적인 가치가 컸던 때문이 아니라 북한 선교 의지 때문이었다. 26일 마련된 ‘CIS 선교의 밤’과 27일 ‘공산권과 모슬렘권 선교의 밤’은 수양회 참가 회원들을 하나로 이어주며 선교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각국 대표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선교 상황을 보고했고 선교보고 중간에 수양회 참가국 회원들은 각국의 전통 무용과 음악을 선보였다. 이날 ‘CIS 선교의 밤’에서 각국의 전통 무용을 접한 수양회 참가 회원들은 은근히 27일 ‘공산권과 모슬렘권 선교의 밤’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CIS 선교의 밤’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와 예카테린부르크,우크라이나의 오데사센터 회원들이 전통 무용을 선보였다. 이들 공연은 500여명의 참석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러시아 모스크바센터의 UBF 회원들은 안무가를 초청해 1개월여 동안 연습해 전통 춤 ‘칼린카’를 선보였다. 전통 춤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만 뽑아 새롭게 구성했다. ‘공산권과 모슬렘권 선교의 밤’에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한국 안암센터 회원들이 각각 터키 전통 춤과 모슬렘의 춤,북한과 쿠바 선교를 위한 창작 공연 등을 공연했다. 이옥기 UBF 한국본부 선교부장은 “4년전 수양회에선 러시아 모스크바센터에서 북한 춤을 선보이더니 이번엔 한국팀에서 북한 선교를 위한 공연을 선보였다”며 “각국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공유하고자 이같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선교부장은 “옛 소련 지역 국가에 대한 선교와 제자화는 매우 중요하다”며 “그 이유는 이 지역의 기독인들이 북한 쿠바 베트남 중국 등 사회주의권 선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스크바=전재우기자 jwjeon@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