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젖병

2005년 10월...우리 가족은 새 국면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에선 젖병을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형민이의 출생부터 시작된 우리집의 " 아기 역사"는 이번 달로 딱 만 5년이 됩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집에는 항상 젖병이 나뒹굴었죠. 2시간 간격으로 젖병을 찾던 아기부터... 잠이 오면 으례히 습관적으로 젖병을 물던 아기들까지...그야말로 젖병과 기저귀로 점철된 삶이었죠.

2004년 1월 15일, 성은이가 출생한 뒤론 아기들과 함께 지내는 삶은 더욱 고달파졌습니다. 끝없이 요구하는 아이들을 받아 주는 선화를 보며 '엄마의 위대함'을 철저히 느끼게 된 것도 이 시기였죠. 그런데...며칠 전 선화로부터 놀라운 얘길 들었습니다.

"이제 성은이가 젖병을 떼는 것 같아요..어젠 처음으로 젖병을 안 찾고 그냥 잤어요..."

늘 잠 들 때마다 젖병을 찾던 성은이...하루 종일 우유를 찾지 않다가도 이 때만 되면 "우유...우유..." 라고 칭얼거리며 젖병을 물고서 잠을 청했죠. 그런데 이제 성은이가 젖병을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은이도 많이 자랐습니다. 생후 1년 10개월이 되는 성은이는...곧잘 오빠에게 가서 안아 달라고 합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형민이는 성은이를 안고 거실 여기 저기에 옮겨 놓는 걸 무척 좋아하지요. 성은이도 오빠 허리를 꼭 잡고 있지요.

 

'젖병 없는 세상이 도래한단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그 후로 몇 날을 지켜 보았지만 성은이는 이젠 더 이상 젖병을 찾지 않았습니다.

"만세! ..드디어 젖병에서 해방이다." 우린 이 지긋지긋한 젖병을 모두 모아 불태우는 행사(?) 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즐거워 했습니다.  사실 몇 개월 전, 선화는 여전히 수북히 쌓인 젖병을 바라보며 이거 다 버리는 날 파티라도 해야겠다며 그 날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적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젖병이 우리 가정의 마지막 젖병입니다. 이 사진을 찍고는 파티는 생략한 채 바로 쓰레기통에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참 후련하더군요.

이젠 젖병을 찾는 아기가 없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흘러간 지난 시간들이 애틋하게 떠 오르지만...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우리에게 기쁜 소식임에 분명합니다. 늘 얘기했던 '7년 대환란'의 끝이 다가왔다는 징표이니까요.  지난 10월 5일을 지나면서 결혼 7년째에 접어드는 우리 가정은 정말...결혼 7년만에 젖병 없는 가정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최근 가족 얘기를 많이 올리진 못했지만...사진만 보시더라도  아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위 사진처럼 시은이와 성은이는 엄마와 나란히 서서 설거지를 할 정도지요. 선화는 물에 젖는다고 늘 야단 치지만 두 아이는 엄마가 늘 하고 있는 이 특별한 작업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만 1년 10개월의 성은이가 똑똑하게 말하는 단어도 많아졌습니다. 언니, 오빠가 있는 바람에 셋째 성은이는 말도 빨리 늘고 머리 회전도 빠르고 컴퓨터나 오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도 잘 따라 부릅니다.

컴퓨터에서 "주 품에" 가 흘러 나오면 성은이도 함께 노래하죠.. 부정확한 발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듣고 있으면 얼마나 신기하고 감격적인지... "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 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 보리라"  아기가 이 노래 부르는 걸 들어 보셨나요?

이 외에도 성은이는 언니, 오빠가 부르는 파이디온 어린이 노래들을 신나게 따라 부릅니다.

언니, 오빠, 헝어니(성은이) 같은 가족 호칭 단어는 물론이고  "아이 마!(하지 마!)",  "시러(싫어)", "됐어! ", "같이.."  같은 단어와 조사가 없는 문장을 제법 구사하지요.  엄마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요..." 라고 말할 줄도 알고 책을 펴서 "바나나, 꿀꿀,  없어요..." 라고 혼자 책 읽는 시늉도 할 줄 압니다. 하지만  고집도 무척 세서 언니( 시은이)와 국지적 분쟁을 자주 일으키는 편이죠.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해서 언니, 오빠보다 훨씬 더 많이 문 밖에 나서는 걸 좋아합니다. 아빠가 나가더라도 늘 함께 땨라 나선다고 대성통곡하는 아이죠.

 

성은이가 이렇게 젖병을 떼 버리고 나니...우리 부분의 맘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젠 소변도 제법 가리고 ... 대변도 보고 싶으면 "아야..아야.." 라고 인상을 씁니다. "아야 아야..." 하면서 양변기에 앉으러 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우리집 거실에서 밖을 내다 본 전경입니다. 이 아파트에 산 지 이제 8개월... 멀리 광안리 앞바다의 수평선이 또렷이 보입니다. 황령산 자락이라 공기도 맑고 주변에서 산림과 밭을 볼 수 있어 한층 더 여유로운 곳이죠.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 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직 놀이터에서 놀고 있나보다 싶어 놀이터 쪽 거실 문을 열고 내려다 보았습니다.  

저 멀리 아이들이 보이는데...선화와 아이들이 보이시나요? 잘 안 보이신다구요... 좀 더 확대할께요...

 

아빠가 18층 베란다에서 "형민아...."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형민이가 손을 흔든 뒤 달려 오네요.

10월 24일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지 만 2년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귀국 후 1년은 양산에서...1년은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요즘 우리 가정의 진로를 놓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 동안 부산의료선교교육훈련원에서 훈련을 받으며 이런 생각은 깊어졌고...내년에는 우리가 가진 비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가기로 했습니다. 내년에는 포항에 있는 한동대 선린병원에서 근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요즘 하나님... 그 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가정을 한 방향으로 이끌고 계심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기회  되는대로 함께 나누도록 할께요.

성은이가 젖병을 떼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귀국한 뒤 지난 2년 동안 아이들을 키우는 시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출산을 앞두고 귀국을 했으니까요...본가가 경남 창녕에 있는 상황에서 양산에 있는 처가집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세 아이를 기르기가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린 양산에서 1년, 부산에서 1년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국내 최대 선교기지병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한동대 선린병원에서 근무하며...카자흐스탄 아스타나를 향한 활동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국내에선 선교지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기도하며 계획하고 시행한 뒤 하나님이 정한 시기에 아스타나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친히 인도해 오신 것처럼... 

선화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 젖병에서 졸업한 거 축하해..."

세 아이를 무사히 지금까지 돌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젖병이 없어진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머무실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200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