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일 이후 생긴 두 가지 사건...

1. 삼일절 체육대회

저희들이 속해 있는 지역 교회는 서부산교회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부산노회 서부시찰에 속해 있지요. 교회가 아미동에 있는 게 제게는 큰 축복이랍니다. 병원과 가깝기 때문이지요...

삼일절 날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중고대 연합 체육대회지요...하지만 이 체육대회는 단순한 중고대 연합 체육대회 이상의 의미가 있는 대회였습니다. 그것은 오는 4월 5일 부산  CE( 청장년 연합회) 주최로 열리는 교회 대항 체육대회를 대비하는 연습 겸 평가전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CE에서는 매년 체육대회를 합니다. 작년 서부산교회는 배구와 족구 부문에서 모두 4강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 전해에는 계주 부문에서 1등상을 탔었고 그 때 받은 트로피는 아직도 2층 교육관 피아노 위에 놓여 있습니다. 올해는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지....삼일절 체육대회는 1년간 기다려온 우리들의 연습장이었습니다.

중고대 뿐 아니라 40대 장년 집사님들까지 오셨습니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운동이지만 힘든 운동이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대회 참가 자격은 고등학생 이상이기에....일단 우린 많은 청년들이 함께 참석하기로 했었습니다.

오전에는 차분하게 중고대 체육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속에서 뛰어 다녔죠... 넓은 운동장...모래 운동장에 서면 마음이 설레입니다. 달리고 싶고.. 공을 던지고도...차고도 싶습니다.

전 초등학교 때 학교 육상부였습니다. 그 땐 아침에 학교에 오면 운동장에 나가 1시간씩 매일 운동장을 돌고 운동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주로 스트레칭 체조와 순발력을 기르는 운동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린 육상 스파이크를 사러 대신동까지 걸어 다녔고 구덕 운동장의 세퍼레이트 코스(트랙이 표시된 폴리우레탄 트랙) 에서 100미터를 전속 질주 하다가 다음 100미터는 속도를 줄여 뛰고 다시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고....이런 식으로 400미터 트랙을 돌며 연습했습니다. 학년 별로 4명이 정규 멤버였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감격적인 순간은 제가 6학년 때입니다. 당시는 매달 서부지구 학교별 육상대회가 열렸습니다. 우리 학교(부민 초등학교)가 속해 있는 서부지구는 주변의 화랑국민학교,토성(경남)국민학교,남부민국민학교,충무국민학교,  부민국민학교를 포함한 10여개 학교가 있었습니다. 아마 9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달, 우린 토성 초등학교를 누르고 우승기를 휘두르며 학교로 돌아오는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토성 초등학교는 교육청에서 육상 양성 학교로 지정하고 있었고 실제로 부산경남일대의 체격 좋고 빠르다는 학생을 스카웃해서 훈련시키는 학교였습니다. 대회에 나가보면 다들 고등학생 형님처럼 키가 크고 체중도 많이 나가 설사 스타트가 조금 늦었다고 하더라도 30미터만 지나면 우릴 앞지르는 가속을 보이는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달은 부민 초등학교가 1등을 했습니다. 그 때....1000미터 연습을 한다고 해가 내리쬐는 운동장의 조례대 밑에서 소금을 먹어가며 가뿐 숨을 몰아 쉬던 힘든 훈련과 방학 중에도 나와서 연습하고 우유 하나 먹고 집에 돌아가는 꾸준한 훈련이 우리에게 준 큰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보수천을 끼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느낀 그 감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지요...그 후 체육 특기생으로 진학한 다른 동기생들과는 달리 전 육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꿈은 육상 선수는 아니었으니까요...

체육대회 장소는 영도 고신대학교 운동장입니다. 여기 와 보셨습니까? 우리 나라에 이런 대학교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하긴....이곳에서 선교 횃불이나 SFC 대회가 간혹 열리는데 외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바다가 한 눈에 바라다보이는 이 학교를 향해 "wonderful!" 을 연발한다고 합니다.

식사 후 오후에는 전력 점검을 위한 축구 시합이 있었습니다 .주로 교회의 대학부, 청년, 장년들이 주축이었고 주변의 다른 아저씨들도 포함된 그야말로 고신대 운동장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본격 축구 경기였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 축구 경기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제 홈페이지를 찾으시는 분들께 얘기 드리려고 시작한 것입니다. 전 그 날 ....마음 껏 달렸습니다. 수요일이라 저녁 수요 예배가 마음에 걸렸지만....그래도 원없이 달렸습니다. 주로 측면 공격을 즐겨 하는 전 지난 1년간 해 보지 않은 육체적 운동을 이 날 퍼부었습니다.

해가 내리쬐는 더운 날씨(다들 좋은 날씨라고 하지만) 속에서 달리다가 많이 넘어지기도 하고 넘어지면서 뒷통수나 머리를 운동장에 부딪히기도 해 가며.....턱 밑에까지 차 오르는 숨을 억누르며 달렸지요.....( 아마 다른 사람이 보면 의아해할 정도로......)

전후반 각각 25분의 경기가 끝난 뒤.....그 날 저녁 수요 예배를 드릴 때까지만 해도 몸의 이상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3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전 제대로 걷질 못했습니다. 횡문근 융해증이란 병이 있습니다. 체내의 골격근이 분해되는 병인데 패혈증 이나 약물 중독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3월 2,3일 제가 느낀 느낌은 횡문근 융해증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온 몸이 아프고 두통과 안구통이 심했습니다.

선화가 얼마나 기가 찼을까요? 아침에 운동하러 나갈 때 임신하고 있는 선화가 운동장에서 앉아 모래 바람 맞고 있는게 안 좋을 것 같아 혼자 나가면서 가볍게 나갔는데.....돌아 올 때는 얼굴은 봄볕에 그을러 까맣고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으니......지금은 몸이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 날 함께 뛴 많은 선수들이 피곤해 했지만 그 날 뛴 영훈이(저의 남동생입니다.)는 끄떡 없었고 수요일 저녁 예배 설교까지 하고서도 전혀 몸의 이상을 느끼지 못했답니다. 아마 나보다 많이 뛰었을 텐데.... 이걸 보면 병원 안에서 왔다 갔다만 한 나의 체력이 얼마나 약해졌는가 알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을 아무리 뛰어도 끄떡 없고 단련되어 있던 때가 그립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들은 병원 내에 체력 단련을 위한 시설이 있다는데....아직 우리 병원은 없습니다. 그저 의사들은 닭장 속의 닭처럼 왔다갔다 하는 겁니다.

 

2. 주훈이 시집 가던 날

주훈이가 시집을 갔습니다. 주훈인 제 여동생입니다. 75.8.15일생이지요...이제 26살입니다....지난 3월 4일 ...영도 고신대학교 대학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주훈인 고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를 올해 졸업했습니다. 그러니까 졸업하자말자 결혼하는 셈이지요....신랑은 서부산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긴 적이 있는 이태훈 강도사님이랍니다.

주훈이의 사진은 추억의 앨범에 어린 시절이 올라와 있습니다. 주훈이의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이 제 사진첩에는 없더군요...여동생 하나 있는데 변변한 사진 하나 없다니...(물론 자기 사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주훈이의 방침 때문에 소장에 어려움이 있지만.....) 제 졸업식 날 주훈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군요...사진 중 주훈이와 남동생인 영훈이가 나온 부분 만을 스캔해서 소개합니다. (제 남동생과 여동생입니다.)

주훈인 제 동생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 예쁘고 귀여운 자매입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자매였습니다.

주훈이 결혼식 날은 비가 왔습니다. 그리고 좀 슬폈습니다 . 그 날,  제 결혼식 날 장모님이 어떤 맘이셨을지 이해가 되더군요...

주훈인 오빠 둘을 위해 많이 희생했습니다. 어머니가 직장 생활을 하게 되신 이후부터 주훈이는 자신이 학교에 가기 전에 오빠 두 사람의 도시락을 챙겨야 했고 ......시간이 지나서도 오빠의 늦잠을 깨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착한 주훈이는 언제나 맑고 밝았습니다.  주훈인 때로는 어린 아이같이 오빠를 잘 다독거렸고 집안에 대소사를 누구보다 먼저 챙기고 모두들 평화롭게 만드는 peace maker였습니다.

 오빠 뒷바라지 하느라 제대로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집안 일도 많이 해야만 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집에서 자란 탓인지 예의도 바르고 어른을 잘 섬길 줄 아는 주훈이.....주훈이가 가게 될 시댁은 집안에 친척이 많은 집안이라는 얘길 듣고 주훈이는 잘 할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주훈이에게 "주훈아..." 또는 "주야......"라고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이씨 가문에 시집을 갔으니 "이실(李室)아..."라고 불러야 된답니다. 전에는 주훈이와 친한 오빠였지만....이젠 주훈일 지키고 사랑해 줄 남편이 생겼습니다.

주훈이가 시집가기 이틀 전, 전 점심시간에 의료 보험증을 전달하러 부민동 본가를 방문했야 했습니다. 그 곳엔 주훈이와 영훈이가 함께 있더군요...둘이서 토스트를 구워 먹는다고 하면서  모여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자...."야! 오빠다....."하고 주훈인 좋아했습니다.  그 때 잠시 함께 앉아 있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며 웃고 얘기하는 시간 속에서....'이렇게 삼남매가 앉아서  즐거워하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구나...'라는 슬픈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론 결혼 해도 삼남매가 앉아 얘기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과 같이  부모님 슬하에서 삼남매로 함께 지내는 것은 마지막이지요...

주훈인 지금......신혼 여행 중입니다. 신혼 여행지는 강도사님이 2년간 선교 훈련 받으며 머물렀던 필리핀입니다. 제 홈페이지를 업데이트 하면서 주훈이 얘길 꼭 넣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주훈이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까지 받아 왔듯이 앞으로도 하나님만 섬기고 사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살면 좋겠습니다.

아마 지금 이렇게 아쉽고 안타깝고....애처롭게 느껴지는 주훈이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깊은 만큼 ......언제가  주훈이와 영훈이를 보며 마음 속 깊이 대견해 하며 축복할 날이 오겠지요....

결혼이 주훈이에게도 좋은 일이고 축하해야 할 경사인데도.....결혼식 장에 서 있는 주훈이의 모습을 보면서 웬지 자꾸 눈물이 나는 건 왜 그럴까요? 토요일 결혼식을 마치고 주일날  서부산교회에서 신랑신부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후 예배시간에 두 사람은 앞에 나와서 특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4개월 여 전에 저와 선화가 그 자리에서 특송을 했었고 모두들 흐뭇하고 기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주훈이 부부가 특송할 때의 교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 뒷자리에 계시는 할머니의 눈등은 붉어지셨고 계속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디선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주훈이를 사랑했던 많은 대학부 후배들, 청년들은 침울해 있었습니다.

여자는 결혼해서 시집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주훈이가 시집가는 걸 보면서 ..... 참 주훈이가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게 시집 와 있는 선화를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전 올해 서른입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것......참 새로운 경험들과 느낌들이 생깁니다. 이전에 듣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여동생을 시집 보내면서 느끼는 시린 맘과 갖가지 생각들은 제게 더욱 더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양한 국면을 접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의 삶의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다시 느끼며...

 "주훈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