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의료선교여행기 ① - 하나도 안 변한 카자흐스탄

여행기라 하면 시간 순서대로 쓰는 것이 가장 편하지만 실제 활동기에 앞서 우리가 겪었던 어려웠던 순간들을 먼저 짚어 봅니다.   

#1 비가 오는 출발

 그렇게도 오랫동안 준비하며 기다려왔던 미션트립 첫 날...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원래 비를 너무도 좋아하기에...출발 순간에 비가 온다는 사실은 내 맘을 더욱 설레게 만드는 무대 장치지만 아이들과 함께 집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들(진료용품, 검사물품, 현지 선물용품)을 혼자 콜 밴에 옮겨 싣느라 온 몸이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박스를 옮기는 그 몇 분 동안 유난히 집중호우가 거세지더군요.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옷을 말리며 미션트립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짐을 옮기고 나자 차창 밖의 비는 가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문현동-부둣가를 지나 부산 KTX  역 2층에 차를 대 놓고 다시 짐을 역 구내로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학생들이 역에 미리 나와 있어야 했지만 성용이 외에는 도와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출발 아침 다들 바쁘게 움직여야 했나 봅니다. 밴에서 내려 짐을 다시 운반하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듯이 가늘어졌던 빗줄기는 다시 굵어져 우리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운전 기사 아저씨부터 어린 형민이까지 박스 짐을 서둘러 날라야 했죠.

KTX  출발 시간은 9시이지만 8시 30분까지...성용이 외 5명의 학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경인이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학교에 모아 두었던 모든 짐을 모두 들고 나타났고...우행이는 국외여행 허가서를 두고 왔다며 PC방에서 출력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고...양산에는 오는 주현이는 비 때문에 차가 막혀 아무래도 9시까지 도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05.8.1 8:30 pm  KTX 부산역. 우리 가족과 성용이만 보입니다. 시은이 뒤로 보이는 짐들이 아침에 어렵게 싣고 온 짐들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시작은 분주했습니다. 출발 시각 10분 전...이번 열차를 놓친다면 10시 20분 기차를 타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오후 3시 비행기를 놓칠 지도 모릅니다.  10분 전..인국이와 우행이가 도착하자 예정대로 9시 KTX를 탈지...아직 도착안 한 주현이를 기다렸다가 나중 열차로 같이 출발할 지 머뭇거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선화가  "이번 열차를 타자..." 고 짐을 들고 뛰는 바람에...모두 함께 뛰어야 했죠. (나중엔 이 결정이 탁월한 결정이었음이 드러납니다.) 출발 3분 전...모든 사람이 박스 짐을 들고 뛰고 있었습니다. 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겨우 겨우 KTX 에 오를 수 있었죠. 구슬땀을 흘리며...출발 1분 전까지 "초 치기" 로 시작한 미션트립... 이렇게 부산에서의 출발은 비(rain) 반, 땀(sweat) 반 이었습니다. 아직 도착 못한 주현이에겐 비행기편으로 서울을 거쳐 인천 공항으로 오라고 알렸습니다.

  

05.8.1 1:10 pm 인천 공항 구내로 들어서는 모습

 

#2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 출발 시간은 3:30 pm... 인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벌써 1:30 pm 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침 9:00에 출발하는 KTX를 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에어 아스타나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 수속 밟는 곳으로 가서 준비해 온 여권과 항공권을 내밀었습니다. 항공 업무를 대행하던 직원은 여권 내역과 비자를 꼼꼼히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스무개가 넘는 수화물을 데스크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들 비자는 어디 있나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 비자라뇨? 엄마 비자만 받으면 동반 자녀의 비자는 필요없다던데요..."

형민이와 시은이는 이번엔 여권이 없습니다. 지난 2003년 형민,시은이와 함께 러시아에 들어갔을 때...선화 여권 안의 동반 자녀로 처리하지 않고 아이들 여권을 다 따로 만든 바람에 비자 수수료만  200불 이상 추가로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경험을 되살려 이번에는 아이들을 선화 여권 뒤에 동반 자녀로 올렸고 비자 수속을 밟을 때도 8명 분의 비자 수수료만 받길래 '그럼 그렇지...' 하고 나왔는데...뜻밖의 날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여행사에 아이들 비자에 문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문의했던 터라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공항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엄마 비자에 동반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명시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어느 여행사에서 이렇게 일을 처리했나요?" 안타까운 듯 절 쳐다보는 공항 관계자의 얼굴을 보며 내 속에도 당혹감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나...이제 시작인데...' 그래도 방법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을 내버려 둔 채 우리만 카자흐스탄으로 갈 순 없지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공항 직원은 주변에 있는 에어 아스타나 한국 담당 총대리인을 수소문해서 우리에게 데려 왔습니다. '이 엘레나'라고 적힌 명함을 내미는 것으로 보아 고려인 같았습니다. 우리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은 그녀는 바로 주한 카자흐스탄 대사관 영사에게 휴대폰 연락을 취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아이들 비자를 받으면 되지만...가장 큰 문제는 비행기 출발 2시간도 남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사관이 있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 국제공항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휴대폰을 통해 영사에게 이런 저런 사정을 얘기하는 그녀의 말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이 출발부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는 걸까?'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통화를 마친 그녀는 우리에게 다가 와 말했습니다.

"다행이예요. 영사님이 지금 이 공항 안에 있어요. 오늘 VIP 한 분이 출국한다고 해서 배웅하러 이 곳에 오셨다네요. 일단 아이들과 엄마는 탑승 게이트로 먼저 나가 영사님을 만나도록 하세요. 영사님은 공항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그녀는 운이 좋다고 말했지만 내 맘 속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선명하게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2시간 후 안전하게 인천공항에서 이륙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특별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05.8.1 1:30 pm 탑승 수속 전 공항에서...

 

 

05.8.1 6:50 pm 알마티에 가까워지면 천산 산맥에서 이어지는 산맥들이 내려다 보입니다. 8월에도 이렇게 만년설이 보이죠. (비행기에서 촬영)

 

  #3 입국 수속...

인천 공항을 출발한 지 7시간...알마티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으로 입국하는 게 이번이 네 번 째인데...이전 세 번은 모두 시골 시외버스 정류소 같은 '구 공항'을 이용했었기에 이번이 신공항을 이용하는 첫번째 입국입니다. 인천 공항의 축소판 같은 신공항은 '이게 카자흐스탄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고 입국 심사도 여러 곳에서 이루어져 이전과 달라지 모습을 기대케 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입국 심사 시에 와르르 무너졌지요.

입국 심사 유리 부스 건너편에서 도무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에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 서라는 손가락질만 해대는 공항 직원의 모습을 보니 1년 9개월 전 떠나 왔던 카자흐스탄 그 모습 그대로다 싶었습니다. 영어 한 마디 없이...차가운 무표정, 거만한 태도...상대를 무시하는 듯 이뤄지는 그 동작 하나에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입국 심사를 거치고 나오는 한국인들의 표정은 그야 말로 가관이었죠.

그리고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4 짐 찾는데만 1시간...

 알마티 국제공항에 착륙한 건 알마티 시각으로 저녁 7시 반...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 찾는 곳으로 나오자 시계는 저녁 8시 쯤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매년 섬머 타임을 실시하던 카자흐스탄이 올해는 섬머타임을 시행하지 않았음을 안 것도 이 때였습니다. 대통령이 건강에 안 좋다며 섬머타임을 하지 말라고 그랬다나...우스개 같은 얘기지만 카자흐스탄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요.

입국 수속을 마치고 수화물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런데...이게 문제였습니다. 원래 이렇게까지 꾸물거리진 않는데...오늘 따라 수화물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노심초사...이래저래 서서 기다리기를 한 시간, 정확하게 한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우리 짐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돌기 시작했습니다. 수화물을 받고 나온 시간은 밤 9시 30분...

한국에서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여 온 일행은 스물 두 개의 수화물 표를 확인한 뒤 서둘러 공항 밖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수화물에 대한 세관 검사도....너무 늦게 나온 탓인지 그냥 생략하고 내 보내더군요. 한 시간 넘게 짐을 기다린 학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알마티의 첫 인상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었습니다.

 

05.8.1 10:50 pm 알마티 국제공항 청사의 모습입니다.

 

 #5 아스타나로 가기 위해 알마티 공항으로 다시 갔을 때...

우리의 목적지는 아스타나입니다. 만일 한국에서 아스타나까지 직항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까지는 인천-알마티 노선이 유일합니다. 올 9월부터 아스타나까지 직항이 열린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이번에 가 보니 당장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알마티에서 하룻밤을 묵고 한카병원을 돌아 본 다음(이런 얘기들은 다음에 다시 할께요...)  오후 12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 아스타나로 가기 위해 다시 알마티 공항을 찾았습니다. 공항 청사 밖으로는 짐을 운반하는 수레를 가져갈 수 없다기에 모두가 무거운 박스를 들고 공항 입구에 만들어 놓은 짐 검색대까지 옮겼습니다.

X선 투시를 하던 공항 직원들은 박스 안에 보이는 이상한 물건들에게 대해 보여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이죠. 주사기, 바늘, 시험관, 원심분리기, 약제 등은 X선 투시 하에 온통 이상한 물건들로 보여질 테니까요.  

카자흐스탄은 약제의 반입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누군가가 카자흐스탄에 있는 친구에게 혈압약을 보내고 싶다면 우체국에 가서 소포 안에 든 물건이 약이라고 말해선 안됩니다. 담당자는 EMS관련 규정을 열어 볼 테고...카자흐스탄은 약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물품 수령을 거절할 테니 말입니다. 카자흐스탄은 마약에 대한 공포가 큰 나라여서 알 수 없는 약의 반입을 무척 꺼리고 있지요. 그래서 전 약을 먹거리(?)로 적어 보내곤 했습니다.

05.8.2 11:30 am  알마티 국제공항 안에서...

 

어쨋든 단기 의료팀이 들어올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약 입니다.  의료 장비나 물품에 대해서도 행여나 상업적 목적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지, 들여 오는 약제에 대한 허가증이 있는지...이런 질문이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제가 지금 수준의 러시아어마저 구사할 수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이런 약이나 장비들은 공항에서 묶였을 테고...이 일을 피하기 위해선 상당한 금액을 주고 흥정을 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스타나 1병원에서 근무했던 과거사를 얘기해가며 순수 봉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임을 설득해 어렵게 짐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쳤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검사를 위해 풀어 헤쳤던 박스를 다시 봉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유리 테이프도 당장 찾을 수 없었고...짐 검색대 옆에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와 몇 몇 젊은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책상 앞에는 "가로,세로,높이 각각 50cm 미만은 500텡게, 그 이상은 700텡게" 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죠. 이 젊은이들은 포장이 뜯긴 우리 박스들을 하나씩 가져다가 다시 포장을 하며 500텡게, 700텡게씩 돈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한 쪽에선 뜯고 그 한 쪽에선 다시 붙이면서 돈 받고...이들의 커넥션이 눈에 보였지만 선교지에까지 와서 싸울 필요가 없겠다 싶어 그저 그들이 원하는대로 지불하고 지나 왔습니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수화물 뿐 아니라 자신들의 손가방까지 다 들춰 보는 이들의 철저한(?) 태도에 적잖게 당황해 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겪으며...학생들도 이곳이 바로 과거 '철의 장막'으로 불리웠던 구 공산권 국가이며 지금도 15년전까지 계속되던 사회 분위기와 습관들이 지금도 은연히 내려 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스타나로 올라오는 비행기에서 우린 다시 한 번 한숨을 지어야 했습니다. 시은이의 좌석이 다른 사람과 이중으로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05.8.6 4:30 pm  아스타나에 새로 지어진 대통령 궁(집무실)

 

 #6 귀국길 알마티 공항에서...

은혜로왔던 의료선교여행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새벽 5시 5분에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완 선생님 댁에서 새벽 2시 반...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최대 장애물, 알마티 공항...이번엔 짐 검색대를 쉽게 통과했습니다. 일주일 전 만났던 직원들도 있었기에 비교적 얘기는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선물로 가져 나가는 해바라기 씨앗이나 차 등을 보며 웃기까지 했었죠. 이번에도 짐을 뜯었지만...새벽이라 테이프 붙여 주고 돈 받는 젊은이들은 없었습니다. 다른 한국팀에게서 테이프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검색대를 무사 통과한 지라 유유히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데 직원 하나가 우리 짐을 가리키며 어디론가 가라고 지시하더군요. 저 혼자 몇 개의 짐을 끌고 가라는 곳으로 들어 갔습니다. 책상 하나 갖다 놓고 직원 하나가 박스 안에 든 짐이 뭐냐고 또 묻더군요. 의료 장비와 일반 짐이라고 대답했죠. 그러자...입국시 세관 검사는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입국할 당시 세관에서는 그냥 통과시켰었기에 세관 검사증이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사실대로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이 젊은 여자 직원이 다시 짐을 공항 밖으로 빼라는 것입니다. 그 참...얼마나 황당하던지...전 또 과거 일을 들춰 가며 아스타나 1병원에서 근무한 사실과 아스타나에 도움을 주고 왔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공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사정해야 하는 우리 상황이 못마땅했지만 카자흐스탄의 사회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저로선 어쩔 수 없었죠. 한 동안 들은 척도 안하고 그냥 공항 밖으로 나가라고만 하던 직원은 결국 한 참 실랑이를 벌인 뒤...그냥 "가라" 고 손짓을 하고 뒤돌아 섰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무거운 짐수레를 끌고 다시 학생들 있는 곳으로 와 보니...이게 또 무슨 일이야...또 다른 직원이 우리 짐에 약이 있다며 어디론가 일행을 데려갔다는 것입니다. 방금 만난 사람이 세관 공무원인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또 어디 소속 친구들인지...

이번에는 젊은 남자 직원이었습니다. 짐에 뭐가 들어 있는지 묻더군요. 특별한 게 없다고 했지요. 뜯어 보라고 하더군요. 이번엔 저도 좀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칼도 없고...단단하게 묶어 둔 박스인지라...뜯고 싶으면 직접 뜯어라고 했죠.

안에 약이 있느냐고 묻길래..(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팀 중 누군가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죠.) 약은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번 의료선교여행을 마치고 남은 약들은 모두 아스타나와 알마티 협력의사 선생님들에게 기증하고 왔기 때문입니다.

이 직원은 절 사무실 안으로 데려 가더니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참이나 앉아 있더군요. 아마도 뭔가를 바라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이걸 보며...'이 공항 관계자들이 얼마나 한국 사람들을 가소롭게 보기에 이러는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다 돈을 주더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한국인들이 공항을 출입하며 이런 저런 사소한 문제에 걸리며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공공연한 습관이 되어 버린 이곳 알마티 공항은...'한국인들은 봉'이라는 생각이 직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단기팀들이만이라도 절대로 돈으로 해결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친구에게 이런 저런 얘길 했습니다. 저보다 더 열 받은 선화가 사무실에 들어왔고 우행이도 들어 왔습니다 그렇게 몇 십분이 흘렀을까....역시나 그냥 가라고 보내주더군요. 결국 그냥 보낼 거면서 이런 저런 트집 잡아 돈을 챙겨 보려는 이들의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한 판이었죠.

05.8.7 7:30 pm  알마티의 중앙 모스크(이슬람 사원)

 

발권을 받고 탑승 게이트로 가기 전...우리가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하는 곳은 출국 심사대였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통과한 뒤 일행이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하나 둘 씩 나오는데...은주가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쉽게 놓아 주지 않는 알마티 공항...은주 곁으로 달려 갔지요. 심사관은 은주가 입국 카드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입국할 때 적었던 입국 카드는 도장을 받은 뒤 소지하고 있다가 출국 시 다시 제시해야 하는데 아마도 입국 카드가 분실된 것 같았습니다.

잘 챙기지 못한 제 책임이다 싶어...심사관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돈이 많이 든다고 하더군요. 또 돈 얘기다 싶어...그렇게 벌금을 받으려면 규정집에 각 사안마다 벌금 액수가 명시해야지 그런 것도 없이 무조건 돈이 많이 든다고 하면 되느냐고 되물었죠...그 말이 담당자에게 거슬렸나 봅니다. 계속 잡고 내 보내 주지 않으면서 이제는 얼마를 내면 되냐고 물어도 돈으론 해결 안된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입니다. 경찰서에 가야 한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사실 그 직원이 그렇게 하고 있어도 결국에는 내 보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

그렇게 오랫동안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실랭이를 벌였습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는 걸 보며..."이 사람은 카자흐스탄 국민들을 돕기 위해 봉사를 하다 돌아가는 것이다" 란 얘기까지 했죠. 그랬더니 그 직원은 정색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라고 잘라 버리더군요. 그녀의 차가운 말을 들으며 '참으로 카자흐스탄은 사랑받지 못한 나라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할 줄 아는데...관용이나 아량도 없고...

결국 우리의 실랭이는 출발 5분 전, 그 직원보다 높은 담당자가 나타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높은 사람인듯한 사람이 찾아 왔고 전 그 사람에게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담당자에게 그만 보내 주라는 사인을 보냈고 우린 어렵게 탑승 게이트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경인이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배님... 성용이도 입국 카드가 없어 붙잡혔는데 50불 달라는 걸 15불 만 주고 나왔대요..."

은주에게 모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성용이도 어려움을 당했던 모양입니다.  

 05.8.2 3:30 pm  활주로에서 본 아스타나 국제 공항

 

  #7 에어 아스타나의 '서비스 0 '

 에어 아스타나는 지난 2003년 12월 15일부터 한국-카자흐스탄 노선에서 손을 뗀 '에어 카자흐스탄 항공' 을 대신해서 한국 노선에 취항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아시아나 항공도 이 노선에 취항하고 있지만 두 항공사의 요금 차이는 매우 큽니다. 아시아나 항공은 왕복 104만원이고 에어 아스타나는 75만원이죠.(인천-알마티 노선)  30만원이면 큰 차이지만 에어 아스타나를 타 보면 왜 30만원을 더 줘 가며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있는지 금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 내내 우린 에어 아스타나 여객기를 네 번 이용했습니다.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갈 때는 그래도 나았으나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의 서비스는 그야말로 빵점이었습니다. 물론 스튜디어스 간 개인차는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에게서 승객(손님)을 배려한다는 서비스 정신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웃음 없는 얼굴, 냉담하고 무표정한 얼굴들이 우리 맘을 부담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륙 전 주의 사항을 안내하는 순간에도 스튜어디어스의 차가운 눈빛에 고개를 돌려야 했지요.

05.8.1 5:50 pm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비행기 안. 카자흐 인 스튜디어스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지라 승객 대부분이 잠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기내 서비스도 원만하게 이뤄지기 어렵죠. 자고 일어 난 사람들이 스튜어디스를 불러 쥬스 한 잔을 부탁해도 무표정한 얼굴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라는 말만 내 던지고...한국 승객이 많은 걸 알면서도 가스없는 물을 준비하지 않고 이를 요청하는 승객들에게 "높은 사람에게 따지라"고 얘기하는 태도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을 왕복하는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단기선교여행팀임을 감안해 볼 때 그들의 이런 태도가 행여나 젊은 단기팀원들이 안고 돌아가는 은혜를 빼앗지나 않을지 내심 걱정이었죠.

 05.8.1 4:50 pm  에어 아스타나의 기내식(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갈 때) - 그런 대로 괜찮습니다.

 

이런 내용을 적고 보니..그야말로 카자흐스탄은 외국인이 들어 가선 안될 곳으로 비치지만 이번 미션트립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우릴 괴롭힌 사람들은 공항에서 만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공항만 통과하고 나면 그야말로 선량하고, 환대를 베풀고 싶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죠.

카자흐스탄에서 2년 6개월 동안 살던 시절에도 우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릴 속이려 하고 언어가 약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돈을 뜯어 내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정을 도왔었습니다. 솔직히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카자흐스탄에서 살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한국도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고....

알마티 공항 직원들의 지나친 태도는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그 때문에 카자흐스탄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제가 만났던 몇몇 고위 관리들도 그랬습니다. 사리 밝고 인자한 분들도 많이 계셨죠.

05.8.3 12:10 pm 친절하게 아스타나 1 시립 외래병원을 소개해 주셨던 현지 의사 선생님과 함께...(1 외래 병원 앞)

 * 1 외래병원은 제가 아스타나에서 2년 이상 근무했던 곳입니다.

 

카자흐스탄 의료선교여행기를 시작하면서 이번 여행 기간 동안 우리에게 닥쳤던 어려운 일들을 먼저 돌아 보았습니다. 이 일을 먼저 적어본 것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 팀을 지키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또...우리에게 닥친 어려운 일들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 믿습니다. 우연이란 없으니까요. 이 일들로 다른 나라에 가서 그들을 섬긴다는 것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많은 섬김과 희생의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05.8.5 4:10 pm 수이어스펜설릭 교회 진료 현장

 

그들이 꼬투리를 잡기 전에 우리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2개의 박스를 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공항 관리들의 이목을 끌었던 일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웬만하면 단체 짐을 줄이고 개인별로 검색이나 통관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실제 카자흐스탄의 건조한 날씨 덕에 옷은 그리 많이 필요없으니 개인용 가방에 전체 짐을 분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공항에서의 옷차림도 신경 써야 합니다. 반바지 차림은 별로인 것 같습니다. 괜히 그들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요.

약에 대해서도 방법을 강구해야 겠습니다. 이번에 아스타나 1외래 병원에 EKG 용지를 기증하고 왔는데 이 병원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서 공항 관계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받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아스타나 1병원이 필요로하는 의료 물품을 가지고 입국한다"는...

이런 일 중에서도 우리가 무사히 카자흐스탄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덕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팀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애써 주셨음을 압니다. 우리가 가고 없는 동안 어떤 교회에서는 새벽기도 시간마다 우리 팀을 위한 기도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다녀 왔을 때 그러더군요.."집사님, 우리에게 진 기도의 빚을 어떻게 갚으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오병이어로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손에 들려진 변변찮은 재능과 열심을 사용하셔서 7박 8일 동안 아스타나 땅에 기쁨과 격려의 잔치를 벌이셨으니까요. 1년 9개월 만에 다시 찾아간 카자흐스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공항의 겉모습은 변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했고....진료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다음 번 얘기부터 실제 활동기가 이어집니다.   2005.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