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와의 만남

2000년 2월 29일...Y2K 윤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이 날... 오후 점심시간을 빌어 일신 기독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현재 7주 ...앞으로 산전 진찰을 부산대학교병원에서 받을 예정이었고 담당 교수님도 강기주 교수님으로 정해 놓은 우리가 갑자기 일신기독병원을 방문하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2-3일 전부터 선화의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이제 갓 예비 부모가 되려는 우리에게는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는 문제였습니다. 만일 오늘 그냥 넘어가면 삼일절이 있고 ..산전 진찰을 받기 원하는 교수님은 그 다음 주 월요일이나 되야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그렇다고 오늘 막상 다른 교수님이나 전공의를 찾아가기에도 곤란하고....그러다가 우린 일신 기독병원에 가보기로 결정 했습니다. 그 곳은 마침 선화가 결혼 하기 전에도 가 본 적이 있었던 곳이기에 더 가기 쉬웠습니다 .두 번째는 진료 의뢰서 문제인데...진료 의뢰서가 없이는 3차 대학병원에 바로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내시경실에서 근무해야 하는 나로선 근무시간에 빠져 나오는 건 눈치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오전 내내 바빴고 오후에는 응급 ENBD(막힌 담도를 임시로 배액시키기 위해 관을 유치시기는 시술) 때문에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선화와 아기 소식이 더 궁금했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빠져 나가기로 했습니다. 점심도 못 먹고 나와 선화를 만나 바로 지하철을 타고 좌천동의 일신기독병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일신기독병원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소아과 병원인 탓인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간간히 따라 나온 남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접수를 하고 이름이 불리기까지는 약 1시간 15분 걸렸습니다. 이 정도면 대학병원도 그렇게 붐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기다림이 결실을 맺었는지 우린 처음으로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태낭만 보이고 아기는 보이지 않았는데....오늘은 아기를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밑에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속에 두 개의 별표로 표시된 곳이 아기입니다.  전 보다 훨씬 많이 늘어나 있는 양수에다가...난황낭(Yolk sac)도 보이고 이제는 머리 꼭지에서 엉덩이까지 길이를 잴 수 있을 정도 커진 아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 밑에 CRL 9.0mm 라고 적혀 있는게 보이시죠? 아기의 머리 끝에서 엉덩이까지의 길이가 0.9cm 라는 말입니다. 아기는 웅크리고 있기 때문에 0.9cm가 아기의 크기가 되는 셈입니다.  약 7주 1일에 해당하는 소견입니다. 선화나 나나 처음 대하는 아기의  모습에 너무 반갑고 기뻤습니다.  과장님이 아기의 심장이 뛰고 있다고 가리켜 주셨는데 정말....어떤 점 하나가 깜빡 깜빡 거리고 있었습니다.  "정말..깜빡 깜빡 거리네....' 선화와 난 어린 아이처럼 좋아서 신기해 했습니다. " 깜빡...깜빡..."     아기의 건강한 모습과 임부의 건강한 상태를 확인한 나로선 많이 늦은 귀원 시간임에도 기쁜 맘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 온 우린 잠정적으로 아기 이름을 "깜빡이" 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곤 식탁에 앉아서 병원에서 선물로 받아 온 깜빡이가 찍혀 있는 초음파 사진을 연신 들여다 보며 우리의 감정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너무 기쁘고 신기하고 감사한 감정입니다.  깜빡이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깜빡임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초음파에 나타난 아기를 보고난 뒤 선화는 좀더 아기가 자신 속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는 모양입니다. 얼굴 표정도 전 날과 많이 달라져 있었고 감격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 부부에게 얘기합니다.  "태아를 위해 사과를 먹어도 예쁜 걸 먹고 좋은 것을 보도록 해라..", " 방 벽에 예쁜 아기 사진을 붙여라","기도를 많이 해라..","출산하기 전에 부인과 같이 좋은 데 많이 다녀라...아기가 태어나면 이제 부부의 문화 생활도 끝이다.","좋은 음악을 들어라..."  하지만 우린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희들은 행복합니다. 나중에 아기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되고 영화 구경을 가기 힘들 게 된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으로 시작한 우리 가정이 세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우릴 들떠 있게 만듭니다. 성경에는 아기를 가지지 못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여성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제가 근무하는 내시경실 옆에는 불임 여성을 위한 인공수정실이 붙어 있어서 늘 인공 수정실에 출입하는 젊은 여성들을 자주 보곤 합니다.  태의 열매....이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기에........저희 부부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여기까지 온 것이 너무 기쁘고..... 이 기쁨이 아기에게는 다른 어떤 태교 음악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 12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