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얘기 (20)  2005.1.15 -2005. 5. 5

추억의 남포동
 
 
조회 : 115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1/15 오후 7: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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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데도 집에 못 가고 병원에서 하룻밤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부산대학병원은 권역별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어 있어 전문의가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가장 적은 전문의들인 저같은 전임의사 위주로 한 달에 한번씩 응급의료센터 당직을 서고 있습니다.

최근 TV 뉴스에서 응급실에 전문의가 없다는 보도가 나간 뒤로 이 제도는 더 강화되어 아예 병원 응급실 입구에 책상을 가져다 놓고 그 앞에 "당직 전문의 소화기 내과 이성훈" 이라고 종이 명패를 써 붙이고 그 곳에서 "현장 지휘(?)" 근무를 하도록 요청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토요일 인데도 집에 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직 시간은 오후 2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입니다.

저녁이 되어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왔습니다. 병원 주변 식당에는 사람도 많았으나 그리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저녁...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지만...오랜만에 남포동으로 나갔습니다.

남포동은 지난 시절의 추억과 낭만이 녹아 있는 곳입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 시절..그 곳에서 수 많은 만남과 모임이 이루어졌고 선화를 만나 주로 데이트 했던 곳도 바로 그 곳입니다.

남포동은 이제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부산의 서쪽(서구,중구,사상구)은 위축되고 동쪽(연제구,해운대구,동래구)이 발전되고 살기 좋아지고 있어 이제 남포동은 말 그대로 공동화된 도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오늘 같은 토요일 밤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의 머리만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텐데...오늘 나가 본 거리는 마치 평일 한 낮 수준의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여전히 골목을 따라 줄지어 들어선 가게와 포장마차와 먹거리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저도 호떡을 하나 사 들고 옛날의 그 거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남포동은 사실 남포동,신창동,대청동,충무동,광복동을 포함하는 전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곳은 대청동에서 남포동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골목길들 즉, 국제시장과 구, 유나백화점 뒷 편의 골목들입니다.

그 곳은 언제 가더라도 특별한 감정과 추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결혼 전,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선화에게 옷을 사 줬던 옷집도 거기에 있고, 기타나 앰프를 수리할 수 있는 곳도 거기에 있습니다. 반대로 극장이 밀집된 진짜 남포동 쪽은 예전에도 그리 많이 끌리던 곳이 아닌데다가 지금은 너무 많이 변해 있습니다.

'선화와 함께 이 거리를 마지막으로 걸었던 게 언제지?'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온 뒤로 우리가 남포동으로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카자흐스탄에 간다고 새벽별 친구들이 환송회를 해 줬을 때 나가 본 것이 마지막인 것 같았습니다. 그게 4년 전의 일입니다.

4년이 흐르는 동안 남포동의 모습은 변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그 옛날 그렇게 좋아하던 순두부 집 '돌고래', 낙지전골집 '개미집'은 그대로였고 골목 골목마다 그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 골목 사이사이에 있는 중요한 가게들을 다 꿰차고 있었는데 이젠 기억해 보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게 되버렸습니다. 세월이 그 만큼 흘렀나 봅니다.

찬바람에 움츠린 몸을 안고 그 옛날에도 자주 갔던 분식집에 들어가 라면을 시켰습니다. 웬지 라면이 먹고 싶었습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투박스런 주방 아줌마의 몸놀림...모든 게 옛날 그대로입니다.

2005년 1월..세월은 빨리 흐르고 있습니다. 언젠가...아니 이번 달 중으로 시간을 내어 선화와 함께 다시 이 남포동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 사람도 많으니...그렇게 우리 가족이 이 길로 다시 걷는다면 남포동의 추억은 더 아름다와질 것 같습니다.

4년 연속 꼴찌임에도 불구하고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내 마음이기에...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남포동이 언제나 여기 있다는게 너무 좋습니다.

 

46년만에 내린 눈
 
 
조회 : 109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1/28 오전 11: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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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양산에는 46년만에 왔다는 큰 눈이 내렸습니다. 그 날은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9시 경 갑자기 펑펑 내린 눈에 온 가족이 놀란 하루였습니다.
눈과 얼음의 나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살다 온 우리에겐...눈의 존재는 카자흐스탄이나 다름 없습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베란다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이제 눈이 점점 쌓여 가고 있습니다.






형민이는 카자흐스탄에서 만 두 살이 지날 무렵부터 내리는 눈을 보며 "펄펄 눈이 옵니다..." 를 불러대던 아이였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눈을 보다니...








교회로 가는 길은 35번 국도입니다. 눈으로 덮인 도로는 아스타나에서 빙판길을 운전하던 그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
 
 
조회 : 122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2/08 오후 2: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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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1남 2녀입니다. 딸인 시은이(둘째)와 성은이(셋째)가 자랄수록 딸을 기르는 부모의 즐거움을 더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시은이의 머리카락이 길어지자, 머리를 예쁘게 꾸며 묶어 줄 방울이나 줄 같은 것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묶어 놓고 나면 달라진 아이들 모습을 보며 손뼉을 치며 좋아하게 되지요. 늘 사내아이처럼 보이던 시은이도...예쁘게 머리를 묶어 놓으면 영락없는 공주님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이 마트에서 장식용 머리카락이 붙은 모자 하나를 산 적이 있습니다.
그 모자를 시은이(만 2세 1개월)에게 씌웠더니...글쎄 아래처럼 변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자를 성은이(만 1세)에게 씌웠더니...



이런 모자 하나 씌워도 달라 보이는 아이들...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예쁘고 슬기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야 할텐데요.

 

아이들의 꿈
 
 
조회 : 118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2/08 오후 3: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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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기르다 보면...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 표정들을 접할 떄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예쁜 얘기도 시간이 지나면 들을 수 없게 되겠지...' 라고 아쉬워하죠.

설날이 다가오는 전날 밤, 캄캄한 안방에 모두가 누워 있을 때였습니다.(자기 전엔 이런 차분한 분위기를 유도하지요...)

"시은아...시은이는 커서 뭐가 될래"
선화가 물었습니다.

사실 시은이가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질문이었지만...우리는 시은이의 입에서 자그많게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빙긋이 웃는 미소가 예쁜 시은이는, 엄마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한 번도 이런 것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던 우리인지라...시은이의 입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나온 게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왔습니다.

"시은아...그러면 영아부(양산교회) 선생님 할래...어린이집(형민이 오빠가 다니는) 선생님 할래?"
"어린이집 선생님..."

시은이의 맘 속에도 벌써 하고 싶은 것이 생겼나 봅니다. 형민이 오빠가 다니는 어린이 집 선생님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오빠가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시은이도 오빠를 따라 아파트 앞에 오시는 선생님을 만납니다. 노란 예명 어린이집 차를 타고 오신 선생님은 시은이를 자주 안아 주셨지요. 시은이도 마치 예명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처럼 고개 숙여 선생님께 인사를 합니다.

형민이에게도 물어 보았습니다.

"형민아, 형민이는 뭐가 되고 싶니?"
"나는 너무 많은데...."
"많아? 그럼 뭐가 되고 싶은데?"

형민이가 지금 되고 싶은 것은 세 가지 였습니다.
첫째, 택배 아저씨
둘째, 기름 아저씨(주유소에서 차에 기름 넣어 주는 아저씨)
셋째, 기차 아저씨(지하철을 운행하는 기관사)

형민이는 위의 세 사람을 아주 인상적으로 느끼나 봅니다. 항상 반가운 선물을 가지고 오는 택배 아저씨...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나가면 항상 들르는 주유소에서 본 아저씨...(형민이는 카자흐스탄에서도 멀리서도 금새 알아볼 만큼 주유소를 좋아했죠.)
마지막으로 형민이는 항상 지하철 앞에 늠름히 서 계시는 기관사 아저씨가 좋았나 봅니다.

아이들의 꿈은 바뀌겠지만...만 4세 3개월의 형민이와 만 2년 1개월의 시은이가 되고 싶은 희망을 적어 둡니다. 나중에 얘들이 커서 뭐가 될진 아무도 모르지만...아이들의 꿈을 듣고 있는 엄마, 아빠는 행복해집니다.


함께 목욕하는 삼남매

 

만 2살 짜리의 사고 영역
 
 
조회 : 108  이름 : 이선화
작성일 : 2005/02/22 오전 11: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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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가 새벽별 홈에 올린 글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환지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뵐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어요.

세 아이중 하나를 친정에 맡기다가 요즘은 제가 다 데리고 있다보니 쉽게 나가지지가 않았는데... 마침 남편이 쉬는 토요일이라 온 가족이 출동했었습니다.

모임에 갔다오니 세아이와 끊임없이 반복되는 듯한 저의 일상에 새로운 생기가 돋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일 많은 과제와 또 기쁨을 주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요즘은 세째 성은이가 재롱둥이가 되어가고 있고 둘째 시은이는 한창 말이 늘고 있어서 우리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합니다.


그 시은이와 어제 ...

교회갈려고 준비하는 아침에 마침 원하는 남편의 와이셔츠가 다려지지 않아서 급하게 다림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다 활동을 하고 있는 시간에 다림질이란 위험한 것이지만 "뜨겁다. 억수로 뜨겁데이... 오면 큰일난다."고 워닝하면서 다림질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옆에서 다리미가 지난간 자리에 손을 대 보면서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이 짧은 시간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급하게 다림질을 마친 뒤 휙 아빠에게 셔츠를 건넸지요.

이 때 아빠가 셔츠를 입는 것을 유심히 보던 시은이 왈...

"아빠! 안뜨거워?"

분명히 자기가 손을 대 보니까 뜨거웠는데 아빠가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는 게 너무나 이상하다는 듯 심각하게 묻는 그 표정에 우리는 껄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전에 거제도 안식관에 계신 남성택 선교사님을 찾아 갔을 떄....

자려고 방에 들어갔더니 벽에 못이 하나 박혀 있었습니다.

형민 아빠가 옷을 벗어 거기에 거는 것을 보고 시은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아빠, 뭐지?"
형민아빠는 "못"하고 대답했죠.
시은이는 다시 "뭐지?" "못" "뭐지?" "못"

그렇게 몇차례... 시은이가 자기 목을 가리키며 하는말

"목???"

왜 벽에 조그맟게 튀어나온 것을 보고 목이라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만 2살짜리의 사고영역...

우습네요.

전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벡스코의 키즈 랜드에 가서 노는 형민이와 시은이...시은이가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형민이가 도와 주고 있네요.

 

100년만의 폭설...그 속의 우리
 
 
조회 : 111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3/06 오후 10: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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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에서 6일에 걸쳐...1904년 부산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자그마치 37cm 이상 쌓였다고 하네요.

이런 역사적인 폭설 속에서 우리 가정은 경남 창녕과 경남 양산 일대로 이동하며 이 기상이변을 그대로 맞닥뜨렸습니다.

3월 5일은 저희 아버지 생신이십니다. 경남 창녕군 남지읍의 작은 집에서 살고 계셔서 때마다 그 곳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함께 모실 수 없어 늘 마음이 불편한 남지 행이죠.

병원 근무를 마친 뒤...부모님을 만나뵙기 위해 선화와 세 아이를 데리고 남지로 향했습니다.
집이 황령산 터널 위인지라...대연 램프에서 도시 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부산 톨게이트를 나와 남양산을 거쳐 남해 고속도로와 중부 내륙 고속도로를 따라 남지로 가야 합니다.

광안리 앞 해변 시장에 횟거리를 사서...부산 톨게이트로 향할 무렵(오후 3시 반 경)...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눈이 많이 온다고 했는데.."
걱정스런 선화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가기로 말씀드렸던지라 차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눈송이는 굵게 변했고...우리의 걱정도 커져만 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부산 톨게이트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오후 4시 경)





시은이가 "쉬.."하겠다고 해서 잠시 멈춰 선 것인데...내리는 눈이 걱정스런 선화의 표정이 눈에 들어 옵니다.


다행스럽게도 남양산에 진입했을 때부터 눈은 멈췄습니다.
어쩌면 부산에만 눈이 내리고 내륙으로 들어갈 수록 눈이 덜 내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나중 뉴스를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 얘기를 많이 나눈 뒤 다시 부산으로 출발한 시간은 밤 9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내려 오는데 다시 눈발이 심해지더군요.
진영 쯤 와서...심해지는 눈을 보며 집에 일찍 들어가려는 생각에 서부산 톨게이트로 들어가 동서고가도로와 황령산 터널을 거쳐 대연동으로 갈 생각을 했습니다.

서부산으로 진입할 수록 눈은 심해졌습니다.
역시 부산에만 집중적으로 눈이 내린 모양입니다.
북부산과 대동을 거쳐 남양산으로 가는 도로에 비해 곡선 주로가 많았고...북부산 행을 택하지 않은 걸 후회했었습니다.

서부산 톨게이트를 지나 동서고가도로에선 차가 미끈하기도 했고...거북이 걸음으로 좁은 노폭의 고가도로를 따라 달려야 하는 주행은 여간 위태로운게 아니었습니다. 눈은 눈 앞을 가리고...

동서고가도로에서 황령산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가 제일 난코스였던 것 같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모든 차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 서서...앞 차와 멀찍이 떨어져 조심스럽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바로 앞의 차는 승합차(그레이스) 였는데 미끌리며 흔들거리며 오르는 모습이 우리가 불안할 정도였습니다. 차들의 공회전이 시끄러운 밤이었죠.

황령산 터널을 지나 우리가 사는 삼익그린 아파트의 비탈길에 들어섰을 땐...이미 경찰차가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대우 그린 아파트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올라갈 수 있을만큼 오르다가 앞차가 눈구덩이에 빠져 고생하는 걸 보고 그냥 길가에 차를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린 아이들을 데리고 눈밭을 헤치고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비탈길을 따라...전 형민이와 시은이를 동시에 안았고 선화는 성은이를 업고 가방을 들었습니다.



조금만 더 걸었으면 정말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 쉬며 겨우 아파트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계속 눈이 내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주일이 밝았습니다.
너무 많이 내린 눈에 차들은 꼼짝달짝할 수도 없었고
비탈길을 따라 지하철이 있는 곳까지 아이들을 데려 가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눈병에 감기까지...쉽게 데리고 다닐 수 없었지요.

그래서 우린 눈이 녹고...아파트 단지 내 길이 뚫리길 기다렸습니다.

다행히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면서 기온도 많이 올라갔습니다.
눈들은 뚝뚝 녹아내렸고..아파트 입주민들도 진입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12시쯤...우린 아파트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파트 입구로 나왔습니다. 삼익 그린 아파트의 입구는 이렇게 비탈길입니다.)


(주변 아파트와 상가의 모습입니다.)


눈으로 덮인 차를 치우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양산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눈을 치우고 있는 우리 가족)




("눈 실은 트럭이네.." 엄마의 말에 아이들은 신나게 트럭 뒤에서 놀았습니다.)


이렇게 우린 이 역사적인 날을 맞았습니다.

차에 덮인 눈을 치우면서...우리 차 옆에 트럭 뒤에 소복하게 앉은 눈더미 속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이 트럭의 짐 칸에는 37cm의 눈이 고스란히 쌓였었겠지요?

 

고 2 MT
 
 
조회 : 98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3/21 오후 1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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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 없이 고2 MT가 무슨 말이냐구요?
저는 양산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1년 3개월 전...카자흐스탄에서 귀국한 뒤 양산교회로 출석 교회를 정한 뒤 바로 고등부 교사에 지원했지요.
당시는 고 1 학생들이었는데 1년간 함께 지내고 난 뒤 올해도 역시 같은 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고 2반이죠.

고 2는 남녀를 섞어 두 개의 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저와 또 다른 여선생님이 맡고 있습니다. 두 반을 합치면 고 2 숫자는 25명 가량 됩니다.

부산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좋은강안병원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일주일의 휴식이 주어졌을때...그 동안 바쁜 병원 생활 중에 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추진하게 된 것이 고2 MT 였습니다. 마침 우리 학생들도 그 때가 봄방학인지라...05년 2월 23일...18명의 학생들과 두 명의 선생님은 경주로 MT를 떠났습니다.

이날 전..난생 처음 승합차 운전을 했습니다.(그레이스 15인승)..카자흐스탄에서도 수동 자동차 운전을 했었기에 운전이 낯설진 않았지만 승용차와 승합차는 핸들의 회전각도가 좀 다르더군요.

어쨋든 총 18명이 15인승 승합차에 타고 그래도 자리가 모자라서 두 명은 시외버스를 타고 경주에 오도록 했습니다.

아래가 그 때 그 승합차이고....그 안에 타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부산대학병원 법인카드를 이용해서 경주의 일성콘도 25평을 빌렸습니다. 스무명이 들어가기엔 엄청나게 좁더군요.

사실 요즘 세대 고등학생들과는 세대 차이가 나는게 사실입니다. 제가 세대 차이를 느낀다면 다른 선생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지 못해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아이들중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거나 개인적인 체험을 갖지 못하다는 점이죠.

설사 감정적으로 복음의 의미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탱해줄 지적이고 의지적인 부분이 부족한, 흔들리는 자화상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전 이 점을 놓고 괴로와하며 기도합니다. 카자흐스탄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복음을 듣기만 하면...그렇게 헌신하고 주께로 돌아오는데...한국 땅의 젊은이들은 앞선 세대의 회개의 축복은 잊어 버린채...값없이 주신 은혜를 까먹기만 하고 있으니...

제가 교회에서 맡고 있는 직분 중 가장 가중치를 두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고등부 교사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몇 년 동안 교회 안에 있는 영혼이 예수님을 아직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해결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닐지...

이 부분에서 오늘도...내가 해야 할 일을 되새겨 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우리 학생들 중 몇 몇은 정말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꿋꿋이 믿음을 키워 온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 물질적 풍요와 영적 안이함이 교회 안의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는지 새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2월 23일...그 날은 무척 추웠습니다.
하지만 우린 밤새도록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게임도 하고...새벽까지 얘기도 하고 지냈습니다. 우리의 진로와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어야 할 지... 새벽까지 얘기했습니다.
다음 날에는 보문호 옆에서 언 손을 녹여가며 자전거를 탔지요.





그 때의 추억을 생각할 수록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은 불타 오릅니다.

나의 또 하나의 비젼은 바로 우리 학생들에게 있습니다.

집들이
 
 
조회 : 123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4/08 오전 1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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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5일...부산으로 이사온 것을 축하하는 집들이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양산교회 목사님과 교역자님들이 심방해 주신 것을 필두로 지난 4월 3일에는 양산교회 5남전도회에서 새 집을 찾아 주셨는데... 이번에는 15년전부터 가족처럼 함께 지내온 새벽별(부산의대기독학생회 출신 가족모임)에서 축하 모임을 가졌습니다.

1990년...갓 대학에 들어올 때부터 알고 지냈던 파릇파릇하던 젊은이들은 이제 애 한 둘씩 데리고 다니는 아줌마, 아저씨로 변해 있지만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그 때처럼 가슴 설레고 따뜻한 모임입니다.

이 날...모두가 바쁘실 텐데도 밤 늦은 시간까지 모두 여덟 가정에서 새 집으로의 정착을 축하하러 달려와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날 오신 선후배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신권/김영민/은진(침례병원 정형외과 과장,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이승익/김지선/우림(부산대학병원 내과 레지던트), 김원택/정은미(부산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전임의), 최상헌/문신원/환(만덕복음병원 정신과 과장), 한영상/신수미(안과, 정신과 의사 부부), 안병재/수은(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전임의), 박도윤/김성미/두 아이(부산대병원 병리과 교수,메리놀병원 소아과 과장), 이현국/김기욱(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전임의, 호흡기 내과 전임의 예정)




형민이는 우리 그룹의 2세대 아이들 중 가장 맏형님 격입니다. 엄마, 아빠를 따라 놀러 온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지요.


기도하는 선화




자매들과 아이들만...




아이들에겐 뭐니뭐니 해도 케잌에 불 밝히고 노래 부르는 이 시간이 가장 즐겁나 봅니다.
마치 어느 어린이집에 온 것 같은 모임...이제 우리 동기 모임은 아이들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야자가 마치는 시간에...
 
 
조회 : 73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4/23 오전 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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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양산교회) 교사로 고 2 담임을 맡고 있는 전 최근 학생들의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MT도 가졌고 사적인 만남도 있었기에 반 아이들과 개인적 친밀도는 깊어진 게 사실이지만 신학기가 시작되고 학교 생활에 들어가면 공부나 친구 관계 등으로 신앙생활이 등한시 되기 쉽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제 경험을 비춰 보더라도 학생들이 생활하는 학교에 교회 선생님이 직접 ??때 얼마나 기쁘고 격려가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우리에게 주는 힘이죠.

새로운 병원에서 내시경 시술, 외래 진료, 입원 환자 진료에 일주일 내내 정신없이 보내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맘이 있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내내 맴돌았습니다.

일단 한 주에 한 학교씩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고 있기에 야자가 마치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점심 시간이 더 좋지만 부산에서 근무하는 저로선 불가능한 일이죠.

4월 7일 목요일(금) 경남외고(양산 어곡 공단 옆)

경남외고에는 빛나와 은성이가 다니고 있습니다. 경남외고는 남녀공학인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경남외고의 야자는 밤 10시 40분에 마칩니다.

이 날은 부산에서 내시경 의사들의 월례모임인 '조기위암 집담회'가 부산대학병원에서 있는 날이었고 모임이 마치자 말자 양산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매 주일 교회 갈 때는 별로 못 느꼈지만 평일에 이렇게 학생들을 만나든지 교회 모임으로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교회가 멀다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일주일 3-4번씩 부산-양산을 왔다갔다 하는 때도 있으니까요.

밤 10시...어둠을 헤치고 달리는 경부 고속도로는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밤공기마냥 상쾌하고 행복했습니다.

아이들을 만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좋은 아이들...항상 뭔가를 주고 싶은 아이들...주일 날 보는 짧은 시간만으로는 나의 이런 애틋한 아쉬움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학교 방문은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모임이면 기도 모임, 단순 격려라면 격려...그래야 결과가 선명해지는 법이죠. 이번 경우는 격려 차원에서 방문이라 간식만 준비하면 되고 부담이 없어 더 좋았습니다.

경남외고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지라 치킨 한 마리와 콜라...그리고 선물할 신앙서적(목적이 이끄는 삶)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경남외고는 양산에서도 아주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이곳을 가기 위해 그 전 주에 답사를 했을 정도지요. 양산 어곡 공단의 한 쪽 깊은 곳에 위치한 이 학교는 교문에서도 비탈길을 타고 한 참 차를 몰아야 합니다.

하지만 푸른 숲을 배경으로 하얀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오는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갖춘 학교입니다. 기숙사나 도서관, 교실...모두 좋아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를 찾아 가면 그 날 하루종일 문자를 주고 받습니다.
"언제 오실 건가요?"
"정말요?"

경남외고에 도착해서
"선생님 도착했다. 정문 앞..."
이란 메시지를 남기고...핸드폰 통화를 바쁘게 하고 난 뒤... 드디어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야자를 마친 10시 45분 쯤이죠.

빛나가 주변 친구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이날 은성이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가는 길에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간식을 나누려고 했습니다.

그런데...경남 외고는 야자가 마치면 바로 기숙사에서 점호를 취하기 때문에 함께 음식을 나눌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고 서적과 간식을 건네주고 나올 수 밖에 없었죠. 아이들이 밀려 나오는 길에서 기도해야 하고...빛나 친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우린 너무 좋았습니다.

손을 흔들고 차를 몰고 양산의 어두운 공단길을 빠져 나오는 동안...
부산으로 오는 차 안에서... 빛나가 보내 주는 감사의 문자 메시지를 계속 받고 답해야 했습니다.(안전 운전!)
"선생님. 너무 고마와요"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을 얘기하라면 전 이렇게 표현하는 걸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삶에 경건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

교회학교 교사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멘토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에 주일학교 교사야 말로 누군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분은 내게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후로도...
지난 4월 14일 목요일에는 양산고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야자가 마치는 8시 50분에 양산고등학교 교실 앞에서 학생들을 만났죠. 진수,신근,동국,지현,영신....

그리고 그저께 4월 21일 목요일에는 양산 남부고등학교에서 송이와 스리를 만났습니다. 양산고는 남자 고등학교이고 남부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입니다.

남부고를 방문하는 날에는 출발 직전에 식도정맥류출혈로 응급 내시경 시술을 해야 할 환자가 들이닥쳐 학교 방문을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다음 날에 갈 수 있었죠.

양산고나 남부고처럼 상대적으로 야자를 일찍 마치는 학교를 갈 때는 피잣집을 가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아이들은 너무 좋아합니다. 여학생들은 달려와서 안길 정도죠. 주일이 아닌 날...교회학교 아이들을 만나는 건...이처럼 가슴 설레고 기대되는 일입니다.

앞으로 양산제일고, 동래여고 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2005년 4월...매주 밤마다 아이들의 학교를 방문하면서 두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1. 이렇게 아이들을 찾아가려면 그 날 만큼은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하거나 밤에 집을 나서야만 합니다. 그러면 세 아이를 돌보는 선화는 몇 시간 동안 혼자서 아이들을 돌봐야만 하지요.
입원환자와 자주 있는 저녁 모임으로 집에 일찍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은 제겐 이런 밤 스케줄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제한된 자원(사랑,관심,물질)을 가진 제가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을 주기 위해선 그만큼 가족의 이해와 희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인류를 사랑했던 슈바이쩌 박사의 아내는 그와 이혼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슈바이쩌 비해 다행인 것은 학교 방문은 1년 내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4-5월 중에 마쳐진다는 점이죠.

제한된 사랑을 가진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한량없으신 하나님 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오늘도 절실합니다.


2.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갈릴리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그 분을 다시 만났을 때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 번 물으셨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물론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치라는 그 분의 말씀은 교사인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집니다. 교사는 작은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맡겨 주신 몇 몇 학생들의 목자이기에 내 시간과 물질을 들여 보여 주는 사랑을 부어야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써야 합니다. 이 역시 주님이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죠.

누군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 분이 가르쳐 주신 사랑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힘 아니고선 안되는 일입니다.

 

어린이날..제주도
 
 
조회 : 61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5/05/05 오후 1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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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어린이날은 높은 습도와 짙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자외선이 부담스러운, 높은 기온의 날씨가 오전 내내 이어졌습니다. 저녁부터는 시원한 빗줄기가 시작되었지만...정작 오전과 오후는 과히 좋은 날씨가 아니었지요.

며칠 전부터 다시 감기를 하고 있는 시은이와 성은이 탓에 온 가족이 어디로 가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한 날이기도 했지요.

오전에는 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아파트 안 놀이터에 갔다가 높은 온도의 자외선에 파김치가 되어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어린이날을 이렇게 넘길 수 없다 싶어...오후에는 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홈플러스에 가서 장난감 하나씩 사 가지고 집에 들어 왔습니다.

오후에는 롯데가 삼성을 5:0 으로 이기는 통쾌한 장면을 즐기기도 했죠. 롯데 만세!

어린이가 즐거워야 하는 어린이날...형민이는 선교원에서 준 연필 셋트 등을 만지작거리며 어린이날이 뭔가를 어렴풋이 느끼지만 아직 어린 시은이와 성은이에겐 엄마, 아빠가 모두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특별한 날일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세미나 참석차 제주도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선화와 세 아이를 모두 데리고 갔었죠. 1박 2일 일정이었고 제주 하얏트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물론 제주도에서의 시간은 좋았지만 가고 오는 과정에서는 무척 힘들었다는 거...얘기 안해도 모두 아시겠죠?
아래는 제주도에서 찍은 몇 장 안되는 사진들입니다. 전 날 비가 온 탓에 이 날도 고온다습한 오전 한 때였습니다.


















이상 제주 하얏트 앞에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