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년 6개월된 형민이

우리 집 첫째 형민이는 2000년 10월 5일 생입니다. 두 여동생을 거느린 의젓한 오빠지요.

부산으로 이사온 뒤 형민이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빠, 양산에서 살 때는 아빠가 매일 밤 늦게 왔는데 부산에는 일찍 오네요. 아빠가 일찍 오니까 참 좋다. "

형민이는 이제 우리 가정에 닥치는 많은 변화들을 일일이 이해하고 받아 들입니다. 엄마, 아빠만 있으면 만사 형통인 동생들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자신의 맘대로 안되는 주변 상황에 대한 고민도 있고 걱정거리도 있습니다.

이런 형민이를 볼때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1) 형민이가 할아버지가 되면...

얼마 전 형민이와 죽음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형민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점점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년 전 시은이는 지금의 성은이 만했다는 것도 알고 자신도 옛날에는 성은이처럼 작은 아기였음을 압니다.  게다가 시은이나 성은이가 엄마 뱃 속에서 태어난 것도 알고 있지요.

얘기는 여기서 출발됩니다.

형민이가 나중에 커서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아빠는 할아버지가 된다고 말한 직후입니다.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나요?"

"응.."

이 때 짖궂은 맘이 들었는지...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형민아...그런데...형민이가 할아버지가 되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

"...."

"형민이가 할아버지가 되고...시간이 흐르면 아빠는 죽는 거야."

"......"

형민이는 죽음에 대해 많이 들어 왔습니다.

주로 예명 어린이집이나 산성교회 선교원을 다니면서 들었던 내용이죠. 아니... 카자흐스탄에서 살던 시절부터 어린이용 사도신경 책을 펴 놓고 읽어 왔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비록 의미는 이해 못하더라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내용을 만 두 살 직후부터 1년 넘게 들어 왔으니 죽음이 주는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아빠가 죽는다는 말에 형민이의 표정은 굳어졌습니다. '아빠가 죽어?'

죽음...형민이의 맘 속에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슬프고 괴롭고 단절된 것이었습니다.

형민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흑흑 거리다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죽는 거 싫어..."

 

괜히 그랬다 싶었습니다.

"아니야..형민아, 아빠는 형민이랑 계속 같이 있을거야...."

우는 형민이를 껴 앉고 위로했지만...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삶의 한계를 느끼던 그 시간은, 내게도 슬픈 시간이었습니다.

 

2) 형민...무덤을 보다

우리 아파트 뒤에는 황령산이 있습니다.

며칠 전 우리 아파트 뒤로 등산로가 나 있는 것을 이사온 지 1달 반 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늘 병원 생활로 운동이 부족함을 절감하던 중인지라 지난 토요일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등산을 가기로 했습니다.

6살된 형민이와 4살된 시은이를 데리고 106동 뒤로 나 있는 철책을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오르기 전...아파트 단지 앞에서

뚝딱이를 엎고..모자를 쓰고 따라 나선 시은

아파트 뒷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습니다.

형민이 손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나뭇가지 하나가 들려 있습니다.

물길을 지나 철책을 건너 산으로 올라갑니다.

향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지나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형민이는 산을 잘 탑니다. 외갓집서도 자주 산에 오르는데 외할아버지가 혀를 내두를 정도지요. 지팡이 삼을 만한 나뭇가지 하나 구해다가 거침없이 산을 오릅니다. 얼마쯤 가니..시은이가 얘기합니다.

"아빠. 힘들어...이제 가자(되돌아 가자)."

아무래도 시은이에겐 등산이 힘든 일이죠. 시은이을 품에 안고 형민이와 계속 산을 오릅니다. 아직 꽃망울이 지지 않은 철쭉도 보이고 하늘 위로 쑥쑥 뻗은 향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엎자마자 시은이는 금새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주 산에 가는 것이 그 아이의 지능지수를 높여 준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 비단 그렇지 않더라도 산에 오르면 궁금한 것도 많고 새로 접하는 현상도 많습니다. 올라가며 이건 무슨 나무..저건 무슨 나무...가르쳐 주며 나무 껍질도 만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산길을 가던 형민이가 뭔가를 본 모양입니다.

"아빠, 저기 회색으로 된 네모반듯한게 있어요..." 형민이는 이제 사물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칭합니다.

뭔가 싶어 봤더니 바로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등산로를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몇 개 보였습니다. 아마도 옛날 주민들이 산기슭을 묘지로 사용했나 봅니다.

"형민아..저건 무덤이야.."

"무덤?"

"형민아, 무덤 알아?"

"예..알아요.."

"누가 얘기해 주던? 엄마가?"

"아니예요...알고 있었어요. 옛날에 청개구리 비디오에서....엄마가 죽고 무덤을 만들었어요.."

형민이가 두 살 적, 카자흐스탄에서부터 열심히 보던 비디오 중에는 엄마 말을 안 들었던 청개구리 비디오가 있습니다. 그렇게도 엄마 말을 안 듣다가 엄마가 죽고난 뒤 엄마 무덤을 냇가에 만들어 놓고 무덤 앞에서 계속 울던 비디오였죠.

두 세살 적 형민이는 이 비디오를 보며 자주 울었습니다. 청개구리가 화면에서 "엄마...."하고 울때마다 따라 울었죠.

그 때 무덤이란 걸 처음 알았던 모양입니다.

"형민아, 무덤 안에는 사람이 있다."

"무덤에 사람이 있어요?" 형민이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응...사람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죽는다고 했지? 그렇게 해서 죽으면 저렇게 땅에 묻고 그 위를 동그랗게 흙으로 덮는거야...그 안에 사람이 있어.."

"이 안에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람은 이 안에 묻히면 흙으로 변해..."

"흙으로요?..."

형민이에겐 아빠는 늘 충격적이고 새로운 얘기를 하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습니다.  (사진 설명: 형민이의 뒤로 무덤이 보입니다.)

"죽으면 이렇게 땅에 묻히는 거야..."

"알아요...(얼버무리면서)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잖아요..."

형민이의 머리 속에는 죽음은 늘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형민이는 그저 조건 반사적으로 죽음과 부활을 연관시켜 얘기했겠지만...무덤 앞에서 부활을 얘기하는 형민이를 보면서 제 믿음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형민아...우린 부활해..."

 

높은 나무 때문에 햇볕은 가려졌고 서늘한 바람이 숲 속으로 불었습니다.

형민이는 동그랗게 만들어진 봉분에 살며시 손을 대 보았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딱딱해요...사람이 있어요.."

형민이는 아빠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아까도 숲 속에서 하도 까불길래....뱀이 나온다고 조심하라고 했더니만 금새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뱀요?" 하고 움츠려 들었습니다.

이후 무덤이 나올 때마다 형민이는 봉분에 살며시 손을 대고 뭔가를 느껴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참 가는데 하얀 재가 등산길 한 쪽에서 보였습니다.

"아빠..이건 뭐예요?"

"그거...재야..."

"재? ..."

"(갸우뚱거리면서..) 우리 마음 속에도 재가 있는데..."

'재'를 '죄'로 들었나 봅니다.

 

발로 피아노를 치는 둘째(시은)와 셋째(성은)

 

3) 눈물 많은 형민이

자라 가면서 형민이는 점점 감정적으로 풍부한 아이로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붙임성이 없고 낯선 사람에겐 어색해 하는 형민이를 보며 무뚝뚝한 아이로 오인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 눈물이 많은 아이입니다.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는 법...요맘 때의 사내 아이들은 칼 싸움을 좋아하고 과잉 행동증을 보이기 쉬운데... 형민이는 조용하고 예민해서 슬픈 표현이나 감정을 자주 나타냅니다.

 

양산교회에 출석하는 우리 가족은 오전 예배를 마치면 선화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갓집으로 갑니다.

아빠가 중고등부와 오후 예배를 마치면 저녁 7시 가량 되기 때문에 그 때까지 교회에 있을 수 없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외갓집으로 등산도 하고 놀이터도 가면서 신나게 놉니다. 외갓집 주변은 앞개울이 흐르고 논밭이 있고 뒷 산이 있는 농촌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날도 외갓집에서 실컷 놀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섯 식구 모두 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 오던 중이었습니다.

밖은 캄캄해졌고 두 동생은 언제나처럼...엄마 품과 등에 기대어 잠들고 있었지요.

 

카 오디오에선 예수 전도단 화요찬양모임이 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 전도단 곡은 캠퍼스 워십 모음도 좋지만 화요 찬양 모임 실황이 더 다채롭습니다. 계속 비트 강한 사운드만 나오는게 아니라 부드럽고 비장한 멜로디도 많이 흘러 나오죠. 아마 그 순간에도 그런 음악이 흘러 나왔나 봅니다. 이 날은 화요찬양모임 1집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형민이가 까닭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울먹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정말 슬프게 우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던 중 형민이의 울음 소리를 들었던 전...그야말로 영문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왜 울지?'

 

형민이의 성격을 누구도 잘 아는 선화가 얘기했습니다.

"형민아..슬퍼?"

"응...흐흑...."

"형민아, 슬프지? 할머니 보고 싶어?"

 "응..."

외갓집에서 놀다가 떠나온 탓에 두고 온 사람들이 보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울음이었습니다.

 

선화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지금 흘러 나오는 음악이 형민이의 맘을 슬프게 하나봐요. 우리가 듣기엔 슬픈 음악이 아니지만...이런 비장한 멜로디가 형민이에게 슬픈 감정을 주나 봐요."

그러고 보니...화요찬양 1집의 음악은 뭔가 호소하는 듯하고 진지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음악과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형민이로 하여금 울도록 만들었나 봅니다.

선화는 형민이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잘 대처해 주지만 전 번번이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울음 그치라고 야단칠 때가 더 많죠.

하지만... 형민이의 마음...아빠가 왜 이해하지 못하겠습니까?

늘 나약한 형민이가 걱정스럽다는 투로 얘기하지만...전 이런 형민이가 좋습니다.

  

(사진 설명: 햇살이 환한 오전..거실 베란다 앞에서 이불을 널어 놓고...세 아이를 찍었습니다.)

 

4) 두 개는 뺏어요

형민이가 하는 말을 듣고 행복을 느끼는 건...그 속에 순수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녀온 어느 주일 저녁...아마 오늘 유치부 모임에서 형민이가 장래 희망으로 의사(?)를 지목했던 모양입니다.

우린 한 번도 그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는데...어떻게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형민이는 어릴 적부터 아빠가 하는 일을 '아픈 사람 도와 주라고 가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빠가 병원에 나가면 "아빠...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많이 도와 주고 오세요..." 라고 인사했지요.

교회 유치부에서 장래 희망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지?" 라고 선생님이 물었나 본데 형민이가  "의사 선생님이 되어 다른 사람을 도와 준다"고 얘기했나 봅니다.  아마도 형민이는 유치부 선생님의 '도와 준다'는 단어에 현혹되어(?) 의사가 된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 같았습니다.

어쨋든 우리에겐 의외였습니다. 형민이의 장래 희망은 절대 의사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형민이의 3대 장래 희망은 기차 아저씨(지하철 기관사), 기름 아저씨(주유소 주유원), 택배 아저씨(택배 배달하시는 분) 입니다. 그래서 우린 다시 물어봤습니다.

"형민아...형민이 앞으로 커서 뭐 하고 싶은데?"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선화도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형민아..너 기차아저씨, 택배 아저씨, 기름 아저씨 중에서 하나 된다고 했잖아..."

"두 개는 뺏어요.."

 

형민이 입에서 나온 바로 이 말... "두 개는 뺏어요" 란 말에 우리 부부는 뒤로 넘어가며 깔깔 웃었습니다.

형민이가 뺏다고 말한 두 개는 바로 장래 희망 중 하나였던 '기차 아저씨'와 '기름 아저씨' 를 가리킵니다. 자기 입으로 기차 아저씨와 기름 아저씨를 장래 희망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형민이는 최근 아빠 병원에 자주 놀러 오면서 아빠가 가진 특별한 '두 가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명함과 병원 내에서 착용하는 ID 카드입니다.

아빠 사진이 있는 ID 카드나 아빠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보면서 형민이는 늘 다음 사실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아빠..기름 아저씨가 되도 이거 주나요?(기름 아저씨가 되어도 이런 ID 카드를 달수 있나요)"

우리가 깔깔거리며 웃었던 이유는 만 4세 6개월부터 벌써 장래 희망을 바꾸기 시작하는 형민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네 인생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겠지요.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하얀 도화지 같은 형민이의 삶이 하나님의 그림으로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200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