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의 끝

새벽 5시 40분...휴대폰 알람 소리가 울리면 행여나 아기들이 깰까봐 황급히 일어나 알람을 꺼야 합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곤히 자는 선화와 아이들 틈을 지나 서랍장에서 양말 한 컬레 챙겨 가지고 안방 문을 나설 때마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 헤아리게 됩니다. 거실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캄캄하고 호포에서 올라오는 35번 국도 위의 차들마저 뜸한 시간....욕실 불을 켜고 세면을 한 뒤 가방을 들고 나서면 시계는 아침 6시를 가리킵니다. 한여름만 빼면 항상 캄캄했던 이 시간, 이렇게 출근해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양산의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지난 1년간의 제 생활이었습니다.

부산대학병원 소화기 내과 전임의 생활 만으로도 힘들다고 난린데...경남 양산에서 1시간 반 거리를 출퇴근까지 해야 했던 저로선 정말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십여일 후면 이렇게 힘들었던 시간도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는 3월부터 부산의 '좋은강안병원' 소화기 내과 과장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우리 집도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황령산 자락의 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귀국한 지 1년 3개월만에 우린 다시 우리 생활의 터전이던 부산으로 진입하는 셈입니다.

다음 표는 우리 가정이 지나온 시간 입니다. 1999.10.16 결혼 후 지금까지 5년 4개월 동안 우리 가정이 살았던 국가와 지명, 근무처,아이들의 출생, 살던 집이 바뀌던 시점을 표시해 보았습니다.

1999.10.16                                 2001.5.23                         2002                                        2003              2003.10.22   2004.4.23        2005.2.28

            신혼시절(부산)

                              카자흐스탄 생활

     경남 양산

 부산

부산대병원 내과 레지던트 (1년 6개월)

                            카자흐스탄 파견 국제협력의사 (2년 6개월)

당직의(6개월)

부산대병원(10개월)

강안

                      형민 출생(00.10.5)                                                                        시은 출생(02.12.28)             성은 출생(04.1.15)

첫번째 집(부산)                               두 번째 집(카자흐스탄 알마티)  네 번째 집(아스타나)                          ↑여섯 번째 집(양산)

                                                                 ↑세번째 집(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다섯 번째 집(아스타나)                                       예정

 

이번에 이사를 하면 우리 가정의 일곱 번째 집이 됩니다. 결혼 생활 5년 4개월 만에 일곱 번째 집이라니...카자흐스탄에서만 네 군데 집을 옮겨 살았었기에...이렇게 경이적인(?) 숫자를 기록하나 봅니다. 선화나 저나...우리의 삶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게 될 줄(?) 전혀 예상치 못했었는데....

세 아이를 돌보려면 여전히 양산에 있는 처가집의 도움이 많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병원 이동과 함께 부산으로 집을 옮기기로 결정한 데에는 새로 근무하게 된 병원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대학병원 전임의 생활은 레지던트와 교수님 사이의 위치에 해당되기에 해당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감이나 입원 환자에 대한 부담감 없이 소화기 관련 시술들을 많이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병원에서 1시간 반이나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 하는 것이 가능했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소화기 내과 과장으로 근무하게 되는 강안병원에서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곳에선 모든 환자들이 담당 과장 한 사람을 믿고 진료를 받고 입원을 하게 되기에 입원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병원 근처에 살면서 수시로 병원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특히 강안병원은 올해 처음 문을 여는 병원이기에 내년에서야 인턴을 모집할 수 있고 그 다음 해가 되서야 레지던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때까지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없는 상황 속에서 담당 과장들이 직접 입원 환자들을 도맡아 밤낮으로 신경쓸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1시간이 넘는 양산에서 살면서 과장 생활을 할 수는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옮겨갈 집은 남구 대연동에 있는 32평 아파트이고 전월세로 들어가는 집입니다. 새 집에 관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지요.

우리가 부산으로 이사하는데 있어 마지막으로 남은 변수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세금을 받아야 집으로 옮길 수 있으니 말이죠. 양산 신도시의 많은 아파트들의 입주가 한창인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찾을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지만...이 또한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부산대학병원에서의 근무는 아마 2월 18일 정도까지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3월 2일부터 새로운 근무지 '좋은강안병원'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최근 이와 관련해서 '전산교육이다',' 신임 과장들의 상견례다' 해서 많은 연락이 새 병원 측에서 오고 있습니다. 몸은 부산대병원에 있지만 벌써 강안 병원에서의 근무가 착착 준비되고 있는 셈이죠.

사실 저로서는 지금까지 주로 피교육자 입장에 서서 교수님과 함께 대학병원에서 6년 가까이 의사 생활을 해 왔던지라...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독자적으로 환자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작할 때가 있으면 마칠 때도 있는 법, 이제 내 인생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본격적으로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그 만큼 기쁘기도 하고 속시원하기도 합니다.

우리 삶 속에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존재합니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듯한 답답한 시간들이죠. 그런데 바로 지금...우리가 지나야만 하는 또 하나의 터널 끝에 다다른 듯한 느낌입니다. 밝은 빛이 환하게 보이는 선명한 세상이 눈 앞에 비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터널을 통과하더라도 또 다른 터널이 나타나겠지만....지난 1년간의 힘들었던 삶이 이렇게 일단락 지어진다는 사실에 감사가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생의 치열한 순간들 속에서 우리를 단련시키시고 위로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삶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만드시는 하나님께 환한 미소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면 오는 3월 4일부터 시작되는 양산 신도시 2단계 동시 분양 광고가 지하철 온 벽면에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분당, 일산과 함께 대한민국 3대 신도시 중 하나라는 양산.... 양산으로 들어 오라고 모두가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부산으로 갑니다.  우리 가정의 터전으로 돌아갑니다.

  

다음은 우리 홈 자료실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름하여...'우리가 살았던 집 모음' 1999년 10월 16일...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올리고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보금자리를 만들었지요...각 집마다 많은 사연과 추억이 있습니다.

기간

주소

특기사항

1999.10.16-2001.5.20 (1년 7개월)

부산시 사상구 학장동 도개공아파트 101동 1303

우리 가정이 시작된 곳, 형민이 출생

거실에서 내려다 본 모습

까작스딴으로 가기 직전 이사하는 장면

형민이가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2001.5.27-2001.8.13 (2개월 반)

카자흐스탄 알마티 사말 2, Dom 51, KB 21

까작스딴에서 첫번째 보금자리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 열악하지요?

집의 내부 구조..왼쪽이 방들, 오른쪽이 부엌

알마티를 떠나기 전...송별회 장면

2001.8.14-2002.3.20 (7개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빠베다 63/1, KB14

아스타나에서 정착한 곳

13층 아파트의 6층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형민이가 첫 돌을 맞았습니다.

숫자놀이판을 거실에 깔아두고 살았습니다.

2002.3.20-6.19 (4개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씨풀리나 13/1, KB 36

궁전같은 빨간 집, 한국식 건축재, 고급 가구...

궁전같은 빨간 새 집의 1층에서 살았습니다.

부엌도, 거실도..한국식의 최고급 실내입니다.

넓은 거실도 마루 바닥에..소파까지 편안합니다.

2002.6.19-2003.10.15 (1년 4개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말라죠즈니 26/2, KB 6

 

아스타나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시은이가 돌을 맞은 곳이기도 하구요.

까작스딴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이죠(만 2년)

2003.11.2- 2005.2 (1년 3개월)

 경남 양산시 동면 석산리 702-8 해강아파트

한국으로 귀국 후 정착기에 살았던 곳

산과 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양산 석산의 아파트

이 곳에서 새로운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째 성은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