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는 세상

(아래 내용은 선화의 싸이월드 개인홈에서 퍼 온 글입니다. 그래서 선화가 이 글을 본다면 노발대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선화는 자신의 홈에다 자신만의 얘기를 아무도 모르게 쌓아 놓으려 했을 테니까요.

선화와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출근한 남편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 왔기에 지난 8개월 간의 시간은 우리 가정으로선 받아들기긴 힘든 큰 변혁기였습니다. 그래서 한 가정에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빠가 주도하는 병원(부산)에서의 삶과 엄마와 아기들이 주도하는 집(양산)에서의 삶이 바로 그것이죠. 카자흐스탄에서 3년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지내왔던 이 변화가 더 크게 와 닿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선화가 사는 세상은 제가 사는 세상과 다른 것 같습니다. 세 아이와 함께 아침을 시작해서 '형민이 어린이집 보내기'부터 숨가쁜 아이들과의 전쟁이 시작되니까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의 대화와 씨름으로 이어지는 이 세상을 위해 선화는 또 다른 홈이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얻게 되는 지혜와 위로를 남길 만한 공간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아이들과의 싸움  2004.10.22

하나님은 여자에게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본격적인 훈련에 몰아넣으신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춘기, 진로 결정, 가정안의 대소사 문제나 사회 생활속에서의 갈등 등.... 이러한 일반적인 과정을 통해서도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하시지만.... 제대로 된 훈련은 결혼 이후에 이루어진다고 본다.

 

지금은 뭐하고 있을 때일까요?

아이들을 모아 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남자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결혼이라는 낭만적인 것을 통해 여자가 겪게 되는 변화는 너무 크다. 자신의 위치 변화, 너무나 다른 시댁의 분위기와 가치관, 남편을 내조한다는 위치에서 여성의 역할, 자녀를 기르면서 가져야만 할 끝없는 인내심...

오늘은 아이들과의 싸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요즘은 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하루가 성공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징징거리지 않고, 혹 그렇더라도 잘 달랬다면,
내가 세수하고 머리 정리할 틈이 안정되게 생기면,
아이들이 밥을 잘 먹어 줘서 나도 식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성공적인 하루다.

아이들이 제 시간에 낮잠을 자고,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집안일이 밀리지 않는다면,
저녁시간에 아이들이 심심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재미있게 놀고, 이 속에서 말씀 한 구절 읽을 수 있다면,
저녁 설거지가 밀리지 않고 아이들이 다투더라도 내가 적절히 타협시키고 수긍시킬수 있다면,
하루종일 내 감정에 분냄이라는 게 없었다면
그 하루는 승리했다는 기분이 된다.



그런데 어떤 날은 같은 조건에서도 분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어떤 날은 아무리 집을 치워도 지저분해지고...

이런 날은 정말이지.... 엉망인 날이 된다.

 

오늘 아침은 모두 9시 30분에 일어났다. 늦잠을 잔 것이다.

그러나 형민이를 양산 시내 어린이집 연합 운동회에 안보내기로 했기에 그리 급할 것은 없었던 날이었다.

그런데도 아침부터 왜 그렇게 바빴는지... 이불개고, 아침 차리고.... 그 와중에 시은이는 같은 컵인데도 자꾸 이쪽 물을 저쪽 컵에 부어서 마시겠다고 야단이다. (이런 경우 100% 물을 흘림), 구역 예배 드리려 갈 집사님 집을 설명해줘도 못 알아 들은 형민이의 짜증에 그만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잔소리를 한참 해 댔다. 시은이는 매를 맞았고 형민이는 엄마의 잔소리를 엄청 들었다.

이런 날은 정말 기분이 엉망이 된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아이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일단 하루가 너무 늦게 시작되어 내 스스로가 분주했고, 정리되지 못한 집이 스스로 못마땅하게 느껴졌고, 어린이집에 가던 형민이가 오전에 집에 있음으로해서 복잡해진게 더 큰 원인이었다.

힘이 빠졌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면서 분한 마음도 생겼다. 어쩜 내 맘을 이렇게 몰라줄까.... 저희들 좋으라고 동영상(인터넷 네이버 주니어)도 보여주고 밥도 떠 먹여 주는 건데....

오후에 셋을 다 데리고 구역예배에 참석했다.

잠시 나 스스로를 환기 시킬 수 있었다.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더군다나 엄집사님이 아이들 쓰던 유아용 책상을 주셔서 기뻤다.

책상은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형민이와 시은이에게 너무나 좋은 선물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이 잔다. 오늘은 절반쯤 승리한 느낌이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될까... 다시 맘은 정리해 본다.

내일은 아이들의 투정을 넉넉히 받아주면서도 잘못된 것은 따끔하게 감정없이 가르치고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찬양하고 암송하는 엄마의 모습도 보여 주면 좋겠다.

 

 선생님의 형민이 칭찬  2004.11.1

겸사겸사해서 걸려 온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형민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물었다.
선생님은 "제가 형민이 때문에 감동하는 일이 많습니다."하신다.
전에도 형민이가 친구들을 잘 챙겨주고 잘 놀아줘서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형민이가 늘 미약한 친구들과 논다고 하셨다. (선생님 표현이다)
항상 혼자 있는 아이,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을 꼭 데리고 논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형민이와 노는 것을 좋아해서 형민이 주위에는 늘 친구들이 많은데...형민이는 그 바깥에 소외된 아이를 꼭 찾아 데려 온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렇게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으면 일부러 친구를 붙여주곤 하는데 형민이에겐 얘기하지 않아도 이 역할을 멋지게 해 내고 있다며 선생님도 감격할 때가 많다고 하셨다.


이보다 더한 칭찬이 어디 있을까? 형민이가 아주 정이 많고 세심하고 부드럽다는 건 우리 가족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부모 입장에선 아이가 너무 유약한게 아닌가 걱정하는데... 아이들과 소리지르며 잘 놀면서도 남을 챙길 줄 아는 아이라는 평에 참 감사했다.

내가 가르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형민이 앞에서 내가 부끄럽다. 더 좋은 엄마가 되야지...

 

 

이젠 엄마의 조언자   2004.11.19

형민이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모른다.
순간순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성은이는 찰거머리다. 늘 엄마에게 달라 붙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있으면 언니, 오빠 사이에서 미꾸라지처럼 기어 다니며 놀지만 엄마가 일어 섰다하면 어김없이 징징거리면서 졸졸 따라다닌다.

그런 성은이를 울게 내 버려 두고 우유를 타러 일어서는데 형민이가 말한다. "성은이 데리고 가세요. 그래야 안 울지요"

이런 표현을 하는 형민이가 너무 대견했다. 상황을 잘 이해하는 것도 그렇지만.... 엄마에게 어떤 것을 조언해줄만큼 컸단말인가?
"형민아... 성은이를 안고는 우유타기가 힘들거든..."
"그러면 내가 놀아주께... 성은아, 오빠 봐..."
형민이가 너무 많이 자랐다.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인 것처럼 생각했는데... 아이들 앞에서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

 

시은이를 눕혀 놓고 병원 놀이를 하는 형민이...

형민이의 의사 흉내보다 시은이의 환자 시늉이 더 우습습니다.

 

하루종일 히히덕거리는....2004.11.22

하루종일 붙어다니는 형민이와 시은이... 자기 직전까지 계속 된다.

요즘은 형민이와 시은이가 붙어 노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형민이가 어린이 집에서 돌아온 후나 토요일처럼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이면 둘은 하루종일 붙어서 히히덕거린다. 둘이 노는 모습을 표현하자면 이 "히히덕" 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베란다에서 시은이와 형민이가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생을 의지할 수 있는 신뢰가 이 때부터 쌓이고 있는 거지요.

 

말이 많고 무엇이든 말로 잘 표현하는 형민이의 재잘거리는 소리, 여기에 깔깔 거리는 시은이 소리, 한 번씩 "하지마" 라는 형민이 소리가 들리고...이윽고 울어 대는 시은이... "엄마, 시은이 또 고집부려요..."하는 고자질 소리... 집안이 정말 시끄럽다.

 

그런데 이 시끄러움이 너무 좋다. 잠시라도 서로가 안보이면 "오빠야!" "시은아!" 찾는 소리까지.... 요즘은 둘을 적절한 터울로 낳은 게 너무 감사하다.

최근 3주 동안 세 아이를 혼자 돌보느라(친정에도 못 맡기고) 나도 힘들었는지 온 몸에 한기가 돌았다.

그래서 어제 성은이가 할머니집에 간 뒤 오래만에 시은이와 목욕탕에도 다녀 왔다.

지금은 성은이를 돌보느라 힘이 많이 들지만....언젠가 성은이도 형민이와 시은이틈에서 재잘거리면서 노는 날이 오겠지....그 때는 정말 더 기쁠 것 같다.
곧 형민이가 돌아오면 또 시은이와 히히덕 거리기 시작하겠지...

 

 

교회가 되고 싶은 사람  2004.12.9

형민이가 크리스마스 트리 뒤에 있는 테이프 장에 붙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교회나 우리 가족을 그리라고 했더니 이렇게 그렸다.

 

"형민아 사람 얼굴이 네모네.. 네모네모 스폰지송~~(얘들이 부르는 노래)"


"그게 아니고... 교회가 되고 싶어서 그렇지...."

그러고보니 위에 그려진 십자가 세 개... 교회가 되고픈 사람... 참 교회가 되어야 할 우리들... 형민이 말이 정답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참 교회가 우리는 되어야한다.

 


선화의 홈에 올려진 글들을 읽으니 선화의 세상이 눈에 글썽입니다. 비록 지금은 둘의 생활이 이렇게 다르지만...언젠가 우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는 시간을 뺀 하루의 90% 이상을 병원에서 보내는 내 생활이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