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생일

2004년 10월 5일은 형민이의 네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땅에서 맞는 첫번째 생일이기도 했지요.

만 4세...'지금까지 있었던 세 번의 생일은 모두 한국에서 6천 Km 떨어진 카자흐스탄 땅에서 지내야 했다' 는 이 특별한 기록은 우리 가정이 간직하고 있는 지난 일들을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둘째 시은이 역시 카자흐스탄에서 1년 가까이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첫번째 돌은 한국에서 맞았음을 기억한다면 형민이가 가진 이 특별한 기록은 형민이 본인은 물론 엄마, 아빠 모두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게 될 특별한 '표시'가 될 것 같습니다.

한 해..두 해가 다르게 커 가더니...이제 어느 덧 아빠의 마음도 읽을줄 아는 소년으로 자란 형민이를 볼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다.

 

언제가...형민이가 아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온 적이 있습니다.

"아빠...형민인데요. 그런데...형아(형)들이 타는 자전거...나도 타고 싶어요. 아빠가 사 주세요."

형민이는 어린이집을 다녀오는 길에서 형들이 자전거를 씽씽 타고 즐겁게 노는 것을 봤나 봅니다. 이제 5살인 형민이는 세 발 자전거 정도는 탈 수 있지만 형들이 타는 자전거를 타려면 올 겨울이나 내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그 날 따라 형민이의 눈에는 자전거 놀이가 신나게 보였나 봅니다.

"그래...형민아...아빠가 사 줄께..."

형민이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아빠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저녁 8시 경...또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아빠...형민이에요. 아빠...그러니까..오늘 말고 나중에...아빠가 돈 많이 벌면 자전거 사 주세요. 지금 말고요...알겠지요?"

아마 선화는 형민이에게 자전거를 사 주기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졸라대는 형민이에게 자전거를 살 수 없음을 설명하면서 '아빠가 돈을 많이 벌면...'이라는 단서를 붙였나 봅니다.

선화는 늘 한 가지 원칙을 얘기해 왔는데... 아이들이 뭘 사 달라고 졸라댈 때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절대 뭔가를 쉽게 사 주거나 제공해선 안된다는 거지요. 설사 바로 사 줄 수 있는 거라도 '다음 주...' 나 '다음 달..'과 같은 단서를 붙여 아이들로 하여금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것을 쉽게, 편하게 가질 수 없음을 어릴 때부터 인식시켜줘야 한다는 선화의 견해는 장기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참을성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또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아이를 기르지 않겠다는 우리 부부의 속 마음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휴대폰으로 흘러 나오는 형민이의 이 얘깃소리를 들으며 제 맘 속에는 웬지 모르는 뜨거운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가정이 형민이에게 자전거 사 줄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제가 선화의 속마음을 몰라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그 뜨거운 감정의 근원에는 아이들에 대한 아빠의 사랑과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자전거를 사 주세요" 라고 말하는 형민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말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겠다'는 책임감과 열망이 생기는 건...온 세상 아빠들의 공통된 마음이겠지요?

말이 길어졌네요. 그 동안의 형민의 생일들을 돌아 보았습니다.

 

1. 형민이의 첫 번째 생일 (2001.10.5)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빠베다 거리 63/1 에 위치하고 있는 고려인 식당 "싸샤" 를 빌려 아스타나에 와 계신 모든 선교사님과 KOICA 단원 등을 모시고 조촐한 돌잔치를 가졌습니다.

형민이는 첫 돌 당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었는데...당시 출석하던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예배 후 교제 시간에서도 형민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잌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2. 형민이의 두 번째 생일 (토마토 생일 축하, 2002.10.5)

 형민이의 두 번째 생일 축하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시  말라죠즈니 13/1 에 위치한 우리 집 거실에서 가졌습니다. 요란했던 첫번째 생일 때와는 다르게 우리끼리 모여 앉아 케잌 대신 토마토 위에 두 개의 초를 얹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 손뼉치고 불을 끄는 조촐한 의식(?)이었죠. 이 때부터 형민이는 이런 생일 축하 의식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불을 끄고 초에 불 붙인 뒤 노래 부르고 끄는 이 분위기를 말이죠.

 게다가 두 번째 생일은 선화가 둘째 시은이를 출산하러 가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기 10일 전의 일이었습니다. 선화는 형민이의 두 번째 생일 뿐 아니라 세 번째 생일 때도 임신으로 배가 불러 있었죠.

 

 3. 형민이의 세 번째 생일 (피자 생일 축하, 2003.10.5)

 형민이의 두 번째 생일 축하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시  말라죠즈니 13/1 에 위치한 우리 집 부엌에서 가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 때부터 생일 축하 자리에 시은이가 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지요. 늘 엄마, 아빠와 함께 축하했던 생일 케잌 앞에 동생 시은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형민아, 형민이 몇 살이지?" 엄마의 물음에 형민이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입니다. 사실 카자흐스탄에서는 만 나이를 쓰기 때문에 세 살이라고 하는게 맞는 말이죠. 케잌 대신 엄마가 만든 피자를 사용했고 예쁜 생일초를 구하지 못해 양초로 불을 밝혔던...카자흐스탄에서의 마지막 생일 축하 행사였습니다.

 

4. 형민이의 네 번째 생일 (2004.10.5)

그로부터 1년... 생일 축하 행사는 대한민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경남 양산 동면 석산리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우리의 얘기는 이어지고 있지요. 이번에는 성은이까지..모두 다섯 명의 가족이 모여 앉아 형민이의 생일을 축하하게 되었습니다.

아빠가 퇴근 길에 사 온 생일 케잌 위에는 네 개의 초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형민이가 네 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형민이는 생일 케잌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정작 케잌을 주면 한 입 베어 먹고는 다신 손을 대지 않을 정도로 단 맛을 싫어하지요.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케잌 자체는 싫어한다고 해야 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민이가 누구보다 생일 케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케잌에 불을 밝히고 손뼉치며 노래 부르는 축하의 순간들 때문입니다.

한국인이라고 20명만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한 도시에서 생활했던 우리 가족으로선 아이들이 생일을 맞을 때부터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 만한 축제나 행사도 있을리 없었습니다.

어느 덧 네 번째, 형민이의 맘은 어느 덧 생일 케잌이 함축하고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나 봅니다.

가족의 소중함, 서로가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아껴 주는 것....

형민이의 생일을 맞으며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걸음 걸음들을 떠 올려 봅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가슴 저미는 사랑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즐거웠던 순간들도 많았을 법 한데 되돌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순간들은 어렵고 외롭고 힘들었을 때 함께 해 주셨던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들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어려움도 주시고 연단의 시간들을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생생하게 사랑하도록 하시려구요...

우리의 삶은 오늘을 살고 있지만 과거의 시간 위에 서 있기에 우리 가정을 이처럼 인도하신 하나님의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우리 가정을 인도하실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감사와 기대...형민이가 생일 케잌에 밝혀진 촛불을 끈 뒤에도 이 마음은 더욱 밝아져만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