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얘기 (18)  2004.6.18 -2004. 9. 12

만두 빚기

 

조회 : 136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6/18 오전 9:12:38

얼마 전 쓰레기 만두소 파동 이후 만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요즘이지만
우리 집 아이들이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집에서 만든 만두입니다.

사실 만두를 만들어 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서...납작하게 밀어야 하고...만두 하나 하나를 빚는 정성은 도저히 패스트푸드가 따라갈 수 없는 음식이죠.

사실..형민이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3년 가까이 산 까닭에 다양한 한국음식을 어린 시절 먹어 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여전히 된장이나 감자 같은 카자흐스탄에서 어렵게 구해 먹던 먹거리들과 국만 좋아합니다.

그런 형민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집에 빚은 만두 랍니다.
아래는 얼마 전 선화가 외할머니, 아이들과 함께 만두를 만들던 모습입니다.
형민이는 아기 때부터 밀가룩 반죽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도 특별한 놀이 기구가 없어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만들기 놀이를 하곤 했었죠.
아마도 형민이이겐 밀가루 반죽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오늘은 만두를 빚는 날입니다.


시은이도 오빠와 사람들이 함께 벌이는 이 축제에 들뜨있긴 마찬가지입니다.


손에 묻은 밀가루


형민이가 만든 만두피

 

'꼬까야...'와 고추

 

조회 : 134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6/24 오후 4:21:14

04년 6월 말...시은이는 만 1세 6개월이 지났고 형민이는 만 3세 8개월입니다. 시은이가 말을 제법 하고 자기 표현을 하게 되면서부터
형민이와 시은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습니다.

사실 형민이가 제일 재미있어 하는 건 "예명 어린이집"에 가서 자기 또래의 꽃잎반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에 와선 오빠에게 집요하게 달라 붙는 시은이의 단짝 친구가 되어야 한답니다.

시은이가 요즘 말하는 걸 보면 우습기만 합니다.
우리 아파트에선 밤마다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침 저녁으로 주변 닭들이 "꼬끼오..."하고 외치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는 집 근처 닭울음 소리를 듣던 시은이는 요즘 베란다 밖으로 보고 "꼬까야..."하고 소리친답니다. "꼬끼오..."가 시은이에겐 "꼬까야..."로 들리나 봅니다.
능청스럽게 웃으며 밖에서 "꼬까야..."하고 우는 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시은이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지요.

시은이에겐 꼬까야 소리를 내는 닭이 멍멍이 다음으로 친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형민이는 요즘 집 근처 밭에 심겨져 있는 오이며 상치밭을 들여다 보는 게 일과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앞 비탈길을 오르면 밭마다 심겨져 있는 채소들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형민이도 잘 알고 있는 고추밭을 지날 때면 형민이는 탄성을 지르지요.
"엄마...고추예요..신기하지요?"

카자흐스탄 아스타타에서도 남성택 선교사님 밭에 심겨져 있는 깻잎을 보며 그렇게 좋아했던 형민이...
이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길쭉 길쭉 자라는 푸른 고추를 보며 "신기하다"는 단어를 연신 사용합니다.
사실 형민이가 '신기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건 최근 2-3주 전부터의 변화거든요...

모든 게 신기한 형민이와 '꼬까야'를 외치며 밤 늦게 들어오는 아빠 품에 파고 드는 시은이는 여름이 좋기만 합니다.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베란다에서 형민이와 시은이가 물장난을 하고 노는 계절입니다.



 

'꼬까야...'와 고추

 

조회 : 133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6/24 오후 4:21:14

04년 6월 말...시은이는 만 1세 6개월이 지났고 형민이는 만 3세 8개월입니다. 시은이가 말을 제법 하고 자기 표현을 하게 되면서부터
형민이와 시은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습니다.

사실 형민이가 제일 재미있어 하는 건 "예명 어린이집"에 가서 자기 또래의 꽃잎반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에 와선 오빠에게 집요하게 달라 붙는 시은이의 단짝 친구가 되어야 한답니다.

시은이가 요즘 말하는 걸 보면 우습기만 합니다.
우리 아파트에선 밤마다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침 저녁으로 주변 닭들이 "꼬끼오..."하고 외치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 대는 집 근처 닭울음 소리를 듣던 시은이는 요즘 베란다 밖으로 보고 "꼬까야..."하고 소리친답니다. "꼬끼오..."가 시은이에겐 "꼬까야..."로 들리나 봅니다.
능청스럽게 웃으며 밖에서 "꼬까야..."하고 우는 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시은이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지요.

시은이에겐 꼬까야 소리를 내는 닭이 멍멍이 다음으로 친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형민이는 요즘 집 근처 밭에 심겨져 있는 오이며 상치밭을 들여다 보는 게 일과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앞 비탈길을 오르면 밭마다 심겨져 있는 채소들을 볼 수 있는데 특히 형민이도 잘 알고 있는 고추밭을 지날 때면 형민이는 탄성을 지르지요.
"엄마...고추예요..신기하지요?"

카자흐스탄 아스타타에서도 남성택 선교사님 밭에 심겨져 있는 깻잎을 보며 그렇게 좋아했던 형민이...
이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길쭉 길쭉 자라는 푸른 고추를 보며 "신기하다"는 단어를 연신 사용합니다.
사실 형민이가 '신기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건 최근 2-3주 전부터의 변화거든요...

모든 게 신기한 형민이와 '꼬까야'를 외치며 밤 늦게 들어오는 아빠 품에 파고 드는 시은이는 여름이 좋기만 합니다.


 

도움을 구합니다. (세르게이 프로젝트 관련)

 

조회 : 128 

이름 : 이선화

작성일 : 2004/06/30 오전 12:21:54

안녕하세요. 더운 여름이 시작되면서 여러가지 추억도 같이 하네요. 각종 교회 행사과 의료봉사 준비로 옷이 늘 땀에 젖었던 생각이 납니다. 카자흐스탄은 매우 건조하면서도 온도가 높아서 한국보다는 땀이 덜 난답니다. 햇볕아래서 생긴 땀은 나면서 증발해버리는 것 같고, 그늘에서는 금방 서늘함을 느끼거든요.

지난해 여름은 까작 비젼트립이 있었구요.... 이번 여름 저희 가정은 세르게이 프로젝트를 시행합니다.

김 세르게이는 고려인 아버지와 까작인 어머니를 둔 20세의 청년입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가 한글학교 1기를 시작할 때 학생으로 등록하여 공부하다가 목사님 가정에 있는 창규, 창영이와 친구가 되어 늘 목사님댁에서 지내다시피했었는데 그런 일들을 통해 세르게이는 목사님, 교회, 저희들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유달리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다른 특별한 취미는 없는 조용한 세르게이는 한글을 배울 욕심으로 저희 집에도 자주 오곤 했는데 문득 전화를 걸어 "나는 세르게입니다. 이선생님 계십니까? 저는 심심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저희는 이 심심해사는 세르게이를 어떻게 해 줘야할 지 막막하기도 했답니다. 우선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같이 형민이가 보는 비디오나 책을 읽으면서 한글 공부를 하고 세르게이가 싫어하겠지만 된장국 긇여서 밥먹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 속에서 세르게이의 믿음은 자라났고.... 지금은 목사님의 통역을 맡고 장래에 목회의 길로 가고자 결심한 믿음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르게이가 저희도 너무 대견해서 이번 까작인 초청 사업에 첫 손님으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세르게이에게 한국의 멋진 건물, 풍부한 물자들을 보여주고자 부른 것은 아닙니다. 교회일을 돕고 있는 아이이기에 한국의 교회들, 그리고 풍성한 기독교 문화들을 접하게 해서 그곳에서는 볼 수 없는 신앙의 모습들을 보여주로 싶은 것입니다.

세르게이는 7월 30일 금요일 서울에 도착하여 며칠 지낸 후 8월 1일 주일부터 8월 20일까지 3주간 저희들과 지내게 됩니다. 세르게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중인데요... 새벽별 지체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1. 8월 첫째, 둘째주중에 주 3-4회정도 하루 3-4시간정도 언어학습을 도와줄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 세르게이는 이미 한국어를 제법 하는 단계에 있지만 이번 기회에 좀 더 배워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은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올해 영문과 대학에 들어가는 세르게이에게 도움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학습을 통해 사람을 사귀고 이곳 젊은이들과 만나게 해 주고자 하는게 제일의 목적입니다.

2. 그 주간중에 각 교회 청년회 수련회가 있다면 세르게이가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까작스딴에서도 이러한 수련회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한국의 빡씬(?) 수련회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세르게이를 적극적으로 챙겨줄 분도 필요합니다.

3. 알고 계신 찬양집회나 콘서트를 알고 계시면 정보 부탁합니다.

4. 이 주간내 새벽별 모임이 있었으며 좋겠습니다.

5. 개인적으로 세르게이를 챙겨주셔도 좋구요...

기억해주세요. 세르게이가 7월 30일부터 8월 20일까지 한국에 옵니다.
그리고 또한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왼쪽에 서 있는 키 큰 청년이 세르게이 이구요. 오른쪽의 청년은 스팀나고르스크에 있는 나사렛 교회의 현지 사역자 잠불라 입니다.

 

시은이의 말

 

조회 : 177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7/15 오후 2:38:09

1년 6개월 된 시은이는 요즘 우리가 하는 말을 거의 다 알아 듣는 것 같습니다. 형민이 때도 그랬지만...아이들은 비록 말을 할 준 몰라도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수없이 들으면서 무의식 중에 그 말을 모조리 머리 속에 저장해 두나 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 말들을 쏟아 내지요 우리가 하는 발음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따라 하는 시은이의 음성은 들을 수록 우습습니다.

그동안 형민이 오빠를 지칭할때도 계속 "오빠야.."라고 불러 왔었는데 최근 들어 우리가 "형민아..."라고 부르는 걸 인식하고선 자기도 오빠에게 "형미(ㄴ)아" 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일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진 집에 전화를 걸면 항상 수화기를 들고 아빠와 대화할 수 있는 아이는 형민이 뿐이었는데 최근 들어선 시은이도 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수화기만 들고 "아..."하고 소리만 지른 뒤 쥐죽은 듯이 상대방 얘기만 듣고 있던 시은이도 요즘은 뭐라고 얘기하면서 "빠리...빠리..." 라고 반복합니다.
'빨리 오라는 말' 입니다. 오빠가 아빠에게 "빨리 오세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흉내내는 말입니다.
그 외에도 형민이 때처럼 자신만의 말로 문장을 구사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많아지고 세상 돌아가는 걸 조금씩 파악하면서 아빠, 엄마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나 봅니다.
어부( 업어 달라는 얘기), 우유, 또(한 번 더), 안돼요..(뭘 하고 싶은데 자기는 안된다는 말..즉 아빠가 해 달라는 말)

낮잠을 자는 시은이는 다른 두 아이가 자더라도 밤 1시가 다 되도록 잠들지 않고 아빠, 엄마를 괴롭히는(?) 악역도 맡고 있습니다. 항상 두유로 가득 채워진 젖병 하나를 손에 들고 다 빨고 나서야 잠이 듭니다.



종이 박스 안에서 노는 둘째와 셋째





형민이와 시은이는 이렇게 아파트 앞 마당에 나가 뛰어 놀기도 합니다.

 

한국에 온 세르게이

 

조회 : 139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8/02 오후 1:12:15

세르게이가 지난 2004년 7월 30일 밤 8시 56분경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그 동안 세르게이가 한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관심 보여 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세르게이는 7월 30일부터 8월 23일까지...25일간 한국에서 머물게 되고 숙소는 저희 집입니다.

현지인 리더로 장차 선교지 교회를 이끌고 갈 세르게이는 25일 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고 돌아 갑니다. 사실...한국에서 수많은 단기선교팀이 외국을 찾고 잇지만...어떻게 보면 역으로 선교지의 현지인을 이곳으로 초청해 배우도록 하는 것이 유익할 때가 있는 게 사실이기에 금번에 세르게이를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제 1일 (7월 30일, 금요일)

세르게이는 30일 아침 알마티 국제공항을 출발하는 에어 아스타나 비행기를 타고 낮 1시 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세르게이는 28일 기차를 타야 했고 29일 알마티에 도착한 뒤 그 곳에 계시는 안병재 선생님(국제협력의사) 집에서 하룻밤을 잔 뒤..아침 비행기를 탔던 것이죠.

인천에서 기다리고 있던 구정아 선생님(특수교육교사,KOICA 단원으로 2년간 아스타나에서 근무) 의 도움으로 김포공항으로 이동하고, 점심식사도 해결한 뒤 KTX편으로 부산까지 내려왔습니다.

세르게이가 도착하기 전 부산역으로 나가 열차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판에 불이 들어 오는 것을 본 뒤 설레이는 맘으로 세르게이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열차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들과 함께 역으로 들어 오는 키 큰 세르게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좀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이었고 오랜 여행에 약간은 지쳐 보였습니다. 하긴 5000 Km를 날아왔으니까요...우리 만남에 특별한 인사말이 필요없었습니다. 그저 며칠 정도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부산역에서 세르게이에게 줄 부산지도를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백양 터널을 통과해 모라 지하철 역까지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제 차가 세워진 호포 지하철 역까지 갔습니다.

택시 안에서 우린 여러 가지 얘길 나눴습니다.
세르게이와 대화를 나눈 첫 5분간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 러시아어 단어들로 인해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분명 전에는 알고 있던 어구나 표현이었는데 카자흐스탄에서 살 때처럼 머리에 바로 바로 떠 오르지 않는 겁니다. 한국에 온 지 8개월...나름대로 러시아어 공부를 했다곤 하지만...현지인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좋은 외국어 능력 유지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10여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정말 거짓말같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던어들이 떠 오르더군요.

세르게이는 웅덩이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인 한국의 아스팔트 포장 도로와 터널이나 고갯길들을 보며 무척 신기해 했습니다.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에 세워진 도시에서 살다온 그로선 이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웠습니다.

특히 백양터널을 지날 때 동전을 던져 넣는 것을 보고는 무척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왜 돈을 넣느냐? 언제까지 그렇느냐? 누가 이 터널을 지었느냐? 등...모든게 이상해 보였나 봅니다.

세르게이는 부산으로 내려 오는 동안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 보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따가왔다고 얘기합니다.
서울에서 내려 오는 열차는 물론, 서울에서 잠시 탔던 버스 속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 봤다는군요. 세르게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 끝에 있는 사람들까지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 보더라니까요...

지하철 안에선...부산 지도를 펴 놓고 1호선과 2호선의 차이, 경상남도의 준말이 경남 이라는 것 등을 얘기하며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년 10시 정도였습니다. 선화가 반가와 한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지만 형민이나 시은이도 이 새로운 방문객에 대해 환대를 보냈습니다. 아마 엄마, 아빠가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는 카자흐스탄에서 몇 가지 선물도 가져 왔습니다. 김대동 선생님네가 보낸 나영이가 입던 옷, 안병재 선생님이 보낸 가스물(선화가 좋아하는 Vita), 라이사 알렉산드로브나(카자흐스탄에 살 때 함께 했던 통역)가 보내 온 쵸코렛...그 외에도 아스타나 사람들이 보내 준 편지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세르게이를 처음 만났을 때...)

세르게이가 한국에 온 첫 날 특이하게 생각한 것들이 몇 게 있습니다.
1. 한국의 욕실 바닥에는 물을 뿌려도 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욕실 바닥에 절대 물이 가선 안됩니다. 심지어 빨래를 할 때에도 욕조 안에 들어가서 해야 하지...그런 작업을 그냥 욕실 바닥에서 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왜냐하면 카자흐스탄의 아파트에서는 바닥 방수 시설이 허술해서 욕실 바닥에 물이 고이기만 하면 바로 그 아래층 아파트 천장으로 물이 새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걱정이 없죠? 그래서 세르게이는 이 특별한 욕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2. 세르게이가 한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후덥지금한 날씨 였고 "모끄리...(물기가 많아요)" 라는 단어를 연발했습니다.

뜨거운 온도지만 건조한 카자흐스탄에 비해 한국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여름 날씨이기 때문인지라 세르게이에겐 이 고온 다습한 기후가 낯설기만 합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부산역에 내렸을 땐 독특한 바다냄새까지 섞여 이국땅에 왔음을 느꼈겠지요?

첫 날 휴식이 무엇보다 필요했기에 자정 쯤 되자 우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희 집은 방이 3칸입니다.

세르게이를 위해 아기들 방을 내 주었고 카자흐스탄에서 가져 왔던 침대를 놓았습니다. 이 침대는 아기용을 사온 것인데 어른 용으로 변형도 가능한 것입니다. 알마티 질료니 바자르 근처에서 산 것입니다.
첫 날 밤...우린 그렇게 기다렸던 귀한 방문객이 건넌방에서 자고 있다는 감사하고 흐뭇한 맘으로 아름다운 밤을 보냈습니다.

제 2일 (7월 31일 토요일)

세르게이는 오후 1시까지 잤습니다.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이 날 저도 병원에 갔다가 오후 2시쯤 집에 돌아 왔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렇게 빨리 올 수 없지만 세르게이가 왔다는 사실이 다른 모든 것을 뒤로 미루도록 만들었습니다.
세르게이가 온 뒤 우리 가정은 새로운 활력이 넘치고 있습니다. 세 아이를 보느라 늘 바쁘게 지냈던 선화도 세르게이가 온 뒤로 새 힘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오후 들어 우리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산책...러시아어로 굴럇지 라고 하는데...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겐 굴럇지가 생활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산책의 수준을 넘어선 그야말로 굴럇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세르게이와 산책을 마친 아이들...)

저녁 5시 경에는 모두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저녁 7시 30 BEXCO 부페에서 돌잔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르게이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우린 좀 일찍 나서서 세계적(?)인 휴양지인 해운대를 보기로 했습니다. 경부 고속도로와 도시 고속도로를 타고 해운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가는 길 내내 복잡한 부산의 도로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수십만의 사람들이 해운대에 모여 있었고 밀려오는 큰 파도를 피해 다니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바다 경찰은 해수욕을 금지한다는 방송을 하고 있더군요.


세르게이도 해변가에서 파도를 쫓느라 구두가 바닷물에 젖기도 했습니다.

세르게이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바다입니다. 물론 카자흐스탄도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지만 아스타나에서 카스피해를 보려고 하면 3박 4일 동안 기차를 타고 서쪽 끝에 있는 악타우나 알라타우 같은 도시로 가야만 합니다. 그 곳 사람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죠.
아마 처음 보는 바다가 한국의 바다..그것도 해운대라는 사실이 세르게이를 평생 따라 다닐 것 같습니다.



오후 7시 10분까지 해운대와 인근 포장 마차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BEXCO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돌잔치의 주인공과 가족들 그리고...새벽별(부산의대기독학생회 학사모임) 형제,자매들을 만났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대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임이 새벽별 지체들이 모인 최상헌 형제님 댁의 큰 아이 돌잔치였다는 점도 무척 좋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셨고...세르게이도 오자말자 부페식당에 가 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르게이에게 한국의 좋은 물질문명을 보여 주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건물에서 부페 식사를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만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모두가 축복하는 돌잔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을 주라 고백하는 다른 분들을 접할 수 있었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너무 늦은 시간이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 술 밥에 배부르겠습니까? 다음 모임에서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BEXCO에서 열린 빛의 축제 앞에서 사진도 찍고 교제를 나누다 자정이 가까와 오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김원택 선생님 부부, 문재현 선생님 부부와 함께)

3일째 (8월 1일 주일)

우리가 출석하는 양산교회는 3부 예배를 드리는데 11시에 드리는 2부 예배와 1시 30분의 3부 예배, 4시 30분의 오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고등부 교사라서 3부 예배에도 참석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젊은이들의 밝고 활기찬 예배 모습과 찬양 모습을 세르게이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교회에서도 카자흐스탄에서 온 이국적인 청년에게 많은 환대를 해 주셨습니다. 오후 예배 시간에는 목사님이 직접 이름을 거명하시며 축복해 주셨고 3부 예배 시간에도 앞으로 나가 여러 사람들의 축복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르게이는 다음 주 교회에서 간증을 할 예정입니다.

또 이 날 저녁부터 화요일까지 (8월 1일-3일) 열리는 양산교회 2청년회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사실..금주부터 천안에서 열리는 선교한국 같은 곳에 보내는 것도 좋은 대안이지만 제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큰 모임에 참석하는 건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르게이는 이날 저녁 7시 30분 교회 마당에서 출발하는 다른 17명의 사람들과 함께 수련회 장소인 무주로 떠났습니다. 비상용으로 선화의 핸드폰을 가지구요...
지금 세르게이는 무주에 있습니다.

이렇게 세르게이의 한국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방문 목적이 그런 만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엇보다 절실하고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억 나시는대로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세르게이가 이번에 접하게 되는 한국 교회와 교인들의 신앙 생활 그리고 다양한 기독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넓고 크게 자랄 수 있도록...그리고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세르게이의 한국 행에 도움 주신 분들)

김대동 선생님: 아스타나-->알마티 왕복 기차표와 알마티-->인천 비행기 왕복 표 구입(현지에서 구입해야 경비가 절감됩니다. 게다가 학생 할인까지 챙겨 주셨습니다.)
안병재 선생님: 비자 인터뷰 위해 내려온 세르게이에게 교통 편 제공, 한국에서 보낸 초청장 수령, 한국으로 떠나기 전 날 숙박 제공
김명희 선교사님: 세르게이가 한국을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
구정아 선생님: 세르게이가 인천 공항에 도착한 뒤 김포공항까지 이동에 동행, 부산행 KTX를 탈 수 있도록 안내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세르게이

 

조회 : 117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8/12 오후 4:23:07

지난 7월 30일에 한국에 들어온 세르게이는 매일같이 강행군을 하고 있습니다. 선화가 주로 세르게이 스케줄을 챙기고 있는데 세 아이를 돌보는 중에도 잘 해 내고 있습니다.

세르게이가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많지만 제가 세르게이의 사진을 찍을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세르게이가 들고 다니는 자신의 카메라에는 여러 장면들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저는 병원 근무로 인해 세르게이를 밀착 취재하고 있진 못합니다. 나중에 인화가 되면 다른 사진들을 보여 드리기로 하지요.

8월 1일-3일(주일-화요일
전북 진안군 무주와 울산에서 열린 양산교회 제 2청년회 수련회를 참석했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온 뒤 2청년회 사람들과 거리낌없이 친해졌고 한국 교회의 시스템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참석한 많은 2청년회 회원들이 세르게이에게 퍽 잘 해 준 것 같습니다.



(사진 제공: 양산교회 홈페이지)

8월 4일 수요일

3일간의 수련회를 다녀 왔기에 휴식을 취했고 저녁 7시에 시작하는 수요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8월 5일 목요일

미션 스쿨이자 디지털 분야의 특성화 대학인 동서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작년에 카자흐스탄에서 대학생 자비량 선교사로 섬기고 온 이정철(옐도스) 형제님이 세르게이를 동서대학으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 곳에서 세르게이는 대학 안에 있는 교회와 도서관, 멀티미디어 센터 등을 둘러 봤습니다. 그리고 정철 형제가 속한 CCC에 대한 얘기도 들었습니다.

동서 대학교에서...


저녁에 부산극장 맥도날드에서 이미 카자흐스탄을 다녀간 적이 있는 이정철(옐도스), 류지훈(현, 부산 CCC 아가페모임 간사) 형제님과 함께 밀크 쉐이크를 마셨습니다. 그 후 세르게이와 저는 남포문고, 용두산공원 등을 돌아 봤습니다.


8월 6일 금요일

저녁 6시-9시: 동의대 근처에 있는 부산 CCC 센터에서 열린 부산지역 CCC 월례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 모임에는 류지훈 형제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밤 9시 반-밤 11시 : 양산교회에서 '다윗과 요나단' 음악회 참석 (성안 선교회 주최 심장병 어린이 돕기 행사로 열림)

8월 7일 토요일

한국의 대형 유통 매장을 보기로 하고 금곡에 있는 농협 하나로 클럽 부산점을 방문했습니다.
밤에는 주일날 하게 될 간증을 준비했지요.

8월 8일 주일

세르게이에게는 가장 긴장되고 신경 쓰이는 시간이었나 봅니다. 세르게이는 양산교회 3부 예배(중고대연합예배) 시간에 자신의 신앙에 대한 간증과 교회 기도제목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는 세르게이


양산교회 3부 예배에서...

8월 9일 월요일

작년 여름, 의료 선교 활동을 위해 카자흐스탄을 찾았던 부산의대기독학생회 회원 5명과 세르게이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세르게이가 대표 기도하고 밀면을 먹은 뒤 함께 남포동 일대에서 영화를 보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날 세르게이는 부산의대 본과 3학년인 양주석 형제의 집에서 하루 신세를 졌습니다.

8월 10일 화요일


하루종일 양주석 형제와 함께 지냈습니다. 오후 6시 YM 화요 찬양 모임을 양주석 형제와 다녀 왔습니다.

8월 11-13일 (수요일- 금요일)

서울을 방문합니다. 서울에 계시는 전 KOICA 단원, 구정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양화진 등...서울의 여러 곳을 돌아 보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세르게이는 서울에 가 있습니다.

세르게이가 와 있는 동안 많은 분들이 세르게이를 챙겨 주시고 시간을 내 주셨습니다. 다음 주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 휴가 기간입니다. 주말을 포함한 약 9일동안 세르게이와 함께 지내며 여러 곳을 소개하고 보여 줄 계획입니다.

세르게이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많은 분들께 세르게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계속 기도해 주세요.


경남 양산 호포역에서...지하철에 탄 세르게이와 아이들...

 

싱가포르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

 

조회 : 106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8/18 오전 1:56:59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는 시은이와 든든한 오빠 형민이의 사진을 몇 장 소개합니다.

04.6.26 아파트 위 고추밭 옆에서 외할머니가 얼마 전 싱가포르에 사 오신 전통 의상을 입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한 동안 주일마다 이 의상을 입고 교회당에 갔었는데 반응(?)이 좋았었죠. 무늬나 색상도 괜찮고...애들에게 잘 어울리는 같아요.



(두 아이 옆에 보이는게 바로 고추밭입니다.)

04.6.26 이 날은 주일...교회당에 다녀오면 둘은 이렇게 욕탕에 풍덩 들어갑니다.


04.7.4 형민이는 어린이 집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집에 돌아 오면 어김없이 그 날 했던 만들기 놀이를 반복하곤 합니다. 그렇게 새로 만든 물건은 어김없이 시은이의 것이 되지요. 이 날은 왕관을 만들었나 봅니다.


04.7.16 어린이 집에서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 왔습니다. 오페라 공연시 아이들의 얼굴에도 분장을 했던 모양인데 오빠의 바디 페인팅을 본 시은이가 우스운지 미소를 짓고 있네요.


04.8.16 시간은 한 달이 흘렀고...경주 안압지 뜰 한 쪽에서 두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시은이의 머리카락도 꽤(?) 자랐지요?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바로 행복입니다.

 

반환점을 돌며...

 

조회 : 114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8/24 오후 3:24:34

세르게이가 가고 난 뒤...그 동안 쌓여 있던 긴장이 풀렸나 봅니다. 휴가 후 첫 출근을 한 어제는 온 몸이 쑤셔 왔습니다.

2004년 8월 23일 오후 3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세르게이는 무사히 모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세르게이 프로젝트는 완료된 셈입니다.

세르게이가 와 있던 한 달이라는 시간도 어찌 보면 긴 시간입니다. 1년의 1/12이나 되니까요...

세르게이가 돌아간 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르게이와 관련된 얘기는 다음 번 글을 통해 나누도록 하지요.

휴가를 마치고 다시 병원 생활을 시작한 제 맘은 사지(?)로 끌려 가는 듯한 착잡함과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도 다 갔는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도는 걸 보며 또 다른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부산대학병원에서의 이 생활도 끝이 난다는 희망입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전임의로 근무하게 된 것은 카자흐스탄에서 지냈던 3년 간에 발생한 최근 의료 공백을 채우기 위함과 동시에 소화기 내과 분과 전문의를 취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분과전문의 취득에 필요한 2년 중 1년은 반드시 대학병원에서 근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0개월만...)

하지만 세 아이와 선화를 두고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병원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총각(레지던트) 시절의 병원 생활과는 또 다른 스트레스 였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고 혼자 남아 있는 아내가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이 고생을 왜 사서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 수 밖에 없었죠.
사실 내과 전문의 자격만 가지고도 중소 병원의 내과 과장 직을 수행하는데에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유로왔던 카자흐스탄 생활 3년을 끝낸 뒤...우리는 바로 이 가시밭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이제 찬 바람이 불고... 조금만 더 참으면 이 고생이 끝납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이 4월 23일이니까...오늘이 꼭 4개월 째가 되는 날입니다. 이제 지금부터 다시 4개월만 견디면(?) 12월 23일...즉 2004년이 끝나게 됩니다. 그 때가 되면 제가 내년에 근무하게 될 병원도 이미 정해져 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 퇴근 시간도 훨씬 당겨지겠지요.

사실..세르게이가 온 뒤부터 제 퇴근 시간은 부쩍 앞당겨졌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밤 8시 30분에 병원 문을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밤 10시 정도에 양산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에는 아직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세 아이의 얼굴을 모두 볼 수 있고 부쩍 자란 시은이의 수다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만 대화해야 했던 선화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후반기의 첫 날...어제도 이렇게 집에 일찍(?) 들어가서 설겆이도 하고 한국 남자 탁구 단식 유승민 선수의 금메달 장면을 재방송으로 보기도 했습니다.

글쎄요.... 세르게이가 한국에 있는 동안 내가 가야 할 길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더욱 뚜렷하게 생각할 수 있었기에 지금 하고 있는 병원 생활에서의 목표도 더욱 뚜렷하게 그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반환점을 돌고 있는 지금...좀 더 여유있고 느긋하게 병원 생활을 하고 싶고 또...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욕실에 서 있는 선화와 셋째 성은이의 환한 모습)

 

오빠야...비켜

 

조회 : 101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9/07 오전 12:04:47

요즘 둘째 시은이와 셋째 성은이가 부쩍 크고 있습니다.

밤 늦게 집에 들어와 시은이를 안으며 "시은아,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라고 물으면 시은이는 이렇게 답합니다. "예...오빠 같이...(예..오빠랑 같이 놀았어요)"

그 외에도 말이 많이 늘었는데...

"그런데(우리 아이들이 흔히 앞에 붙이는 별 뜻없는 말)...아가...애앵...했어요...(아기가 오늘 울었어요)"
"오빠야..비켜"
"아가야..깼어?(자고 일어난 성은이를 보며 하는 말)"
"아...맛있겠다."(형민이의 말을 듣고 배운 것임)
"엄마..따른 우유 주세요..(엄마..다른 우유 주세요..성은이가 먹는 우유 말고 다른 우유를 달라는 말, 아가 우유는 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음)
등 입니다.

"시은아..오빠 어디 갔지?"하고 물으면..
"예명 어린이집에...언니 같이...(다른 아이들과 같이 갔다는 말)"
"시은아..오빠 몇 시에 오지?" "떼띠(세 시..'ㅅ' 발음은 모두"ㄸ')
--> 이렇게 낮에 일어나는 일들은 선화에게 들어서 아는 것이죠.

셋째 성은이는 운동량이 엄청 늘었습니다.
아직 기어 다니지는 못하지만 '배밀이'를 사용해서 거실을 뱅뱅 돌아 다닐 정도지요. 하루 하루 커가는 아이들에 세월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생후 7개월 반이 지난 셋째 성은이의 모습..잘 웃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사연 많은 편지

 

조회 : 85 

이름 : 이성훈

작성일 : 2004/09/12 오후 11:07:28

어제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김명희 선교사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는 우리가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 출석했던 교회입니다. 김명희 선교사님은 지난 7월 선교대회 참석차 일시 귀국하셔서 저희 가족과 짧은 교제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후 김명희 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현지인 리더 세르게이가 한 달 간 저희 집에 와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다 아실 겁니다.

다음은 메일의 내용입니다.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행20:24)

오늘도 주님의 심장 가지고 기도와 물질로 카자흐스탄 선교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귀국길에서 찌는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웠었던 여러분들의 정성은 언제나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저는 이 번 여러분들의 그 아름다운 헌신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결단코 저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실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바친 그 정성들로 인하여 기초만 해 놓고 거의 일년동안 중단되었었던 건축이 다시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텅 비어 황량했었던 기초건물 주위에 여러 가지 건축 재료들이 쌓이게 되었고, 경비를 위한 조그만 컨테이너도 하나도 서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전기 줄도 끌어왔고 밤낮으로 교회 청년들이 교대로 경비를 서면서 완성될 건물의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교회 청년들이 교회 건축 현장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실 제가 고국에 갈 무렵에는 누구하나 저의 사역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실의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었었습니다. 기도제목을 띄워도 건드려 본 흔적이 없을 때면, 정말 인적 없는 사막에 홀로 버려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많은 주의 종들, 교회들, 하나님만이 아실 여러 성도님들의 간절한 사랑으로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는 이밖에 더 이상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수년 만에 찾은 모국은 변화무쌍,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과는 너무나 차이가 컸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달 동안 그저 하늘과 내가 서있는 땅, 그리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면서 동분서주 뛰어다녔었습니다.

현장에서 그렇게 절실히 필요했었던 간단한 생필품조차 관심거리가 될 수 없었고, 입맛을 끄는 감미로운 음식들도 저의 구미를 돋구지 못했었습니다. 오직 그 한 가지, 주님께서 지금 제게 맡기신 그일 만이 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리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 이번에 주님과 사역, 그리고 나 자신을 관련지어 생각할 때면, 언제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루에도 수차례씩, 밤이고 낮이고, 기도하면서 울고 말씀묵상하면서 울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울고 차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면서 울었고, 찬송을 부르면서..... 그야말로 실컷 울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그 눈물은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감추기 위하여 무던히도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 둘 씩 건축 자재들이 준비되기 시작합니다.)

나는 종종 그것이 무슨 눈물인지에 대하여 주님께 여쭈어 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같은 죄인을 위해 주신 주님의 그 고귀한 사랑때문”,이라는 평범한 진리와 그리고 “내게 맡겨 주신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눈물” 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송두리째 드려 살고 싶어진 후, 사랑하는 그 주님께 드릴 것이 자신에게 너무나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나의 마음은 더욱 더욱 무너져 내렸습니다. 내 생애 이렇게 마음이 가난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건축으로 이 정도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아직 교회센터(선교센터)를 완성하기에는 태부족이지만, 이 번 여름에 동역자님들을 통해서 드려진 소중한 헌신들은 현지의 갓 태어난 영혼들의 꿈을 다시 회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여러분의 그 정성들은 틀림없이 오병이어의 도시락이 되어,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주님의 기적의 역사를 불러올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계속하여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끝까지 이루시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동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관심은 현장에서 귀중한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기억해 주시기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카작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김명희/이영분 드림.


<기도제목>
1.카작스탄 아스타나 교회센터(선교센터)의 건축비용이 계속적으로 채워지고, 건축이 속히 완성되기를 위하여.
2.곧 끝나게 되는 건축만료기간(2004.9.17)이, 일년 더 연기될 수 있기를 위하여.
3.더욱 많은 현지 영적 제자들과 지도자들이 배출되어 지기를 위하여.
4.아스타나 교회선터(선교센터)에 정성으로 참여한 모든 교회에 부흥을, 성도들의 가정과 생업에 주님의 놀라운 축복을 위하여.
5.세 아들(창명, 창영, 창규)이 이세 선교사로서 꼭 필요한 양육을 시켜 주시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