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그 빛과 그림자  - 카라간다 살인 사건

지난 2004년 9월 19-20일 1박 2일간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카자흐스탄으로 모아졌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카자흐스탄이 종합 4위에 올랐을 때도 이만한 메스컴의 반응을 얻어 내지 못했었는데 최근 며칠 간은 카자흐스탄이 연일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사진 설명: 대통령 집무실에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과 누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는 우리가 지난 2년 반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던 도시입니다. 사실 아스타나에는 한인이라고 해봤자 선교사와 KOICA 봉사단원을 합쳐 약 20 여명 정도만 살고 있을 뿐이기에 우리가 아스타나에 있었더라면 대통령을 더욱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뻔 했습니다. 지난 1998년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수도로 정해진 이후 현재도 계속 도시 기반 시설을 건축 중인 아스타나로 대통령이 방문함에 따라 아스타나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 같습니다. 대통령 국빈 방문 동안 '아스타나' 라는 검색어로 저희 홈을 방문해 주신 분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며 높아진 아스타나에 대한 관심도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벌써 세 번씩이나 한국을 다녀 갔던 것을 되돌아 본다면 한국 대통령의 방문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방문으로 인해 한국은 자원, 에너지 부분에서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카스피해 유전지역은 약 2600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계 석유시장에서 중동 다음의 주요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곳입니다. 카스피해에서 카자흐스탄 관할 지역의 추정 매장량은 약 285억배럴로 세계 1 산유국인 사우디와 맞먹는 양이고 확인된 매장량만 372 배럴에 달하기 때문에 공동개발이 순조롭게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의 항구적인원유수급 탱크 것으로 기대됩니다.

카자흐스탄은 바로 이 카스피해 유전개발과 관련해서 올해초 23개국을 대상으로 56개 지구의 시추권 매각에 본격 착수했는데 카자흐스탄이 석유시추권을 매각하는 이유는 오는 2015년까지 연산 1억7000만 배럴에 이르는 이 지역 원유 생산을 위해 28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석유공사를 대표로 SK㈜ㆍ삼성물산ㆍLG상사ㆍ대성그룹 등이 참여한 한국측 컨소시엄은 카자흐스탄 국영석유공사(KMG)와 카스피해 마함벳 해상석유 탐사 광구 선정 의정서와 카자흐스탄 남서부 유전지대인 탱게 육상석유개발광구에 대한 KMG 지분매입 우선 협상권을 부여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해외에서 개발한 원유가 6억 6천만 배럴이고 원유수입량이 8 배럴인 것을 감안하다면 카자흐스탄과의 6억 5천만 - 8억 5천만 배럴 공동 개발은 에너지 자주율을 높이는 계기가 것입니다. 

앞으로 카스피해 해상석유 탐사 광구에서 4억 5천만 ~6억 5천만 배럴, 탱게 육상 석유 개발 광구에서 2억 배럴을 개발할 수 있게 된 우리나라는 향후 카자흐스탄 두개 광구에서 약 50년간 사용할 수 있는 6억 5천만 ~8억 5천만 배럴 규모의 석유 개발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2천만톤의 천연 가스와 우라늄 개발 사업 등 의 성과를 거줬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으로 카자흐스탄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져가기만 하는 이 때....카자흐스탄에서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2004년 9월 13일…우리가 살았던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남쪽으로 200 Km 정도 떨어진 카라간다 에서 기독교 침례회 소속의 김진희 선교사(남편과 함께 파송)가 피살된 것입니다.

병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 뉴스를 처음 듣는 순간 온 몸이 얼음장처럼 싸늘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 안팎의 소음으로 잘 들리지 않는 라디오 방송이었지만 한국인 여성 선교사가 카자흐스탄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은 정확하게 제 귀에 전달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섬찟했던지..

지난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분리 독립된 이후 지금까지 13년…수 많은 사람이 카자흐스탄을 오갔지만 현지에서 한국인이 피살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것도 선교사님이 살해되셨다는 소식에 한 동안 멍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뉴스를 들었던 당시엔 정확하게 어느 단체 소속의 선교사님이 변을 당하셨는지 알지 못해 혹시나 우리가 알고 있는 분의 사모님이 아니신가 적잖게 걱정을 했었습니다. 카라간다는 한국인 선교사가 많은 지역이 아니어서 그 곳에 계시는 선교사님들은 거의 우리가 들어 알고 있거나 뵌 적이 있는 분들이어서 걱정은 더했습니다. 카라간다에는 저희가 있을 때만 해도 지구촌 교회 파송의 기독교 침례회 소속의 선교사님들과 예장 고신측의 선교사님들이 주로 사역을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진: 2003년 봄, 카라간다를 방문해서 저녁 무렵에 찍은 사진입니다.)

카라간다는 몇 년 전만 해도 카자흐스탄에서 알마티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카라간다 는 비교적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편인데 CIS 권에서 가장 강력한 현지인 개신교회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는 은혜 교회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은혜 교회는 미국의 한인교회인 은혜교회가 모스크바에 세운 은혜 신학교 출신들이 사역하고 있는 교회들로 알마티, 아스타나 같은  대도시는 물론 바라보예 같은 작은 마을까지 파고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카자흐스탄 어디를 가더라도 은혜교회와 새생명 교회 같은 현지인 교회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카자흐인이 담임을 맡고 있지만  카라간다 은혜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이었고 지금도 알마티 은혜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한국인입니다.

카라간다에서 선교사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틀 뒤... 더욱 더 충격적인 소식이 카자흐스탄에서 날아 왔습니다. 거의 모든 일간지와 인터넷 뉴스 매체에 다음과 같은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지난 13일 한국인 여성 선교사가 살해된 데 이어 15일 또 다른 한국인이 피살된 채 발견됐다.

외교통상부는 15일 저녁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1000㎞ 떨어진 카라간다 지역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쳐오던 KOICA(한국국제협력단) 소속 봉사단원인 설모(30)씨가 자신의 집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고려인협회 소속 교민에 의해 발견됐다고 16일 밝혔다. 설씨의 시신이 발견 당시 어느 정도 부패되어 있는 점으로 미뤄 살해된지 며칠이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주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은 영사 1명을 현장에 파견, 같은 지역에서 이틀 사이에 한국인이 잇따라 피살된 데 대해 철저히 수사해 조속한 시일내에 범인을 검거해 줄 것을 현지 수사당국에 강력히 요청해 놓은 상태다.

전담반을 구성해 수사 중인 현지 경찰은 선교사 피살사건 용의자를 붙잡아 조사 중이며,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아 소식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KOICA(국제협력단) 파견 국제협력의사로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던 우리 가족으로선 카자흐스탄에서 지내는 내내 '선교'와 'KOICA' 라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여 왔었습니다. 그러기에 선교사의 죽음에 이어 KOICA 봉사 단원마저 피살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KOICA는 카자흐스탄의 정부의 요청을 받아 매년 많은 봉사단원들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저처럼 국제협력의사로 온 사람들도 있지만 주로 10명 남짓의 봉사단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어, 컴퓨터, 태권도, 특수교육, 국악,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고 2년간의 임기 동안 카자흐스탄의 각 기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조국과 카자흐스탄을 위해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저 역시 KOICA 소속의 협력의사이기에 봉사단원들과 늘 가족처럼 지냈고 이번에 피살되었다고 뉴스에 나온 “설모” 단원 역시 우리 가정과 가깝게 지내덨 한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2003년 3월 KOICA 현지평가대회 때의 모습입니다. 카자흐스탄에 파견된 KOICA  소속의 모든 봉사단원들은 이렇게 6개월에 한 번씩 알마티에서 만나 그 동안의 근황을 주고 받고 활동상황을 나눕니다. 이 때 건강 검진도 반드시 받도록 되어 있지요.

왼쪽은 알마티 한국어 교육원이고 오른쪽은 알마티의 한 한국 식당입니다. 이렇게 평가대회 때마다 만나 KOICA 소속으로 국가의 명예를 걸고 타국에서 봉사한다는 자부심으로 서로를 격려하곤 했었습니다.

 

“설모” 단원은 카라간다에 한국어 교사로 파견되었던 '설동진 단원'입니다. 설동진 단원은 군복무를 대신하여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된 협력봉사 단원이었습니다. 만 30세의 나이가 말해 주듯... 늦게 KOICA에 지원한 그에게는 아내도 있고 아이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KOICA에 지원할 때부터 우리 홈페이지를 통해 카자흐스탄 상황에 대해 여러번 물어 왔었고 파견 후에도 우리가 살던 아스타나와 가까운 카라간다로 임지가 결정되는 바람에 가깝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시원스러운 외모에 부침성 있는 성격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설 단원으로 좋아했었죠.

2003년 현지 평가대회때는 알마티 침불락 스키장에서 체력 단련 행사를 가졌었습니다.

침불락 스키장에 있는 한 식당에서 KOICA 봉사단원이 모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교제하던 장면입니다.

사진에 설동진 단원의 모습이 비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인이 사는 곳은 거의 100% 알마티 입니다. 알마티에는 한국인 슈퍼, 한국인 미장원, 한국인 비디오 대여, 한국인 PC방…한국인이 살기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곳입니다. 배추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고 된장, 고추장, 라면 같은 것도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곳입니다. 마치 미국의 LA처럼...'작은 서울'로 불리는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았던 '아스타나'나 '카라간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스타나의 한국인 숫자는고작 20여명 남짓일 뿐이고 카라간다의 경우는 10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을 위한 시설들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카라간다의 경우 피살당한 설동진 단원과 나머지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선교사들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외국 생활을 하며 봉사 활동을 펼쳤던 설동진 단원이 현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다는 사실은 정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작년 봄…아스타나를 방문했던 설 단원과 함께 아스타나의 한 중국집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식사도 했고 제 차에 함께 타고 아스타나의 이모저모를 구경시켜 주기도 했던 그이기에 그의 죽음은 가족의 죽음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볼링장을 갔을 때의 모습입니다.

제 모습과 설동진 단원의 모습이 보입니다. 설 단원 옆에 서 있는 자매는 한국인이라고 아무도 없는 '끄질오르다'에서 1년간 혼자 한국어 교사로 봉사했던 강선미 단원입니다.

우리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설동진 단원은 한 달 만 있으면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다"는 점과  6개월 전에 "근무 연장 신청을 하는 바람에 6개월 더 카자흐스탄에 머물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동기들이 모두 귀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연장 신청을 해 가며 카자흐스탄에 남아 있었다가 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라크 김선일 형제의 피살 사건은 선교 활동이나 이라크 파병이라는 현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KOICA 봉사 단원으로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던 설동진 단원의 죽음은 조국과 그가 사랑했던 국가 카자흐스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친 거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지 경찰은 카라간다에서 연 이틀 동안 한국인이 살해당한 이 사실을 두고 두 사건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식당의 종업원이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밝혀질지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건이 개신교에 대한 공격이나 종교간의 갈등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설동진 단원은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었고 카라간다의 분위기로 볼 때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공격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습니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은 통상 북쪽으로 갈수록 카자흐인이 적고 러시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 편이라 이슬람보다는 정교회의 색채가 강한 편입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제가 보기엔 외국인을 상대로 계획된 범죄라고 보는 게 더 맞아 보입니다. 카라간다에는 외국인이 아주 적게 살기 때문에 선교나 봉사 활동을 위해 들어온 한국인은 금방 눈에 띄고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특히 한국의 이미지가 잘 사는 나라로 부각되고 있는 이곳에서는 그의 집에 들어 가면 뭔가 돈이 될만한 물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쉬울 것입니다.

우리 가족 역시 카자흐스탄에서 살 때 집 앞에 세워둔 차 유리창이 깨어지기도 하고 새벽녘에 이유없이 초인종이 울리기도 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치안 상황은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정도 좋지 않은 것으로 외국인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진실은 아직 아무에게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이틀 간격으로 일어난 한국인 여선교사의 죽음과 KOICA 봉사단원의 죽음은 카자흐스탄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우리 맘을 더욱 답답하고 아프게 만들기만 합니다.

이 사건을 접한 선화는 아주 놀라고 무서워했습니다. 3년 가까이 카자흐스탄에서 살면서 우리 가족 역시 치안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하고 살았었습니다. "어느 선교사님 집에 강도가 들었다더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으며 두려워 하기도 했었지만…정작 우린 문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아 낮에는 대문을 잠그지 않았습니다. 이곳 사람들조차도 한 낮에도 이중문에다 철제문으로 보안에 신경쓰고 있는데 비해 우린 너무 편하게 살다 돌아온 것 같습니다.

가끔씩 방문객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서 “어…이거 큰일 날 집이네…왜 문을 안 잠궈요?” 라고 걱정해 주기도 했지만 정작 우린 문을 잠그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었을까요?

'그렇게 살았던 카자흐스탄에서 강도로 인해 선교사와 KOICA 단원이 죽임을 당했다니...'

(사진 설명)

카자흐스탄에서 우리가 처음 살았던 동네인 알마티 사말 2 에서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한여름에도 녹지 않은 만년설이 천산산맥의 지붕을 눈부시게 빛내고 있는 곳이죠.

돌이켜 보면...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가족을 그 곳에서 지켜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가족은 카자흐스탄을 품고 있습니다. 향후 장단기적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의료 선교활동을 펼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없었던 살인사건으로 인해 선화의 맘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설동진 단원과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KOICA 봉사 활동을 펼쳐던 김영우 단원으로부터 어제 설동진 단원의 시신이 한국으로 들어 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2004년 9월 22일 아침 7시 10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인도되었고 현재 서울 삼성 병원에 빈소가 마련되어 안치되었으며 발인은 9월 24일 금요일 오전 8시 라고 합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김선일 씨의 죽음에는 온 국민들이 지대한 관심을 보여 줬음에도 이번 설동진 단원의 죽음에 대해선 많은 메스컴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의 소속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산하 국제협력단이었습니다. 의롭게 펼치고 있는 봉사 사업이 위축을 받지 않을까 싶어 조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그의 의로운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조의를 표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지난 2주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들려 온 소식은 너무나도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노대통령의 방문 소식으로 향후 한국과 카자흐스탄 간에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로 향하는 직항로가 생길 날도 멀지 않았다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잇달아 들려 온 선교사와 봉사단원의 죽음은 목숨을 걸지 않고선 나갈 수 없는 것이 선교지 카자흐스탄임을 웅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땀 흘리고 기도하고 있을 많은 카자흐스탄 선교사들을 떠 올려 봅니다. 그들이 그 곳으로 가게 된 경위와 배경은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의 공통점은 모든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며 카자흐스탄의 여러 민족을 위해 헌신, 희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두움은 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법…이번 사건으로 카자흐스탄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맘은 더욱 닫힐지 모르겠지만...그 나라를 향해 기도하며 걱정하는 우리의 맘은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연민으로 더욱 넘쳐날 거라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불의에 대해선 떨쳐 일어나려 했던 고 설동진 단원의 죽음에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합니다. 홀로 된 사모님과 자녀를 생각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부디 그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카자흐스탄으로 향하게 만드는 밀알로 쓰여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설동진 단원은 갔지만...그에 대한 기억은 우리 맘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