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수 사건 ( 2004년 여름 휴가 )

그렇게도 기다리던 여름 휴가가 시작되었습니다. 1년에 단 한 번 뿐인 휴가...그것도 올해처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면 절실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8월 16일부터 22일(7일간)까지 주어지는 휴가 기간 동안 중 가장 중요한 스케줄은 온 가족이 함께 1주일 내내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루 종일...

지난 7월 30일부터 한국에 들어 와 우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세르게이는 8월 23일 오후,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 갑니다. 휴가는 세르게이가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에 맞춰진 것입니다.

지금...너무 편안합니다. 태풍 메기가 오늘 밤 울산 인근을 스친다는 소식과 함께 창 밖에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지만 지난 한 달간 계속되던 더위 생각을 하면 얼마나 시원한 밤인지... 올림픽 중계를 여유 있게 보며 무더위 없이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가을의 문턱에서의 휴가는 대성공입니다.

휴가의 시작인 지난 8월 26(월)-27(화) 1박 2일 동안 세르게이와 우리 가족 모두는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방문했습니다.(셋째 성은이는 장모님께 맡기고 떠났습니다.) 세르게이에게 한국의 문화 유산을 보여 준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경주 만큼 온 가족이 편하게 가서 쉬다 올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주 여행을 스케치 합니다.

1) 수학 여행인가?...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특징은 말그대로 공부하는 여행이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인과 고려인의 피가 섞인 세르게이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난 주 구정아 선생님의 초대로 서울 경복궁을 방문하는 등 조선의 역사에 대해선 좀 알게 됐지만 한국의 역사에 대해선 여전히 감감합니다.

왼쪽 사진에서 보는 대로 여행 내내 세르게이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야 했습니다.

위 사진은 안압지에서 찍은 것인데 삼국시대-->고려-->조선-->대한제국-->(일제치하)-->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알려 주느라 애써는 모습입니다. 관광 가이드도 아니고 그것도 러시아어로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부지런히 주머니 속에 있는 러시아어 사전을 찾아 가며 기원 전후에 세워진 고구려, 신라, 백제에 대한 얘기해야 했지요.

카자흐스탄의 역사는 짧습니다. 카자흐 민족이 형성된 게 15세기 경에 와서니까요...천년간 지속된 신라 문화를 얘기하면서 제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우리 역사를 알리는 일을 하려면 먼저 제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법...이미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연도를 더듬으며 우리가 얼마나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지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모세나 사도 바울도 얼마나 자기 민족을 사랑했습니까? 자신의 민족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자신의 구원도 포기할 수 있다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안 그래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온 국민의 심기가 날카로워져 있는 때인지라 대륙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수천년간 지켜 내려온 우리 역사를 바로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Korea가 고려에서 기원했음을...신라가 얼마나 오랫 동안 지속된 국가인지를 얘기해 주었습니다. 세르게이에게는 한국이 단일 민족 국가란 사실이 무척 신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르게이가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120여개 민족이 아무런 차별 없이 어울려 살고 있는 곳이고 세르게이 역시... 아버지는 고려인, 어머니는 러시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1박 2일 내내...신라, 조선,고려,일제 시대를 오가며 세르게이에게 한국사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세르게이가 배운 건 한국사 뿐만이 아닙니다. 난생 처음 쌀을 만들어 낸다는 (?) 벼를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2) 그들에겐 새로운 세상

이번 여행의 또 다른 포인트는 엄마, 아빠를 따라 나선 형민이와 시은입니다 .얘들은 지난 몇 개월간 엄마, 아빠랑 함께 하는 여행을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형민이는 열심히 어린이집을 다녔고 시은이는 대소변 가리기를 막 끝내고 여름 내내 무더위와 싸우고 있던 중이었죠.

그러던 중...이게 웬걸...하루종일 엄마, 아빠랑 푸른 잔디밭을 뛰어 다니며 넓은 세상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무더위가 다 가 버린 여름의 끝자락에서...

이번 여행 내내 감사했던 건 '날씨'였습니다. 하긴...8월 15일이 지나면 제 아무리 찌는 무더위라 하더라도 한 풀 꺽이기 마련이지만 사상 초유의 더위를 경험한 우리로선 행여나 그런 용광로 더위속에서 유적지를 돌아 다녀야 하는 건 아닌지...적잖게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행 첫 날(16일) 날씨는 하루 종일 구름이 잔뜩 낀데다 바람까지 불어 유적지 답사에 더없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둘쨋 날은 맑았지만 북상하는 태풍 영향으로 시원했고 저녁부터는 비를 뿌리기 시작했지요.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선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소리죠. )

자동차 걱정 없이 넓은 공간을 뛰어 다닐 수 있는 경주 유적지야말로 아이들의 놀이터로는 최적지입니다. 유달리 어린이 관광객이 많은 경주의 넓은 들판에서 시은이와 형민이는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며 뛰어 다녔습니다.

경주는 우리 나라의 모든 초등학생들이 꼭 한 번은 방문하는 곳입니다. 만일 서울이나 강원도에 살고 있는 학생이라면 고등학교 수학 여행 때도 방문하게 될지 모르는 곳이죠.

제주, 설악, 경주 이런 곳은 우릴 실망시키지 않는 곳입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고 새로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화와 저는 결혼 전에도 경주에 온 적이 있고 결혼 후에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번 처럼 경주에서 1박을 하면서까지 지낸 적은 딱 한 번 뿐입니다. 물론 그 때는 단 둘이었죠.

그런데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비록 성은이를 데리고 오진 못했지만...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경주에 와 보니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더 풍성하고 더 여유있고...경주에 남아 있는 유적 하나 하나가 마치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 보는 것처럼 참신하고 새롭게 다가 왔습니다. 다시 5살 아이로 돌아간 걸까요? 세 아이를 데리고 사는 우리의 눈은 이미 아이들의 눈높이로 맞추어져 있나 봅니다.

여행 내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느껴졌습니다. 첨성대가 뭔지... 천마총이 뭔지...알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이 때의 추억만큼은 몇 장의 사진들과 함께 아이들의 가슴 한 쪽에 자리 잡게 되겠지요.

2004년 여름의 경주는 분명 아이들에겐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3) 가족과 함께

이제 만 7개월이 된 셋째 성은이가 따라 나서진 못했지만 온 가족이 다른 지방으로 가서 1박까지 하고 돌아온 것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사진: 언제 와도 정다운 불국사) 게다가 늘 바쁘기만 한 제가 휴가를 맞아 집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본 선화의 맘도 편해지나 봅니다. 회전의자에 앉아 시은이를 무릎에 앉히고 빙빙 돌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빠의 원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애요. 우리... 늘 이렇게 계속 지냈었잖아요..."

2년 6개월 동안의 카자흐스탄 생활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짧은 인생길에서 가족들을 팽개치면서까지 다른 일에 쫒기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특히 그토록 바쁜 삶의 원인이 좀 더 잘 먹고, 잘 입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가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바쁜 삶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주신 비젼을 성취함에 있기에 온 가족이 이 어려운 시기를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삶, 그것도 30대 가장의 삶은 이렇게 바쁘고 쫒길 수밖에 없나 봅니다.

(사진: 석굴암으로 가는 길에서) 일전에도 말했듯이 올 2004년은 제게 있어서 '배우는 기간'입니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은 꿈 많은 아버지로서...부산대학병원 생활은 힘들기만 합니다. 늘 모셔야 하는 교수님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편하지 않고 무엇보다 교회 일이나 가족 일을 제쳐 두고 병원 일에만 매달리는 것 자체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올해만 견디면(?) '소화기 분과 전문의'의 과정에 필요한 부산대학병원에서의 과정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겁니다.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나 만의 길을 걸어갈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이 시작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년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사진: 석굴암 앞에서) 이번 여행의 일정은 첫 날 안압지, 대릉원, 천마총, 첨성대, 보문단지 등을 둘러 봤고 둘쨋 날에는 불국사, 석굴암, 국립박물관, 보문단지를 방문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석굴암이 가장 좋았습니다. 물론 석굴암 속에 앉아 있는 돌로 만들어진 형상이 좋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 선조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유산 역시 가치 있겠지만 석굴암까지 걸어 들어가는 오솔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세르게이도 석굴암으로 향하는 이 오솔길이 좋다고 야단입니다. 석굴암이 산 위에 지어져 있다 보니 가는 내내 시원한 골바람도 불었고 길가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 숲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지요.

 

 4) 감로수 사건

석굴암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석굴암으로 오르는 입구에 있는 감로수 라 불리는 시원한 약수에 얽힌 일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얼음장 같이 찬 샘물이 바로 감로수입니다. 세르게이에겐 국토의 70%가 산이다 보니 한국은 이렇게 땅 밑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이 솟아난다고 떠들었습니다.

둘쨋 날은 무척 맑은 날씨였는지라 오랫동안 걸어야 했던 우리에겐 감로수의 존재는 말 그대로 감로수로 받아 들여 졌습니다. 모두들 달려가 주걱으로 물을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야...시원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음료용으로 만들어진 감로수 옆에는 물이 잘 고이도록 만들어진 손 씻는 곳도 있었습니다. 물론 감로수와 같은 원료(?)의 물이 흐르고 있었지요.

이를 본 아이들은 떠날 생각도 잊은 채 바로 그 곳에 달라 붙어 거의 목욕을 했습니다. 얼굴도 씻고 목도 씻고 머리에 물도 뿌리고..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물에 푹 빠져 들었습니다. 온 몸이 물로 흠뻑 젖었지만 그래도 즐겁기만 한 감로수였습니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실컷 물을 마시고 가져 간 음료수 병에 가득 담았습니다.

세르게이 눈에 비친 감로수의 존재는 그야말로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산이라곤 거의 없는 카자흐스탄에서 나오는 모든 샘물은 소금과 염분이 가득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수돗물도 음료로 적당치 않아 카자흐 인들마저도 물을 사 먹는 추세지요. 우리가 살던 아스타나에서도 땅에서 배여 나오 소금기로 인해 온 땅이 하얗게 소금으로 덮여 버린 지역도 있습니다. 아주 옛날에는 중앙 아시아 일대는 바다였던 모양입니다. 어쨋든 마음껏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감로수의 존재는 금수강산의 의미를 수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5) 박물관의 쓰라린 추억

사실 아이들에게 박물관만큼 따분한 곳도 없습니다. 작년 10월 우린 형민이와 시은이를 데리고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상뻬쩨르부르그 에는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궁전들과 유적이 많은데 그 중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에르미따쥬 박물관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수백년 간 러시아 황실에서 수집한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와 같은 명작들이 하루 종일 돌아 다녀도 볼 수 없을 만큼 많이 전시된 곳이지요. 하지만 형민이의 평은 단 한 마디였습니다. "재미없다...."

형민이의 눈에는 왜 하루 종일 이 넓은 복도를 헤매고 다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경주 방문을 앞두고는 내심 염려가 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바로 경주 국립 박물관 때문이죠.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로 박물관에 도착했지만 월요일은 정기 휴관이라는 말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고 둘쨋날 맨 마지막 코스로 박물관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역시 역사 공부하는데는 박물관이 최고입니다. 첫 번째 전시관 벽에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총천연색 도표가 걸려 있어 세르게이에게 알려 주기 무척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습니다. 형민이는 그렇게 지겨워하는 박물관에 들어왔음에도 세르게이 삼촌이 들여다 보는 금관이나 돌기구들을 따라 다니며 보는 척 했지만...시은이야말로 도저히 그 분위기를 견딜 수 없나 봅니다. "무섭다..."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그래도 경주 국립 박물관이 에르미타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은 규모이기에 빨리 박물관을 빠져 나올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위 사진처럼 박물관에서 형민이가 가장 맘에 들어 했던 때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탁자에 앉아 마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시실 안에선 고전해야 했지만 건물 밖에선 박물관도 괜찮은 놀이터였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시은이는 내내 우산을 끌고 다녔는데 다른 사람에게 절대 내 주지 않고 저 혼자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마치 형민이가 지금의 시은이만할 때(1년 7개월) 터어키 여행 내내 그랬던 것과 똑같은 행동이었습니다. 남매는 그런 것도 닮나 봅니다.

시은이는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알아 듣습니다. 물론 100%는 아니겠지만 거의 100% 다 알아듣는 것 처럼 행동합니다. 시은이가 현재 할 수 있는 말은 "우유","물","꼬까야(꼬끼오 하는 닭을 일컫는 말)", " 삼촌", "할아버지","무서워(무서운 것 뿐만 아니라 이상한 것을 봤을 때 하는 말)", "할머니", "내려(내려 가고 싶어요). "올라(올라가고 싶어요)","안돼요(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의자(의자에 올려 달라는 말)"," 시계"," 예명 어린이 집(오빠가 타고 다니는 노란 어린이 집 버스를 보면 하는 말..요즘은 모든 노란색 버스를 일컫는 말입니다.)"," 예", " 아니요","김치(엄청 좋아합니다)","아가야(동생 성은이를 부르는 말)","매미(올 여름에 배운 말)" 등입니다. 이런 말들은 항상 구사할 수 있는 말이고 이 외에도 상황에 맞게 상대방의 발음을 흉내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합니다. 아마 머리 속에는 온갖 게 다 들어 있나 봅니다. 어떤 경우엔 아빠나 엄마 손을 끌고 가서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집어 내게 하지요.

여행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훌쩍 자란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서도 형민이와 시은이가 부쩍 자란 것 같습니다.

왼쪽 사진은 경주 국립 박물관 뜰에 전시되어 있는 성덕대왕 신종(일명,에밀레 종)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시은이의 모습입니다. 이제 아기 티를 벗고 언니가 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쓰라린 추억을 안겨 준 박물관이긴 하지만 경주 박물관은 아이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겼습니다. 박물관이 꼭 따분한 장소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죠. 박물관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기억력이 좋은데요...

 

6) 한 밤의 질주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면 뭐니뭐니해도 보문호수변에서의 전동차 타기 일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으로 가기 전, 그러니까 적어도 4년 전엔 보문호 주변에 이런 놀이 기구가 없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호숫가 배 타는 곳 바로 옆에 아이들이 타고 놀 수 있는 전동 자동차를 대여하는 상점들이 들어 서 있었습니다. 말이 장난감이지 차나 별 차이가 없어 엑셀레이터를 눌러야 가고 전진, 후진 기어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보문호 주변에 도착했을 때 많은 아이들이 큰 소리를 내는 전동차를 타고 이리 저리 달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형민이는 이 모습에 약간 겁 먹은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바로 자동차를 타고 싶어 했습니다. 내친 김에 시은이 자동차까지 빌렸지요. 아빠가 뒤에서 밀어줘야 하는 거지만...

첫날과 둘쨋 날...그러니까 이틀 동안 저녁 시간에는 보문호 주변에서 바로 이 전동차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쌩쌩 달리는 전동차를 몰던 형민이의 얼굴에는 사뭇 진지함과 즐거움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첫날 저녁, 형민이와 시은이의 차

시은이는 이렇게 아빠가 뒤에서 밀어 줘야 합니다.

둘쨋 날, 형민이는 좀 더 빠른 차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달렸지요.

우린 전동 자전거를 빌렸고 사진처럼 선화도 쌩쌩 달렸습니다.

 첫째 날은 캄캄할 때까지...둘쨋 날은 비가 올 때까지 전동차를 타고 달려습니다. 세르게이도 전동 자전거를 타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지요. 경주는 이런 면에서도 가족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보문호에서 배 타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이렇게 우리의 경주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1박 2일의 기간 동안 온 가족이 다시 하나로 똘똘 뭉치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세르게이도 한국의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죠.

계절은 가을로 달려 가고 있습니다.

온 가족과 함께 했던 여름날의 즐거운 추억을 가슴에 안고 있기에 다시 일상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1박 2일의 여행 내내...그리고 돌아오는 빗길 속에서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