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대만

2004년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대만(타이완)의 동부 지역인 '화련' 이라는 곳에서 대한 간학회가 주관하고 GSK(제약회사)가 후원하는 제 2회 B형 간염 아카데미에 참석하고 돌아 왔습니다. 이 학술대회는 B형 간염이 호발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젊은 의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 최근 연구 결과들을 포함한 B형 간염에 대한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하는 훌륭한 프로그램이고 작년 서울에서 1회 대회를 개최한 뒤 이어 대만에서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한국 뿐 아니라 대만, 싱가폴, 베트남 등...다른 국가에서도 많은 의사들이 참석했더군요.

 

지금까지 카자흐스탄, 터어키, 러시아 등지로 나갈 때마다 늘 선화와 아이들이 동행했었던 저로선 이번 여행은 그리 즐겁지도 편하지도 않은 출국길이었습니다. 이국에서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장소를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아이들을 세워 두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저로선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팥 없는 찐빵' 이었습니다. 나 혼자 무슨 재미로 여행을 하나?

하지만 7월 22일 아침 8시 10분에 출발하는 cathay  Pacific(홍콩 항공) 편으로 인천 공항을 출발했고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홍콩 항공은 홍콩<-->대만<-->인천을 왕래하며 운항하는 모양인데 그 때문에 KAL보다는 항공 운임이 저렴해 보였습니다.

대만은 왼쪽 지도처럼 고구마 같이 생겼습니다. 면적은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하는데 타이완 섬과 기타 9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입니다. 외화 보유고가 가장 많은 나라이자 한국, 싱가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4마리 용)으로 불리던 곳이죠.

이번에 세미나가 열리는 곳은 대만의 동해안에 위치한 '화련' 이라는 지역인데 해안 절벽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병원 일과 세르게이 초청 건 등으로 많이 바쁘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하지 않게 공부만 하면서 휴식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주어진 셈입니다.

대만에서의 일은 길게 적을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3박 4일 중 2일은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계속되는 세미나에 참석하며 공부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야 1박 2일 정도 화련과 타이뻬이의 몇몇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사진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대만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시간 15분 정도였습니다. 대만은 썸머 타임을 실시하고 있고 한국보다 1시간 늦습니다.(-1) 기온은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데 연평균 기온이 23.6도로 일년 내내 따뜻한 편입니다. 십도 대로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높은 습도 탓에 한국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행기가 도착한 곳은 타이뻬이 시의 국제공항이었습니다. 아마 장개석 국제공항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자 말자 전세버스 편에 올라 이동해야 했는데 점심 식사를 위해 타이뻬이 시의 한 호텔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점심 식사를 일찍 마친 몇몇 사람은 호텔을 빠져 나와 집결 시간이 될 때까지 시가지를 둘러 보았는데...저도 그 무리에 속해 있었습니다. 타이뻬이시의 첫 인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심가는 한국의 도심처럼 화려하고 높은 현대식 건물로 가득차 있었고 외식업체 "FRAIDAY"도 들어와 있는 등 영판 서울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녹지 공간이 우리보다 많다는 점은 부러웠는데 울창한 나무들이 넓은 도로에 완충 지대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낡은 건물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벌써 재개발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 건물들이 도시의 상당 부분을 버젓이 차지하고 있었고 대도시 속에 살다 온 우리 눈에는 이런 면들이 약간은 초라하고 울적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대만 사람들은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해서 치장을 하거나 화려하게 폼을 잡지 않는다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돈 있는 티를 내지 않는다고...

길 건너편에 10층은 되어 보이는 큰 병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 병원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직업 의식의 발동인 셈이죠. 아래 왼쪽 사진은 그 병원의 외래 접수 창구이고 오른쪽 사진은 병동에서 간호사가 근무하는 곳(station)입니다. 아주 깔끔하고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대만의 의료 수준은 높습니다. 간염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으로 간염에 관한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대만입니다. 부끄럽게도 우린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죠. 물론 대만의 B형 간염 유병율이 우리보다 높긴 하지만 대만에 비해 B형 간염 환자 수가 훨씬 많은 우리 나라 입장에선 반성할 부분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아시아-태평양 B형 간염 치료 가이드 라인' 개정때에도 한국인 의사는 아무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분발이 요구됩니다.

타이뻬이 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도 눈에 많이 들어 왔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선 세계 모든 나라의 차들의 집합소를 보는 것 같았었는데 이곳은 일본 차의 천국이었습니다. 도요다가 가장 많았고 혼다,미쓰비찌,닛산,마즈다 등...일본 차들이 주종을 이뤘습니다. 간혹 벤쯔나 BMW가 보였고 한국 차로는 마티즈가 눈에 띄더군요.

군복무를 이제 마친 전임의 1년차 선생님들이 많이 참석하신 탓에 일행 중에는 외국행이 처음인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년 6개월이나 타국 생활을 했던 저로선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고 체류 일정 내내 평상시의 눈으로 그 곳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도 다른 동남아 국가들처럼 오토바이를 이용해 출퇴근을 많이 하는 모양인데 노란색의 택시와 줄지어 서 있은 오토바이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되자 우린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타이뻬이 시의 국내 공항을 이용해 화련으로 이동했습니다. 비행 시간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탑승 수속을 하고 이동하느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자 우리가 묵게 될 Bellevista hotel이 나타났습니다. 이 호텔은 대만에서도 최고급 호텔로 알려져 있는데 타이뻬이에는 주로 사업상 드나드는 사람을 위한 비즈니스 개념의 호텔만 있는데 반해 화련에는 이런 호화 호텔이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대만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가게 되면 바로 여기 화련으로 온다고 하는데 이번에 학회를 화련에서 열게 된 것도 타이뻬이에는 200명이 동시에 들어갈 공간을 가진 호텔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비해 화련에는 이런 호텔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이 호텔의 로비에서는 바다로 향한 유리를 통해 태평양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낮에는 강의를 듣느라 좀처럼 호텔 주변 경치를 촬영할 수 없었고 첫째 날 강의를 마친 뒤 해가 질 무렵이 되서야 밖으로 나와 몇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호텔은 2인 1실이었는데 TWIN이어서 두 사람 모두에게 별로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동아대병원의 이동현 선생님과 같은 방을 썼는데 이동현 선생님은 부산대 출신이고 작년까지 부산대병원에 있었던 터라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B형 간염 아카데미의 주 강사진은 대만과 한국 그리고 GSK 관련 의사들이 맡았는데...지난 3년간 한국 의료 현장에서 떠나 있던 저로선 이번 기회가 B형 간염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세미나가 개최되는 동안에도 한국은 여전히 불가마 속에 있었습니다. 선화는 아이들을 데리고 이 불더위를 피해 물가가 가까운 처가에 가 있었는데 에어컨이 시원하다 못해 추워 잠바까지 입고 강의를 들었던 저로선 무더위 속에 남겨 둔 가족들이 맘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 함께 왔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하지만 막상 이곳에 와 보니...이번 세미나는 가족을 데리고 오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공부만 했으니까요...

첫째날 밤에는 선화가 챙겨준 수영복을 입고 호텔 실내 수영장으로 가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귀찮은 맘이 들어 단념하고 방에 들어 왔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방 안에만 틀어 박혀 있다가 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다시 수영복을 챙겨 조명이 아름다운 야외 수영장 옆에 세워진 실내 수영장으로 들어 가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수영한 것 까진 좋았는데 몇가지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수영장에는 저처럼 삼각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혹시 나중에 대만에서 수영하실 분 있으시면 트렁크 방식의 수영복을 준비하세요. 물론 동네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화련에 있는 동안 또 한가지 느낀 것은 대만 원주민에 관한 것입니다. 저녁 만찬 때 소개되는 민속 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본토에서 내려온 한족들에 의해 영토를 잃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만섬의 원주민들은 생김새나 풍습이 동남 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특히 화련은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 부족의 근거지라고 합니다. 호텔에서 서비스하는 종업원들의 생김새도 까무잡잡한 얼굴에 키가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친 날 오후... 관광이 시작되었습니다. 화련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태로각 협곡입니다.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명승지이기도 한 이곳은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강의 침식 작용에 의해 깎이고 깎여 좁은 협곡을 이루고 있는 곳입니다. 19Km 정도의 협곡을 따라 개설된 도로가 더 압권입니다. (사진은 태로각 협곡의 입구입니다.)

장개석 총통의 지시로 이 도로를 만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지진과 산사태로 공사 중에 목숨을 잃었다고 하던데... 정말 아찔아찔하게 절벽을 따라 돌고 도는 편도 1차선의 도로가 더위를 싹 가시게 만들어 줬습니다. 계곡물은 석회질 때문에 마치 레미콘 차량을 씻을 때 나오는 회색 물 같았습니다.

정상적으로는 도로를 개설하기 어려운 협곡인데다 산사태로 위험한 이곳에 이런 도로를 개설한 것은 군사 목적 때문입니다. 중국 대륙의 직접적인 공격에도 안전한 공군 기지를 만들기 위해선 대륙의 반대편인 섬의 동쪽에 군사 시설을 두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장개석은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국력을 집중시켜 이런 도로를 닦은 것입니다.

화련 공항은 수도인 타이뻬이 공항보다 훨씬 화려하고 깔끔했습니다. 바로 그 화련 공항이 군사 공항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서 많은 군부대들을 보았는데 연병장에서 많은 병사들이 구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군데 군데 국군 병원들도 보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대만은 우리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해야겠지요.

버스 안에서 가이드 아저씨가 설명해 주는 대만에 관한 얘기들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대만에서 '대장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도 그 때 들었고 대만의 가정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며 함께 모여 식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식탁을 차리더라도 마치 뷔페식처럼 자기가 먹을 것만 떠 가지고 가서 거실이나 자기 방에서 먹는다고 하더군요. 한국 드라마가 호평을 받는 이유 중에는 이미 대만에선 찾아보기 힘든 가족의 단란한 모습이 드라마에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태로각 협곡을 따라 가다가 한 군데에서 차를 정차하고 계곡물을 가까이 보기 위해 내려 가기도 했습니다. 대만에도 경치 좋은 곳에는 절이 있더군요. 대만의 종교는 가장 많은 게 도교입니다. 만물에 다 신이 깃들여 있다는 사상이죠. 그리고 불교.. 다음이 기독교입니다. 특히 대만 원주민들은 선교사의 활동으로 인해 거의 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열악한 그들의 생활을 돕고 교육시킨 사람들이 바로 선교사들이었던 것이죠.

태로각 협곡을 지나 다달은 곳은 구곡동 이었습니다. 이름을 생각한다면 아홉번 꺾여 돌아가는 골짜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아홉이란 숫자는 그저 많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화련에서는 이 구곡동이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이 곳에서의 느낌은 도무지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암벽 중턱에는 원주민들이 물물 교환을 위해 왕래했다는 실낱같은 길이 보이고 수백 미터 아래에서 흐르고 있는 계곡물에는 수십미터 높이의 대리석 기둥이 우람하게 서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여기 저기에서 폭포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이 곳은 화산 지대에 높인 대만섬의 살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구곡동을 끝으로 화련 관광을 마친 우리는 다시 화련 공항으로 가서 타이뻬이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타이뻬이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늘 중국집에 갑니다.) Gloria Prince Hotel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타이페이 시는 대만 북부에 위치하고 있고 대만 정치, 경제, 문화, 금융의 중심지이며 현대화된 국제 도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263만명인데 공해가 심한 편이라 마스크를 하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야시장이 발달되어 있어 밤이 되면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타이뻬이 시내 관광에 들어 갔습니다. 가장 처음 들린 곳은 사진(위)에서 보이는 중정기념당 입니다. 타이페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인 이곳은 대만의 영웅 장개석을 위한 기념물입니다. 조경이 잘 된 광대한 정원 위에 서 있는 거대한 대리석 건물(사진)이 바로 기념관이고 우아한 정자와 연못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25톤의 장개석 총통 동상은 본관에서 시내를 바라보고 있으며 1층 전시실에는 사진과 총통의 생애에 관한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념당의 높이는 70m이며, 중화 문화의 풍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로 평가됩니다. 외부는 청색과 흰색 두 가지를 주로 하고 있는데 자유와 평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근처에는 국립극장과 콘서트 홀도 함께 위치하고 있습니다.

 

 

 

 

 

 

좌: 1937.9.24 남경. 장개석과 아내 송미령의 모습

우: 장개석이 읽던 성경책

장개석...저는 초등학교 시절 장개석 전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땐 그저 먼 나라의 사람일 뿐이었는데 이렇게 그의 사진들과 유품들을 직접 보고 나니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념관의 한 쪽 편에서 발견한 장개석이 읽던 성경책(위,우측)을 본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장개석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사실 장개석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좀 난폭한 데도 있고 정리가 안 된 면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가장 많이 도와 준 사람은 지금도 대만 사람들이 장개석보다도 존경한다는 세 번째 아내 송미령 여사입니다. 미국에서 자라 공부했던 그녀는 장개석과 결혼하기 위한 조건으로 앞서 결혼했던 두 여자와 이혼하는 것을 요구했고 자신이 믿고 있는 기독교를 믿도록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녀와의 결혼 이후 장개석은 죽을 때까지 기독교 신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영어를 잘 하는 송미령은 장개석의 통역으로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과시했고 미국 의회에서도 연설하는 등...많은 지원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송미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그녀의 사치라던가...손문의 아내로서 중공의 명예 주석에까지 올랐던 둘째 언니 송경령과 아울러 "인류 문명속에서 이탈리아의 보르지아家 이래로 이처럼 혼돈스롭고 엄청난 역할을 했던 가문은 없었다" 는 평을 받는 그녀의 가문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중정 기념관에서 장개석 부처의 사진들을 돌아 보며 내 삶은 어떠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그들이 내게 준 선물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사진에서 보듯이 근위병들이 장개석 총통의 동상 앞에서 근무 교대식을 요란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관광객들은 그저 이 모습 앞에서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죠. 하지만 날로 강대해져 가는 중국의 세력애 섬나라 대만의 운명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법이기에 중정 기념관에서 받은 느낌은 슬픈 것이었습니다.

장개석의 무덤은 없습니다. 중국 본토를 회복하고 난 뒤 그 곳에다 자신을 묻어 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들은 얘기로는 올 해 아니면 내년 쯤 장개석과 그 아들의 주검을 대만에 묻을 거라고 합니다. 국토 회복의 날은 멀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장개석의 하나 뿐인 아들의 아내(며느리)가 소련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하는데...냉전 시대를 살았을 그들에겐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고궁 박물관입니다. 타이뻬이 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8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곳은 4층의 중국 궁전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타이완 관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 곳은 중국 5,000년의 역사와 문화 예술의 집합체로 일컬어 지고 있는데 신석기 시대의 출토품에서부터 중국 역대 왕조의 보물 까지 세계적으로 가치가 인정된 문물들을 포함해 70만 점 가량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일반에게 전시 공개되고 있는 것은 약 12,000점 정도로 3~6개월마다 교체하여 전시할 정도로 많은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대만에 있는 동안 룸메이트로 지냈던 동아대병원의 이동현 선생님입니다. 이동현 선생님도 그리스도인입니다.

고궁 박물관은 말 그대로 대단한 박물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게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은나라 시대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문자가 새겨진 기구들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 기구의 벽면에는 한자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상형문자들이 빽빽히 적혀 있는데 5000년 전의 물건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나올 때 기념품 파는 곳에서 그 상형문자들을 무늬로 도안한 넥타이를 하나 사 가지고 나 왔습니다.

고궁 박물관에 온 사람들이 가장 신기해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왼쪽에 전시되고 있는 물건입니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옥은 왕만이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옥을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왼쪽은 배추 모양으로 다듬은 옥입니다. 원래 흰색과 초록색을 띈 하나의 옥을 공교하게 깎아서 이렇게 만들었는데 배추 애벌레까지 조각해 놓았습니다.

이것 말고도 명나라, 청나라 시대의 많은 예술품들과 전래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중국의 보물들이 모조리 여기에 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개석이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밀려 나오면서 중국 왕실에서 보관하던 모든 귀중품들을 갖고 나왔다고 하니 중국 예술품을 보려면 대만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해 보였습니다.

이것 말고도 아름답고 특별한 전시품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 중 특별히 제 눈을 끈 것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 고궁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인 고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장식품으로 B.C. 6000-8000 년 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혹시 이런 작업 해 보신 적 있나요?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연대표와 역사서의 연대표를 참고로 해서 아담의 출생 연도를 추정해 보는 작업 말일입니다. "누가 몇 살에 누굴 낳고 몇 세에 죽었다"는 사실을 쭉 모아서 직선 그래프에 표시해 보면 결국 몇 년 전에 아담이 살았었느냐를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해 보면 아담은 대략 B.C. 4112 년 정도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올 연초에도 학생 성경 공부 준비한다고 계산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가설이고 기준이 되는 사건을 출애굽은 B.C 1446년 , 왕상 6:1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B.C 966 년이라는 역사적 해석을 바탕으로 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물론 창세기의 연대표가 생략이 없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점이나 창조 당시의 '날(첫쨋 날, 둘쨋 날 등)'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볼 때 처음 사람이나 창조의 날짜를 정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박물관에 표시해 놓은 B.C. 6000-8000년 이라는 시간은 적어도 제 눈으로 확인한 물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앞서 언급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을 때 거의 인류가 초기에 사용했던 물건이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아 무척 신기했습니다.

또 한가지 물건은 B.C 200년 경 한나라 당시에 사용되었던 매미 였습니다. 지금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극락에서 장생하라고 입 안에다 쌀이나 귀한 물건을 넣는다고 하던데 한나라 당시에도 사람을 매장할 때 입 안에다 옥으로 깎아 만든 매미를 넣었다고 합니다.

매미를 왜 넣었을까요? 그 당시 사람들 생각으로는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다가 여름만 되면 나타나 "맴맴맴..."하고 소리내던 매미들은 죽고 난 뒤 천국에 간 사람들의 소리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디선가 "매앰맴..." 하고 하늘에 울러 퍼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런 상상도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주검 속에 옥으로 만든 매미를 넣었다고 합니다. 좋은 곳에서 잘 살아라고....

매미 소리가 유달리 시끄러운 양산에서 살면서 약간은 으시시 해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대만행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B.C. 6000-8000 년 경으로 추정되는 장식품..

- 귀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아직 정확하게 용도를 모른다고 합니다.

B.C. 200년 경...한나라 시대에 사용되던 옥으로 만든 매미

- 주로 무덤에서 발견되겠지요?

 고궁 박물관을 보고 난 뒤에는 면세점에 들러 선물을 몇 가지 산 뒤 바로 타이뻬이 국제공항으로 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앞서 밝힌 것 외에도 타이뻬이 밤 거리를 거닌 적이 있습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타이뻬이의 유명한 야시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동남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뱀, 자라 같은 혐오 식품들을 팔고 있는데...최근 단속이 심해지면서 유명한 뱀 골목도 사라지는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몇 몇 가게에서는 보기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못 먹을 것' 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야시장에서의 시간은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활보하면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구경할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짧게 나마 대만 기행문을 마치려고 합니다. 아직 터어키 여행기도 완결되지 않았고 러시아 여행기도 써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저로선... 대만 여행기를 길게 끌고 갈 여력이 없었다고 말하는게 더 맞는 말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만이 볼 게 없는 나라라는 말은 틀린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만은 볼 게 없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훗날 기회가 주어진다면...선화와 함께 다시 이곳에 찾아 와 화련의 구곡동을 거닐고 타이뻬이의 고궁 박물관에서 역사 시대의 첫 시간을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장개석과 송미령의 못다한 얘기들도 나누고 싶습니다.

대만은 한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깝습니다. 한반도 주변 지도를 펴 놓고 보면 바로 한반도 아래 쪽에 인접한 나라입니다. 동지나해와 태평양 사이에 떠 있는 섬나라 대만...천수이벤이 총통이 된 이후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이 나라를 앞으로도 유심히 지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대만에서의 3박 4일을 포함해 5일 간의 여행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