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주름

어느 해보다 무더운 여름...연일 35도를 오르 내리는 용광로 더위 속에서 우리 가족은 어느 해 못지 않은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날짜

일정

참고

2004.7.17(토)

본가 어머님 생신

 

2004.7.18(주일)

카자흐스탄 김명희 선교사님과의 만남

 

2004.7.21(수)-26(월)

대만 B형 간염 아카데미 참가

대만에선 3박 3일이지만 전,후로 하루씩 소요/ 26일:동생 첫 아기 돌

2004.7.26(월)-30(금)

방문

부산의대기독학생회 농촌의료봉사, 양산교회 SFC 여름수련회 방문

2004.7.30(금)-8.20(금)

카자흐 청년 "세르게이" 초청

3주 간

 우리 가정과 관련된 여름 활동은 7월 17일부터 시작해서 다음 달 20일까지 계속됩니다. 3주 이상 한국에 머물 카자흐 청년 세르게이를 초청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인데 제가 근무하고 있는 부산대병원이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대한 활용해서 금요일과 주말을 잇는 시간대를 주로 이용할 생각입니다. 세르게이가 와 있는 동안엔 금요일에는 일찍 퇴근할 예정인데 세르게이가 한국에 도착하는 30일도 금요일이랍니다. 인천 공항에서 서울역으로 이동시켜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하게 한 뒤 일찍 나가 맞을 생각입니다. 주말 연휴는 세르게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월요일이 되면 양산교회 청년부 수련회 프로그램에 참석시킬 예정이고 3박 4일 정도의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주말(금요일 포함)을 함께 지낸 뒤 그 다음 주엔 서울에 3일 정도 보낼 생각입니다. 마지막 주는 세르게이를 위해 일주일 간의 여름 휴가를 빼 놓았습니다.

사실 전...병원 일보다 이런 일들로 분주한게 더 좋습니다. 여름 밤을 달리며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때도 있지만...그게 더 좋습니다.

이번 여름 국내로 들어오신 카자흐스탄의 김명희 선교사님은 우리 가정이 지난 2001년 8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아스타나에서 살 동안 출석했던 교회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십니다.

2년 반 가까이 선교지에서 함께 생활하며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분이기에 한국행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도 적잖게 기다렸습니다. 왼쪽 사진은 2002년 1월 1일...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첫 송구영신예배를 저희 집에서 드린 뒤 거실 한 구석에서 당시 14개월이던 형민이를 안고 계시던 선교사님의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 홈을 통해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여름 수련회, 청년 모임,  성탄 행사, 부활절 준비 등...여러 얘기들을 소개해 드렸었지요? 바로 그 교회의 선교사님이 이번 여름 한국에 일시 귀국하게 되신 것이죠. 저희로서도 한국에 들어온지 8개월 만에 카자흐스탄에서 함께 지냈던 선교사님을 재회하는 셈입니다.

이번에 선교사님이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되신 이유는 1)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바울선교사 수련회 참석 2) 2004.7.12-15일까지 전북 김제 만경 수련원에서 열렸던 '선교 전주' 대회 참석 3) 선교 보고, 후원자 발굴, 현재 진행 중인 교회 센터 건축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선교사님은 세 아들이 있으신데 그 중 두 아들과 함께 부산에 내려 오셨고 사모님(이영분 선교사님)은 현재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 남아 지금도 계속 중인 교회 건축을 챙기시고 계십니다. 사실 사모님은 제가 아스타나에 있는 동안에도 원인을 알기 어려운 심한 복통을 두 번 씩이나 겪은 적이 있어 CT 등의 정밀 검진이 필요하신 상태인데도 교회 건축이 우선이라 생각하시고 그 곳에 머물고 계십니다.

선교사님은 이번 귀국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각종 예배나 모임에 나가고 계셨습니다. 주일에는 보통 2군데에서 설교를 하셨고 수요일은 물론...평일에도 여러 교회와 모임을 방문하면서 선교지 상황을 알리고 동원에 힘쓰셨습니다.

왼쪽 사진은 저희 가정이 출석하는 양산교회 3부 예배 시간에 설교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이 날 선교사님은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자밀라,까밀라,둘랏 등 젊은 학생들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사실상 그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기도 하지요. 그들이 어떻게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어떻게 바뀌었는지...그들의 인생관과 진로가 어떻게 변했으며 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적은 간증문에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소개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내용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 시간이 특별하게 와 닿았습니다. 사실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그들과 함께 신앙 생활을 할 때에는 특별함이 아닌 일상적인 일들로 여겨졌었는데...5000Km 떨어진 한국에서 그 일들을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이었습니다.

양산교회 3부 예배는 150여명의 중,고,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번에 7월 26일부터 선교를 주제로 중고대 연합 수련회를 가지게 되는데 현장에서 일하시는 선교사님의 얘기를 직접 들으면서 수련회를 준비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시간이었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서늘한 교회 본당임에도 선교사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눈에 동시에 들어 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통해 변화된 학생들의 삶과 간증을 자세하게 소개하신 선교사님은 우리 학생들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지와 이곳은 여러 면에서 다른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살기에 복음의 능력을 오히려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도 거부하는 사람들이지만 카자흐스탄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면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되는지...지금 보여 드린 것처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날 설교는 양산교회와 개금교회에서 두차례 이루어졌습니다. 전 선교사님을 차에 모시고 부산과 양산을 오가며 이동했습니다. 개금교회는 선화의 모 교회이자 우리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이라 친밀한 곳입니다.

선교사님의 연세는 올해로 54세입니다. 5년 전 한국을 떠날 땐 잘 몰랐었는데....5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 돌아와 보니 얼굴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였나 봅니다. 이전에 자신을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님을 바라 보며 "수고가 많으시죠?" 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걸 들으며 중앙 아시아의 황야에서 고생하며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게 된다고 하시는데 그 때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이렇게도 표현하셨습니다.

어렵게 인터넷을 접속해서 자신을 알고 있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후원자들에게 기도 편지의 내용을 올리지만...그 누구도 한 장의 답장도 보내주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성도 여러분...선교사를 왕따 시키지 맙시다."

개인적 소명을 따라 선교지로 나선 선교사들이지만 그 소명은 한국 교회의 소명이기도 하기에 선교사를 격려하는 일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갈수록 선교사의 수는 늘어가지만 개교회의 선교 지원비는 줄어가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 선교사들에게 더 많은 선교비를 보낼 순 없다고 하더라도 때마다 보내 오는 기도 편지에 대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때보다 많이 들었습니다.

개금교회에서의 저녁 예배 설교는 선교지의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 현장에 대해 부담감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설교가 마친 뒤 개금교회 당회장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선교사님은 한국에 계실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분이십니다. 그 누구보다 지적이고 도전적인 설교를 하시는 분인데...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예전과 많이 바뀌셨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교 내용도 쉬워졌습니다....아마도 선교지에서 여러 훈련들과 경험을 쌓으시며 이렇게 살아 있는 설교를 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는 교회당 맨 뒤에 앉아 있습니다. 불과 8개월전만 해도 아스타나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선교사님이 왔지만...형민이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눈치입니다. 이 두 아이 모두 카자흐스탄에서 자신의 일생의 50%이상을 보냈지만...선교지 카자흐스탄의 얘기는 이제 먼 나라의 얘기로만 들립니다.

아이들의 짧은 기억력이 약속하기만 한 밤....우리 부부는 뒷 자리에 앉아 선교사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선화는 선교사님의 양복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선교사님의 양복은 두꺼운 양복이었습니다. 영하 30-40도의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선 여름이 2주도 채 안 되기에 춘추복이라고 해도 겨울 양복에 가깝습니다.

7월의 한국을 찾은 선교사님은 여전히 그 겨울 양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양산 교회에 오시는 동안에도 무더위 속에 웃옷을 들고 계실 정도로 더운 날씨였습니다. 선화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교사님을 모시고 여름 양복을 한 벌 맞춰 드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마이너스의 가계부를 안고 사는 선화는 선교사님의 겨울 양복이 안스럽기만 했습니다. 우린 다음 번에는 꼭 시원한 여름 양복을 사 드리자고 다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도울 줄 알듯이.... 선교지의 필요를 고추장 한 통, 말린 나물 한 봉지에서부터 체험했던 선화는 내년에 카자흐스탄에 가게 될 때 미리 배편으로 선교사님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보내자고 말합니다. (이 날 선화는 본당 맨 뒷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알 게 된 선교사님 한 분은 국내 굴지의 회사에서 근무하다 부르심을 받고 늦게 신학을 한 뒤 선교사의 길로 나온 분이었습니다. 부족한 지원과 관심 속에서 어렵게 사역하시면서 가끔씩 그 옛날 탄탄한 직장 생활 했던 때의 결정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때 직장을 그만 두지 말고 선교지로 많은 재정적 후원을 할 것을....하고 후회할 때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데...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예외없이 다 밖으로(해외로) 나오더라구요..." 라고 말하며 웃으시던게 생각납니다.

선교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다 밖으로 뛰쳐 나오는데 그들을 도울 동력과 기도의 지원은 약해진 교회...나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의 불균형을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지가 선교 한국의 관건처럼 보입니다.

개금교회의 설교를 다 마친 시간은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온 힘을 쏟아 부은 설교를 두 번씩이나 했음에도 선교사님은 우리 가족과 선뜻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우린 교회 밑 작은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식사를 하시면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셨습니다. 식사 후 숙소로 돌아가시는 발걸음은 휘청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는 작년부터 교회센터를 건축하는 중입니다. 기초 공사는 바울 선교회와 몇몇 교회의 후원으로 이뤄 졌지만 이후 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공사를 마치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재정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몇 개의 벽돌을 구입해서 젊은이들의 손으로 하루 하루 교회 건축이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1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선교사님은 될 수 있으면 많은 교회와 사람들을 만나길 원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후원자들을 우연히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3년 여름..부산의대 기독학생회 의료 선교팀과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방문해 예배드릴 때의 모습입니다. 시은이를 안고 있는 선화..보이죠?)

우리 역시 재정적 여유가 없지만 선교사님께 우리의 작은 정성을 전달하면서 아스타나 장로교회를 잊지 않고 있으며 우리 가정의 비젼 중 한 부분이 카자흐스탄을 향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세르게이를 초청하고 내년에 카자흐스탄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우리 가정의 카자흐스탄을 향한 장기적인 계획과도 관련있음을 말씀드렸지요.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동안 우리는... 선교사의 연약함과 선교지의 인간적인 모습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계산했던 결과를 무색케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그 곳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사용해 주시면 주저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온 지 8개월....너무나 다른 이 곳 생활에 적응하며 사는 동안 굳게 가졌던 마음과 용기들은 점점 무디어졌고 걱정과 불안, 두려움들이 조금씩 새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은 빈틈이 없으십니다. 카자흐스탄에 계시는 선교사님까지 보내어 우릴 위로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기도 제목입니다

1. 필요한 만큼 건축 비용이 채워져 중단되고 있는 교회(선교센터) 건축이 속히 진행될 수 있기 위해

2. 이 건물이 유라시아의 무슬림 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선교센터 역할을 감당하도록

3. 교회 사역과 지도자 양성 사역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4. 현재 자라나고 있는 제자들이 건실하게 양육되도록

5. 세 아들이 세 선교사로 잘 준비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