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좋아요.

아빠가 부산대학교병원에 출근한 뒤로는 온 가족이 함께 외출하는 일이 뜸해졌습니다.

물론...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훗날을 위한 투자라고 말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 역시 마냥 무한정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품 안의 자식" 이라는 옛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고등학생만 되어도 데리고 다니는게 쉽지 않은 우리네 삶을 돌아 본다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행복해질수 있는 이 시기는 엄마, 아빠로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기입니다.   

그래서 요즘...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와의 사귐을 더 제공하기 위해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통로는 주말 밤을 이용한 '장보기' 입니다.

사실...이런 면에서 주일이 약간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아침에 함께 차를 타고 교회당으로 출발할 때까지만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일 뿐... 예배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 가족이 나뉘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형민이와 시은이는 1층 유아부실로...성은이는 엄마에게 업혀 3층 영아부실로...저는 2층 본당으로 향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선화와 성은이를 데리고 2층 예배실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지만 성은이가 좀 크면서부터는 예배 시간 도중에 소리를 자주 내지르는 바람에 2층 예배실에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한 동안 3층 영아실에서 선화와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지만 한 사람이라도 2층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가 마쳐도 선화와 아기들만 집으로 돌아갈 뿐...저는 이어지는 3부 예배 및 중고등부 활동에 참여한 뒤 오후 예배까지 드리고 저녁 6시 쯤에야 귀가하게 되지요. 그 날의 피로와 다음 날에 대한 부담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기도 쉽지 않은게 주일 밤 시간인지라 우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주일 역시 그리 많지 않은 셈입니다. 물론 앞으로 성은이가 더 자라면 해결되겠지만....

그래서 우리 가족이 출발하는 시간은 언제나 주말 밤입니다. 병원에서 아빠가 돌아오면 온 가족이 최근 금곡에 생긴 농협 하나로 클럽 매장에 가는 것이죠.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은 경남 양산시 동면 석산리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양산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양산의 중심부와 부산의 금곡, 화명 지구 사이에 끼어 있는 지역입니다. 지도상으로는 부산의 끝에서 30Km 정도 북쪽으로 더 올라와야 하지만 차로는 얼마 걸리지 않은 거리라 우린 이왕이면 부산 쪽에 있는 큰 매장을 이용해 아이들과 주말 장보기를 합니다.

최근 금곡 지하철 역 근처에 농협 하나로 클럽 부산 지점에 들렀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 날은 태풍의 북상 소식과 함께 큰 비가 쏟아지던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두 아이의 등을 떠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셋째 성은이는 아침에 일찌감치 처가에 맡겼습니다. 성은이가 좀 더 클 때까진 아무래도 셋을 데리고 나가는 건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형민이의 활짝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옵니다. 사실 형민이는 10분 남짓 차를 타는 동안 살짝 잠이 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차에서 내려 환한 불빛과 활기찬 인파를 보자말자 금새 생기가 돌면서 이렇게 돌변했습니다.

요즘 들어 어느 때보다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사랑을 받으려는 시은이도 이렇게 넓은 장소에 나오는게 좋은가 봅니다. 에스컬레이터 옆에 설치해 놓은 옛날 초가집 앞 마당 풍경을 담은 장식물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뭐라고 얘기해댑니다.

두아이를 데리고 매장으로 돌아갈 때는 항상 사진처럼 아이들을 카트에 태워 데리고 다닙니다.

형민이는 카자흐스탄에서 귀국한 후에도 이렇게 큰 슈퍼마켓을 접하면 항상 "람스토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살았던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 있던 터어키 자본의 대형 슈퍼마켓 '람스토르'와 유사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 여기도)

하지만 이제 형민이의 머리 속에서 람스토르의 영상은 사라졌나 봅니다.

하디만 이젠 이런 곳에 와도 람스트로에 왔다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형민이가 한동안 찾던 쭘(카자흐스탄의 백화점) 얘기를 해 봐도 "형민이가...이제는... 쭘이 잘 생각이 안 나요" 라며 오히려 아쉬워 하는 형민이를 봅니다. 이런 걸 보면 아이들의 기억은 짧은가 봅니다. 하지만 사진첩을 들춰 볼 때마다 그 곳의 생활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형민이는 가끔씩 그 곳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내년 쯤에는 형민이를 데리고 카자흐스탄을 꼭 방문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별한 기억은 이어 주고 싶으니까요...

금곡 하나로 클럽에는 1층 식료품 매장 말고도 2층에서 온갖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사진은 애완동물을 파는 코너인데 금붕어, 새 같은 것 말고도 도룡뇽처럼 생긴 것, 쥐처럼 생긴 것...애완동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놈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형민이와 시은이는 이 곳에 오면 유리 안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지요. 아이들의 세계는 이제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새로 보는 것도 하나씩 늘어나고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세상의 넓이도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 오면 충동 구매를 하기 쉬운 법인데...선화는 2층에 있는 의류 코너에 가기만 하면 절 붙잡고 와이셔츠나 남방 같은 것을 대 보곤 합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는 완구 코너에서 이것 저것 건드려 가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데 지난 번에는 어린이 집에 가지고 간다며 예쁜 우산 하나늘 집는 형민이를 보았습니다. 활짝 펴지는 그 자동 우산이 얼마나 맘에 들었는지 하루 종일 들고 다녔고 다음 날 교회에도 들고 가려고 하더군요.

 

액세서리와 아동용품을 파는 곳에 가면 선화의 눈빛은 빛납니다. 시은이를 데리고 들어가 이것 저것 씌우고 입히고 붙이고...

시은이는 아직도 머리숱이 많지 않습니다. 첫째와 셋째는 까맣게 머리숱이 많은데 유독 시은이만은 그렇지 않지요.

선화는 이 매장에서 꽁지머리가 달린 모자를 하나 발견했고 이걸 지금 시은이에게 씌워 주려고 합니다.

뒤에는 형민이가 우산을 들고 있지요?

한 때 황비홍으로 불려야 하는 등...머리카락 없는 설움을 겪었던 시은이에게 이렇게 예쁜 머리카락이 생기고 보니 한층 더 여자 아이처럼 보입니다.

형민이와 나서면 "형제예요?" 라고 불렸던 시은이의 긴 머리카락을 보고 나니 앞으로 예쁜 숙녀가 될 시은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됩니다.

매장에서의 즐거운 한 때는 보통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매주 이렇게 농협 매장으로 나들이를 가는 건 아닙니다. 최근 들어 거의 매 주 토요일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느라 더욱 분주해졌고 아이들 중 하나라도 아프다면 이런 외출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한번은 주말 밤을 이용해서 특별한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숯 찜질방이었죠.

찜질방에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데다 숯이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을 가지고 따라 갔습니다.

양산 우리집에서 아주 가까운데 통도사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하는데 부산이나 울산 등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곳의 특징은 숯을 구워낸 가마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가 사우나를 즐긴다는 점입니다. 숯가마도 3개나 있었는데 금새 숯을 꺼냈던 가마가 가장 뜨겁고 시간이 지나면 가마 속의 온도는 떨어지는 거지요.

가마는 황토흙으로 되어 있는데 조금만 앉아 있어도 금새 밖으로 나와야 하는 기존의 사우나 실과는 달리 가마 속에 오래 앉아 있어도  따끈한 온기가 온 몸 깊숙이 들어오면서 훈훈해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가마 안에는 20명 가까이 들아가는 것 같았는데 그 안에 모여 노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퍽 재미있었습니다. 한국만의 문화겠지요?

이 숯가마 찜질방은 장인, 장모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부부 두 사람이 세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것도 처가집에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셋째 성은이가 일주일에 3일 정도는 항상 외가집에 가서 지내고 있지요. 한 때는 시은이가 갔었는데 이젠 시은이가 상황 파악을 어느 정도 하고 엄마 품을 떠난다는 걸 눈치채는 것 같아 성은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찜질방에는 이렇게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습니다.  토요일 밤이 주는 여유를 한 껏 누리는 셈입니다.

2004년 7월... 상황은 어둡고 무거운 소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김선일씨의 피살 사건으로 기독교계를 포함한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계속되는 장기 불황과 내수 침체로 불안과 위축은 커져만 갑니다. 혼자 계신 할머니와 남지에 계신 부모님 등... 돌아 봐야 할 일들은 제 어깨를 누릅니다.

삶이 힘겨울 때...더 이상 걸어갈 용기가 없어질때...하나님은 가족들을 통해 위로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병원 일을 마치고 자정 무렵 집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하루종일 세 아이에 시달려 지쳐 버린 선화를 만나게 됩니다. 서로에게 힘들었던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두 사람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앉아 오늘 하루 각자가 겪었던 일들을 털어 놓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나면 새 힘이 솟는 것 같습니다. 이내 이야기는 8월에 오는 세르게이 초청 이야기, 7월에 한국으로 들어 오시는 아스타나에서 사역하셨던 선교사님 얘기, 향후 우리 가정의 주력 사업, 비젼 등으로 흘러가게 되지요. 그리고 그 시간에 카자흐스탄으로 국제전화까지 거는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갓난아기를 포함해 아이들의 숫자가 셋이 되면서 매일 드리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자고 나면 우리 부부는 가정 예배를 드립니다.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찬송가를 펴는 이유는 우리의 계획을 얘기하고 나누다 보면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기본 전제를 다시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한 웃음과 함께 아빠라고 소리 내며 손을 뻗고 다가오는 아이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내 인생의 무게를 새털처럼 가볍게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1000명 이상 근무 사업장을 대상으로 7월 1일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부산대학병원도 이를 곧 적용한다고 하니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가져 봅니다. 하지만 병원 특성 상 입원 환자는 여전히 남아 있고 외래 진료도 유지한다고 하니....기대만큼 그리 많은 여유 시간이 생길 것 같진 않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나와 선화의 인생이 소중한 것처럼 우리 세 아이들의 인생 하나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다는 자각이 자꾸 생깁니다. 갓난아기일 때는 그저 돌봄의 대상처럼 비쳤지만 이제 자신과 미래의 모습을 얘기하며 자아를 조금씩 발견해 가는 형민이를 보면서 자신과 세계 그리고 하나님을 알아갈 그 아이의 일생이 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생 행로를 이제 막 시작한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에 대한 기대와 그렇지 못할 때에 생기는 좌절과 번민들을 늘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200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