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홀의 조선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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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닥터 홀의 조선회상'을 다 읽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닥터 홀 가족들이 가진 조선땅을 향한 사랑이 나를 향한 사랑으로 느껴질 때마다 눈가엔 눈물이 맺히기도 했지요.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셋째 성은이를 낳은 뒤 몸조리를 하는 기간 동안 '양화진' 이라는 책을 읽은 데서 출발합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구한말 한국 땅을 밟았던 초기의 많은 선교사들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양화진' 이란 책도 2001년 국제협력의사로 우리 가족이 카자흐스탄으로 나가기 직전, 방글라데시로 떠나게 된 같은 국제협력의사 박진영 선생님에게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당시 전 세계로 흩어질 협력의사들에겐 100년 전 한국 땅을 밟았던 그 때 그 사람들을 회상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양화진'의 시작은 흥선 대원군과 병인양요... 아니...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받고 순교했던 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후  숨막히게 전개된 구한 말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이 땅을 사랑해서 목숨을 걸었던 수 많은 선교사들의 얘기가 전개되지요.

이 책에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료 선교사인 알렌, 홀, 언더우드 등의 이름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전까진 한국의 초창기 교회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국 교회 초창기의 역사들과 구한말의 빛과 같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 우린 너무 무지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소설 양화진에 등장하는 많은 초기 선교사들의 한국 정착기와 사역 얘기를 읽다 보면 100년 전 이 땅을 찾아 왔던 그들에게 한 없는 미안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과 그들의 어린 자녀들은 질병과 박해로 낯선 땅, 한국에서 죽어 가야 했지만 그들의 무덤의 조선땅에 남겨지길 원할 정도로 이 땅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름들이 조선인들을 사랑하다가 죽어 갔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솟아 났습니다.

이토록 큰 사랑을 알게 되면서 그들에 대해 좀 더 알아야만 하겠다는 역사 의식이 생겼고 그 때문에 읽게 된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닥터 홀의 조선 회상'입니다.

사실 내게 있어 '양화진'이나 '닥터 홀의 조선 회상' 과 같은 책이 평범한 감동 이상으로 다가 오는 데에는 우리 가족 역시 카자흐스탄에서 2년 6개월 동안 살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곳에 사는 동안 현지 병원이나 선교지 교회에서의 정기 진료 활동과 지역 교회에서의 활동이 주된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이방인으로 이민족 사이에서 살아가며 겪게 되는 수 많은 감정과 에피소드 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카자흐스탄에서 얻고 돌아온 수확물은 너무나 많습니다. 선교를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선교사가 가져야 할 태도,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구체적 선교 전략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얻었음은 물론 선교지에서 만나게 되는 현지인들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퍼 주기 식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서의 전문인 사역의 가능성...그리고 한국인 선교사들과의 관계 설정과 외국인 선교사들과의 교제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그 곳에서 살아가는 2년 6개월의 세월 동안 우리 가족이 느꼈던 이 같은 사실 이면에는 그 곳 사람들에 대한 답답함과 절망, 미움과 증오도 숨어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들, 외국인에게 뒤집어 씌운 교통 사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섬김이나 봉사에 대한 오해, 교회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어떨 땐 소리 치고 싶을 정도로 그들이 미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 가정이 왜 카자흐스탄에 와서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했습니다.

선교지에서 더욱 드러나는 선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내 안에서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서 일해야만 그 곳에서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아마 수 십년간 한국 땅을 위해 헌신한 홀 일가에게는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머물렀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정리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조선 땅을 위해 헌신하고 숨져 간 그들에 대한 한 없는 애정이 느껴지는 밤이었지요.

책상 옆에 밝혀 둔 백열등 불빛은 그 옛날 상투 튼 사람들이 모여 앉아 예배 드리던 사랑방의 호롱불을 연상하게 합니다.

닥터 홀의 조선회상의 저자 셔우드 홀은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랐으며 조선의 망국병인 결핵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하고는 조선의 결핵 퇴치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헌신한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다시 조선을 찾아와 황해도 해주에 결핵 요양원을 최초를 세웠고 크리스마스 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비위생과 무지함과 이유 없는 비난들, 거기에다가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싸움판만 되어주었던 조선의 불안한 정치현실들을 그대로 체험하면서 조선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심은 복음과 사랑의 씨앗이 자라 지금의 나와 같은 열매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를 일찍 알지 못했다는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홀은 캐나다 사람입니다. 사실 그 당시 캐나다 인들이 이 한국땅까지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열강의 조선 침략이 왕성했던 시절...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들어 온 선교사라는 오해도 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실입니다.

1기 사역을 마치고 안식년을 보낸 홀 가족이 다시 조선 땅으로 들어올는 시베리아 대륙 횡단 열차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시베리아 대륙 열차라면...우리가 카자흐스탄에서 보던 낡은 철로와 열차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데...흔들리던 침대칸에서의 추억이 그들과 우리 가족의 공통된 기억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셔우드 홀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나의 부모인 닥터 윌리엄 제임즈 홀과 로제타 홀은 조선에서 선교 개척자로 일생을 바치셨다. 나는 두 분이 의료 선교사로 활동하던 중 은둔 왕국 조선 땅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의료 선교 활동, 조선 땅에서 두 분의 아들로 태어나 그 곳에서 성장했던 내 소년기의 경험들, 그리고 훗날 의사인 아내와 내가 의료 선교사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 곳에서 보낸 16년 동안의 세월은 많은 추억과 감동스런 이야기를 나에게 간직하게 했다....(중략)...

그들은 내가 조선에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남겨서 더 많은 사람에게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책으로 남기는 일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청진기를 옆으로 내려 놓았을 때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여가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시기는 우리가 조선과 인도에서 39년간 의료 선교사로 일하고 은퇴한 후에야 찾아 왔다. 일흔 세 번째 생일을 맞는 날 나는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리치먼드, 브리티스 콜롬비아, 캐나다에서

                                                             닥터 셔우드 홀                             "

닥터 홀은 1991년 9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교적 최근인데 난 왜 그를 몰랐을까요? 더구나 한국에서는 이 책이 발간되기 전까지 그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가 시작한 크리스마스 씰 사업을 관장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일을 시작한 사람의 이름이 '홀' 이라는 사실만 알 뿐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참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은 천지개벽하는 사회적 변혁 속에 있었습니다. 그 격랑 속에서 우린 그를 너무 빨리 잊었던 것입니다. 홀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여동생 에디스, 태어나면서 세상을 떠난 아들 프랭크, 어머니, 아내..이 모든 이들이 지금 양화진에 묻혀 있습니다.  

 얼마전 언더우드 가족이 4대에 걸친 봉사 활동을 마치고 영구 귀국한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세상은 봉사활동, 학교에서 교수로 후진을 양성했다는 얘기만 하고 있지 그가 첫 장로교 선교사로서 이 땅에 건너 왔음을 애써 부각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만 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에 읽을 책으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편지를 모아 편찬한 책을 읽을려고 합니다.

국가는 다르고 섬기는 민족은 다르다 하더라도 현지인들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어려움, 동료 선교사들과 겪게 되는 수 많은 에피소드들..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독특한 문화 경험으로서의 유사성은 1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동일함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카자흐스탄의 경험을 가진 우리 가족에게 특별히 큰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의 우리 삶에 좋은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 분명합니다.

'축복의 사람(설경욱 작사,작곡)' 이라는 CCM 곡이 있습니다. 그 곡에는 뮤직 비디오가 있는데 CCM Love와 같은 CCM 사이트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뮤직 비디오 속을 유심히 보면 앙화진과 선교 100주년 기념관이 배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는 양화진에 있는 수 많은 선교사들의 무덤 중 두 개의 묘비를 비추는데 두 번째로 비춰지는 묘지의 묘비명이 바로 "HALL" 입니다.

아래에 그 뮤직 비디오를 링크해 두었습니다. 한 번...유심히 보세요.(재생 버튼을 누르세요. 화면이 흔들리는 것 같아도 인내심을 가지고...)

결혼하기 전...부산 개금교회에 출석했을 당시 저는 Vision Trip의 일환으로 양화진과 100주년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그 곳을 방문했을 땐 무척 큰 감동을 받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격은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이젠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축복의 사람은 일차적으로 초기 우리나라를 찾았던 선교사들입니다.

이제 그들이 뿌린 씨앗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그 역할을 이어가야 합니다.

 " 그대 섬김은 아름다운 찬송

   그대 헌신은 향기로운 기도

   그대가 밟는 땅 어디에서라도

    주님의 이름 높아질꺼에요. "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은 그 떄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우리 가정에게 더 없는 도전과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아래는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을 소개하고 있는 인터넷 자료입니다.)

닥터 홀의 조선 회상( (좋은 씨앗, 2003, 셔우드 홀 지음,김동열 옮김 )

조선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사랑한 셔우드 일가...국 땅에서 태어난 한국이름과 한국말을 쓰면서 우리 한국인들을 위해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았던 셔우드 홀. 그의 부모는 의료 선교사로서 대한제국 말엽 평양에 병원을 개업했다. 아버지 닥터 윌리엄 제임즈 홀이 환자들을 치료하다 자신역시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불행중에도 두사람이 세운 병원은 발전해 "홀 기념 병원"이 되었고, 모친 로제타 홀이 설립한 "동대문 부인 병원" 은 이대부속 병원으로 성장했다. 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 전문학교"를 열었으며, 그후 창설된 그 분원은 현재의 "인천 기독병원"과 "인천 간호보건 전문대학"에 이르렀다. 닥터 셔우드 홀이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황해도 "해주 구세병원"이었다. 그의 말과 행동과 사고 방식은 한국 사람과 다를바 없었다. 닥터 셔우드 홀은 "해주 구세병원"서 원장 겸 내과의사로 일하면서 매일 수많은 결핵 환자를 진료했다. 전염력이 막강한 결핵은 일제는 물론이고 한국인들도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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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긴 세월의 이야기를 풀며

닥터 홀의 편지 : 나의 사랑, 한국

감사의 글 : 도움을 준 이들에게

프롤로그 : "보배"이야기

  1. 시작

  2. 첫인상

  3. 개척을 향한 모험

  4. 평양에서의 수난

  5. 에디스 마거리트

  6. 마음의 상처를 수습하고

  7. 은둔 왕국의 백인 소년

  8. 시베리아 - 유럽 횡단 여행

  9. 내일을 찾아서

 10. 조선을 향해

 11. 조선으로 돌아와서

 12. 오리엔테이션
  
 13. 첫해와 예순한번째 해

 14. 첫 아이

 15. 원산의 여름

 16. 기초 작업

 17. 긴급 취임

 18. 꿈은 이루어지고

 19. 최초의 요양원 - 해주 구세요양원

 20. 안식년 휴가

 21. 크리스마스 실

 22. 이정표

 23. 공수병 소동

 24. 반가운 사람들의 방문

 25. 화진포의 성(城)

 26. 대행(代行)
 
 27. 전쟁의 소리

 28. 헌병대

 29. 엉터리 재판

 30. 조선을 떠나며

 31. 만세

에필로그 : 핍박 가운데 밀알로 썩어져

옮긴이의 말 : 출간 후 뒷 이야기

연표(年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