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이들

며칠 째 계속되는 비로 집 주변은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습니다. 아파트 앞 뒤가 산과 들인 까닭에 풀벌레 소리로 시끄러워 지면서 마치 시골 교회로 떠나 온 여름 수련회의 마지막 날 밤에나 느낄 수 있는, 피부를 촉촉하게 감싸는 흙내음, 들내음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계절입니다. 그러고 보니 귀국 이후 3년만에 맞게 되는 한국에서의 첫 여름이 눈 앞에 다가 왔습니다. 무척 기대가 되네요.

아빠는 근무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우리 집 삼남매는 그 어느 때보다 신나는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둘째 시은이는 이제 만 1년 5개월(3살), 막내 성은이는 만 5개월(1살)입니다. 첫째 형민이는 만 3년 7개월(5세) 이구요. 둘째 시은이는 형민이보다 훨씬 말이 빠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혼자 자란 형민이보다 오빠, 동생이 다 있는 시은이의 언어 구사력이 빠른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엄마, 아빠 눈에는 그저 귀엽고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형민이는 이 맘때 "머리, 눈, 귀, 까까(과자)..." 정도의 수준이였는데...시은이는 이런 단어는 이미 넘어섰고 문장을 구사하려고 중얼중얼 대는 경지거든요. 물론 아빠, 엄마도 잘 알아 들을 수 없는 내용이지만...다른 사람의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하며 눈웃음 치는 시은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집니다.

덩치가 큰 시은이는 이제 형민이와 맞먹고 놀 정도가 되었습니다. 어떨 땐 형민이가 밀릴 정도지요.

왼쪽 사진이 우리 아이들의 현재 현황입니다.

막내 성은이도 지난 주에 뒤집기를 성공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이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아이들과 지내는 생활은 아이들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쉴 틈이 없는 고행(?)의 길이지만...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여유도 생기고 웃을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은이가 지금 한창 애교를 떨고 귀여움을 독차지 할 때여서 엄마, 아빠의 맘은 흐뭇하기만 합니다.

지난 5월 26일 석탄일 휴일에는 모처럼 집에 있었던 아빠와 함께 온 가족이 놀이터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특히 형민이와 아빠는 대중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형민이와 함께 목욕탕을 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형민이는 쭉 카자흐스탄에서 자랐었기에 목욕탕 문화가 없는 그 곳에선 불가능한 일이었고...귀국 이후에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거든요.

형민이는 생각보다 뜨거운 물이 가득 차 있는 욕조에 잘 앉아 있더군요. 물론 금새 아빠 품으로 파고 들었지만... 우리 가족이 갔었던 놀이터는 아파트 뒤에 있는 공영 놀이터 인데...산 밑인지라 인적도 드물고 양산 2차 신도시 지역이 훤히 내다 보이는 전망에다 산 바람이 시원한 곳이어서 놀기에는 딱 적격이었습니다. 다음에 한 번 소개해 드리죠.

형민이나 시은이 모두 식성은 전통 한국식입니다.

형민이가 그랬듯이 시은이 역시 "김치"를 엄청 좋아 합니다. 양념이 그대로 묻어 있는 김치를 씻지도 않고 입에 그대로 낼름 집어 넣을 정도로 김치를 좋아하죠.

하지만 형민이는 뭐든지 잘 먹는 시은이에 비해 밥을 잘 안 먹는 편이라 하루 세 끼 식단을 형민이가 좋아하는 메뉴로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저야 뭐...하루 세 끼를 모두 병원에서 해결하고 있기에 주말이나 휴일이 아니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요즘 갖는 거의 유일한 불만입니다. '도대체 뭐가 바빠서 아이들 안아 줄 시간도 없고 가족들과 함께 밥 한 끼 먹을 수 없는거야...' 하고 말이죠. 어서 빨리 올해가 지나 가서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올 한 해는 달라진 소화기 관련 의료 기술과 환경을 익히는 시간으로 삼을 생각이라 할 수 없지만....

이쁜 성은이는 요즘 들어 낮잠을 거의 자지 않습니다. 그 대신 밤이 되어 잠이 들면 중간에는 거의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깊은 잠에 빠진답니다.

아직 이유식을 시작하지 않고 있는데 이제 곧 본격적인 이유식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세 아이 모두 양산 보건소에 가서 밀린(?) 예방 접종을 다 해결하고 돌아 왔는데 잦은 감기로 인해 예방 접종 스케줄이 몇 달씩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예방 접종이라도 받으려면 근처에 사시는 장인 어른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엄두도 못냅니다. 그야 말로 처가집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는 요즘이지요. 아무래도 시골인지라 모기가 많이 서식하는 것 같아 일본 뇌염 예방 접종도 빼 놓지 않고 받았습니다.

선화는 형민이가 어린이 집에서 돌아올 무렵이 되면 시은이와 성은이를 데리고 나가 아파트 밑 공터에 설치된 퐁퐁(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침대 스프링 같은 장치)에서 놀다 들어오기도 합니다.

아래는 형민이와 시은이가 퐁퐁 위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뛰어 노는 모습인데 사진 속에 보이는 산과 들이며 아파트를 보시면 우리 아이들이 놀며 지내는 이 곳이 얼마나 자연친화(?)적인 동네인지 금방 눈치 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곳이 너무 맘에 듭니다.

형민이의 경우는 어린이 집에서도 매일 놀이터에서 야외 활동을 하지만...시은이는 이런 기회에 바깥에 나가 신나게 놀지 않으면 늘 집 안에 있게 됩니다. 이렇게 바깥에서 한 시간 정도 놀고 들어와야 집 안에서 짜증을 부리지 않고 밤에도 일찍 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의 왕성한 활동력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 봅니다.

틈만 나면 형민이와 시은이는 새로운 놀이를 개발해서 그 놀이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을 동원합니다. 그래서 늘 선화는 아이들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지요.

형민이와 시은이가 요즘 즐겨 하는 '기차 놀이'입니다.

형민이와 시은이가 번갈아 가면 기차를 끄는데 형민이도...시은이도...이 때가 그렇게 좋은가 봅니다.

이렇게 서로 좋아하면서 노는 둘을 보면서...할 수 있는 한.... 이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오랫동안 함께 몸을 부대끼며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해야...남매간의 정도 깊어질 테니까요. 제가 여동생과 남동생에게서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아이들은 새벽같이 밖에 나가 밤 늦게 들어 오는 아빠가 야속한가 봅니다. 형민이는 휴일이나 토요일 오후....평소보다 일찍 귀가하는 아빠를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빠가 낮에 오니까 참 좋다..."

늘 잠이 쏟아지는 밤에만 아빠 얼굴을 보던 형민이는 아빠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나누길 원하고....시은이도 아빠를 보기만 하면 달려 와서 안기기에 바쁩니다.

며칠 전 서울 삼성병원에 있었던 소화기 운동학회에 참석했다가 제 모습을 담은 쿠션 하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이 쿠션을 본 시은이는 아빠 얼굴을 쳐다 보며 하루종일 쿠션을 껴 안고 다녔다고 합니다. "아빠...아빠..." 라면서 말이죠.

최근 들어 형민이는 아빠가 늘 가지고 다니는 디지털 카메라를 직접 조작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카메라 모양을 한 다른 물건을 들고 다니며 촬영하는 시늉을 했었는데...이젠 그건 재미가 없어졌나 봅니다. 며칠 전부터는 진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이것 저것 찍어 보려고 했습니다.

바로 오늘...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 와 쉬고 있는데...형민이가 책상 위에 놓인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곤 엄마 품에 안긴 막내 성은이를 찍어 보겠다고 렌즈를 들이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전....선화 옆으로 다가가며 형민이게 말했습니다. "형민아, 아빠, 엄마도 같이 찍어 줄래?'  형민이는 활짝 웃으며 그러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형민이가 찍을 수 있었을까요?

옆의 사진이 바로...형민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엄마의 모습을 사진기로 찍은 사진입니다. 형민이 눈에 비친 아빠, 엄마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촬영된 사진을 보며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형민이가 이렇게 카메라 앵글 내에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는 사실 자체도 신기하고 재미있지만...주로 제 손에 의해 촬영되기만 하던 우리 가정의 모습이 형민이의 손에 의해 최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많이 자랐네....'

흰 런닝 셔츠 바람에 형민이의 렌즈를 바라보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쳐다 봅니다. 결혼 후 5년.... 선화나 저나 이젠 애 아빠, 엄마 티가 많이 나지만 엄마, 아빠라고 불러 주는 세 아이들이 있기에 5년 전에 비해 훨씬 안정되고 행복해 보입니다.

물론... 요즘 같아선 선화가 혼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지만...세 아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아빠, 엄마와 함께 뒹굴며 지내고 있기에, 지금 이 시절이 너무 행복하게만 느껴집니다.   200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