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고갯길

아직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지나온 건 아니지만...우리네 인생에는 많은 굴곡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앞이 탁 트인 기분 좋은 대로를 걸을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발걸음을 떼기도 힘든 고갯길을 넘어야 할 때가 있지요.

아마 저와 우리 가정에 있어선 올 한 해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 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지난 3년 간은 타국에서 가족만의 오븟한 시간을 보내며 쉽게 하기 힘든 좋은 경험들을 가질 수 있었지만...한국에 들어와 부산대학병원에서 전임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또 다른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사실 내과 전문의면 됐지...또 무슨 과정이 더 필요하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전 요즘 3년 만에 다시 들어간 대학 병원 생활을 하면서 너무 변한 한국 의료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변화된 의료 지식과 환경은 물론이고 치료 원칙이나 약물, 진단 및 치료 내시경의 기술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의료 분야에 있어서 만은 몇 개월이 멀다 하고 새로운 방침과 기술들이 소개되고 있는지라 3년간의 공백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음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죠.

내과 라는 영역은 마치 태평양보다 더 넓은 바다와 같아서 내과 의사라고 하더라도 실제 내과학의 모든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근 경향은 내과라는 영역 속에서도 소화기, 순환기, 호흡기, 신장, 내분비, 류마티스, 혈액 종양, 알러지 등의 영역을 정해 자신의 전공 영역에 대해서만은 책임지고 더욱 전문적인 진료를 해 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내과 의사가 1-2명 뿐인 중소 병원에서야 내과 과장 한 사람이 내과의 전 영역에 걸쳐 1차 진료를 시행하지만...대부분의 큰 병원(대학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 급) 에서는 보다 깊이 있고 전문적인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내과는 여러 분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내과 의사들도 내과 전문의를 획득한 뒤에도 2년간의 분과 전문의 과정을 대학 병원급에서 밟아 별도의 분과 전문의 자격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소화기 내과 분과 전문의 과정을 대학병원에서 밟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전문의들이 이런 길을 가는 건 아니구요...

이번 글에선 매일 아침 펼쳐지는 경남 양산의 우리 집에서 부산의 남서쪽 끝 부산대학병원까지 출근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만 해도 3시간 정도입니다. 그것도 아침 이른 시각과 밤 늦은 시각에 이루어지기에 힘들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론 귀국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 생활이나 소속감이 분명치 않은 병원에서 귀국 이후 6개월의 적응 기간을 보낸 저로선 병역 의무 만료에 맞춰 새로 시작한 부산대병원 전임의 생활이 얼마나 마음 편한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출근을 위해 매일 아침 5시 40분에 눈을 뜹니다. 부산대학병원에 늦어도 아침 7시 반까지 들어가기 위해선 최소한 6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출근할 때의 모습입니다. 우리 아파트 앞인데 햇빛이 비치는 길 뒤로는 푸른 산이 버티고 있답니다. 아침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네요.

아이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조용히 가방을 챙겨 집 밖을 나섭니다. 때론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와 청소차에 올려 주기도 합니다....

경남 양산에서 부산대학병원까지는 대략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집이 양산 시내 중심부나 석계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호포 지하철 역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나마 양산에 소재한 아파트 중에선 부산 대학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 정착할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양산 석계의 어느 골목길에 차를 세워 두고 비에 젖은 생활 정보지를 읽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양산 지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우리 가족을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로 인도하신 것만 봐도 하나님의 손길은 항상 우리 가정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한 번도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 본 적이 없습니다. 주차 할 자리가 없기 때문에 항상 아파트 밖 외진 곳에 주차한 뒤 다음 날 그 곳에서 시동을 걸고 지하철 호포역까지 차를 몰고 나옵니다.

부산 지하철 2호선의 북쪽 끝은 경남 양산시의 호포역입니다.

호포역 주변 왕복 10차선 도로변에 차를 주차한 뒤 육교를 넘어 호포역으로 들어 갑니다.

호포역 앞 육교에 서 있으면 우리 나라의 산과 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입이 절로 벌어집니다.

왼쪽 사진은 호포역 앞을 지나는 도로의 모습인데 도로 끝에는 부산 북구 화명동의 아파트 밀집 지대가 보입니다.

육교 위에 서서 쭉 뻗은 도로를 향해 섰을 때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보입니다. 낙동강을 건너는 구포대교 같은 다리들이 보이고 유유히 흐르는 푸른 물줄기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죠.

전 카자흐스탄에 사는 동안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그 곳만의 독특한 경치들을 촬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와 내 조국의 산과 강을 바라보니 그야 말로 "아름답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카자흐스탄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육교에 서서 낙동강 쪽을 바라보면 아스라이 이어지는 산줄기와 물줄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강변으로 경부선 철로가 지나가지요.

출근할 때마다 이 철로위로 달리는 기차를 종종 봅니다. 왼쪽에는 어느 날 우연히 찍은 KTX의 모습이 보입니다. 산과 강을 배경으로 달리는 은색 열차...얼마나 멋지던지...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 보면 볼수록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아침 6시에 집 문을 나서면 6시 20분 경에 호포역에서 지하철을 탈 수 있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에 걸려 있는 전자 시계의 숫자를 확인하며 대기하고 있는 지하철에 올라 타지요.

아침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기에...2호선 종점인 호포역은 늘 차분합니다. 이제 막 가판대 문을 연 할아버지가 조간 신문을 정리하고 있고...아침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몇몇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게 눈에 띌 뿐입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안개가 짙게 깔려 있기에 승강장에서 바라 본 낙동강의 모습은 마치 '무진기행'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입니다. 특별한 별 나라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요.

호포역은 4층 건물인데 지하철을 타는 승강장이 바로 맨 꼭대기 4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낙동강의 푸른 물줄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왼쪽 사진을 찍은 날은 아마도 구름이 많이 낀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시계는 6시 18분 쯤 가리키고 있었겠지요...

제 뒤로 보이는 낙동강 물줄기가 보이시나요...언제 한 번 맑은 날에 이렇게 촬영해 봐야 하는데...날씨가 맑은 날엔 항상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와 있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가끔씩 이곳에 서 있으면 내가 참 멀리서 출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언제나 드라마틱하고 스릴있게 전개되는 나의 삶에 대한 웃음이 나오곤 하지요. 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편입니다. 누구보다 철저하게 계획해서 일을 추진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은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하던 길로 흘러 왔습니다. 카자흐스탄에 간 것도 그렇고 양산에서 살게 된 것도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지하철을 타면 사상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그 곳까지는 꼭 30여분 걸립니다.

사진은 호포역을 출발해 다음 역을 향해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차창 밖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산과 강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 오시죠? 언제 봐도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출근하는 시간이 1시간 20여분이다 보니 차 안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러시아어 회화 공부가 그것이죠.

요즘 제가 열심히 듣고 있는 건....2002-2003년에 걸쳐 방송된 'EBS 러시아어' 의 지난 방송분인데 '에듀 닷 컴' 이라는 사이트에서 MP3 파일로 다운 받아 MP3 플레이어를 통해 매일 러시아 발음과 문장을 연습,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러시아어 공부는 늦은 밤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되는데 벌써 한 달째 계속되는 이 연습을 통해 취약했던 발음들을 교정하고 회화 능력을 배양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발전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요즘 재미를 더 붙여 가고 있습니다. 2년 반 동안의 카자흐스탄 생활이 이런 공부를 가능하게 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구요....

지하철 사상역에 내리면 보통 6시 50분 정도가 됩니다. 사상역을 나와 버스 정류소에서 161번을 타고 구덕 터널을 통해 대학병원까지 오게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여 분 정도입니다. 이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있지요. 통상 7시 20분 남짓 지나면 대학 병원 앞에서 하차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 이런 생활을 한 지도 이제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병원 생활 하기 전에는 이런 생활을 두고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하나님의 은혜로 아직은 체력을 유지하면서 아침마다 울리는 자명종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활로 인해 긴장하고 있는 탓에 조그만 소리에도 잘 깨는 것 같습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제가 하는 일은 부산대학병원 소화기 센터에서 내시경 검사를 하고 외래 진료를 보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내시경 실에서 보내는데 상부 위장관 내시경과 하부 대장 내시경을 기본으로 해서 부산대학병원 규모에 맞게 하루 종일 수십개의 내시경 검사를 직접 시행합니다. 그 외에도 매일 오후 1시 30분마다 진단 방사선과 함께 하는 집담회나 금요일마다 있는 외과, 병리과와의 집담회에 참석해서 배우는 지식도 있고 전공의(레지던트) 때부터 모셨던 교수님들로부터 새롭게 터득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특히 위나 대장 등에 발생하는 용종(혹)을 내시경적으로 절제하는 새로운 기술(EMR)들이나 식도에 발생하는 정맥류(확장된 혈관)을 고무링으로 결찰하는 시술, 급성 출혈시에 시행하는 clipping 등은 전공의 때는 할 수 없었던 시술인데...전임의 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습니다.

사진은 소화기 센터 내에서 외래 진료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내시경실에서 시술하는 것보다 이렇게 외래 보는 시간이 오히려 편한 시간입니다. 환자가 없을 땐 좀 쉴 수도 있고 틈틈이 메일을 확인할 여유가 생기는 것도 바로 이 때지요.

물론 새로 바뀐 약들과 치료 방침들로 인해 모든 지식들을 새로 정립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전문의 수련을 받았던 대학병원에서 다시 근무하는 것으로 인해 얻게 되는 심적인 안정감으로 인해 이런 과정들이 잘 극복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으니까요...

사실 병원 생활의 대부분을 내시경실에서 보내고 있는데 내시경실 사진을 찍어 두질 못했네요. 다음 기회에 내시경실에서의 생활을 소개해 드릴께요.

교수님들을 포함한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카자흐스탄에서 제가 가졌던 특별한 경험에 대해 관심을 보입니다. 인구, 자연, 언어. 경제, 기후 같은 기본적인 것 외에도 그 곳에서의 자질구레한 삶들에 대해서도 무척 듣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은 제가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고 러시아어로 진료가 가능하다는 사실로 인해 러시아어권 환자들의 진료를 제게 맡기려 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부산에는 러시아어권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고 부산대 병원에도 러시아인들이 여럿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대로 통역이 되지 않고 '러시아-영어'의 이중 통역으로 인해 애를 많이 겪었다고 하는데 교수님들은 제가 와서 이제 이런 걱정은 덜었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제가 부산대 병원에 들어오기 전, 김해의 한 중소병원에서 한 달 정도 근무하고 있을 때... 그 곳 김해 공단 내에서 일하고 있는 CIS권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와 있는 CIS권 노동자들은 러시아 외에도 우즈벡스탄,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 사람들은 짧은 영어도 전혀 알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병원 원무과나 외래 간호사들은 늘 의사 소통으로 인해 큰 문제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동하고 오는 통역들 역시 한국 말을 조금 알아 듣는다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뿐이기 때문에 제대로 진료가 이루어질 리가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제가 그 곳에 가게 되면서 그 곳에 오던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가슴은 뻥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느끼던 문제를 자신의 언어로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전 그 얘기를 듣고 공짜로 초음파 검사까지 해 줘 가면서 그들의 답답한 맘을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사람들 중에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타크힐" 이 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위통으로 인해 위장약을 먹고 있었고 고민끝에 우리 진료실을 찾아 왔습니다. 위장 내에 기질적인 병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음식과 기후가 맞지 않는 타국에서 살고 있다는 스트레스가 더 커 보였습니다. 언젠가 한 번 그가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왔을 때...그의 수중에는 100 달러 짜리 지폐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선 달러를 받길 거부하고 있었고 근처에 은행도 없었습니다. 그 때 전...그의 100달러를 제 수중에 있던 13만원과 바꿔 주었는데 그 돈은 다음 날 우리 가정이 급하게 쓸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외국 생활을 해 본 저로선...그가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이해가 되기에 다음 날 김해 공항까지 가서(휴일에도 공항 환전소는 문을 여니까...) 100불을 12만원으로 바꾸는 수고를 하면서 그에게 편의를 제공한 적이 있습니다.

타크힐이 고마워 한 것은 물론이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저의 존재에 대해 무척 반가워 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기억을 뒤로 하고 부산대학병원에서 근무한 지 2주가 지났을 무렵...바로 그 타크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제 핸드폰 번호를 알려 줬었는데 내시경실에 있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입니다.

핸드폰으로 들린 그의 사연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지금 이불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피부에 알러지 증상이 있어 다른 공장으로 일터를 바꾸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장을 바꾸려면 병원에서 발급하는 진단서를 인력송출회사에 보내야 하는데 그런 진단서를 발급받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부산으로 내려온 그를 데리고 피부과에 가서 진료를 보게 했고(통역도 했겠지요?)...온 김에 가슴 사진도 찍게 하고 처방전을 받은 뒤 약국까지 가서 약을 챙겨 줬습니다. 외국인이라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바람에 대학병원 초진료가 2만 7천원, X선 사진 한 장 찍는 데 만 5천원, 약값도 만원이 넘었습니다. 그의 지갑 속에 지폐가 몇 장 되지 않는 걸 보고 돈을 조금 보태기도 했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클 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타크힐은 연신 고마워 했고 "블라가다류 바스", "스빠시바 밤" (고맙습니다)을 반복했습니다.

그와 헤어질 무렵...전 제가 교회에 다니고 있음을 얘기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 신자들입니다. 우즈벡 민족이나 카자흐 민족은 터어키와 마찬가지로 투르크 민족들이어서 그들의 조상은 벌써 천 5백년 전에 이슬람화되었지요.

사실... 타크힐이 다닐 만한 교회를 찾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러시아 설교가 가능해야 하는데...부산 사하구 하단에 있는 "호산나 교회"가 유일하게 러시아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김해의 한 공장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그가 부산의 호산나 교회까지 나온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이런 상황이라면 그를 개인적으로 만나...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가지 않더라도 우즈벡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타크힐이 떠나기 전...병원 옆에서 그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타크힐은 자기 친구 우즈벡인들과 함께 김해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는 그는 또 다시 제게 연락해 올 게 분명합니다. 너무 외로워 했으니까요....

다음 번에 연락이 오면 식사라도 같이 하면서 더 깊은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아이들이 많아 집으로 초대하는 건... 아직 무리겠지요?

부산대학병원에 출근해도 하나님은 내게 이런 사람들을 붙여 주십니다. 제가 러시아어 공부를 놓을 수 없는 것도...카자흐스탄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도...하나님이 내게 보여 주신 이런 인도하심 때문입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밤 11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 오는 생활 속에서도... 건강을 잃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순종하는 맘으로 내게 주신 특별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2004.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