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들

지난 5월 4-5일 경주에서는 이번 달 말, 세계 각국으로 파견되는 신임 국제협력의사들과 이미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선배 협력의사 가족들간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2001년 5월, 저희 가정이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되기 직전에도 경기도 이천의 유네스코 훈련원에서 협력의사 출신 선배들과 만나 파견될 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모임을 가졌었는데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모임이었습니다. 새로 파견되는 신임 협력의사 가정으로선 파견 전 막연하게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궁금증을 이미 파견되었던 가정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파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협력의사들로서는 새로 파견되는 신임 협력의사의 얼굴을 익히고 동역자로 맺어질 수 있으니 그야 말로 서로에게 기대가 되는 모임입니다.

이번 모임은 국제협력의사 출신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는 선교 기지 병원인 '한동대학교 선린 병원'에서 숙소와 식사 일체를 제공하셨습니다. 올해 파견되는 협력의사는 10기이고 저희 가족은 7기였습니다. 이 날... 2기로부터 막 귀국한 7기까지 많은 가족들이 모였는데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경주로 찾아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당초 이 모임에 참여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새로 부산대병원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공휴일에 당직을 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제 막 들어온 전임의는 아직 응급실 호출을 도맡아 처리하기 힘들다는 의견으로 인해 당분간 교수님들이 직접 야간 및 공휴일 응급실 호출을 받게 되셨고 덕분에 휴일은 병원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날 특별한 이벤트를 기대하는 선화의 구미에도 딱 맞는 경주행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양산에 살면서 교통이 편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삽니다. 남양산 IC에 인접하고 있기에 경부나 남해 고속도로를 바로 이용할 수 있어서 부산의 서구에 살던 때보다 부산이나 부산 외곽으로 빠져 나가기 더 쉬워진 것 같습니다. 이 날도 경주까지 1시간 1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9시 반 쯤 출발해서 10시 40분에 도착했으니까요...어린이 날이라 통도사로 올라가는 차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내에서 신호등을 받아야 하는 시간이 전혀 없었기에 빨리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변했더군요...하긴 경주도 4년 만에 오는 셈이니... 경주 힐튼 호텔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기에 바로 그 곳으로 갔고 호텔 로비에서 이번 달 말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되는 최영현 선생님(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외과) 가족과 이재갑 선생님(카자흐스탄 알마티, 내과)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교제가 있었던 터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이 날 우리는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협력의사 생활을 하셨던 김동환 선생님 가족을 한국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동환 선생님 가정은 6기 협력의사로 우리 가족이 처음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 가정의 정착과 적응에 큰 도움을 주셨던 분들입니다.

우린 근무지가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였지만 파견 이후 현지 적응 훈련 기간을 포함해 3개월 동안 알마티에 머물다가 아스타나로 옮겨 갔었기에 알마티에 머물던 3개월 동안에는 김동환 선생님 가족과 바늘과 실처럼 함께 생활하며 카자흐스탄에서 살아가는 know-how는 물론이고 모범이 되는 크리스챤 가정의 모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이 가정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가정입니다.

김선생님 가족은 알마티의 ICF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아주 폭넓은 교제권을 이루고 계셨기에 막 카자흐스탄으로 들어간 우리 가족에게 많은 선교사님들과 교회를 소개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우린 짧은 시간에 알마티 선교사 사회를 익힐 수 있었고 선교사님들과 폭넓은 교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훗날 우리의 아스타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김동환 선생님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위해 미리 예비해 두신 가정이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보고 싶었던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김동환 선생님의 사모님인 김숙희 선생님(치과, 교정과)은 자매님인데도 불구하고 보기 드문 리더쉽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주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어떤 일에 뛰어 들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계시죠.

CMF에서 학생 사역도 열심히 하셨던 분이신데 한국에 들어오신 뒤로는 오전에만 병원 생활을 하고 오후에는 학생들과 성경 공부 모임을 하는 등...비젼에 충실하신 분입니다.

선화는 김숙희 선생님을 "언니..." 라고 부르며 무척 잘 따랐습니다. 언니에게는 선화나 제가 갖지 못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솔직하면서도 사람들을 모을 줄 아는 '언니'의 그 탁월한 추진력과 인화력은 알마티에서 지냈던 기간 동안 우리 모두가 '행복했던 그 시절'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김동환 선생님의 타고난 '사교성'을 등에 엎고 그 가정은 알마티의 'peace maker' 이자 선교사들의 사랑방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었는데 선교사님들이나 한카병원 식구들과 밤이 맞도록(?) 모임을 했던 그 시절의 추억은 아스타나로 올라간 뒤 우리 가정이 벤치 마킹하고 싶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날 모임에서 많은 협력의사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선린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김동준(2기), 이혁준(3기) 선생님과 부산의대 선배이기도 한 신원혁(5기) 선생님을 만났고 7기 동기인 한영훈 선생님과 카자흐스탄 초대 협력의사인 천종호 선생님(4기)도 딱 3년만에 다시 뵐 수 있었습니다. 그 외 김진용 선생님(4기)과 여러 선생님들...그리고 올해 새로 파견되는 10기 협력의사 8가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임 협력의사들은 다들 아이들을 둘 이상씩 데리고 나타났기에 이 날 모임은 그야말로 어린이날 분위기에 딱 맞는 모임이었습니다. 오랜 만에 만나는 사람들간의 정겨운 인사들로 넘쳐나고 새로 파견되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자리였지요.  

하얏트 호텔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마친 뒤 모두들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식사 장소는 '화진포'였습니다. 화진포는 동해안에 있는 마을인 모양인데 경북 영덕 근처 동해안을 다녀본 적이 없는 저로선 김동환 선생님 차만 따라갈 뿐이었습니다. 동해 바다 특유의 느낌 아시죠? 그렇게 확 트인 경치를 보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린 오랜 만에 만나는 김동환 선생님 가족과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반 동안 나누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나 둘씩 꿰기 시작했습니다.

우린 알마티의 김동환 선생님 댁에서 많은 신세를 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잔 것만 해도 한 달이 넘을 것 같고...김 선생님 차를 수 없이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6개월마다 찾아오는 평가대회 때마다 1주일씩 그 집에 눌러 앉았었고 아스타나에 올라갔을 때도...할아버지 상으로 한국에 들어갈 때도...김선생님은 백불짜리 지폐를 봉투에 넣어 건네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질 뿐이지요. 알마티에 계신 동안에는 아들 세진이 밖에 없었는데 이 날 와서 보니 시은이보다 한 달 빠른 딸 아이가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서로를 쳐다 보면 변한 건 하나도 없는데...아이들을 바라보면 변한 것 뿐입니다. 김선생님 가족과 식탁을 함께 하고 있으니 여기가 카자흐스탄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카자흐스탄에 계속 눌러 앉아 살 것만 같던 그 시절이 자꾸만 떠 올랐습니다. 그야말로 가슴 뜨거운 만남의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감개무량한 식사를 마치고 카자흐스탄 출신 협력의사와 카자흐스탄을 떠날 협력의사들이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평상에 둘러 앉아 그 곳 생활에 필요한 정보들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진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김동환 선생님 좌측에 잠바 차림으로 앉아 계신 분이 카자흐스탄에 최초로 파견된 협력의사 천종호 선생님이십니다.

이분 역시 신화적 존재지요..제가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거의 모든 선교사님으로부터 천종호 선생님의 활약상을 들었습니다. 천종호 선생님은 교회 말고도 인터콥 같은 선교 단체와도 많은 의료 사역을 하셨는데 지금도 여러 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분이십니다.

이런 믿음의 선배들과 한 자리에 모여 앉아 카자흐스탄을 품고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새로 파견될 협력의사들에겐 큰 위로와 도전이 될 것 같았습니다. 국제협력의사는 외교통상부에서 선발하는 전문직 공무원(임시)인데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길 원하는 기독 의사들이 모이게 되었는지....그야말로 국제협력의사는 선교 한국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요한 도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 선교지로 나가 본 사람만이 목회자 선교사 뿐 아니라 전문인 선교사가 얼마나 더 많이 필요한지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같이 이슬람 민족이 주류 문화인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은이는 장모님께 맡겨둔 채 형민이와 시은이만 데리고 이 모임에 참석했었는데....전국 각지에서 모인 아이들 틈새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노는지...이제 친구들이 좋고 사람들이 좋아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모임이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기 전...카자흐스탄 출신 협력의사들이 모여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4기 천종호, 6기 김동환 선생님과 7기 저희 가정 그리고...새로 파견되는 10기 이재갑, 최영현 선생님 가족이 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이 촬영한다고 하자 인접국 우즈벡스탄,몽고 출신 협력의 선생님들도 끼어 드셨죠)

지금 카자흐스탄에는 8기 김대동(외과,아스타나), 안병재(내과,알마티) 선생님과 9기 이완(치과,알마티) 선생님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들이 들어온다면 카자흐스탄 출신 협력의사 가족 모임만 만들어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모임 속에서 비젼을 키우고 지원해 줄 수 있다면 더욱 아름답겠지요?

제 인생에서 국제협력의사가 가져다 준 꿈과 도전을 생각한다면 지금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신원혁 선생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전에 밝힌대로...학생시절부터 늘 본이 되는 선배였던 신원혁 선생님이 부산의대 출신 최초의 협력의사로 떠나신 것이 제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을 통해 국제협력의사란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신원혁 선생님은 1남 1녀를 두고 있고 사모님도 내과 의사십니다. 베트남 협력의사 근무를 하던 시절...두 분 모두 선교지 교회와 연계한 의료 사역에 특별한 열심을 내셨던 분들입니다.(국내 유명 일간지에 실리기도 하셨지요...) 현재 사모님은 저처럼 소화기 내과 전임의 과정을 밟기 위해 서울에서 근무하고 계신데... 신 선생님은 포항 선린병원에서...아이들은 부산에서 지내야 하기에 지금은 이산 가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잘 준비되어 쓰임 받기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귀한 가정입니다.

 김동환 선생님의 아들 세진이와 형민이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2001년 5월...우리 가정이 카자흐스탄으로 처음 갔을 때는 세진이가 세 돌이 지난 때였고 형민이는 겨우 생후 7개월 때였습니다. 그 당시 걷지도 못하던 형민이로선 세진이의 존재는 형님(?) 이상이었지요. 둘은 카자흐스탄에서 함께 자랐고 여러 모임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세진이가 아스타나에 올라와서 함께 바라보예에 갔던 적도 있지요. 우리 홈의 지난 얘기들을 클릭해 보면 김동환 선생님네와 함께 보냈던 수 많은 얘기 속에 세진이와 형민이가 함께 노는 사진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둘은 거의 2년 만에 만났습니다. 세진이는 형민이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형민이도 세진이를 어렴풋이 기억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둘은 짧은 시간동안 착 달라 붙어 있었습니다. 과거의 시간들이 그들을 묶었다고나 할까요? 카자흐스탄을 얘기할 때마다 형민이에게는 세진이 형 얘기가 빠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점심 식사 후 일행은 포항 시내로 들어가 한동대학교 선린병원을 돌아 보고 선린 병원의 비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모임이 마친 뒤 참석자들은 아쉬운 작별을 하며 헤어졌지만 김동환 선생님네와 우리 가족은 그냥 이렇게 헤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만났는데..."

역시나...아이디어는 김동환 선생님 사모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어디 방 같은데 앉아서 좀 더 얘기를 해요...이렇게 헤어지면 너무 섭섭하잖아...."

김동환 선생님은 이내 여관 방 하나를 잡자고 하셨고...아스타나로 파견되는 최영현 선생님네와 함께 그 때 그 시절 알마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조그만 방에 둘러 앉아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역시 앉으니까 좀 낫네...아이들 잡으러 뛰어 다니느라 제대로 얘기도 못했어요..." 김동환 선생님 사모님의 모습은 예전 알마티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셨습니다. 옆에 있으면 편안하고 모두를 편안하게 해 주는 그 탁월한 추진력....방값도 아이스크림 값도 다 김동환 선생님이 내셨습니다. 도무지 기회를 안 주시더라구요. 이 가정을 바라보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국제협력의사 생활을 통해 얻은 것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이렇게 좋은 분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질곡이 우리 앞에 놓이겠지만 우리가 가진 비젼을 펼쳐 나가는 길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고 기도를 부탁할 수 있는 동역자...그것도 카자흐스탄 생활을 함께 했던 동역자 가정이 옆에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2004.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