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자란다.

"5월은 푸르구나..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 날' 노래 가사처럼 5월은 다가 왔고 아이들은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이 백일이었던 셋째 성은이도 이제 당당히 언니, 오빠 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요.

한 두 번의 낮잠을 제외하곤 거의 하루 종일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보채는 성은이는 그래도 둘째 시은이보다 훨씬 순해서 밤에도 거의 분유를 찾지 않고 아침녘까지 깊은 잠에 빠질 정도입니다. 이런 면에선 엄마를 많이 도와 주는 셈이죠. 오히려 시은이가 밤 중에 한 번씩 젖병을 찾고 있어서 어떨 땐 성은이가 시은이보다 큰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한 달 전부터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한 성은이는 이제 엄마, 아빠 얼굴이 다가 오기만 해도 환하게 웃는 귀여운 아기가 되었습니다.

시은이가 요맘 때 그랬던 것처럼 성은이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아빠 모습을 번갈아 쳐다 보며 함빡 웃음을 짓고 있지요.

작년 이 맘때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의 큰 방 거울 앞에 서서 시은이의 모습을 비추며 좋아 했었는데 어느 덧 세 번째 아기를 거울 앞에 들고 서 있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둘째와 셋째는 머리를 박박 밀었습니다. 날씨도 더워지는데다 시은이의 머리카락 나는 속도도 여전히 지지부진해서...이 참에 맘 먹고 두 아이의 머리를 홀라당 깎아 버린 것이죠. 그래도 머리숱 많은 성은이는 하루 이틀이 지나니까 금새 까마스름하게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금새 예쁜 밤송이가 되었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서로를 기대며 살아갑니다. 둘째 시은이는 형민이 오빠를 무척 좋아합니다. 사실 형민이는 엄마의 관심을 뺏고 있는 시은이의 존재가 가끔씩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시은이는 그런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야말로 순수하게 오빠를 좋아합니다. 오빠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니까요.

시은이는 외갓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하루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지요.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외할머니가 돌봐 주시고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 와 다음 주 화요일까지 오빠, 동생과 함께 지냅니다. 세 아이를 돌봐야 하는 우리 가족의 궁여지책인 셈입니다. 하지만 외갓집이 가까운 곳에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시은이가 외갓집에서도 자기 집 마냥 잘 지낸다는 점입니다. 가끔씩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는지 "아빠", "아가" 라고 중얼거리며 찾을 때가 있다고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사실 시은이는 아빠가 카자흐스탄에 있고 엄마만이 한국에 들어와 출산을 했던지라 세상에 나오자 말자 외갓집에서 두 달간 지내야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외할머니가 시은이가 세상에 나올 때부터 봐 주셨기에 시은이가 편하게 느끼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한가지 우스운 일은 매일 저녁이 되면 시은이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아 끈 뒤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직접 컴퓨터 전원을 켜고 외할머니더러 의자에 앉으라고 한 뒤 그 무릎 위에 앉아 우리 홈페이지에 나온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한다네요. 시은이는 컴퓨터를 켜고 홈페이지에 접속하며 아빠, 엄마, 오빠, 아가의 사진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외갓집에 가서도 컴퓨터를 보면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서 매일 컴퓨터 모니터 속을 가리키며 "아빠" "엄마" "아가"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형민이에게서 요즘 제일 재미 있는 일은 바로 '어린이집'에 가는 일입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 곳에서 지내는데 친구들과 많이 사귀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형민이 어머니세요? 안녕하세요...우리 형민이가 어린이 집에서 너무 인기가 많아요. 특히 레고 블록으로 만들기 놀이를 할 때면 주변의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재미있게 해 주기 때문에 서로 형민이와 놀려고 한답니다." 더 재미있는 얘기는 정작 그 다음부터입니다.

형민이가 다니는 예명 어린이집 새순반 선생님은 그 날 어린이 집에 결석한 아이가 있어 안부 확인차 그 집에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석한 아이에게 어린이 집 친구들 중 누가 제일 보고 싶냐고 물었더니 형민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형민이가 너무 보고 싶다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선생님은 형민이가 그 아이(지연이라는 여자 아이입니다.)에게 전화를 한 번 걸어 줄 것을 부탁하러 우리 집에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민이의 타고난 사교성은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린이 집에서는 다양한 학습 활동과 놀이 활동이 이루어지고 놀이터와 소풍등 과외 활동도 풍부합니다. 며칠 전에는 통도 환타지아에 소풍을 간다고 해서 선화가 형민이 김밥을 싼 적도 있습니다. 이제 어엿하게 친구들과 함께 제법 멀리 다녀오는 시기가 되었지요.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그 동안 쓰지 않던 용어들을 익히고 올 때는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죽을래..." 와 같이 다른 아이들이 쓰는 말들 때문입니다. 집 안에서는 듣지 못했던 용어들을 접하며 형민이가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이 중심이기에 계속 형민이에게 아름다운 생각과 말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할 셈입니다.

형민이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글자 쓰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글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종이와 볼펜을 들고 다니며 머리에 떠 오르는 글자를 써 달라고 아빠에게 조릅니다. "아빠, 개구리 써 주세요." "아빠, 뿡뿡이 써 주세요."

아빠가 적어 준 종이를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는 형민이는 한 달전부터는 한글을 따라 쓰는 교재를 사서 즐겁게 따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민이에게 글자를 일찍 가르쳐 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형민이가 하도 글자를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하기에 때가 되었다 싶어 낱말 카드를 사고 ㄱ ㄴ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 한다고 하더군요...) 형민이는 글자를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래서...시계 옆에는 '시계' 라는 낱말 카드를 붙여 놓고 냉장고 옆에는 '냉장고' 라는 낱말 카드를 붙여서 글자를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4월 26일부터 부산대학병원에 출근하게 되면서 우리 집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월,수,금에는 아침 6시에, 화,목,토에는 아침 7시에 아빠가 출근해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 종일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아빠와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형민이는 가장 이 사실을 민감하게 받아 들일 아이입니다.

형민이는 주일 밤에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아빠가 월요일 아침 없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아빠가 오질 않았습니다. 이 날 오후 형민이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아빠... 어디 있나요? 아빠 언제 오나요? 아빠 조금 있다 빨리 오세요." 하지만 이 날도... 밤 11시 반이 되어 귀가를 해야 했기에 저는 형민이의 자는 얼굴만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쌔근쌔근 자고 있는 형민이의 얼굴은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다 자는 얼굴처럼 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역시...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한 번 안아 주고 가야 하는데...' 집을 나서 호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사상에 내려 161번 버스를 갈아 탄 뒤 구덕 운동장을 돌아갈 즈음에 바지 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아빠..." 바로 형민이었습니다. 형민이는 아침에 또 아빠가 없자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형민아... 아빠가 어제 밤에 와서 형민이 자는 거 다 봤다. 아빠가 오늘 일찍 나가는데 아빠 갔다 올께,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예..아빠 잘 갔다 오세요." 형민이는 이제 다 큰 아이가 되었습니다.

화요일도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 왔습니다. 형민이와 아이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자고 있는 형민이의 뺨에 입술만 맞출 뿐이었습니다. 수요일 아침도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 6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아이들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눈치를 살펴 이 날은 저녁 8시 반 쯤  병원을 나섰습니다. 보통 밤 10시가 되어야 병원을 나설 수 있지만 이 날은 아이들이 깨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형민이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죠.

저녁 10시 경에 집에 도착했습니다. "딩동..." 하고 벨을 누른 뒤 문을 연 순간...형민이는 아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저도 형민이의 얼굴에서 반가움과 미소와 쑥스러움(형민이는 반가우면 항상 쑥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이 스쳐 지나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민이에게 손을 벌리자 형민이는 아빠의 품에 와락 안겼습니다.

항상 종이와 볼펜을 가지고 글자 쓰는 것을 좋아하는 형민이...크레파스로 줄 긋기를 하고 색칠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부산대학병원에 출근한 이래 3일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형민이는 어느 덧 소년으로 자라 있었습니다.

성은이가 낮에 잠을 자지 않게 되면서 선화는 쉴 틈이 더욱 없어졌습니다. 시은이가 외갓집에 가고 형민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화-금요일은 그래도 좀 여유가 있었는데 요즘은 성은이가 하루 종일 안아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이것도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빠의 귀가가 늦어진 탓에 아이들에게 더 시달려야 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고 방식을 깨고 어린이를 천국에까지 높이셨습니다.

구약의 맨 마지막 성경 말라기의 맨 마지막 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마칩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구약 성경은 이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앞으로 그의 사자를 보내어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부모와 부모에게서 더 이상을 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로 가득찬 세대입니다. 가정과 사회는 이전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고 오늘도 수 많은 아이들과 학생들이 자살과 사회적 타살에 내 몰리는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생존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부모들은 살기 힘든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5월의 첫 주일, 어린이 주일을 맞아 아이들에게 마음을 돌이키는 부모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는 체력과 인내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200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