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국제협력의사
어제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 2001년 4월 23일부터 시작된 국제협력의사 근무 기간이 바로 어제, 2004년 4월 22일 부로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입니다. 근무가 시작되기 전에 받은 군사 훈련 기간을 합친다면 약 3년 2개월 정도되는 긴 기간이었습니다.
2001.2.24-4.22 |
2001.4.23-5.22 |
2001.5.23-2003.10.22 |
2003.10.23-2004.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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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훈련기간) |
(파견 전 교육) |
(카자흐스탄 파견 근무) |
(국내근무) |
2개월 |
1개월 |
2년 5개월 |
6개월 |
돌이켜 보면 파란만장한 시간이었습니다. 대전 군의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해군 대위로 임관식을 갖던 날부터 시작해서 카자흐스탄 알마티 국제공항에 처음 발을 디디던 순간까지... 그리고 카자흐스탄에서 보냈던 수 많은 순간들...서재에 꽂힌 두꺼운 사진첩 만큼이나 많은 얘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귀국한 뒤 보냈야 했던 지난 6개월의 시간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이며, 한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많은 일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카자흐스탄에서 보냈던 그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 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앞서 보냈던 것과 같은 시간들을 다시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할 수 밖에 없고 축복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협력의사 근무 종료를 앞둔 지난 2004년 4월 21일 서울 국제협력단 인근 함춘회관에서 7기 협력의사들의 마지막 모임이 열렸습니다. 모임이 서울이라 부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저로선 참석하기가 쉽지 않지만 내 일생에 큰 의미를 던져 준 앞 선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새로 개통된 고속철(KTX)를 타고 서울을 다녀 왔습니다.
무사히 근무를 마치게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협력단 관계자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가지는 모임이었지만 부산권에 사는 저로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습니다. 오전 11시 40분까지 서울 혜화동의 국제협력단 건물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지난 4월 1일부터 고속 열차(KTX)가 개통되었다는 사실이 참 다행스러웠습니다. 항공편을 이용하더라도 김포 공항에 내린 뒤 혜화로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 서울 지하철을 타야 하기에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지 모릅니다. 오히려 바로 서울역까지 갈 수 있는 고속 열차가 비행기보다 훨씬 안락하고 편안하지요...게다가 구포역에 정차하는 고속열차를 이용하면 부산역에서 타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양산 시내에 있는 한 여행사에서 왕복 열차표를 미리 예매한 뒤 고속 열차를 처음 탄다는 기대감을 안고 아침 일찍 구포역으로 나갔습니다. 역 구내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수 많은 사람들이 KTX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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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카자흐스탄도 고속 열차 '익스프레스'를 스페인에서 도입했습니다. 기존의 러시아제 열차에 비해 폼도 나고 외관도 멋있어 보이긴 했지만 1200Km 거리(아스타나-알마티)를 14시간이나 걸려 주행하더군요. 겨우 시속 90Km 남짓 밖에 안 되는 속도여서 우리 나라의 기존 무궁화 열차와 같은 속도일 뿐입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선 이전에 26시간 걸려 가던 거리를 불과 12시간 만에 달린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 했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고속철 KTX는 시속 300Km의 속도로 달립니다. 현재 대구-부산 간의 고속 철로가 깔리지 않아 서울-부산 간이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지만 약 10년 후 대구-부산 간에도 새 철로가 깔리게 되면 서울-부산 간은 약 1시간 40분 정도 만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꿈의 열차가 뜨는 셈입니다.
KTX를 타 본 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열차가 흔들리지 않고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속도도 빠르지만 승차감이 좋다는게 큰 장점이었습니다. 대구-부산 간의 기존 철로를 달릴 때는 주행감이 좀 떨어졌지만 매우 안정된 승차감을 보였습니다. 최근 잦은 고장이 있다지만 유럽의 고속철 개통시보다 오히려 적은 고장율을 보인다고 합니다. 앞으로 더 안정된 서비스를 기대합니다.
국제협력단 건물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50분 정도였습니다. 미리 와 있던 다른 협력의사 동료들을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거의 2년 반만에 보는 얼굴들인지라 얼마나 반가왔는지 모릅니다. 6개월 연장 근무를 했던 분들은 이번 달에 국내로 들어왔기에 아직 제대로 국내 적응도 못하고 있을 시기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소식은 듣고 있었지만 각자의 파견국에서 고생하며 근무했을 동료들의 얼굴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녹아 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 00 선생님...너무 반갑네요..." "고생 많으셨지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봤습니다. 좀 더 그을린 것 같기도 하고...전보다 주름살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집집마다 아이들도 2-3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막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 국외로 나가 꿈을 펼쳐 보겠다는 소망을 안고 만난 사람들...그들과 함께 옛날처럼 식사를 하고 대학로 거리를 지나 '민들레 영토'란 찻집에 들어 가 앉아 있으려니 마치 3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3년 전에도 파견 전 국내 훈련을 받으면서 이렇게 함께 식사도 하고 찻집에 앉아 서로의 비젼을 나누며 기도했었으니까요. 7기 협력의사 10명 중 8명이 크리스챤이었기에 우린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사람도 우리와 한 마음이었습니다.
식사는 서울대병원 옆에 있는 함춘회관 2층에서 열렸습니다. 국제협력단의 인력사업 이사님과 봉사 사업 2팀 관계자들이 함께 했었는데 간단한 순서를 가진 뒤 서로의 경험담을 나누며 홀가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국제협력의사로 보낸 시간이 자신들의 삶에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특별히 몽과에서 외과의로 일했던 박관태 선생님은 이번 달에 다시 교회 파송을 받아 몽고로 들어 간다고 했고 한영훈 선생님 역시 올해 포항 선린 병원에서 근무한 뒤 내년에 몽고로 다시 들어 간다는 얘기를 들려 주어 그들의 꿈과 포부를 듣는 우리들의 맘도 설레였습니다. 비단 그들 뿐 아니라 귀국 협력의사 거의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된 데에는 국제협력의사 라는 과정이 좋은 훈련과 거름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지금은 10기 협력의사가 파견 전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5월 4-5일 경주에서 출국 전 모임을 갖는다는데... 선배 협력의로서 참석하고 싶지만 전임의 근무가 시작된 때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날 모임을 가지면서 내 인생의 큰 이정표를 제공했던 지난 3년간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서의 임기는 어제로 마쳤지만 그것을 통해 얻게 된 꿈과 계획은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다시 시작되는 셈입니다. 아울러 믿음 안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이국 땅에서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아 준 협력의사 동기들이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승리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몇 년 후 다시 만나....어제 걸었던 그 대학로의 찻집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꿈과 소망을 나누어 보길 기대합니다.
다시 한 번 지난 3년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04.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