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날의 외유

2004년 4월 15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17대 총선으로 인해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 정치를 쥐고 흔들던 세력이 뒤로 물러 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주류 세력으로 나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으로서도 4월 15일은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를 카자흐스탄에서 지켜 봐야만 했던 우리 부부로선 2000년 봄, 16대 총선 이후 4년 만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총선일이 법정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3시까지 병원 근무를 해야 했던 전...근무가 마치자 말자 집으로 돌아 와 가족들을 데리고 투표장인 인근 동산 초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이 날 투표를 마치고 뭔가 특별한 곳을 다녀 오기로 이미 마음 먹은 상태였습니다. 지난 식목일, 봄 나들이를 떠나기로 계획했다가 아이들이 모두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해 아쉽기만 했던 우리로선 오후 늦게 집을 나선다는 것이 오히려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 이 날이 아니고선 온 가족이 함께 바람을 쐬고 올 시간이 날 것 같지 않아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차를 타고 투표장에 도착해 선거인 명부를 확인하고 후보에 한 표, 정당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빨리 투표를 마친 뒤 선화가 투표함에 표를 집어 넣는 것을 찍으려고 했는데...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참관인들과 선거 관리원들이 모두 웃으며 재미있어 했던 건 안 봐도 눈에 선하지요? 

웬지 우리가 투표하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동안 애국심이 몇 배 더 생긴 것 같다고 하면 믿으실지....

대부분의 투표장이 학교라는 사실은 우리 같은 가족에게는 축복입니다. 이 날... 우린 시은이를 함께 데리고 나오진 않았습니다.(시은이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세 아이를 데리고 힘겨워 하는 우리 모습이 안스러우셨는지 장모님이 시은이를 이번 한 주 동안 맡아 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투표를 마치고 어디론가 놀러 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시은이가 빠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시은이까지 포함해서 세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를 편안하게 다녀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이들에겐 학교 운동장 만한 놀이터가 없습니다. 이곳에는 온갖 놀이 기구가 모여 있고 울창한 나무와 차분한 교정이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만 3세 6개월인 형민이는 이제 구름다리도 건너 다닙니다. 카자흐스탄의 촌스러우면서도 위험한 놀이터에서 유아기를 보내야 했던 형민이에겐 이렇게 알록달록한 놀이 기구들로 이루어진 놀이터는 보기만 해도 신나는 곳입니다. 선화도 집 안에만 박혀 있던 형민이가 뛰어 노는 모습이 좋기만 합니다.

네 시간 넘은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이곳을 찾고 있었고 우리처럼 투표를 마친 뒤 아이들과 그네, 미끄럼틀, 지구 등을 타며 여유로운 한 때롤 보내고 있었습니다. 30분이 지났을까...선화가 말했습니다.

"우리...어디론가 갔다 옵시다. 지금 못 가면 또 언제 가겠어요?" 앞으로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병원 생활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선화는 피곤하더라도 오늘 같은 호기를 놓치지 말고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물론 제 생각도 그랬구요.

우리 집의 장점은 남양산 IC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언제든지 3분 만에 고속도로 위에 차를 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린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 요금소를 통과해 도시 고속도로를 따라 해운대로 향했습니다.

막상 가 보니...부산의 서구나 사상구에서 가는 것보다 우리 집(양산, 남양산 IC근처) 에서 해운대까지 가는 길이 훨씬 가까왔습니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더군요.

해운대로 향하는 길에서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생겼다는 벡스코(BEXCO)와 광안대교도 볼 수 있었습니다. 4년만의 방문이었고... 달라진 해운대 주변의 아파트 촌과 고층 빌딩도 새로왔습니다. 해운대 해변 뒤 쪽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호텔이 들어 차 있어 이제 세계적 관광지로 내 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였고 얼마 전에 생겼다는 '아쿠아리움'도 보았습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는 대양에서 수천 Km 떨어진 곳에는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대양 수족관, 두만 이 있는데...해저 터널처럼 수족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작년에 이 얘기를 홈에 올렸더니 어느 분이 해운대 아쿠아리움과 비슷한 것 같다고 적어 주셨습니다. 나중에 한 번 아쿠아리움 안에 들어 가 비교해 봐야 겠습니다.

해운대 백사장에 도착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던 눈에 익은 이 경치가 눈에 들어오자 십년 동안 묵었던 체증이 내려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 왔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국에 들어 와 6개월 만에 보는 바다였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바다를 보지 못했습니다.(물론 카스피해와 접하고 있지만...) 바다 같은 호수만 봤을 뿐이죠...

2년 전,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 에게해를 본 것과 귀국하기 직전 상뻬쩨르부르그의 핀란드만의 바다를 바라 본 것이 지난 4년간 볼 수 있었던 유일한 바다 풍경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바닷가와 비교해도 부산 해운대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와 보니... 주변의 숙박, 문화 시설이 훨씬 좋아진 것 같았고 하와이를 다녀 온 적이 있는 선화도 '세계적' 이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30년 동안 부산에서 살았음에도 이렇게 해운대가 반갑고 사랑스러운 건 바로 고향 땅이기 때문이겠지요?

신라의 학자·최치원(崔致遠)이 가야산(伽倻山) 입산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그 경치에 반하여 동백섬 동쪽 벼랑 바위 위에 자신의 호를 따서 해운대라고 쓴 데서 지명이 유래했다는 해운대...

혹시 우리 홈을 접속하게되는 카자흐스탄이나 미국에 있는 방문객들이 이 사진을 본다면 한국 바다에 대한 향수에 젖지나 않을지....

백사장이 줄어든 것을 염려하며 형민이와 함께 파도를 따라 술레잡기도 하고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형민이는 해운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깊은 잠에 빠졌더랬습니다. 성은이는 선화가 안고 자고 있던 형민이는 제 품에 안겨 바닷가까지 온 것이죠. 넘실대는 파도와 온 몸에 감겨 오는 끈적한 소금기를 느낄 때...이 광활한 바다를 형민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 몇 번이나 형민이를 불러 댔습니다. "형민아...형민아...이거 봐...바다야...형민아..."

아무리 불러도 좀처럼 깊은 잠에서 깨지 못했던 형민이를 깨운 건....바닷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웃음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눈을 뜬 형민이는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다의 모습을 멍하게 바라 보기만 했습니다. 아직도 깨지 않은 잠과 그렇게 좋아하는 물가에 와 있다는 사실이 복잡하게 엇갈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왼쪽 사진은 바로 그 순간의 모습입니다. )

제 뒤로 보이는 건물이 해운대 조선 비치 호텔과 동백섬입니다.

1999년 10월 16일...우리가 결혼식을 마치고 첫 날 밤을 보냈던 곳이 바로 이 곳, 해운대 조선 비치 호텔이였습니다. 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린 탓에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바로 신혼 여행지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것이죠.

우린 해변선을 따라 걷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아이들과 함께 금새 지쳐 버릴 것 같았습니다. 딱딱한 보도로 올라와 기억 속의 해운대를 더듬으며 지금의 모습을 놀라운 눈을 바라보며 오랜 만의 여유를 한 껏 즐겼습니다. 선화에게나 제게나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요.

해변 뒤 쪽 송림 사이를 걷던 형민이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연분홍 철쭉꽃 하나를 주워 들고는... 들뜬 마음 마냥 꽃 송이를 흔들어 댔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길 가의 바위에도 올라가 보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도 가리키고 도로 변의 화려한 건물들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변 뒤 도로를 따라 꼬리를 물고 들어 오는 자동차의 행렬도 마치 축제 행렬 처럼 보였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릴 적... 누구보다 엄마, 아빠를 따라 낯선 곳을 많이 다녀야 했던 형민이의 지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 즐거웠던 것 같았습니다.

요즘 형민이는 사고에 많은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이제 막 3세 6개월이 되는 형민이는 몇 달 전부터 '죽는다' 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규장 출판사에서 나온 '사도신경' 이라는 책이나 여러 성경 이야기 책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는 내용과 그림을 익혔던 형민이는 요즘 들어 어린이 집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듣고 오나 봅니다. (형민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은 기독교 정신으로 가르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죽음이란 것이 무섭고 좋지 않은 것이며 어디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임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요즘 형민이는 자기가 어린이 집에 가고 나면 엄마가 성은이를 업고 구역 예배를 드린다든지 시장에 가는 등의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일만을 생각하고 그 것이 형민이의 모든 세계였는데...이제는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차적인 세상이 아니라 여러 주인공이 얽혀 있는 입체적인 세상임을 배워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형민이는 오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형민이가 어린이 집에 가고 난 다음에...엄마는 어디 가지 마세요. 집에 있으세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형민이에게 낯설고 두려운 뭔가 인가 봅니다. 그래서 오늘 가정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갑자기 엄마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형민이를 품에 안고 속삭였습니다. "형민아, 아빠는 형민이 곁에 항상 있을 거야..." 그리고 형민이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모래 사장을 파 헤치던 형민이는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조개 껍질 하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아빠에게 보여 줍니다.

"아빠...이거 보세요. 이쁘지요?"

모든 게 예쁘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형민이의 세상에도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생기고 있습니다.

아빠가 형민이 곁에 항상 있을 거라고 했지만...그럴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해운대 바닷가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던 이 시간만큼은 형민이게에나...엄마, 아빠에게도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성은이도...)

세 아기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본격적인 병원 생활을 앞두고 계획했던 마지막 나들이를 하지 못했던 우리 가족으로선 4월 15일은 하나님이 주신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PS)  이 날 저녁... 우린 해운대에서 맛있는 아구찜을 먹었습니다. 선화와의 연애 시절에도 해운대에서 아구찜을 먹곤 했었죠. 그리고.... 형민이의 성화로 맥도날드를 두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감자 튀김 때문에요... 그리고 하나 더...시은아! 널 떼 놓고 가서 미안해...아빠, 엄마 이해하겠지? 다음에는 꼭 데려 갈께...   2004.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