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프로젝트

'세르게이'는 사람 이름입니다. 러시아식 이름이지요. 우리 나라에선 이름을 지을 때 수 만개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름은 몇 가지로 딱 한정되어 있습니다. '세르게이' 역시 러시아식 남자 이름의 대표적인 이름 중 하나이고 애칭으로는 '씨료자' 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올 여름(8월 이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세워진 선교지 교회인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현지인 리더인 '세르게이'를 초청할 계획을 세우고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부터 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선교사님들과 상의해 왔습니다. 매년 찾아 오는 단기 선교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선교지에서 어렵게 발굴되어 세워지고 있는 현지인 리더를 한국으로 초청해 '먼저 복음을 받아 들인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소개하고 도전하는 것이 그의 안목과 영적인 성장에 유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1년 8월... 아스타나로 이주하자 말자 우린 문을 연지 6개월도 채 안 되는 '아스타나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끔 되어 버렸습니다. 그 즈음 담임 선교사님은 이런 얘기를 하셨지요.

"이곳 사람들에겐 신앙 생활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예배 시간에 미리 나와 기도하고... 자발적으로 (보수를 받지 않고) 교회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네요...."

선교사의 주도 아래 시작하게 된 교회인지라 초창기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보수를 바라거나 특별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순수한 믿음 생활을 가르쳐야 할 선교사는 이로 인해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이런 부분을 의식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우리 가족은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한글 학교에 출석하고 있는 한 남자 아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18살 정도에.. 큰 키를 가지고 있지만 갓 배운 한국어를 작은 음성으로 속삭여대는 바람에 선화로부터 "느끼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던 '세르게이'가 바로 그였습니다. 

왼쪽 사진이 당시(2001년 11월 경)에 찍은 것인데 고려인 아버지에 카자흐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0여 민족이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선 민족간 통혼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고려인 사회에서도 앞 선 세대와는 달리 주류 민족인 카자흐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점차 늘어 나고 있습니다. 세르게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김 세르게이' 라고 불렸습니다.

우리 나라의 초등,중등 교육 과정인 쉬꼴라(학교)를 9년간 공부한 뒤 꼴리쥐(대학보다 아래인 상급 교육기관)에서 컴퓨터 등의 기술 과정을 배우고 있던 이 학생은 아버지 나라의 언어인 한국어를 배운다는 생각에 한글 학교를 나왔고...한국어를 더 배우기 위해 한국 선교사의 집에도 들락 날락 거리는 아이였습니다.

세르게이 눈에는 새로 나타난 우리 가정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젊은 부부인 것도 그렇고 직업 선교사가 아닌 의사로서 아스타나에 왔다는 사실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당시 만 1살이던 형민이의 출현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한국어를 실습할 수 있는 대상이 한 가정 더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었나 봅니다.

그래서 세르게이는 우리 집을 열심히 찾아 왔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아무리 눈보라가 날려도 토요일마다 전화를 하고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 선생님 계세요? 나는 세르게이 입니다. 나는 지금 심심합니다. "

처음에는 반가운 맘에 놀러 오라고 청했지만 차츰 시간이 흐를 수록 이 전화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맞아 주었지만 눈치 없이 밤 늦게 까지 앉아 있고 ...아침 일찍부터 찾아 오고...토요일 뿐 아니라 주 중에도 몇 번씩 찾아 오면서 은근히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세르게이가 집에 오면 한국어 공부의 상대가 되어 줘야 하니 제 일도 할 수 없었고 선화로서도 손님이 왔으니 음식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카자흐스탄에 사는 세르게이가 한국인의 정서를 알아 채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선교지의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수만 있다면 감수해야 할 일이었지만 막상 그 상황에선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 세르게이는 입맛도 까다로왔습니다. 생선이나 김 같은 한국에서 가져온 귀한 음식은 먹을 줄 몰랐고 감자국에 밥만 말아 먹었습니다.

왼쪽 사진이 바로 그 당시의 모습입니다. 겨울이면 창문 안 쪽으로 얼음이 얼던 빠베다의 겨울 추억에는 세르게이의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세르게이가 수요일에  전화를 걸어 와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쁜 일도 있어서 전 토요일 오후 4시에 전화를 하고 오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막상 전화를 받기로 한 토요일 오후가 되어선 시장을 보러 나가야만 했습니다. 세르게이가 전화 할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우리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바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그만 둘 거라 생각하고 그냥 밖으로 나갔습니다. 물론 우리 내면에는 세르게이에 대한 부담감도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세르게이는 이 날 우리가 없는 빈 집의 전화벨을 여러 번 울렸을게 분명합니다.

다음 날 교회에 가 보니 세르게이는 우리에게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게 분명해 보였습니다. 세르게이도 뭔가 눈치를 챈 게 분명한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다른 문화권이라고 해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우리집을 들락 날락 거리면서... 한 번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저렇게 표를 내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전 선교지에서 마냥 사람들을 섬기고 감싸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즈음...우리의 호의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기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 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하던 때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면서 선교지에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카자흐스탄으로 간 첫 해...2001년 겨울에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세르게이와 우리의 불화(?)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한 두 달 후...다시 예전처럼 돌아갔지요. 늘 교회에서 만나야만 하는 우린 자연스럽게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고 ...전보다 훨씬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수요 성경 공부에 세르게이가 정기적으로 출석하게 된 것도 이 때 즈음이었습니다. 세르게이는 수요일 오후에 항상 우리 집에 들러 저와 함께 교회가 열리는 미술관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물론 짧은 한국어 수업을 계속하면서...

그리고 2002년에 들어서면서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젊은이들에게 큰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2002년 첫 주부터 소그룹 모임인 '젊은이들의 모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주일학교의 역할을 하는 이 모임을 통해 교회에 처음 나온 대부분의 학생들과 인간적인 유대감을 다지면서 복음의 기초 내용과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로 했는데 이 모임의 인도자는 바로 저 였습니다.

전 이 모임에서 러시아어로 번역된 한국의 복음송이나 공동체 게임을 소개했고 집으로 초대하거나 성가대 연습 등을 하며 세르게이를 포함한 현지 학생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해 여름에 있었던 바라보예에서의 3박 4일 수련회는 장로교회 학생들과 선교사가 서로의 진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큰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마냥 놀기만 했던 이 수련회를 통해 참석한 학생들은 한국에서 온 이 사람들이 정말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고...하나님은 그 열린 맘을 통해 자신의 일을 진행시키셨습니다. 1년 후 결국 그 수련회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말하는 세례 교인들이 장로교회에 3-4명씩 세워지게 됩니다.

세르게이를 포함한 장로교회의 학생들 중 몇몇은 이제 세례도 받고 정기적으로 선교사님 집에서 기도회와 성경 공부도 하며 믿음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젊은이들의 모임은 세르게이와 자밀라, 까밀라 이렇게 세 사람이 조장이 되어 성경 공부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이 세 아이들은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미래의 지도자들이라고 얘기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찬양을 가르쳐 주는 제게 학생들의 믿음 성장을 위해 필요한 자료가 있는지 물어 보기도 하고 배우기 원하는 한국 곡을 흥얼거려 주기도 합니다. 러시아 가사로 번역해 적는 역할도 이들의 몫이지요.

게다가 세르게이는 2003년부터 예배 시간에 설교 통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통역을 하시던 김 유리 선생님이 알마티로 가시는 바람에 선교사의 한국어 설교를 이곳 사람들의 언어인 러시아어로 통역하는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2년 전 한국어를 배우겠다며 한글 교실에 기웃거리던 학생이 이젠 선교지 교회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이렇게 놀랍습니다. 세르게이를 옆에서 지켜 본 저로선 누구보다 놀랍기만 합니다. 그의 이런 변화에는 선교사님이 쏟으신 열정이 있었음은 말 안해도 아시겠지요?

해외 선교사의 최대 목표는 제대로 된 현지인 지도자 한 명을 양성해 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많은 사람을 교회로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떠나고 난 뒤 그 교회에 남아 있는 신자들이 제대로 없다면...특히 십자가를 지고 나갈 믿음의 지도자가 세워져 있지 않다면 그의 사역은 그야말로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세르게이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은 장로교회의 그루터기로 키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선교지 아스타나 라는 한계가 분명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선 선교사들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젊은이들끼리도 교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로 알지도 못하지요. 다른 교회의 청년 모임을 방문하고 서로의 비젼을 나누면 도움이 될 텐데도 '아직은 시기 상조다...'라는 염려와 여러 이유로 이런 일이 성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아스타나 UBF와 같이 다른 지방이나 다른 국가의 크리스챤들과의 연합 집회에 자주 참석하는 그룹의 학생들은 믿음의 성장도 빠르고 훨씬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리더 중 하나인 '자밀라'는 한국의 찬양 모습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로 찬양 인도를 시작하고 어떤 모습으로 찬양을 하는지 무척 궁금해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 생활 만으로도 큰 위로와 도전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카자흐스탄에선 개신교인들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소수이자 약자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선교사님 역시 현지인 리더로 하여금 더 넓은 세상과 특별한 체험을 갖도록 하는 일이 중요함을 공감하고 계셨고 저희 가정이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장로교회의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일을 추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매년 많은 돈을 들여 많은 사람들이 선교지를 찾습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복음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니라 바로 현지인 지도자들인 점을 간과할 순 없습니다. 

그들을 한국으로 불러 들여 우리의 사랑을 보여 주고 우리의 섬김을 경험하도록 만들며 그가 영접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값진 보석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면...어려운 선교 현장에서 그들에게 또 다른 힘과 용기를 되어 줄 것이 분명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축복하며 카자흐스탄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이 아이들을 불러다가 국내의 대형 교회들을 돌아 보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작고 어려운 교회들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앉아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고 새벽마다 열리는 새벽기도회에 대해 알려 주고 싶습니다. 다양한 주일 학교 활동들과 토요일에 준비되는 찬양팀의 모습...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위해 상을 차려 주고 기도해 줄 믿음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선교사님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현지인 청년 리더 중에서 누굴 가장 먼저 초청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던 제 메일에 대한 답장이었습니다.

"......이 선생님 멜 받고서 기도하고 답해 드린다고 했었는데, 이제서야 결정을 했습니다. 세르게이를 먼저 보낼 것인가? 아니면 쌍둥이 자매를 보낼 것인가에 대하여 많이 기도하며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장,단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자매를 보내면, 한국교회의 찬양이나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담아오는데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한국교회에 더 도전이 될 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확실한 것은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지만) 그러나 선교 현장에서 장기 지속적으로 후진을 양성하여 나가는 측면에서는 세르게이를 보냄이 더 옳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기의 진로를 확실하게 결정하고 누구보다도 충성되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준비하는 그를 격려하는 것 또한 저희 교회가 해야할 책임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 세르게이는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꿈나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자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다른 교우들에게도 그를 통해서 새로운 신선감과 기대를 줄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여기 학생들로 말하면 만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을 수 있기에 그가 먼저 다녀온다면 여러 가지로 유리할 것 같습니다. 그가 다녀오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까밀라. 자미라가 그를 대신해서 나를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그의 공백을 충실히 대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중략)"

결국 세르게이가 먼저 오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전...제가 카자흐스탄으로 나가지 않는 해에는 카자흐스탄의 현지인 리더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일을 지속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세르게이를 위한 비자, 여권 작업을 진행하고 그의 국내 일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진행할 수 있도록 문을 여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맘에 소원을 주심으로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그 하나님께서 세르게이 뿐 아니라 우리 가정에게도 또 하나의 도전과 은혜를 준비하시고 계심을 봅니다. 또 아스타나와 한국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열심이 보여지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카자흐스탄을 향한 마음이 식지 않도록 인도하시고 우리 가정이 처한 어려운 현실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참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 가정으로 하여금 카자흐스탄을 기억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아스타나 중앙 시장 앞 입니다.

형민이 뒤로 보이는 중앙 모스크는 이곳 이슬람의 상징입니다.

어떻게 우리 가족을 이 곳에 살도록 하셨고...또 어떻게 이런 맘이 들도록 하시는지...이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세르게이의 방문을 앞두고 더욱 기도합니다. 초청에 필요한 경비와 세르게이의 출입국 작업, 체류 일정 등에 대한 하나님의 세밀하신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무엇보다 이 일이 제 개인의 공명심에서 추진되는 일이 아니라 열방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 보여지는 작업이 되길 간구합니다. 기도해 주세요.

오늘도 세르게이를 공항 입국장에서 만나는 날을 그려 봅니다. 얼마나 반가울까...

한국에서 만나게 된다면 아스타나에서 그렇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 하나씩 다 보여 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그 곳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