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졸업식이 한창 열리는 시기입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고 1 학생들을 맡다 보니 최근 몇 몇 중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식장에는 언제나 한 과정을 넘어가는 비장함과 아쉬움이 서려 있습니다. 저는... 이 진지하고 엄숙한 단 한 번 뿐인 시간이 좋습니다. 상장 전달식의 긴 과정과 교장 선생님의 얘기를 듣는 시간 내내 학부모들 틈에서 서서 그 옛날 저의 중학교 졸업식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내 삶이 어떻게 굽이 굽이 돌아 왔는가를 들춰 볼 수 있었던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졸업식장의 학생들은 꽃다발을 손에 들고 정들었던 친구들과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교정을 총총히 빠져 나가지만 전 쉽게 그 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졸업생들 앞에는 미래를 위한 준비의 시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웬지 내 삶은 그들보다 훨씬 더 임박한 상황에 놓여 있고 무거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겐 아내와 세 아이가 있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떠나 한국에 들어올 무렵 우리 가정은 또 하나의 비젼을 품었습니다. 그건 2년 반의 카자흐스탄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시고 훈련 시키셨던 일로...언젠가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와 기독 의료 기관을 세우고 전문인 선교사로 살아 가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꿈은 참 다양합니다. 저 역시 꼭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지역 교회 내에서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싶고 찬양이나 의료 같은 달란트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말보다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꼭 살아 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한국 땅을 떠나 카자흐스탄에서 가졌던 경험은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한 경험과 소명을 주셨다고 확신하도록 인도했고, 훗날 카자흐스탄에서의 의료 사역도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한국에 들어온 뒤의 상황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웠습니다. 가족에게 서 준 보증으로 인해 빚어진 경제적 문제와 그로 인한 갈등, 교회 이동 등의 문제로 예전의 비젼을 꺼내기조차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3달이 지나서야 카자흐스탄에서의 사진도 정리하고 홈페이지의 카자흐스탄 관련 자료들을 업데이트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동안은 무척 힘들었던 시간이었나 봅니다.

하나님만 바라 보고 살고 싶은 성도의 삶이 왜 이리도 고달픈 걸까? 왜 이런 일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우리 삶을 흔들어 놓는 걸까? 물론... 정말 큰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다른 분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상황은 참으로 가소로운 투정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제겐 심각한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성도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우리로 이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채워 주시는 은혜인 것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설교의 주제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설교자의 말 한 마디가 내 맘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원래 고난의 길, 순교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모여 앉아 우리가 좋아하는 설교와 찬송만 부르는 행복한 시간만 가지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가야 하고 이 때 필연적으로 괴로움과 긴장을 직면하게 됩니다.""

물론 이 설교는 전도와 선교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었지만... '성도의 삶의 본질이 고난의 길, 순교자의 삶'이라는 잘 알려진  이 말 하나가 이 날 내 맘 깊숙이 와 닿았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가정이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내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가 보증 서 준 분이 채무를 불이행함으로 인해서 애매하게 받는 일이라는 단편적인 오해에서 기인하기 보다는 '성도의 삶 자체는 원래 모든 영역 속에서 고난을 지고 가도록 되어 있다'는 진술에 고개가 끄덕여졌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불순종과 범죄로 가득찬 세상을 가슴을 품고 중보해야 하는 영적 부담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우리를 성결케 하기 위해 주시는 징계를 감사히 받아야 하며 바울에게 주신 '육체의 가시'처럼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허락되는 수 많은 괴로움들을 감수하는 사람들입니다. 금을 단련하듯이 주시는 연단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성도가 거룩한 고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고 있고 따라서... 천국 백성은 그야말로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긍휼이 여기는 자' 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어려움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십자가의 고난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고 감사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요.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귀국 이후...이런 은혜의 말씀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우리 가정을 찾아 와 위로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일들을 거치면서 현실적인 걱정과 염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여 주신 비젼을 품고 열심히 달려 가리라는 결심이 더욱 굳어져 갑니다. 비록 괴롭고 쓰린 일들이 모두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고난은 우리와 함께 길을 떠나야 할 동반자이니까요...

카자흐스탄을 품고 있는 저는... 이 일을 위해 몇 가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속적으로 러시아어를 익히는 일입니다. 카자흐스탄은 독립 이후 카자흐어를 공식어로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러시아어가 가장 효과적인 의사 소통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자흐인조차 카자흐어에 서툰데다가 45%에 달하는 비 카자흐 민족들은 카자흐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탓에 러시아어야말로 현실적으로 유일한 공용어인 셈입니다. 그래서 전...카자흐스탄에서 삶을 나누고 병자를 돌보고 복음을 전할 때를 대비해 지금도 러시아어를 집중적으로 계속 공부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제 책장에 꽂힌 러시아어 학습 서적들입니다. 이 중 한국말로 적히지 않은 것들은 모두 러시아나 카자흐스탄에서 나온 현지 학습서들입니다.

한국에 온지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러시아 책을 손에 쥐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현지에서 얻은 언어 감각이나 뉘앙스들은 몸에 남아 있었습니다. 러시아어 테이프를 계속 들으며 발음, 단어, 표현 등을 반복하고 넓혀 나갔습니다.

이해하실진 모르겠지만... 카자흐스탄에 사는 동안 영어의 중요성도 계속 느꼈습니다. 현지인 중 지식인 층은 외국인인 저를 대할 때마다 으례히 영어로 질문해 왔고 실제 각 나라에서 온 선교사들 모임이나 영어권 선교사들을 만나거나 진료할 때에도 영어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 2외국어인 러시아어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를 잘 할 때에야만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는 사실이 더 빛날 거라는 조언도 해 주셨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전...영어보다는 러시아어에 더 애착이 갑니다. 러시아어에서 느끼는 생생함과 절박함을 영어에선 느낄 수 없습니다. 아마 그건...지난 2년 반 동안 러시아어 문화권에서 그들과 웃고 대화하고 진료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살았기 때문이겠지요. 한국에 들어온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 EBS에선가 러시아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방영된지 있었는데...그 때 화면에 나온 푸틴 대통령의 얘기가 얼마나 반갑게 와 닿던지...자막이 아니라 그의 음성으로 듣는 러시아어는 마치 고향 소식을 전해 듣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느낌표 라는 프로에서 고려인들이 러시아어 하는 걸 들어도 그렇지요...)

물론...나중에 해외 선교사로 나가게 된다면 영어를 보완해야 하기에 영어를 공부해야 하겠지만 제가 가야 할 곳이 카자흐스탄인 이상 그 곳에 사는 일반 사람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러시아어에 열정을 쏟고 싶습니다.

 한국에 와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는데 있어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교육방송(EBS) 라디오의 러시아어 회화 프로그램입니다. 마땅히 시간을 내어 학원이나 청강을 하러 다니기 힘든 상황에서 EBS의 러시아어 회화 방송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입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에도 약 2년 간 러시아어 가정 교사를 두고 1:1 공부를 해 왔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어로 러시아어를 배웠던 탓에 구름 잡는 것 같은 순간이 많았었지요. 그러다가 한국말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EBS 러시아어 회화를 듣고 있자니 정말 이게 천국인가 싶습니다.

인터넷을 통하면 2002년부터 진행되어온 러시아어 회화 방송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는데 교재를 들여다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본문 내용의 대부분을 거의 알아 들을 수 있다는 즐거움 때문에 더 열심을 내게 됩니다.

EBS에 회원 가입 후 월 1천원만 지불하면 몇 번이라도 지금까지의 방송 내용들을 들을 수 있는 이 인터넷 사이트가 저 같이 방송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모릅니다.

EBS 러시아어 교재의 장점은 생생하고 살아있는 소재들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시험, 비자, 출장, 대출, 설날, 형제, 우주비행, 테러, 날씨, 여가, 광고, 직장, 운전, 소설...등 다양한 소재가 현대적 감각의 문장으로 소개되어 있어 비슷한 내용으로 일관된 다른 대부분의 교재들보다 신선하고 활용도가 높습니다. 실제 대화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시사적인 단어들도 많지요. (너무 광고하는 것 같지요?)

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환자가 없는 틈을 타서 러시아어 테이프를 듣고 중얼거립니다. 간혹 주변 사람들이 뭐냐고 물어 보면 싱긋이 웃으며 테이프를 보여 주며 제 꿈을 얘기해 주곤 하지요.

일반적으로 해외 선교사가 선교지에 도착하면 2년 동안 언어 훈련 기간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이 기간 동안에는 절대로 다른 사역을 못하게 하고 오직 언어 공부에만 집중하게 하는데 대부분 선교 단체가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지내는 동안 장기 사역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나 그 동안의 사역을 회고하는 선교사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었는데..."만일 다시 이 곳에 막 파송받았다고 가정한다면 무슨 일을 가장 중요시하겠느냐?" 라는 질문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언어 공부" 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만큼 장기 선교 활동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현지어' 가 중요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아무리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 법...지금은 그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그 날을 준비하며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카자흐스탄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또 다른 일은 지속적으로 카자흐스탄을 왕래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내용은 주로 단기 의료 선교활동이 되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팀과 연계해서 움직일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2년에 한 번 정도는 카자흐스탄을 제 개인적으로라도 방문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올해는 카자흐스탄에서 알 게 된 현지인 리더를 초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의 경우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사는 동안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고 그 가운데 ...새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몇몇 신실한 현지인 청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척박한 기독교 문화 속에서 꿋꿋하게 선교지 교회의 젊은이 그룹을 이루고 있지만 더 많이 배워야 할 막 거듭난 영혼들입니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이런 젊은이들이 더 배우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환경을 찾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도시 내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선교사들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마저도 한 자리에 모여 찬양하고 예배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으로 나가 연합 수련회를 하는 몇몇 단체를 제외하고는 먼저 믿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 도전받을 기회 조차 많지 않은 게 사실이죠.

언젠가 예배 전 찬양을 함께 하던 자밀라 라는 여학생이 제게 물어 왔습니다. "선생님...한국에선 찬양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얘기를 하나요?" 이들에겐 수 많은 찬양과 율동곡을 가지고 들어오는 한국의 단기팀들을 보며 한국의 예배 생활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왼쪽 사진은 지난 2002년 여름 수련회 때의 현지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문을 연지 1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떠난 수련회였지요.

그 때만 해도 이 사진에 보이는 아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생들이지었지요.

하지만 지금은...두째 줄에 안경을 낀 두 자매와 지금 바로 당신을 바라 보고 있는 형제를 포함한 많은 현지인 청년들이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사랑과 양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들을 섬기고 안아 줄 멘토가 한국에서...카자흐스탄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한국의 신자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는지 보여 주고 싶은 맘이 있습니다. 큰 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의 생활을 보여 주고 싶고 한국의 젊은이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싶습니다. 다행히 아스타나 장로교회에는 한글 교실이 개설되어 있어 이들도 한 두마디의 한국어는 알아 듣거든요...단언할 순 없지만...올해는 카자흐스탄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일을 추진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올 5월 1일부터 부산대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는 소화기 내과 생활도 앞으로 카자흐스탄에서 펼치게 될 소화기 분야 의료 활동에 좋은 밑거름을 제공하리라 확신합니다. 제가 배울 수 있을 만큼 배우고 익히고 싶습니다.

왼쪽 사진은 형민이와 시은이가 목욕하는 모습입니다.

이 둘은 카자흐스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형민이는 무려 2년 반, 시은이는 8개월이나 지냈습니다.

이 두 아이가 자라고 나면 꼭 카자흐스탄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아빠의 꿈을 얘기해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빠가 이런 맘을 갖게 되었던 카자흐스탄에서의 생활이 담긴 비디오를 함께 보며 두 아이의 어린 시절에 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겨 보고 싶습니다.

세 아이 중 하나가 훗날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해서 카자흐스탄에서 일하고 있을 아빠를 통역으로 도울 수도 있고 세 아이 중 하나가 직업으로나 재능적으로 아빠의 사역을 도울 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런 일들을 미리 그려 보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인생 역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법이기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라기보다는 그냥 묵묵히 제가 걷는 길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하나 뿐인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성공적인 인생이란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사명을 버리지 않고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수행할 때 얻어지는 것이니까요.   2004.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