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때

갑자기 셋째 아이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적응이 필요했던 일이었습니다. 분만을 마치고 5층의 입원실에 누워 있는 선화를 보면서도 우리의 세 번째 아기가 신생아실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예상은 하면서도 막연히 떠 올려 보기만 했던 셋째 아이를 실제 품에 안고 병원을 나온 때는 출산 후 아직 만 3일이 되지 않은... 1월 17일 토요일 오후 1시 경이었습니다. 퇴원 수속을 마친 제 손에는 두 장의 퇴원 확인서가 들려 있었는데 하나는 산모인 선화가 516호실에서 퇴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기가 신생아실에서 퇴원하는데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세 번째인 신생아 관련 주의 사항을 신생아실 간호사로부터 다시 들으며 쳐다 본 아기의 얼굴에는 아직도 황달기가 많이 남아 있었고 검붉은 기운이 감돕니다.

부산대학병원 5층의 모습입니다. 분홍빛 커텐이 쳐진 곳이 신생아실이고 선화 뒤로 보이는 곳이 분만실이 있는 곳이죠.

이로써 우리는 삼남매 모두를 부산대학병원에서 출산했다는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저와 선화의 이전 근무처였다는 사실 외에도 우리 가정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소가 된 셈입니다.

2004년 4월부터 다시 부산대학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는 저로선 제 인생의 특별한 무대가 되어 준 이곳에 대해 늘 감사한 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는 일이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형민이와 시은이를 돌보느라 셋째를 가지고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선화였기에 뱃 속에 있는 아기도 고된 태중 생활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민이나 시은이에 비해 더 검어 보이고 작았으니까요...

형민이 때처럼 가르마를 넘길 정도로 많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이 아이를 데리고 우린... 금새 양산의 집까지 달려 왔습니다. 이미 장모님이 미역국을 끓여 놓고 우릴 기다리고 계셨지요.

그리고...새로 태어난 아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으니...바로 첫째 형민이와 둘째 시은이었습니다.

형민이는 이미 시은이의 출생을 경험해 보았기에 아기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화의 둥근 배를 가리키며 몇 번씩이나 "이제 곧 아기(가) 나와(요)..." 라며 동생을 늘 기다려 왔습니다. 

누구보다 시은이의 성장에 기쁜 반응을 보였던 이가 바로 형민입니다. "어...아기 서 있네.아기 이제 잘 하네....", "어...엄마...아기 좀 보세요. 아기가 혼자 걸어가네..." 그런 형민이기에 조그만 아기가 자라 지금처럼 큰 시은이가 된다는 사실을 이미 깨우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형민이에게도 또 다른 동생의 출현은 약간은 어색하고 이상했나 봅니다. 침대에 뉘여진 아기를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는 형민이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기만 합니다.

아기를 무조건 만지려고 달려드는 시은이를 말려 가며 새로 태어난 동생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형민이의 이 모습이 바로 평생동안 남매의 정을 나누며 살아 갈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기록한 사진인 셈입니다.

제게도 여동생이 있습니다. 여동생과 4살이나 차이가 나는 전 여동생에게 젖을 먹이던 어머니의 모습이라던가 분유물을 끓이고 분유를 병에 넣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여동생이 태어나던 그 순간도 기억나는데...그 때 전 저희 집 마루에 앉아 삼촌들과 TV를 보고 있었습니다...여동생은 의사이신 할아버지가 집에서 받아 주셨거든요.

이제 다섯 살인 형민이도 저와 마찬가지로 이런 기억들을 평생 갖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형민이가 셋째를 바라 보는 모습이 제게는 그저 예사롭게 보이지만은 않았지요.

반면... 아직 13개월이 채 되지 않은 둘째 시은이의 반응은 그야 말로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지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자 말자 '또 다른 아기' 시은이는 손가락 하나로 아기 얼굴을 눌러 보기도 하고 아기 머리카락에 자기 입술을 대 보기도 하고 아기 눈을 찔러 보려고도 했습니다. (시은이가 사람에게서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부위가 눈이거든요. 그게 그렇게 신기한가 봅니다.)

황급히 형민이가 시은이를 제지하고 나서자 시은이는 자신의 행동이 차단 당하는게 분하고 억울한지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연년생 자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둘째 시은이는 새 아기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시은이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어제부터는 손가락으로 찌르는 행동은 하지 않고 자기 머리를 아기 옆에 살짝 기대는 행동만 보이는데 아기가 울더라도 형민이를 따라 안방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가 아기 옆에서 멀찌감지 지켜 보기만 하더군요. 그래도...아직 걷기만 할 뿐 사회 경험(?)이 전무한 시은이로선 형민이보다 동생을 받아 들이는 자세가 미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시은이의 과제인 셈이죠.

세 아이가 생기고 난 뒤로는 침대도 좁아졌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동안 Queen size의 큰 침대에다 카자흐스탄에서 사 온 아기 침대를 붙여 두 아이를 데리고 함께 자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 아기가 되면서부터는 한 침대에서 잘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왼쪽 사진에 나와 있는 대로입니다.

이 녀석들이 침대를 다 점령하고 아빠를 작은 방으로 쫓아 냈기 때문이지요.

사태가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 딱 이틀 쉬고 집으로 돌아온 선화의 산후 몸조리도 여간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첫째나 둘째도 아니고 셋째 아기인지라 위의 두 아이를 챙기기까지 해야 하는데...큰 일이었습니다. 시은이는 이제 겨우 돌이 지난 아기거든요....

우린 한 달 정도는 산후 도우미의 도움을 빌리기로 결정했고 산후 조리 센터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설날 연휴 전이라 선뜩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설날 연휴가 들어 있던 지난 한 주간 동안은 양가 부모님들이 고생을 해 주셨습니다. 남지에 계시는 어머니(형민이 할머니)께서 3일 정도 도와 주셨고 그 외 대부분의 시간들을 장모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며 신생아에게 수유를 해야 했고 청소며 미역국...형민이와 시은이까지 챙겨야 했지요.

다행히 설날 연휴가 마친 월요일부터 산후 도우미 한 분이 저희 집에 오고 있고 ...저 역시 시간을 내어 낮에도 아이를 봐 줄 수 있기에 세 아이와의 첫 출발은 이렇게 그럭저럭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산 후 일주일이 지나면서 선화의 몸이 점점 회복되고 있긴 하지만 세 아이와 함께 지내며 몸조리를 해야 하기에 부담스러운게 사실입니다. 하지만...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선화의 얼굴에는 기쁨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 생명에 대한 감사와 기대가 넘치기 때문이겠죠? (이번 셋째 아기의 수유는 초유만 짜서 먹이기로 하고 분유를 먹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시은이 때도 그랬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젖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요즘 새댁들의 특징이라나요?)

삼남매와 함께 시작된 일주일...새로 태어난 생명과의 첫 만남으로 인해 염려와 분주함 속에서도 기쁨이 메마르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2004.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