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기가 태어났어요

오늘...예정일보다 빨리 38주 6일 만에 셋째 아기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사실 셋째에게는 미안한 것이 많습니다. 임신 7개월이 지나 한국에 들어올 때까지 그 흔한 초음파 검사 한 번 안해봤고 기형아 검사니...피 검사도 다 생략했었으니까요... 첫째 때는 초산인데다 한국에 있었던 탓에 매달 초음파 검사도 하고 법석을 피웠지만 둘째, 셋째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지는 바람에 제대로 검사를 챙겨 보지도 못했고 이번 셋째 아기는 그야말로 임신 사실만 확인하고 한국에 들어온 셈입니다.

뱃 속에 꼼지락 거리는 셋째 아기를 품은 채 형민이와 시은이를 돌봐야 했던 선화의 어려움은 안 봐도 뻔한 일입니다. 남산 만한 배에다가 시은이를 등에 업고 형민이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서면 모두들 "아빠가 욕심이 많네..." 라며 절 쳐다 봤습니다.

셋째의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땐 선화나 저나 뜻 밖의 일이라 놀라고 당황스럽기도 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사로 다가 왔었는데... 특히 최근의 한국 생활을 통해 셋째의 임신, 한국으로의 조기 귀국 등의 일련의 행보들이 우리 가정과 집안을 세밀하게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된 손길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상당 부분이 한국에 와서야 깨달아 지는 것들이었습니다.

셋째 아기가 세상에 나올 출산 예정일은 1월 27일이었습니다. 둘째 때도 예정일에 딱 맞게 출산했던지라 우린 구정이 지나고 1월 마지막 주 쯤에야 출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번 주말에 집들이를 가지기로 하는 등 여러 일들을 계획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오늘 아침부터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뱃 속에서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오전부터 약한 통증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출산을 두고 가장 기적적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날... 이런 변화가 찾아 왔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 날은 제가 늘...울산으로 가서 업무를 보는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3일 전 갑자기 전화가 와서 이 날만 수요일로 업무를 바꾸자고 해서 이 날 해야 할 일을 수요일에 해 주고 왔었는데...바로 그 목요일에 선화에게서 산기가 느껴진 것이죠. 하루 종일 이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신기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만일 평소대로였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꽤나 복잡했을 텐데....이 사실 만으로도 이번 출산이 성공적으로 끝날 거라고 굳게 믿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예정일 훨씬 전에 미리 날을 잡아 놓으신 셈입니다.

선화는 침착한 자매입니다. 결혼하고 함께 살며 느끼는 것은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롭게 일을 처리한다는 점입니다. 전 늘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고 한꺼번에 일을 처리하는 편이라 선화의 이런 모습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선화는 형민이와 시은이를 외갓집으로 보내고 출산용품들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불규칙적인 진통 주기를 재어 보면서 집을 나서야 하는 순간을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20분 간격으로 진통이 찾아 왔습니다. 아직은 진통이라고 해봤자 5-6초 정도 아랫배가 틀어지는 것인지라 초조한 맘으로 서로를 쳐다 보며 웃기만 했습니다. 빨리 아기가 나왔으면 좋겠는데...그러려면 진통이 제대로 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두 시간 내내 미약한 진통만이 찾아올 뿐이었습니다. 6시가 넘어서자 자장면 하나를 시켜 저 혼자만 먹은 뒤 선화에게는 단무지 한 쪽만 먹여 줬지요. "지금 뭘 많이 먹으면 안 돼...."

"기왕 시작한 거...오늘 출산하면 좋은데..." 우린 이런 얘기를 나누며 거실에서 앉아 있다가 침대에서 눕기도 하며...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7시가 넘어서자 진통은 15분 간격으로 찾아 왔습니다. 8시가 되자 선화는 방울 토마토가 먹고 싶다며 혼자서 밖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집에 들어서자 말자 "토마토 하나만 먹고 출발합시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선화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지난 번 둘째 출산을 위해 병원으로 향했던 때와 진통의 주기와 강도가 비슷해졌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 방울 토마토가 맛있다며 몇 개씩 입 안에 넣는 선화를 말려 가며 자동차에 올랐습니다. 물론 집을 나서기 전 잠시 함께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진통은 5-7분 간격이었습니다. 지난 번 둘째 출산 시에는 이렇게 병원에 간 뒤 3시간 만에 시은이를 분만했는데...이번에도 쉽게 낳았으면 하는 맘으로 엑셀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양산-김해 간 고속도로를 지나 백양터널로 접어 들었습니다.

뒷 좌석에서 5분 간격으로 찾아 오는 진통 때문에 선화의 호흡음이 거칠어질 때마다 자동차의 속도는 더 빨라졌습니다. 양산 우리 집에서 부산 대학병원까지는 딱 50분 걸렸습니다. 부산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 10분... 차에서 내려서도 아직은 그렇게 배가 아프지 않다는게 선화의 말이었습니다. 응급실의 접수 확인증에는 '여자, 28세, 이선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선화는 아직 만 29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셈입니다. 응급실에서 선화를 본 산부인과 당직 선생님은 "벌써 4-6cm 정도 되네요..." 라고 얘기하며 분만실로 올라 가자고 얘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응급실에서 오면 기본적인 검사를 하는 법인데...얼마나 급했으면 흉부 X선 사진이나 심전도 검사 하나 없이 바로 분만실로 간 시간이 밤 9시 35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선화의 진통은 그리 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진통이 왔을 때는 인상이 심각해지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닌지라 함께 농담을 주고 받으며 분만실로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분만실에서 내진을 해 본 산부인과 선생님은 벌써 6-7cm 정도 자궁경부가 열려 있고 effacementeh 75%나 되어 있다며 분만실 간호사들에게 분만 준비를 어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선화야...괜찮나?" "예...참을 만 해요...이상하네요...별로 배가 안 아프네요...." 선화는 오히려 배가 아프지 않은 게 불안한가 봅니다. 부산대학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았다는 이유로 분만실에 들어가 선화의 손을 잡고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부산대학병원에서 세 아기 모두를 출산하는 셈입니다.

선화의 산전 진찰을 맡고 계셨던 김기형 교수님도 도착하셨고 분만실 조명에도 불이 들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사람들이 놀랐던 건... 분만의 빠른 진행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아기를 3시간 만에 분만했다는 얘기에 분만실의 의사나 간호사 모두 이번에도 빨리 출산할 거라는 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산모는 별로 통증을 호소하지도 않으면서 출산 일보 직전까지 빠른 속도로 달려 가고 있었습니다.

선화는 아프다는 소리를 한 번도 내지 않았습니다. 둘째 출산 때는 카자흐스탄에 떨어져 있었기에 이번에는 옆에 바짝 붙어 선화의 손을 오랫동안 잡아 주리라 마음 먹고 있을 때....옆에서 지켜보던 교수님이 이제 아기를 낳자고 하시며 진통이 오면 아래로 힘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화가 두 팔을 올려 침대 머리 부분을 잡고 힘을 딱 세 번 쓰고 나니 양막이 파열되고 아기의 머리가 완전히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급하게 분만대로 옮겨진 선화는 밤 10시 35분...그러니까 분만실에 온 지 딱 1시간 만에 건강한 딸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아기의 머리가 나왔을 때... 제 눈은 아기에게 향하고 있었고 온 몸이 빠져 나온 뒤 아기가 "아아앙..."하고 첫 울음을 터뜨릴 때 기쁨으로 아기가 내는 첫 소리를 들었습니다. 양수와 함께 아기가 빠져 나온 뒤 선화의 얼굴에서도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이제 드디어 셋째 아기가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선화는 늘 얘기했습니다. "아기를 낳을수록 이번에는 어떤 아기가 나올까 더 궁금해져요...형민이도 그렇고...시은이도 너무 귀엽잖아요..이번에는 어떤 아기가 나올까? 요즘은 새로 나올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지네요..."

세 아이...요즘 시대에는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이 셋째로 인해 함께 웃고 기뻐할 날들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새 생명으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만을 마치고 선화와 함께 분만실 한 쪽에 마련된 회복실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목요일 밤...항상 울산에서 지내야 했던 이 시간임에도 이틀 전 극적으로 날짜가 바뀌어져 이렇게 우리 부부가 함께 출산의 전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만실에 온 지 1시간만에 순산한 것도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얼마나 편하게 출산을 했으면 선화의 입에서 "하나도 안 아프고 아기를 낳았네요..."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왼쪽 사진은 태어난 지 1시간 만에 찍은 우리 셋째 아기의 모습입니다. 아직은 빛이 낯설은지...두 눈을 꼭 감고 울고 있습니다. 선화 말로는 시은이는 태어난 뒤의 모습이 자신을 닮았었는데...셋째는 아빠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네요.

둘째 시은이를 출산할 적에도 3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었지만 한 두 시간 정도는 너무 아팠었고 그 고통을 참느라 침대 옆의 벽을 팔로 너무 눌렀던 까닭에 집에 와서도 선화는 그 쪽 어깨가 늘 아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출산은 참을 만한 진통 뿐이었고 딱 세 번 힘 준 뒤로 아기가 나온 까닭에 체력을 소진하지도 않았고 몸이 축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신 것 때문이겠지요?

너무...너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만 직후 회복실에 있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양 손 엄지 손가락을 보시면 빨갛게 인주(도장밥)가 묻혀 있는 게 보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아기의 두 발과 엄마의 양 엄지 손가락으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분만실로 옮겨졌는데....약한 진통이 규칙적으로 온다고 한 건 겨우 저녁 8시 정도였는데...그 때부터 친다고 해도 불과 두 시간만에 아기를 출산하게 되어 선화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흐릅니다. "이제 이렇게 찍는 사진도 마지막이지요?"

아기를 많이 낳을수록 출산 전의 진통은 줄어 들고 출산 후의 진통이 심해진다고들 얘기합니다. 출산 후 자궁의 수축력이 다산부일수록 강하기 때문입니다. 선화의 경우도 시은이 때보다 출산 후 진통이 더 강하다고 합니다. 회복실에서 약 2시간 가량 누워 있은 뒤 수액을 떼고 병실로 옮겨 졌습니다.

지금 선화는 부산대학병원 516호에 누워 있습니다.

우린 이렇게 앉아... 미역국에 넣을 쇠고기 걱정을 했습니다. 광우병이 한창인데...혹시나 가짜 한우를 사면 어쩌냐는 거지요. 하지만 출산 후에는 미역국을 먹는게 가장 좋고... 조개를 넣는 것보다는 쇠고기를 넣는게 더 좋기에... 맛있는 한우 양지를 알아 보기로 했습니다.

결혼 전 선화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간호학과 1학년때의 모습..함께 기독학생회 일을 하던 2학년 때의 모습...갓 병원에 들어왔던 신입 간호사 시절...그리고 가슴 설레이던 연애 시절의 모습...

결혼한 지 5년 째지만 세 아이를 출산하는라 늘 배가 불러 있던 선화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항상 임신 중인 선화' 로 기억할 정도니까요... 이제부터 6개월 간의 산욕기를 잘 거쳐 선화가 다시 가벼운 몸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국면을 맞는 선화의 삶과 꿈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겁니다.

오늘 하루 종일 형민이와 시은이는 외갓집에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셋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두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가 됩니다. 안방 침대에 다섯 명이 가지런히 누워 자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습구요...

이제 다시 병원으로 가야 겠습니다. 이 글을 위해 잠시 집에 왔었습니다. 셋째 아기를 출산했던 과정은 앞 선 두 아이 때보다 훨씬 짧았던 에피소드였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욱 감격적인 시간이었습니다.  200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