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길

모두가 잠든 밤입니다. 오늘 따라 유달리 밤 늦게까지 놀았던 시은이도 이제서야 침대 위에서 엎드려져 자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달부터 아빠, 엄마의 침대에서 독립한 뒤 다른 침대(같은 안방 내)에서 자기 시작한 형민이도 아기 천사마냥 쌔근쌔근 소리를 내며 자고 있습니다. 임신 38주를 바라보는 선화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치뤄야 했던 전쟁이 힘겨웠나 봅니다. 치근대는 시은이를 재우느라 옆에 누웠던 게 그만 깊은 잠으로 빠져 들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자고 나면 집 안은 정적 속에 잠깁니다. 13층 아파트 거실 밖으로 보이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는 호포에서 양산으로 올라오는 좁은 도로를 따라 이어진 자동차의 불빛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돌아 오는 사람이 있나 봅니다.

오늘 시은이가 먹었던 분유병을 모두 모아 젖병 세정제로 깨끗이 씻은 뒤 정리해 두고... 주전자에 다시 물을 한가득 끓인 뒤 보리차를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안방에 놓인 가습기에도 다시 물을 가득 받아 놓습니다. 오랜만에 주어지는 조용한 시간입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2003년을 시작하는 모임을 아스타나의 선교사님 댁에 모여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양산에서 새로운 한 해를 맞고 있다니....아직도 실감이 잘 나지 않습니다. 드라마와 같았던 카자흐스탄에서의 특별한 삶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던 저로선 이렇게 아무 소리 없이...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2003년에서 2004년으로 시간이 넘어가는 있는 것이 낯설고 이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이 밤...혼자 거실을 맴돌며 드는 생각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 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돌이켜 보면... 카자흐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시간까지도 우리 가정이 양산에서 살게 될 거라는 것이나 지난 30년간 몸 담았던 모교회를 떠나 양산의 어떤 교회에 출석하게 될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할 일들이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부산에서 살면서 서부산교회에 출석할 거라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모든 계획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딪혀야 했던 수 많은 상황들로 인해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상황들이었는지는 당사자도 있는지라 상세하게 적을 수 없고 다만.... 제가 카자흐스탄에 있는 동안 한국에 남아 있던 저희 집안에 경제적 붕괴가 발생하게 되어 제 처지가 많은 빚을 짊어진 신용불량자로 변해 있더라는 것으로 요약하겠습니다.

한국에 온 직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 다녀야 했고 이로 인한 마음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집도 구해야 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화에게 미안하기만 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 교회 안팎의 상황들이 우리를 더욱 누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하나님의 손길은 그 어려움 속에서 저와 우리 가정을 강하게 붙드셨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그 분의 방법으로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마치 우리 가정을 카자흐스탄으로 보내셨던 것 처럼...

2004년이 시작되는 지금...귀국 후 지난 2개월 간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적어 봅니다.

1. 하나님은 해결하시고 계십니다. 선화와 저는 1999년...신혼 시절부터 넉넉하지 않은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고비때마다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 들었지만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적절한 순간에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 주셨지요.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까마귀 은혜'를 만끽하며 스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2000년의 선화의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세요) 그야 말로 하나님의 구체적인 손길을 느끼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 맘에 거하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사라져선 안된다는 생각을 우리 부부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조그마한 어려움에 우리의 평안이 쉽게 흔들린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지... 물질을 신뢰하는지... 하나님은 우리를 자주 재어 보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기에 어려움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회복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돌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신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쳐올 때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강하게 역사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겸손하고 회개하는 맘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고 누구보다 우리 부부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2004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는 31평이나 되는 큰 아파트에서 두 아이와 함께 그 어떤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귀국 직후 가졌던 염려들은 봄날에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가스렌지에는 물이 끓고 있고 세탁기도 돌아가고 매 끼니마다 싱싱한 생선이 올라 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은 이번에도 때를 따라 돕는 손길로 우리의 빈 틈을 메우셨습니다. 우리 입으로 물질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잃을 수 없다고 기도하고 고백할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만난 것도...지금 우리가 적절한 수입을 유지하는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의 손길 덕분입니다. 얼마나 그 손길이 절묘한지...정말 기 막히는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뼈에 사무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 주시려고 시련을 주신다는 것을... 설사 회복의 시간이 금방 깃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환난의 시기 속에서 자기를 돌아 보고 전적인 의탁과 순종을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위로하실 거라는 것을...

카자흐스탄에서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맛 봤던 우리 가정으로선 그 분이 시련의 길로 이끄실 때마다 감사하며 따라 가게 됩니다.

2. 한국에서 새로 정착하게 된 곳이 양산이라는 사실도 요즘 들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와 닿습니다. 만일 우리 가정이 바로 대도시 부산에서 살았더라면 이번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조기에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산은 산도 있고 냇물도 있고 논밭도 있고 배추밭이나 빈터도 여기 저기에 보이는 시골 풍경이 있는 곳입니다. 특히 저희가 살고 있는 석산 지역은 양산에서도 부산쪽으로 난 외곽 지역에 해당되기에 공기도 좋고 눈 앞에 보이는 경치가 여유롭기만 합니다.

이 사실은 카자흐스탄에서 2년 반동안 살다 온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불과 몇 발자국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는 양산 시장은 우리에겐 마치 아스타나의 도심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고 시골 마을과 같은 여유로운 모습 속에서 대도시에서 지냈더라면 느꼈을 법한 문화적 역충격을 피하며 연착륙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양산이라는 도시에도 무척 정이 갑니다. 물론 저는 변치 않는 부산 갈매기지만....

3.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양산 교회로 우리 가정을 인도하신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선포하는 겸손한 목회자의 존재도 그렇지만 교회를 섬기는 참 청지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겐 큰 축복이었습니다. 지난 30년 간 전....100명 정도의 작은 교회에서 내 힘으로 무엇을 해 볼 것인양 교회 내의 주요 직분을 맡아 힘든 봉사를 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체계적인 교회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훌륭한 교회 내의 선배들을 많이 만나지도 못한 채 드러난 바닥을 퍼 올리는 일에 지쳤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1-3부 통틀어 750명 정도 되는 대형(?) 양산 교회로 온 뒤 내 모습이 얼마나 빈약하고 말 뿐인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석 첫 주, 저희 가정의 바나바 사역자로 섬겨 주신 이광용 집사님 내외... 학생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려는 중고등부 조원태 선생님의 모습은 내게 특별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양산교회 나간 지 두 달도 안 되지만 곳곳에서 참 성도의 모습과 마음을 풍기시는 분들의 모습이 볼 수 있었고 다양한 교회 내 사역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도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예배를 드린 뒤 바로 교회를 결정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출석 한 달 만에 고등부 교사로 지원하고 전입 집사로 양산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우리 가정이 양산 교회를 얼마나 좋게 생각하고 있으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대로 뿌리 내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완전한 지역 교회는 어디에도 없지만 한국에서의 새로운 교회 생활을 하게 된 이 곳에서 제가 좀 더 성숙하게 자라가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 가정은 양산에서 2년 정도 지내다 다시 부산으로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 때가 되면 부산 어디로 가게 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근무하게 될 근무지와 교회를 배려해서 이사하게 될 것 같은데 근무지도... 교회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 지난 30년 간 함께 해 온 모교회인 서부산교회를 잊을 수 없고 부산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서부산교회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도 마음 한 구석에 있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당장 지난 수개월만 보더라도 내가 세운 수많은 계획들은 다 무너지고 하나님의 방법과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으니 앞으로의 내  인생 계획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길 뿐입니다. 분명히 지금처럼 이끄실 것이라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바로 지금... 우리 가정을 양산 교회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곳에서 훈련 받고 배우고 섬기며 성장하는 것...나의 인생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과정인 셈입니다.

시간이 벌써 새벽 3시가 되어 갑니다. 다가오는 2004년...내게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올 해는 4월 중순부터 부산대학교병원 소화기 내과 전임의 생활을 시작할 계획만 잡혀 있습니다. 5년간의 인턴, 레지던트 생활 이후 3년 간의 국제협력의사를 거친 뒤 다시 부산대학교 병원으로 들어 가는 셈입니다. 다시 겪게 되는 힘겨운 생활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내 맘에 평안이 넘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붙드셨던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