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선린병원을 다녀와서

선화의 배가 불러 옵니다. 다음 달 중순이 출산 예정일인지라 어느 때보다 더 불러 보이는 요즘이지만 오늘도 두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시장을 다녀 왔습니다. 빽빽하게 들어 선 점포의 불빛과 펼쳐진 노점상의 행렬 속에서 아직도 꿈만 같은 한국 시장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이 곳, '양산 남부 시장'은 작은 도로를 끼고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라 생활에 필요한 것이 모든 것을 몇 발자국 안에서 다 구할 수 있는 편리한 곳입니다. 쇼핑을 위해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는 걸 싫어하는(?) 저로선 양산 시장이야말로 제게 딱 맞는 쇼핑 공간인 것 같습니다. 우린 두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걸으며 점포마다 노점상마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상품들을 바라 보며 한국의 풍요로움에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저것 좀 봐....저렇게 많이 올려 놓고 팔고 있네..."

"이것 좀 보세요. 이게 고작 1000원밖에 안 해요...."

선화나 저나 시장에만 나가면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지난 수요일, 포항 선린병원을 다녀 왔습니다. 포항 선린병원에는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선배이면서 국제협력의사로서 저보다 먼저 베트남을 다녀오신 신원혁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제게 전화를 주신 분이 바로 신원혁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말자 바로 연락을 주셨는데 그 때 선린병원을 꼭 한 번 방문해 줄 것을 얘기하셨습니다. 하지만 적응과 이사 등으로 정신 없이 지내야 했고 지난 주가 되서야 시은이는 처가집에 맡겨 두고 형민이만 데리고 포항행 시외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포항 선린병원에 관한 얘기는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2003년 5월 경, 포항 선린병원에 계시다는 의사 선생님들로부터 카자흐스탄으로 의료 선교를 오겠다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국제협력의사 출신 의사가 3명이나 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과 병원 전체가 특별한 비젼을 나누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선교사님에게서 빌려 본 '월간 고신'(교단 잡지) 에 고정적으로 실리는 의료 정보 코너에 한동대학교 부속 선린병원장 명의로 늘 올려지고 있는 글을 보면서 포항 선린병원에 뭔가 큰 변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외래 진료가 마치는 오후 5시 경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양산에서 경주를 거쳐 포항까지 오는 데는 2시간 가량 걸리더군요.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선린 병원에 접근했을 때 언뜻 눈에 들어 온 건물은 그리 크지 않은 준종합 병원급 정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을 돌아 병원 앞으로 들어서니 병원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병상 수도 550 병상이나 되는 큰 병원이더군요.

선린병원은 지난 1957년에 세워진 선린의원에서 출발합니다. 6.25 이후 어려운 사회 환경 속에서 지역 의료 사업을 펼쳐 온 이 병원은 지난 1997년에 설립자가 전격적으로 포항 한동대학에 병원을 무상으로 기증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무상 기증의 이유는 평생의 마지막 소원인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기독 의사를 길러 낼 수 있는 의과 대학을 건립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병원이 한동대학으로 기증된 뒤 전국 각지에서 참다운 선교병원을 꿈꾸던 젊은 의사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특별히 의료 선교를 마음에 품고 있던 기독 의사들에게는 그 어떤 곳보다 꿈을 펼치기 좋은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린병원은 한국 최초의 '선교 기지 병원'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선교 기지 병원(Mission Centered Hospital)이란 의료 선교의 전진 기지, 베이스 캠프가 되는 병원을 말하는데 전 직원이 비거주 단기 의료선교사로 훈련받는 선교공동체가 되어 다양한 직종의 의료 선교사들을 훈련하고 장단기 의료선교팀을 파송함으로써 세계 선교의 효율성을 높이고 연합과 협력사역을 통해 전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는 선교병원으로 세워진 많은 다른 병원들이 있지만 초창기의 의도는 퇴색된 채 이름만 기독병원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의료 선교 활동을 펼치고 해외에서 활동한 의료 선교사들이 국내에 들어와 활동할 수 있는 베이스 캠프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목표는 듣기만 해도 신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선린병원은 2002년과 2003년 각각 8차례나 해외 단기 의료선교 활동을 다녀 왔고 우리가 찾아 뵌 신원혁 선생님 역시 지난 토요일(12월 13일) 인터콥 의료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떠날 예정이셨습니다. 이렇게 신원혁 선생님이 진료실을 비우고 해외 의료팀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병원 자체가 선교 활동을 위해 서로 환자를 맡아 주고 챙겨주는 시스템 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병원은 하루의 시작을 직원 모두가 모여 드리는 8시 반 직원 예배로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병원에서는 기독교인이 아닌 소수(이전부터 있던 직원 몇 사람)의 직원들이 오히려 소수가 느끼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고 이들 중에서 단기 의료 선교활동이나 여러 활동을 통해 교회에 출석하게 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의사들이 이런 직원들과 함께 성경 공부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현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사 대다수가 크리스챤이고 주로 CCC 아가페 출신의 선생님들과 몇 몇 국제협력의사 출신의 선생님 그 밖의 CMF, 인터콥 같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셨습니다 .

병원 안으로 들어서자 호텔처럼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로비가 들어 왔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로비 한 쪽에 자리 잡은 '의료 선교 기념관' 이었는데 이곳에는 선린병원 초창기에 사용되어졌던 의료 및 사무 기기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고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 라는 글귀가 뚜렷한 현판이었습니다.

이 병원에 들어 서는 사람들은 로비에서부터 '이 병원이 표방하는 바'에 대해 확실하게 느낄 것 같았습니다. 선린 이라는 말도 '좋을 선','이웃 린' 자를 써서 '좋은 이웃'이라는 뜻인데 영어로는 'good samaritan(선한 사마리아인)' 으로 표기되더군요.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에서 따온 이름인 것이죠.

이 날 2층 내과 외래에서 진료를 막 마치신 신원혁 선생님을 만나 병원을 소개받은 뒤 신 선생님 댁에서 선린 병원에서 근무하는 국제협력의사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며 비젼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이 '의료 선교사로 나갈 것을 생각한다면 이 병원만큼 좋은 병원은 없다'고 자신있게 얘기하시더군요. 이 날 만나 뵌 분들은 모두 한결같이 같은 비젼을 붙잡고 한 병원에서 근무하며 선교하고 말씀 공부하며 가족처럼 지내는 이곳 생활에 크게 만족해 하고 계셨습니다.

신원혁 선생님이 막 카자흐스탄에서 귀국한 우리 가족을 이곳에 부르신 이유는 포항 선린병원과 같은 병원이 국내에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함께 동역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도 들어 있겠지요.

신원혁 선생님(사진)은 제가 국제협력의사로 지원하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부여해 주신 분이십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직전 당시 내과 전공의 2년 차이던 제게 국제협력의사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신 분이셨습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 호흡기 내과를 더 공부한 뒤 포항 선린병원으로 내려 와 평소에 품었던 뜻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는 신 선생님을 보면서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신 선생님 외에도 이곳에서 근무하는 많은 의사 선생님들은 훨씬 좋은 조건의 대학병원급에서 근무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린병원의 취지에 공감하며 흔쾌히 지금의 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서울, 부산과 같은 대도시가 아니고...다른 곳에서 받을 수 있는 돈과 명예를 뿌리친 채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하나 뿐인 인생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 이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신 선생님 댁에서 여러 선생님 가족들과 많은 교제를 나눈 뒤 양산 우리집으로 돌아 왔을 때는 자정이 가까워 오는 때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선화와 여러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아직은 정확하게 우리의 진로를 결정할 수 없었지만 오늘 본 '포항 선린병원'의 모습은 우리가 고려해야 할 아름다운 모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나 올바른 기독 의사의 삶은 반드시 포항 선린병원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분명 그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많은 기독 의사들이 하고 싶어도 자신의 근무하고 있는 병원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꿈꾸던 일을 포기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린 병원과 같은 병원이라면 그 곳에서 근무하는 것 자체만 해도 의료 선교를 실제로 펼치고 있는 셈입니다. 

전 앞으로 1년간 부산대학병원에서 소화기 내과 분과 전문의 과정을 밟은 뒤의 진로는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본 이 모습을 우리 맘에 깊숙히 담아 두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하나님 안에서 더욱 겸손하고 낮아지는 것이겠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사용되어질 수 있으니까요....내가 의지하는 것들과 자랑하고픈 가치들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니까요....

우리가 포항 선린병원을 둘러 보고 나왔을 땐...마침 병원에 장식된 병원 트리의 점등식이 열리던 때였습니다. 한동대학교 교목 목사님의 짧은 말씀 뒤에 의사와 직원들의 특송(야곱의 축복)이 이어졌고...그 다음 "하나 둘 셋.."에 맞춰 점등이 행해졌습니다.

왼쪽의 사진이 그 순간의 모습입니다.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한반도의 가장 동쪽...한동대학교가 있는 포항에서 그리스도의 빛의 환하게 밝히고 있는 선린병원은 바로 이 빛처럼 기독 의료계에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선린병원을 통해 받은 도전들은 제 평생 마음 속에 남아 내가 가야 할 길들을 자극하고 외쳐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포항 선린병원이 지금처럼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흔들림없이 감당해 주길 기도합니다.

 또....이 글을 쓰는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애매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진료하고 계실 신원혁 선생님의 안전과 사역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로 인해 '여호와 샬롬'의 약속이 빛나게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우리 가정을 향해 많은 것들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지금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200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