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드디어 도착하다.

애태우며 기다리던 이삿짐이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지난 12월 2일 화요일 오후에서야 양산에 있는 우리 아파트로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짐이 출발한 지는 47일 째이며 우리 가족이 한국에 도착하지 39일 만의 쾌거(?)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이삿짐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이삿짐을 실을 때부터 싣고 난 뒤 다시 다른 컨테이너로 옮겨 싣는 등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많이 겪었지만 한국에 와서도 최근 2주 동안은 이삿짐 컨테이너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밤낮을 노심초사 보내야 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우리 짐 수송을 맡았던 Kaztransservice 라는 회사는 우리가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국에 들어가면 신한 트랜스 시스템 Ltd co. 라는 회사를 통해 이삿짐을 받으면 된다" 라며 서울 소재 전화 번호 하나를 알려 주었습니다. 이삿짐이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서도 이곳에 연락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이삿짐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 싶어 그 전화번호로 연락해 보았더니 "그와 관련된 연락은 전혀 받은 적이 없는데 일단 한 번 알아 보겠다" 는 딱딱한 어조의 답답한 얘기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답답한 나머지 카자흐스탄의 이전 통역 아주머니에게까지 전화를 했지만 통역 아주머니는 이미 이삿짐이 부산에 도착했다는 둥 황당한 얘기만 늘어 놓았습니다.

그 때부터 하루에 한 번씩 카자흐스탄, 서울 신한 트랜스에 전화를 돌려 가며 양국 담당자들의 러시아 agent 들끼리 연락이 되도록 여러 번의 국제 전화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서울 신한 트랜스 Ltd 측으로부터 "이성훈 씨의 이삿짐은 우리 소관이 아님을 Kaztransservice 담당자를 통해 확인했다" 는 연락을 받는 일이 벌어졌을 때가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짐은 어디로 간 거야?' 사태가 이렇게 되자 전 직접 카자흐스탄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이삿짐을 담당했던 kaztransservice의 예르쟌이라는 담당자와 통화를 했고 우여 곡절 끝에 부산에 있는 '신한 상운' 이라는 전혀 다른 선박 회사를 통해 우리 짐의 부산항 도착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카자흐스탄을 떠나던 순간까지 내가 받았던 정보는 잘못된 것 뿐이었고 한국에 와서도 이로 인해 마음 고생을 해야만 한 것이었지요. 이런 일을 다시 겪고 보니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가 살았던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는 정말 사무와 행정 서비스에 있어선 '용서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나라' 라는 쓴 웃음만 밀려올 뿐이었습니다. '정말 안됐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곳이 바로 카자흐스탄입니다.

부산 항에 우리 짐이 도착한 날짜는 11월 27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짐을 받은 것은 12월 2일이었기에 그 사이 많은 업무가 이루어졌는데 후임 협력의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 이삿짐 통관에 대해 몇 자 더 적겠습니다.

이삿짐 통관에 관해서는 관세청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되지만 제 경우에는 아래와 같은 경로를 거쳤습니다.

진행 사항

필요 사안

1.부산항 도착 사실 통보 받음

신한 상운(부산의 선박회사, 카자흐스탄 수송사의 한국측 파트너)

2.선박에서 컨테이너 하역

 

3.B/L(Bil of Landing), D/O(Deliver order)찾아 옴

부산 중앙동의 신한 상운을 직접 방문해서 수수료 지불해야 함

4.컨테이너를 세관 구내 창고로 이동

하역 회사( 동부 건설)에 수송비를 지불해야 컨테이너 수송 차량 이용 가능

5.컨테이너에서 세관 구내 창고로 이삿짐을 내림

하역 회사에서 담당

6.화물 인도 동의서 발급 받음

부산 중앙동의 동부 건설을 직접 방문해서 하역비 지불하고 발급 받음

7.부산 용당 세관 2층-->1층

B/L 사본, 화물 인도 동의서, 여권(출입국 사실 확인 증명서), 물품 리스트 제출해야 함

8.화물 검사

많은 수의 이삿짐 포장 박스를 뜯어 실제 내용물 확인

9.양산에서 미리 준비한 용달차로 이삿짐을 실어 양산 우리 집으로 돌아옴

 외국에서 2년 이상 거주한 경우 이삿짐은 모두 면세 처리가 되지만 짐 중에 장식용 칼 같은 특정 물건들은 사전에 신고하고 절차를 밟아야만 합니다. 다음에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컨테이너를 통해 한국으로 이삿짐을 부칠 분은 반드시 한국측 대행사(agent)를 철저하게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쨋든 반가운 이삿짐은 12월 2일(화)에 도착했고 3(수)-4(목)에 걸쳐 짐을 다시 새 집에 맞도록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은 바로 컴퓨터입니다. 긴 철도 여행과 해상 수송 와중에서도 공기방울 비닐로 싸 놓은 두 개의 하드 디스크는 안전하게 도착해 주었고 3일(수) 오전에는 꿈에도 그리던 전용선(한국통신)과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전 제가 한국을 나갈 때까지도 줄곧 전화 모뎀만 사용했었고 카자흐스탄에서도 인터넷 연결 방법은 전화 모뎀 뿐이었으니 제게 있어서 초당 4Mb 정도 나오는 VDSL 은 경이적이 사건입니다. (새로 정리한 아빠 방의 모습입니다. 새로 단장된 컴퓨터와 책장 앞에 시은이가 앉아 있습니다.)

오늘도 50리터 짜리 쓰레기 봉투를 사용해서 이사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버리고 나니...이제서야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집 정리를 거의 끝내고 나서 홈페이지 보수(?) 작업에 바로 착수했습니다. 컴퓨터가 도착하지 않는 탓에 거의 두 달 가까이 방치된 상태로 있던 홈페이지의 기본 틀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고 새로운 글들을 올렸습니다.

이삿짐이 도착하는 바쁜 와중에서도 지난 월요일 저녁에는 여동생 주훈이의 첫째 우진의 첫 돌 축하 모임이 있었습니다. 시은이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우진이는 건강하고 늠름하게 자랐고 우진이 엄마는 아들의 첫 생일상을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왼쪽 사진의 맨 왼쪽에 서 있는 흰 피부의 아이가 우진입니다. 오른쪽 두 아이는 우리 집 아이들이죠. 오른쪽 사진에는 왼쪽부터 선화와 여동생, 남동생의 아내(제수)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가 한국으로 들어온 뒤로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모님과 삼남매가 이룬 가족들이 다 모이는데 이 날은 저희 집에서 첫 모임을 했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모이면 아이만 4명이고 곧 6명으로 불어나게 되지요. 전 무엇보다도 삼남매의 첫째인 제가 두 동생의 가정을 잘 돌아 보고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난 주 목요일에는 부산의대기독학생회의 학사모임인 '새벽별'의 11월 모임이 열렸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정겹고 고맙기만 한 새벽별 사람들과 공식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날은 카자흐스탄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로 해 지난 여름 vision trip을 다녀갔던 학생들과 함께 많은 선후배들 앞에서 카자흐스탄의 현실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순 없지만 컴퓨터도 도착하지 않은 상황인지라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 위주로 카자흐스탄을 소개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대로 카자흐스탄의 의료 및 사회 현실을 소개하고 선교 현장을 알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집 정리를 하고 나니 러시아어에 대한 애착이 다시 솟아 났습니다. EBS 라디오 방송을 보았더니 일주일에 두 번 러시아 강좌를 하고 있더군요. 교재를 사서 워밍업을 좀 한 뒤....실전을 통해 익힌 러시아어가 발전할 수 있도록 가지고 있는 테이프와 교재들을 사용해서 앞으로 다가 올지 모르는 어떤 상황들을 준비해 가고 싶습니다.

이삿짐과 관련한 이번 일에 있어서도 내가 앞서 간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하나님은 조용히 당신의 정하신 시간표 대로 나와 우리 가정을 이끄셨습니다. 언제나 우리 가정을 향해 안타까움과 긍휼의 눈빛으로 바라 보시는 그 분의 모습을 그려 보며 비로소 시작하게 된 한국에서의 새 출발을 힘차게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