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민, 어린이 집에 가다

한국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어감에도 우리 생활이 아직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부친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삿짐 속에는 오디오, 음반, 각종 악기, 시은이 침대, 책장, 책, 컴퓨터 관련 물품 등 지난 2년 반 동안 카자흐스탄에서의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파트도 찾았고 생활에 필요한 기본 물품들은 예전에 한국에 두고 갔던 것들을 이용하면 되지만 새롭게 시작되는 한국 생활을 위해선 컴퓨터와 관련 자료들을 가득 싣고 있는 이삿짐이 도착해야 하는데...아직도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갔을 적에도 한국에서 보낸 짐이 이런 저런 사유로 70일이 지나서야 도착했었습니다. 그 당시 짐이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두 달 이상 동안 똑같은 옷만 입고 다니고 생활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었는데..이번에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나 봅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짐을 부친 지 어제로 만 40일...지난 주 내내 거의 매일 서울과 카자흐스탄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 컨테이너의 행방을 추적했었는데 참으로 당황스러웠던 것은 카자흐스탄에서 알려 준 한국측 대행사(agent)로부터 제 짐을 보낸 카자흐스탄의 kaztransservice 의 업무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리 저리 수소문하고 카자흐스탄에 있는 통역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사태를 알아보려 했지만 수 천 Km 나 떨어진 곳의 사람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급기야 어제는 저와 직접 계약을 맺었던 kazaktransservice 담당자 예르쟌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그 대화가 딱 한 달만에 재개한 러시아어 대화였습니다. 약간은 걱정스런 맘으로 벌써 어색해진 러시아어로 질문했지만 다행히도 담당자인 '예르쟌"은 엑센트가 어색한 외국인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담당자는 아직도 우리 이삿짐을 실은 컨테이너는 부산항에 도착하지 않고 있고 내일 다시 정확한 도착 날짜를 얘기해 주겠다고 알려 왔습니다. 여전히 기다려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제가 납득할 만한 얘기를 들을 수 있어 그 전화 통화 이후로는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아빠는 이런 저런 걱정거리로 마음 편하게 못 보내고 있지만 형민이와 시은이는 새 집에 적응하고 새로운 생활에 이미 익숙해졌습니다. 특히 형민이의 경우 지난 주부터 인근의 "예명 어린이 집"에 매일 아침 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형민이를 유치원에 보낼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한국에 들어 왔지만 과연 형민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질 수 있을지는 자신 없었습니다.

처음 우리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주변에는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 같은 간판이 전혀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이제 막 세 돌이 지난 아이를 차에 태워 멀리 신도시까지 보내기도 좀 그렇고 해서 일단 올해 말까지는 한국 생활에도 적응시킬겸 아무 곳에도 보내지 말고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 있자고 우리 부부가 마음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귀국 후 여러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모두가 한결같이 "네 살이나 된 아이가 너무 아빠 품에만 있으려고 한다...", "이제 형민이도 좀 엄마, 아빠 품에서 떼어 놔야 한다." "이제 곧 셋째가 나올 텐데 형민이를 일찍 어린이 집에 보내는 것이 좋다" 등등의 조언들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형민이는 여전히 동생 시은이와의 경쟁에만 몰두한 채 아직도 애기처럼 방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아기 흉내를 내며 엄마의 관심을 끌어 보려고 하고 있기에 형민이를 위해 이제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제가 부산에 나가 볼 일을 보고 돌아온 그 날 저녁 선화는 제게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시은이를 업고 형민이와 함께 요 주변을 돌아 봤는데요...부식 가게도 있고 문방구도 있고 이곳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구요...그래서 쭉 올라 가보니 위 쪽의 다른 아파트 단지와 만나는 곳 쯤에 어린이 집이 하나 있었어요. 그런데...다른 유치원 근처에는 얼씬 거리지도 않던 우리 형민이가 오늘 따라 미끄럼틀과 놀이 기구가 마당에 보이는 그 곳에는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형민이를 데리고 어린이 집 안으로 들어가 봤지요. 원장 선생님과도 만나 애기를 나누었는데 좋은 분처럼 보이셨어요. 또 그 곳은 작년까지 선교원이다가 올해부터 어린이 집으로 확장한 곳인데 원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신앙이 있으신 분들이라 오전에 예배를 드리는 등 괜찮아 보였어요...무엇보다 집에서 가깝고 형민이도 다른 곳과는 달리 맘에 들어하구요..."

우리는 내친 김에 며칠 후부터 그 곳에 형민이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형민이가 첫날부터 어린이 집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가 고민이긴 했지만 웬지 형민이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후 7개월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 가서 생후 37개월에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이 낯선 카자흐 아이지만 이젠 형민이에게도 한국의 친구들과 한국 문화가 필요할 때도 되었구요.

다음 날 우리 부부는 온 가족이 어린이 집으로 몰려 갔습니다. 다시 원장 선생님도 만나고 그 곳에서 입학 원서를 적고 유치원 가방도 받고 선생님 소개도 받았습니다. 그 곳은 4세부터 7세까지 나이별로 반이 나뉘어 있었는데 형민이는 4세 반인 '개나리 반'에 배치되었습니다. 형민이의 입학 원서를 적고 형민이가 공부할 방(교실)을 보고 나니...웬지 제 맘도 설레이고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기 형민이가 이제 처음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구나...'

대견스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책임감이 생기기도 하고...'유치원 생 형민이'의 부모로서 드는 감정은 '아기 형민이' 때와는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치 험난한 폭풍우 속으로 아이를 내 보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형민이는 어린이 집이 맘에 드나 봅니다. 집을 나설 때부터 "형민아...아빠하고 어린이 집 갔다 와..." 라는 선화의 말에 "예..."하고 웃으며 대답합니다. 뭘 알고나 있는 건지...

새 가방이 맘에 드는지 연신 뒤돌아보는 형민이를 데리고 아파트 밖으로 나왔습니다. 선화는 시은이와 함께 집에 있기로 하고 저는 형민이를 데려다 주기만 하고 기회를 봐서 살짝 나오기로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내내 형민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12...11...10...9....." 하면서 엘리베이터 내부에 표시되는 층 수 만을 읽고 있었습니다. 1년 전부터 숫자에 관심을 가진 이후 형민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숫자로 가득한 곳입니다.

"땡...."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씩씩하게 아파트 밖으로 걸어 나갔지요.

어린이 집으로 올라 가려는 순간... 공중에서 "형민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형민이가 위로 올려다 보자 왼쪽 사진처럼 시은이를 품에 안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14층인데 13층에 위치한 우리 집 베란다 밖에서 손을 흔드는 선화의 모습입니다.

"형민아...잘 다녀 와..."

"예....엄마..(큰 소리로)"

마냥 아기 같던 형민이가 처음으로 엄마를 떨어져 유치원에 가는 날...아마 선화는 저 보다 훨씬 더 애처롭고 대견스러워 했을 겁니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이런 맘으로 아이들을 보냈겠지요....

사진에서 보이는 아파트 담을 따라 올라간 뒤 왼쪽으로 돌아 서면 어린이 집이 보입니다. '예명 어린이 집' 이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노랗고 파란 유치원 가방을 맨 아이가 바로 형민입니다.

어린이 집 안으로 들어 섰을 때 자기 앞으로 와르르 몰려 드는 또래 아이들이 낯설었는지 형민이는 제 손을 꽉 잡았습니다.

오줌 싼 아이의 바지를 갈아 주고 있던 선생님은 형민이가 들어 오자 "형민이 왔어? " 라며 반겨 주었지만 처음 1-2분 동안은 좀처럼 다른 곳으로 가려 하지 않고 아빠 바지 가랭이만 잡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곧 선생님은 형민이를 품에 안고 과자를 주며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 앞으로는 아빠가 직접 오시는 것보다 아파트 앞에서 차를 태워 보내는 것이 훨씬 교육적으로 좋을 것 같다" 라는 얘기를 제게 건네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을 들은 뒤 형민이가 안 보는 틈을 타 살짝 밖으로 빠져 나온 전 혹시나 형민이가 아빠를 찾지나 않을까 싶어 한참동안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혹시나 형민이 소리가 들리지나 않을지....

집에서 기다리던 선화 역시...형민이가 잘 하고 있는지 걱정스러웠나 봅니다. 담담하게 아이들 속으로 섞이더라는 제 말을 듣고서는 연신 대견스럽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선화는 "그래도 이렇게 쉽게 떨어지는 게 섭섭하기도 하네요...다 키워 놓고 나면 이렇게 떠나겠지요?" 라는 우스개 소리도 잊지 않았습니다.

형민이는 오전 9시 반에 가서 오후 2시 반에 돌아 옵니다. 종일반의 아이들은 저녁이 되서야 돌아오지만 우리가 종일반에 넣을리는 만무하지요. 오후에도 형민이를 데리러 제가 직접 올라 갔습니다. 아빠를 본 형민이는 아무 말 없이 옷 입고 가방 챙겨서 따라 나섰습니다. 아직 형민이에게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사하는 일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나온 뒤 형민이와 어린이 집 입구의 토끼들에게 풀을 먹였습니다. 형민이는 토끼 뿐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뭘 먹는다는 사실에 재미있어 합니다. 비둘기, 강아지, 고양이, 소, 말....한참 동안 풀을 먹이다가 형민이에게 물었습니다. "형민아..재미 있었어?" 이런 말에 쉽게 대답하는 형민이는 아니지만 형민이의 표정에서 어린이 집에서의 생활이 재미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내리막 길에서 형민이는 너무나 즐거워 했고 집 앞 가게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산 뒤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형민아...재미 있었어? " 라는 엄마의 물음에도 노 코멘트로 일관했지만...시간이 지나면서 형민이에게 어린이 집은 무척 마음에 드는 장소였다는 걸 우리 부부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어린이 집 선생님이 예쁘다는 말에서부터 비가 오고 감기 기운이 있어도 꼭 어린이 집에 가려고 하는 등...너무 어린이 집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어린이 집은 형민이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형민이는 어린이 집에 갈 때마다 유치원 차를 이용합니다.

사진처럼 노란 차가 도착하면 다른 아이들처럼 선생님께 인사한 뒤 차에 오르지요.

만 세 살이 지나면서부터 이렇게 엄마에게서 쉽게 떨어질 줄은 우리 역시 꿈에도 생각 못한 기적입니다.

한국으로 들어온 지 가장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사람은 바로 형민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택에 형민이는 이 변화에 쉽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형민이가 적응하는 부분에 있어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덕분에 오전 내내 선화는 시은이 하고만 지내게 되었고 시은이 역시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엄마의 사랑을 독점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물론 시은이가 낮잠 잘 때는 선화에게도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음은 말할 것도 없구요.

오늘도 어린이 집으로 가기 위해 현관 문을 나서는 형민이가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형민아...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