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첫 소식을 전합니다.

2003년 10월 17일 아침...이른 시간임에도 공항까지 마중 나온 환송객들의 따뜻한 작별 인사를 받고 아스타나 국제 공항을 힘차게 날아 오른 것이 벌써 한 달 전의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쉬움과 설레임 속에서 카자흐스탄 영공을 벗어나 상 뻬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 일대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며 러시아 귀로 여행을 무사히 마친 뒤 인천 공항으로 들어 온 지난 10월 23일 한국의 기온은 20도가 넘는 한여름 날씨였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날까지 10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의 가을 날씨는 영하 5도의 기온과 세찬 바람과 눈보라의 연속이었고 용감한 엄마, 아빠를 따라 러시아 여행길에 나선 형민이와 시은이는 모두 감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 몸을 두터운 옷으로 칭칭 두른 채 모스크바 세리미테보 공항에 대기 중인 대한 항공 여객기에 올라탄 그 순간 까지 우리의 고생스런 여행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대한 항공 여객기를 타는 순간...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객기 입구에 서서 따뜻한 미소로 인사하던 스튜어디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왜 그리도 눈물겹도록 반갑던지...반가움 그 자체였습니다. "안녕하세요...아기가 참 귀엽네요..." 스튜어디스의 따뜻한 인사를 받고 나서야 '이제 됐다..' 는 안도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말자 기내 스크린에는 영어 자막을 갖춘 KBS 9시 뉴스가 한국어로 방영되었는데 2년 반 만에 보는 9시 뉴스 화면과 CF화면을 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2003년 10월 17일 아침 9시 아스타나 국제 공항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마지막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른 아침인데도 도심에서 1시간이 넘는 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나온 환송객들의 모습이 고맙기만 합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젊은이들(자밀라, 까밀라, 세르게이)와 통역 아주머니, 수이어스펜설록 교회의 남성택/박용주 선교사님,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김명희/이영분 선교사님이 나와 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분들이 선물과 작별 인사를 전해 주셨지요.

인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10월 23일 오후 1시 경이었고 마중 나온 처남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곧 바로 김포공항으로 이동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서 4시에 출발하는 부산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 반 경 가족들과 반가운 재회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은 역시 사랑스럽고 좋은 곳입니다. 한국 땅에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말을 하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다시 살면서 느낀 것은 '한국인들은 정말 친절하구나...'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은행 같은 관공서나 택시 기사들이 얼마나 친절하게 느껴지는지...물론 같은 문화권인데다 서비스 정신 '0' 에 도전하는 카자흐스탄에서 살다 온 탓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한국이라는 사회는 적어도 서비스 분야에 있어서만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러시아에 있는 동안에도 러시아 역시 카자흐스탄처럼 '친절이나 서비스와는 동떨어진 나라'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었거든요.

한국에 들어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건 역시 먹거리들이었습니다. 떠나는 날까지 양배추 김치만 먹었던 우리 입맛에는 잘 익은 배추 김치와 갓 김치가 한 상 가득 올려져 있는 식탁이 그저 황홀한 뿐이었습니다. 싱싱한 고등어와 무를 넣고 조린 찌게, 조개와 꽃게, 오징어 등으로 가득한 해물탕, 카자흐스탄에선 구할 수 없는 고구마로 만든 튀김....모든 것이 그렇게 먹고 싶던 먹거리였습니다.

한국에선 작은 도시...양산이지만 양산 시장과 좁은 번화가에는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보다 생기있고 풍부한 물건들로 가득했습니다. 한 번은 온 가족과 함께 '피자 헛'에 들어 가 피자를 먹었었는데 아스타나의 쭘과 휘트니스 센터의 얇고 맛없는 피자들과 달리 두툼한 빵에 잔뜩 발라 놓은 치즈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여기가 바로 한국이구나....'

피터 대제의 여름 궁전 (상 뻬쩨르부르그 근교)

10월 중순의 귀로길에 선택한 7일간의 러시아 여행은 '사서 한 고생' 이었습니다. 만 3살의 형민이와 10개월된 시은이를 데리고 모든 게 어마어마하고 넓기만 한 제정 러시아 시대의 유물을 봐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한 팀으로 똘똘 뭉쳐 사진에서 보는 피터 대제의 여름 궁전은 물론 에카테리나 여왕 궁전, 빠블롭스크의 궁전, 에르미타쥬 박물관, 뻬뜨로빠블롭스끼 요새와 피로 구속 사원, 카잔 성당, 상뻬쩨르부르그 일대, 모스크바의 크렘린 등을 둘러보고 돌아 왔습니다. 러시아 여행기는 다음 주부터 홈을 통해 소개될 예정입니다.

입국 후 3주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또 다른 문화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남지, 밀양, 양산 등에 가족이 흩어진 탓에 매주 경부, 남해, 구마 고속도로를 타고 타니며 고향 산하를 바라 보며 중첩된 나지막한 산맥들과 푸른 논밭, 정겨운 사람들과 풍경들로 마음 속의 고향을 찾아 온 느낌을 받지만 아직도 망막 속에 비친 모습 뒤로는 카자흐스탄에 두고 온 모습들이 아른거리기만 합니다.

귀국 후 일정들을 잠시 소개드리면...

일시

내용

2003.10.17-23(6박 7일)

러시아 여행 (상 뻬쩨르부르그, 모스크바 일대)

2003.10.18

본가에서 첫 날(경남 창녕군)

2003.10.19-11.3(14박 15일)

처가에서 거주(경남 양산시)하면서 국내 생활을 준비

2003.11.4

새 보금자리로 이사

2003.11.11부터

부산의료원 출근

우리가 새로 거주할 아파트를 구할 때까지 부산에서 가까운 처가(양산)에서 지냈습니다. 이 시기는 카자흐스탄에선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힘들고 지친 시간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이번에도 우리 가족을 독수리 날개 위로 올리셔서 당면한 여러 상황들을 극복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 가족이 카자흐스탄에 나가 있는 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내년에 강도사가 되는 남동생은 그 동안 결혼하고 백일이 지난 첫 딸을 가지고 있었고 출가한 여동생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으며 부산에 계시던 부모님들이 창녕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 동안 못 만났던 친척과 형제들을 찾아 다니며 그 동안 밀린 얘기를 주고 받으며 고맙고 행복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아래는 경남 밀양의 대평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여동생 가정을 찾아 갔을 때의 사진인데 여동생의 아들인 '우진' 이가 얼마나 얼마나 활발하던지..형민이는 내내 주눅이 들어 있었지요. 이제 우리 삼남매 아래의 아기들만 벌써 네 명이고 내년 봄이면 여섯 명으로 불어난다는 걸 생각하면 그만큼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처가에서 보름간의 시간을 보낸 뒤 세 아이와 함께 살아갈 새 보금자리를 선정했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경부고속도로 남양산 IC 근처에 있는 해강 아파트입니다. 31평에 방 3개와 부엌과 거실이 통하는 넓은 공간이 있어 카자흐스탄의 넓은 공간에서 자라다 온 우리 아이들이 이전처럼 활발하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라 맘에 듭니다. 물론 아래층을 생각해서 밤에는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하지만....

양산에서 아파트를 구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앞으로 태어날 셋째를 포함해서 심각하게(?) 대두될 육아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선화를 도와 줄 만한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사는 동안에는 제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여의치 않고 셋째까지 출생할 것이기에 처가 가까이로 집을 정하는 것이 선화에게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두 번 째 이유는 아무래도 부산보다 아파트 전세가가 훨씬 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2년 간 이 집에서 머문 뒤 다시 부산으로 들어 갈 예정입니다.

지난 11월 4일의 이사는 지난 2001년 카자흐스탄으로 떠나갈 때 한국에 남겨 두었던 이전 살림살이를 새 집으로 옮겨오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짐들은 본가가 있는 창녕군 남지 일대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이제 막 결혼 4주년을 넘긴 우리 가정의 신혼 살림들입니다. 장롱, 냉장고, 피아노, 책상, TV...오랫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탓에 군데 군데 문제가 엿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사랑스런 물건들입니다. 이외에도 서랍장, 침대, 소파 등은 새로 구입했는데 2년 반의 외국 생활로 인해 방바닥에서 자고 생활하는 한국식 주거 문화가 이젠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소파나 침대가 있으면 아이들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가장 중요한 이삿짐은 아직도 한국에 도착하지 않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서의 살림살이' 입니다.

지난 10월 14일 컨테이너에 실려진 이 짐들은 적어도 11월 말 이 되어야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라 그 때까지는 한국에서의 정착은 유보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기다려지는 것은 형민이의 장난감들과 오디오, 컴퓨터 관련 물건들입니다.  

한 달 가까이 업데이트 되고 있지 않는 홈페이지도 그동안 계속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습니다. 귀국 후 2주 동안은 전혀 신경 쓸 여력이 생기지 않았었지만 지난 주부터는 서서히 염려가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소식을 궁금해 할까....' 생각하고 며칠 전부터 최근 사진들을 포함한 새 소식을 올려 보려 했지만 우리 디지털 카메라의 USB 케이블을 가져 오지 않아 사진을 다운 받을 수 없었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케이블을 구해 봤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천신만고 끝에 우리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종류를 취급하는 대리점을 찾게 되어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새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보름만 지나면 카자흐스탄의 우리 짐이 도착할 테고 그 때가 되면 우리 집에도 전용선이 설치된 컴퓨터가 작동하게 되기에 곧 홈을 재정비한 뒤 이전처럼 활발한 홈 관리를 해 나갈 예정입니다.

저는 앞으로 부산의료원에서 약 6개월 가량 국내 근무를 하게 됩니다. 협력의사에게 있어서 파견 후 국내 근무 기간은 국내 적응 기간이기도 합니다. 부산 의료원은 제가 선정한 의료 기관이기에 앞으로 이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근무하면서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의 적응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이미 부산 의료원에 출근하고 있고 순환기 내과의 심재광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지내고 있습니다.

부산의료원 전경

제가 근무할 부산의료원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주 경기장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숲으로 둘러 싸인 청정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산에서 부산의료원으로 가는 교통편이 좀 어렵긴 하지만 최근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깨끗하고 최신 시설을 유지하고 있어 더 없이 좋은 근무 환경입니다.

이 곳의 순환기 내과 심재광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곳에서 심초음파 검사실에서 즐겁게 적응하며 지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아빠가 떨어지는 불안함을 두 아이가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한 달 만에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묘한 감정이 교차합니다. 사실 너무 많은 얘기들이 쌓여 있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앞으로 차근차근 한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제는 형민이가 새로 다니게 될 어린이 집을 둘러 보고 왔는데 아침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등... 여러 면에서 괜찮다 싶어 앞으로 이곳에 형민이를 보낼까 합니다. 이제 형민이도 엄마, 아빠에게서 조금씩 떨어질 필요가 있거든요.

카자흐스탄에 계신 분들께 특별히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알마티에 계시는 많은 선교사님들..특별히 안병재 선생님 가정에 안부를 전합니다. 아스타나에서 가족처럼 함께 지냈던 많은 선교사님 가정과 KOICA 가족들께 한국에  무사히 도착해서 새 생활을 시작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앞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보낸 짐이 도착하는 대로 안부 메일을 드리고 카자흐스탄과 한국을 잇는 유용한 매체로서 우리 홈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가꿔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옮겨왔지만 우리 하나님의 손길은 구름 기둥, 불기둥 처럼 여전히 우리 가정을 지키시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