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세 살

앞선 세월 동안 아이들을 길렀던 분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미운 일곱 살" 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일곱 살 정도 되면 엄마 말도 듣지 않고 제 고집만 피우는 장난꾸러기가 된다는 뜻이지요.

다양한 유아 교재와 매스컴 덕택에 독립심과 창의력이 일찍 부터 자라나는 요즘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좀 더 이른 나이부터 부모 속을 썩이기 시작하나 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미운 세 살" 입니다. 일곱 살은 커녕 세 살 적부터 아이를 다루기 힘들어 진다는 자조 섞인 이 단어는 요즘 우리 가정에 딱 들어 맞는 말 입니다.

누구 얘기냐구요? 바로...한 달만 지나면 만 세 살이 되는 형민이 얘기지요.

지난 7월 말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여름 수련회로 시작된 우리 가족의 여름 행사는 어제 떠난 유학생 부부의 아스타나 방문을 끝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아스타나-알마티 구간을 두 번, 바라보예를 두 번이나 왕복 했으니 우리가 움직인 거리만도 6천 Km에 이르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이 행사들을 치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 형민이는 더욱 말이 많이 늘게 되었고 엄마, 아빠 없이 혼자서도 여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 놀 만큼 자랐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이 늘어 나면서 엄마, 아빠 말에 "아니야(아니요)..." 라고 말한다든지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쓰는 일이 잦아 졌다는 점입니다.

자기 표현이 더욱 뚜렷해진 형민이는 우리와 입씨름을 합니다. 형민이게는 "싫다" 또는 "틀렸다" 와 같은 부정어는 모두 "아니야"라는 단어로 통합니다. "형민아 이거 동생한테 줘야지..." 라고 하면 "아니야" 라고 형민이는 얘기합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아니야.." 의 이유를 붙이기도 하는데 "애기 키 커--하지(아기는 키가 커야 할 수 있는데요).... 지금은 오빠가 해야지."라고 하며 씩 웃는 게 형민이의 요즘 모습이지요. 이런 형민이를 설득하기 위해선 일단 말로 설명하고 때로는 협박(?)도 하곤 하는데 동생 시은이와 관련된 일에는 형민이도 큰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방문객들 틈 사이에서....

바라보예 수련회의 어린이 시간

문제는 자신을 귀여워 해주는는 처음 만나는 다른 사람들...즉 형민이가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는 여러 방문객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이번 여름 동안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형민이는 자신과 기꺼이 놀아 주길 원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 틈에서 버릇없이 행동하고 무리하게 놀아 줄 것을 요구하는 일들이 잦아 졌습니다.

여러 가지 활동으로 지쳐 있을 때에도 잠시 쉬지도 못한 채 형민이와 계속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해야 한다거나 화장실에 못 들어 갈 정도까지 놀아 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이 상황이 얼마나 난감한 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아빠는 형민이의 이런 행동이 늘 조심스러워 "그렇게 하지 마라...", "이모야 방에 가지 마라...","형민아... 삼촌도 좀 쉬야지..." 라고 얘기하며 형민이를 붙잡지만 만만한 이모들과 노는 즐거움을 이미 알아 버린 형민이는 집이 떠나 가라 울며 떼를 쓰거나 아빠 말에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이모 방으로 떠나기 일쑤입니다. .

그래서 요즘 형민이는 아빠 손에 들려 이모 방에서 쫓겨 나거나 고집 부리는 현장에서 야단 맞는 경우가 잦아 졌습니다. 엄마는 형민이에게 좀 더 많은 자유를 주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아빠의 마음은 형민이로 인해 자칫 다른 이들이 충분한 휴식을 못 취하는 건 아닌지...늘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버튼 누르기

형민이가 최근 배운 단어에는 "나" 라는 단어가 포함 됩니다. 전에는 "형민이가...." 라고 자신을 지칭했었는데 요즘엔 "내가 ...."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걸 봅니다. 그야 말로 전보다 자기 주장이 더 강해진 것이죠.

형민이가 꼭 하고자 하는 일들은 주로 '각종 버튼 누르기' 입니다. 엘리베이터, 초인종, 전등 스위치, 비디오, 텔레비젼 리모콘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형민이의 느릿한 행동을 못 기다려 다른 사람이 눌렀다가는 그 날은 난리가 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이런 일들을 기꺼이 형민이에게 양보하고 있지요. 문제는 이러 버튼들이 놓여진 위치가 대개 형민이의 키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시은이와 다른 짐들을 들고 있더라도 형민이를 번쩍 들어 올려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도와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임신 중인 선화나 짐을 들고 있는 제게는 여간 성가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만...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 정도의 어려움은 감수해야만 하지요. 리모콘의 경우는 뭘 눌러야 할지 지정해 줘야 하는 게 기본 요구 사항입니다. 

우리 집 엘리베이터는 동전식입니다. 아파트 관리료에 엘리베이터 이용료가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1층 관리실에서 교환해 주는 3텡게(18원)짜리 토큰을 집어 넣어야만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엘리베이터를 형민이와 타게 되면 대략 다음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3뗑게짜리 동전을 형민이 손에 쥐어 줘야 하고....엘리베이터 문을 여는 버턴을 형민이가 누르도록 들어 줘야 하고...다시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서는 형민이를 들어 올려 동전 넣는 구멍을 찾느라 더듬거리는 형민이의 모습을 끈기있게 관찰해야 합니다...그리고는 목적지를 알리는 버턴을 누를 때까지 다시 한 번 형민이를 들어 올려야 하죠...' 이렇게 많은 단계를 필요로 하는 엘리베이터 여행은 참을성이 부족한 아빠에게는 곤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따금씩 형민이를 무시하고 버턴을 누르기 일쑤지요. 그러면 형민이는 울고..우리는 후회하고...형민이와의 생활은 늘 이렇게 돌아 갑니다.

엄마, 아빠가 자기 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다른 핑계를 댄다는 걸 알고 있는 형민이는 엘리베이터 근처에 오면 아예 미리 얘기합니다. "아빠, 띡... 내가 하지요(버튼 내가 누를께요!)"  이 말을 듣고도 아무 대답이 없자 조바심이 나는지 열심히 따라 오면서 다시 한 번 더 큰 소리로 "내가 하지요"하고 이야기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이루어지는 이 일로 인내심 없는 부모들이 한 번씩 형민이를 울리는 일.... 언제쯤이면 끝날까요?

정말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려 할 때

아스타나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도로에서

그래도 앞의 요구는 내가 좀 여유를 가지면 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 말도 안되는 일들이 되게 해 달라고 할 때는 정말 답답합니다.

고장난 장난감이 작동되게 해 달라든지... 없는 과자를 꺼내 달라든지... 컴퓨터에서 뭔가(사진 화일이나 동영상)를 보자고 얘기하는데 형민이도 잘 설명하지 못하고 우리도 도저히 알아듣지 못할 때가 바로 이에 해당됩니다.

이런 경우는 서로가 몇 번 설명하며 옥신각신 하다가 형민이의 울음과 우리의 윽박지름으로 끝이 나곤 하지요.

아이들이 고집을 부리면 잘 이해하도록 설명하는게 가장 좋고 우선적인 방법이지만 모든 경우에 다 적용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지고 있는 걸 무조건 뺏어야 하고 하고, 있는 행동을 못하도록 해야 하고, 다급할 때는 엉덩이를 한 차례 때리면서 울려도 할 수 없는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 시절 육아에 관한 책을 읽고 공부할 때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고 교과서적인 착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만 3 세가 되어 가는 형민이에게 항상 그렇게 해 준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엄마 집...교회 집

최근 들어 형민이가 가장 잘 가지고 노는 재료는 바로 종이입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냐구요? 그건 아니구요...아빠에게 받은 이면지나 각종 종이들을 차곡 차곡 모아 바인더에 끼우거나 스테플러로 찍으면서 정리하는 놀이입니다. 모방심이 강한 형민이의 눈에는 어른들이 어떤 종이들을 특별히 관리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재미있게 비쳤나 봅니다.

이번 비젼 트립팀이 왔을때도 자료 제공을 위해 복사물이 많았습니다. 이런 종이들을 모아다가 가지런하게 펴서 바인더에 끼우고... 그러다가 좀 심심하면 조금씩 찢어서 귀중한 것인냥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런 일을 하다 보니 온 집 안에 종이 조각들이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치우려고 하면 절대로 만지지 못하도록 기겁을 하고 말리는 형민이를 보면서 아이에게는 중요한 것인데 함부로 어른들 생각대로 처리하면 안되겠다 싶어 그냥 두고 있는데 그래서 요즘은 집 안이 늘 말이 아닙니다.

바라보예 호숫가에서

가끔은 형민이가 만든 신종어(新種語)들이 탄생하곤 하는데 몇 가지 단어들은 형민이의 느낌과 생각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들이지요.

대표적인 것이 '엄마 집, 교회 집, 고마니'입니다. 엄마 집이란 우리 집을 말하고 교회 집은 바라보예에서 묵었던 호텔, 그리고 고마니는 고모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형민이는 우리집을 지칭할 때 항상 '엄마 집'이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간단한 볼 일로 보러 나갈 때마다 형민이를 늘 데리고 나가는데 아마도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는 얘기를 자주 하다 보니 '엄마 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같습니다. '교회 집'은 지난 수련회때 묵었던 호텔을 가리키는데 붉은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이어서 형민이 눈에는 마치 교회처럼 보였나 봅니다. 교회 모양인데 집처럼 그곳에서 세 밤이나 잤으니 형민이는 이를 '교회 집'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고모를 '고마니' 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모라는 말을 배울 때 할머니라는 단어도 같이 익혔는데 그 '할머니' 라는 단어의 영향으로 '고모' 가 '고마니'로 변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다른 장소에 대해 각각 고유한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서 놀다가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엄마 집에 가자...." 라고 이야기 하지요. 낮에는 집보다는 다른 곳에서 노는 걸 더 좋아하면서도 밤이 되면 반드시 엄마 집을 찾아 가는 형민이는, 알마티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에는 저녁 마다 "병재 삼촌 집에 가자...." 라고 말해 자신이 현재 어디서 자고 묵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알마티 '패밀리 파크'의 놀이 기구를 타고

형민이가 지리적인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은 약 1년 전 터키 여행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점입니다.

알마티로 내려 가는 기차 속에서 밤이 되어 잠을 청해야 한다거나....바라보예에 가서 잘 놀다가도 호텔 방에서 재우려고 할 때마다 형민이는 늘 "엄마 집에 가자..." 면서 울었지요.

지금까지는 어디서 자더라도 엄마, 아빠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덧 자기가 편하게 느끼는 집을 찾는 때가 온 것입니다. 형민이가 이렇게 집을 찾을 때마다 우리 부부는 함께 누워 흐느끼며 잠드는 형민이를 쓰다듬어 주곤 했습니다. "형민아...엄마, 아빠, 애기 모두 다 여기 있지? 우리 다 같이 자자...."

이모가 좋아요

아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들을 더 좋아합니다. 비슷한 또래의 이모야들이 있어도 그중에 가장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친근감을 나타내고 같이 놀기를 청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성격을 신기할 정도로 잘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보다는 활달하고 자기 수준에 맞게 몸으로 놀아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 챕니다. 형민이와 놀아 주려는 착한 이모야들은 그 때부터 형민이의 괴롭힘을 받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이번에 한국에서 온 부산 의대 비젼 트립팀의 이모, 삼촌들을 유달리 형민이가 잘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모두들 밝고 활달한 성격인데다 기꺼이 형민이의 수준낮은 요구에도 잘 반응해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모야들 방을 맘대로 드나드는 유일한 남자로써... 아침에 일어나면 살며시 방문을 열고는 깨어난 이모가 있으면 "헤헤헤..."하고 다가가서 "오늘도 놀아봅시다" 라는 의미로 장난을 걸던 형민이... 피곤한 이모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서 가끔 이모들과 떼어 놓을려고 다른 방으로 끌고 들어 오다시피하면 "나중에 이모야한테 가" 하고 울먹이던 형민이었습니다.

형들과 놀고 싶어요.

바라보예 생태 박물관 입구에서

이번 아스타나 장로교회 여름 수련회에는 아이들도 5명 쯤 참가하게 되어서 특별히 주일학교 모임을 가졌습니다.

형민이보다 대여섯 살이나 많은 형, 누나들이었는데... 그 틈에서 형민이도 한 몫 하겠다고 얼마나 졸졸 따라 다녔는지.... 특히 '형아'들이 축구를 하고 있으면 자기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졸라 댔습니다.

하지만 수준 차가 너무 나는지라 아이들은 이내 형민이와 놀아 주는 걸 포기하고 말지요. 말도 통하지 않는데도 (결국 그 아이들이 한국 말을 배웠습니다. 형민이에게 공을 주면서 '차, 차'라고 했지만...) 끝까지 자기를 끼워달라고 조르는 형민이에게 축구공을 줘 버리고는 살며시 운동장으로 도망가던 아이들이 모습이 지금도 떠 오릅니다. 그래도 멀리 달아날 수는 없었습니다. '형아' 들한테 가자고 조르는 형민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가 보게 되고 그 곳에서 형아들을 발견한 형민이는 다시 "헤헤헤..."하면서 형아들에게 달려갑니다.

이런 오빠 틈에서 시은이도 한동안 낯을 많이 가리더니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완전히 낯가리를 끝냈습니다. 두 아이를 보면서 " 어쩜 이렇게도 다를까" 하고 놀라곤하는데... 우선 시은이는 눈물이 많고 엄살이 심합니다. 어쩌다가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울고, 하던 일이 잘 안되면 눈치를 보면서 슬픈 듯 안아 달라고 하지요. 그리고 형민이가 있어서 그런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빼앗기면 상당히 앙탈을 부립니다. 형민이는 이 맘 때 뺏긴 건지, 그냥 흘린 건지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시은이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아마도 자라면 오빠에게 안 질려고 애쓸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는 아이들이 늘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까작스딴에서의 마지막 여름을 보냈습니다. 부모로서 이번 여름 동안 형민이와 시은이를 아껴 주고 흔쾌히 놀아 주길 자청했던 수 많은 이모, 삼촌들께 이 글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지치기 쉬운 여름 내내 아이들과 놀아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의 여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녁 식탁에 앉은 형민이가 수 많은 질문을 쏟아 냅니다.

"엄마...밥 먹고 코 자고 이제 어디 가지요?(저녁 먹고 자고 난 뒤 또 어디로 가서 놀지요?)"

"엄마..이모야들 또 많이 오지요?(엄마...또 다른 이모들이 놀러 올까요?)"

"엄마...파리 잡지요?(부엌에 날아 다니는 파리를 배드민턴 채로 잡는 게 요즘 우리 집 이슈입니다.)("

이렇게 형민이와 있다 보면 금새 지치고 힘들어 지지만....오후 늦게 뒤 몰려 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안아 주세요.." 하고 아빠 품에 안기길 원하는 형민이를 안고 거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세상의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미운 세 살....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늘 세 살에 머물지만 않을 형민이를 어깨에 걸치고 아빠도 살며시 소파에 기대 봅니다.  200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