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작스딴의 결혼식

까작스딴의 결혼식은 우리 나라와 사뭇 다른 면이 많습니다. 지금의 결혼 풍습은 구 소련 시절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 나라 처럼 특별한 결혼 예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두 사람이 증인들과 함께 관청(호적등록과)에 가서 혼인 확인증을 교부받는 과정이 바로 결혼식의 전부입니다.

우리 나라도 종교나 문화적 선택에 따라 결혼식의 진행 방법이 다양하듯 이곳도 각 결혼식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있지만...모든 결혼식에서 공통적인 사실 한 가지는 주례자나 주례사가 없고 호적 등록과 공무원으로부터 결혼증을 받는 것이 예식 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주...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의 현지인 사역자 '베르드갈리'의 결혼식이 열렸었습니다.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을 열고 선교 활동을 시작한 남성택/박용주 선교사님 부부는 북쪽 도시 빠블로다르에서 온 '베르드갈리' 라는 까작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알마티의 칼텍 신학교에서 졸업한 뒤 사역지를 찾고 있는 젊은 친구였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반가운 맘으로 이 형제와 함께 교회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에게는 아스타나에 살고 있다는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지난 1년간 새로운 교회의 정착을 위해 애쓰는 등 바쁜 시절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꿈에도 그리던 결혼식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베르드갈리는 제게 우리 승용차를 결혼식에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물어 왔고 전 기꺼이 '운전사'가 되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남성택 선교사님의 러시아산 지프(니바)보다는 승용차가 더 안락해 보인다면서 신부와 함께 결혼식 날 우리 차를 타고 싶다고 부탁해 온 것입니다. 덕분에 저는...결혼식 전날까지 세차도 깨끗이 하고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정비공장도 다녀오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까작스딴의 결혼식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결혼증 교부 (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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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화, 야외 촬영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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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 파티 (연회장)

결혼증을 교부받기 위해 작스(호적등록과)로 갈 때나.... 헌화와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여기 저기를 방문할 때에는 신랑, 신부와 축하객이 모두 함께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는데 이럴 때 사용되는 자동차에는 오색줄과 풍선 등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해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게 이곳 관습입니다. 이곳에서도 결혼 대행업이 성행해서 캐딜락이나 커다란 세단 자동차를 대여하기도 하던데 보통 이렇게 결혼식에 동원되는 자동차의 종류와 수를 가지고 위세를 자랑하기도 하는 게 이곳 분위기입니다.

베르드갈리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써...바로 제가 베르드갈리 부부를 태운 채 결혼 행렬을 이끌고 작스와 기념탑을 방문해야 할 1호차 운전수로 낙점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일련의 결혼식 과정에 참여하는 차들은 축제임을 알리기 위해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클랙션)을 길게 울리면서 도심을 질주하는데 결혼식은 많이 참석해 봤지만 이런 결혼식 차량 운전은 처음이라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날의 결혼식을 스케치 합니다. 지금 이 시간 까작스딴의 결혼식은 아래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집니다.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까작어,사랑 교회)가 있는 이자빌니 거리입니다. 결혼식에 사용될 우리 자동차에 풍선이나 오색 줄로 치장을 하고 있는 모습인데 풍선이나 테이프 등은 시장에서 사 온 것들이고 자동차 지붕에 엊는 동그란 고리 모양의 장식물은 대여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날 결혼식에는 아스타나의 또 다른 까작 교회 '어거즈 하바르 카오옴'의 젊은 사역자들이 찾아 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선교지 교회이다 보니 이 날 결혼식에 동원되는 차량은 3대 뿐입니다. 우리 차와 남성택 선교사님의 지프 차 그리고...교회 옆 집에 사는 분이 이웃이라서 도와 주겠다고 자동차 운전을 자원하고 나서 주셨습니다. 이웃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오후 2시 반쯤...결혼식은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개식 선언을 해 줄 법도 한데... 그런 것 없이 그냥 "자...갑시다..." 하는 말로 결혼식을 시작하더군요. 신랑, 신부와 증인 두 사람은 우리 차에 타고 나머지 하객들은 나머지 두 차 나눠 타고서 결혼증을 교부해 주는 작스(호적 등록과)로 향했습니다.

왼쪽 사진은 작스 입구에 도착한 모습입니다. 맨 앞에 썬글라스(?)를 낀 신랑, 신부가 들어오고 있고 하객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날 저는 운전수 뿐 아니라 사진 촬영도 겸하고 있어서 정신없이 따라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이것이 작스(호적등록과)의 모습입니다. 슬레트 지붕의 이 낡은 건물에서  전체 아스타나에서 일어나는 결혼식의 2/3를 소화해 내고 있다는 건 놀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아스타나는 크게 2/3 를 차지하는 알마찐스끼 지역과 1/3에 해당되는 사리 아르까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곳은 알마찐스끼 지역에서 벌어지는 결혼을 등록해 주는 관청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이 작스를 찾아와야 하는 건 아닙니다. 2001년 아스타나에 처음 왔을 때 이곳의 유명한 결혼예식장 '살리나뜨 사라이'에서 벌어진 결혼식을 참석했었는데 그 때는 작스의 공무원이 직접 출장을 나와 결혼증을 교부해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출장비 명목의 경비가 더 지출되겠지요?

 

작스의 2층에는 결혼식을 위해 준비된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면 벽에는 까작스딴 국기와 문장이 걸려 있고 그 앞에 반지와 교부증이 놓인 탁자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결혼식은 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 이루어지는데 토요일에 작스를 방문하는 경우 경비가 비싸기 때문에 형편에 따라 오늘 같이 금요일 오후에 식을 치룬다고 합니다.  

신랑, 신부와 증인 두 사람이 나란히 한 쪽에 서 있고 담당 공무원이 정면에 서 있습니다. 간단한 예식이었는데....시작하기 전 카세트를 통해 팡파르 같은 음악이 울러 퍼진 뒤 담당자의 짧은 설명이 이어 졌습니다. 자세히 알아 듣진 못했지만 교부해 줄 결혼증의 내용을 부부가 되는 두 사람에게 낭독해 주고 있었습니다. (사진)

 

제게는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지만 그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2-3분 동안 결혼증에 적힌 내용이 읽혀진 뒤... 신랑, 신부는 앞으로 나가 결혼 서약서에 한 사람씩 서명을 했고 함께 온 증인 두 사람도 그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영광스런 조국... 까작스딴 국기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나라 정서 속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사회주의적 잔재를 소리 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스에서 서명을 마친 뒤 두 사람은 반지를 교환했고 모든 사람의 박수를 받으며 결혼식은 5분 만에 끝났습니다.

낡은 계단을 내려 와 작스 입구에서 모든 사람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이렇게 또 한 쌍의 가정이 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까작스딴은 한국보다 더 높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의 경우 '결혼 대 이혼의 비율'은 90년 11.3%에서 2000년 35.9%로 뛰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까작스딴에서 제가 보는 현실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이혼 빈도입니다. 이곳에서 제가 아는 젊은 가정의  7-80%가 이혼을 하거나 이혼 상태를 보이고 있다면 믿으시겠나요?

 

까작스딴의 높은 이혼율은 조혼 풍습에 기인합니다. 한국은 30세 전후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까작스딴은 20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찍 결혼해서 조금 살다 곧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과 만나 사는 모습이 이곳에선 거의 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흔한 일입니다.  구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은 했지만... 자본주의 유입과 함께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가정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작스에서의 결혼증을 교부 받은 뒤 순국용사 기념비를 찾아가 헌화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구 소련 시절부터 내려 온 일반적인 풍습이고 러시아에서도 이와 똑같이 작스를 다녀 온 뒤 가장 먼저 순국용사비를 찾는다고 합니다.

 

순국 용사비를 찾아 가서 헌화하고 난 뒤에도 도시의 유명 장소를 찾아 다니며 하객들과 결혼 축하 사진을 촬영했는데 마치 한국의 야외 촬영을 하듯이 신랑, 신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이 날 신랑, 신부를 안내하다가 그동안 가 보지 못했던 수도 아스타나의 새로운 건축물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출입을 금한 곳인데 결혼식 촬영을 한다고 하면 접근을 허용해 주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현재 한창 진행되고 있는 관청들의 신축 현장입니다. 축하객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이 바로 완공을 앞두고 있는 까작스딴 국방부 건물입니다.

 

아빠가 대낮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면서 도심에서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을 때 선화와 두 아이는 피로연이 벌어질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 마당에서 음식 준비에 바쁜 사람들과 한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 마당에는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을 뿌려 키우고 있는 깻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에선 아마 유일하게 자라는 곳일 겁니다.

우리는 가끔 이곳 깻잎을 따다가 쌈을 해서 먹기도 하는데 맛있는 깻잎이 마당에 한껏 자라고 있는 것을 본 형민이는 "우와...깻잎이다...."하면서 환호성을 지르며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맛있는 깻잎이 이렇게 많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 야외 촬영을 한다는 건...신랑, 신부에게도 고된 일일텐데...아스타나에서 좀 괜찮다는 곳은 다 갔던 것 같습니다. 예정해 놓지 않은 곳인데도 '이곳에서도 한 장 찍읍시다.." 라며 차를 세우는 신랑 덕분에 번번이 무단 U턴과 좌회전을 시도했었죠.

2시간 가량 계속된 야외 활영 및 결혼식 행사는 오후 5시 경 교회당으로 돌아 오면서 끝이 났습니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면 이제 저녁부터는 밤새도록 이어지는 피로연이 시작되어야 하지만 선교지 교회에서 벌어진 이번 결혼식의 특성상 남성택 선교사님의 주례로 기독교식 결혼식을 한 번 더 치르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선교 활동의 일환이니까요...

 

하객이 많이 오지 않을까봐 걱정했었는데 교회가 위치한 좁은 거리에 사는 이웃들이 마당의 놓인 좌석을 메워 주었습니다.

하객들에게는 지금 거행되고 있는 이 결혼예배가 낯선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예수님과 교회를 비유하시면서 신랑과 신부의 만남을 설명하셨는데 신랑에게 "죽기까지 신부를 사랑해야 한다" 며 이야기할 때 자리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소리내어 웃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겐 정말 우스운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결혼식(예배)에는 임신 4개월의 선화가 반주를 맡았고 결혼 축가는 제가 '주께 두 손 모아 비나니'를 독창했답니다. 우리가 이렇게 활약을 펼치고 있는 동안.... 시은이는 박용주 선교사님 품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었고 형민이는 마당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며 깻잎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혼 예배가 마치자 교회 마당은 다시 연회장을 바뀌었습니다. 컴퓨터 책상도 떼 오고 여기 저기에 놓인 탁자들을 한 곳에 붙여 그럴듯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까작인들에게 있어서 제일 가는 전통 음식은 '비스파르막'이라는 말고기 요리인데 오늘도 어김없이 이 요리와 함께 많은 음식들이 나왔습니다. 신부 집에서 소를 팔고 신랑을 위해 선교사님도 200불 씩이나 내 놓으셨다고 합니다.

결혼식 잔치는 밤새도록 진행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선 최고의 잔치니까요.

 

잔치 중에도 그냥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순서가 진행된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참석한 모든 하객들이 앞으로 나가 결혼하는 신랑, 신부에게 덕담을 건네는 시간이 있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일장 연설을 하고 들어오는 게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신랑, 신부와 증인 모두가 제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이런 부분은 우리도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담이 끝난 뒤에는 마치 '신입생 환영회'처럼 풍선 터뜨리기, 스무고개, 장님 놀이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통 댄스 홀을 하나 만들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밤새도록 춤을 추면서 먹고 마시는 게 이곳 문화이지만 교회 마당에서의 잔치에는 술 대신에 콜라, 환타, 스프라이트 뿐이었습니다.

 

 

잔치와 게임이 진행되는 중이었지만 아이들이 지쳐 있는 바람에 인사를 드리고 먼저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 아이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두어 달만 있으면 우리 부부도 결혼한 지 만 4년이 됩니다. 까작스딴에서의 결혼식을 보면서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이 예식은 성스럽고 기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결혼한 베르드갈리 부부가 하나님 안에서 귀한 믿음의 동역자로 살아가길 바래 봅니다. 아울러 가정의 붕괴로 인해 결혼식의 의미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는 이 까작스딴 땅에 다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이 널리 선포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또...또 하나의 결혼 서약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 가정 역시 하나님 안에서 맹세한 결혼식의 약속을 끝까지 기억하며 지켜 가기를 소원합니다.   2003.7.20

 

" 남편이신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내주신 것 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 (에베소서 5:25-28, 새번역)

"아내이신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것같이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몸인 교회의 구주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 같이 아내들도 모든 일에서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에베소서 5:22-24,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