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까작스딴 이야기 (10)  2003.4.25 -2003. 7. 4

서울 플라자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3/04/25 (01:21:50) 조 회 128   

봄 기운이 완연했던 오늘...오랜 만에 가족이 외식을 했습니다. 아스타나 장로교회의 김명희 선교사님 내외 분, 구정아 선생님(KOICA,특수교육)과 함께 최근에 개업했다던 한국 식당에 가 보기로 한 것입니다.

한국 교민 수라고 해봐야 3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아스타나지만 본격 한국 식당을 표방하는 레스토랑은 지금까지 "즈벡졸리"와 "미림" 이렇게 두 군데나 됩니다. 하지만...사실 이건 놀랄 일이 아니죠. 까작스딴에는 1937년 전후에 있었던 스탈린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극동 지방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의 후예뜰이 "고려인" 이라는 이름으로 10만명이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 까작스딴에선 고려인도 120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 까작스딴의 한 일원으로 섞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에는 고려인 식당만 해도 10개 가까이나 됩니다. 하지만...대부분 작은 규모에 영세한 편이지요. 하지만 앞에서 말한 두 곳은 제법 규모가 크고 한국 음식을 주 메뉴로 표방하고 있는 곳들입니다. 이곳의 메뉴판을 보면 "제육 볶음","탕수육"...등 한국말을 러시아로 그대로 옮겨 놓은 메뉴를 볼 수 있고 "닭 한 마리 칼국수" 같은 비교적 최근 한국 메뉴들도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미림"이나 "즈벡졸리" 같은 한국 식당들의 주방장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고려인들입니다. 대부분 알마티의 한국 식당에서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거나 한국에서 3개월 정도 연수를 받은 게 다지요. 그래서 한국인인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은 까작스딴 식 한국 음식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갈 곳은 최근에 아스타나에서 3번째로 생긴 큰 한국 식당 "서울 플라자" 입니다.  한국에서 직접 한국인 주방장이 왔다는 소문도 있고 해서 구경도 할 겸...가 봤습니다.

사진은 바로 "서울 플라자" 입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영분 선교사님과 함께 선화와 아기들이 서 있지요?

일반 아파트 일층에 있는 작은 아파트 2채를 헐어서 만든 레스토랑인데 지하에는 디스코 텍, 2층에는 카지노를 겸업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까작스딴에서는 카지노도 떳떳한 업소로 도시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 플라자" 역시 고려인 식당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몇 개월 연수받고 돌아왔던 고려인 주방장에 의해 만들어진 고려인 음식이었습니다. 양념이나 밑반찬 모든 게 까작스딴 식 한국 음식이었습니다. 느끼하기도 하고 묘한 맛이 풍기는....

이곳에서 김치 찌개, 된장 찌개, 제육 볶음, 탕수육, 닭수육(특이하죠?) 등을 시켜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 봄을 맞아 교회 식구들이 분위기 전환을 한 셈이었죠.

비록 "서울 플라자"의 음식이 진짜 한국 음식은 아니었지만...한국 식당이 하나 더 아스타나에 생긴 건...반길 만한 일입니다.

그것도 "서울 플라자"라고 한국의 도시 이름까지 밝히고 있으니 말이죠.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이곳에 사는 고려인들도 한국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현지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도 늘어나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곳곳에 한국 식당을 표방하는 레스토랑이 생겨 나고 있습니다.

새로 생긴 "서울 플라자"를 바라 보며 이곳에 사는 고려인들과 고려인의 눈에 비친 한국을 생각할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서울 플라자 내부의 모습입니다.

 

형민아...미안해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3/05/05 (02:25:52) 조 회 124

얼마 전 일입니다. 형민이의 응가(똥)를 치우고 있던 때였습니다. 거실 쇼파에서 자던 시은이가 깨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던 일을 그만 둘 수 없어서 최후의 전령 역할을 하는 형민이를 보냈지요.

"형민아, 시은이한테 가서 노래 불러줘..."  형민이는 거실로 달려갔습니다.

잠시 후 시은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드는 것 같아 '형민이가 잘 하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엄마! 애기 운다."

"엄마 갈께. 애기한테 장난감 보여줘"

잠시 형민이가 뭔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시은이가 꼴깍 넘어 가도록 우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거실로 달려갔는데... 형민이가 시은이의 배 위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랐고 그리고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민이가 드디어 동생을 때리고 괴롭히는 단계에 이르렀구나.... 그리고 시은이가 얼마나 아플까? 내가 빨리 달려오지 않은게 잘못이다...' 하면서 형민이를 번쩍 들어 내리고 시은이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형민이 등을 세게 한 차례 때리고 나무랐습니다. 그때는 나도 너무 당황해서 숨이 찰 정도였습니다.

"너 도대체 애기한테 무슨 짓을 하는거야?"

형민이도 놀라서 울기만하고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형민이를 거실 발코니로 내 놓고 문을 닫았습니다. 이런 벌은 처음이었는데 평소에도 겁이 많은 편인 형민이는 자지러지듯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따끔하게 혼내야겠다 싶어서 얼른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겁을 먹은 형민이는 어쩔 줄을 몰라 발코니를 왔다 갔다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문을 두드리며 울었는데 그제서야 내가 잘 못 한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오게 했습니다. 형민이는 무척 놀란 것 같았습니다.

"형민아 왜 그랬어?"

형민이는 흐느끼면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이야기해봐?"

그래도 형민이는 대답을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왜 그랬지?"

"애기 안아..."

그랬습니다. 형민이는 시은이를 달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몇번 시도했지만 시은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엄마처럼 안아줄려고 한 것입니다.

키가 작아서 쇼파에 누워 있는 시은이를 안아 줄 수 없었던 형민이는 쇼파 위로 올라가 시은이를 들어 보려고 했었는데...그만 시은이 배 위에 앉은 꼴이 되고 만 것입니다.

"형민아 미안하다"

형민이를 꼭 안아줬습니다.

시은이를 안아줄려고 했던 형민이...

다시는 시은이가 운다고 형민이만 보내지 않겠다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형민이를 발코니나 방 안에 가두어두는 벌은 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형민이가 비록 어리지만 형민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제 3자인 나의 관점에서 형민이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형민이는 시은이에게 좋은 오빠였습니다.

 

 이 선생님 계세요?  

날 짜 2003/05/12 (02:33:54) 조 회 136

모두가 곤하게 잠들고 있던 새벽 1시경...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벨 소리에 번쩍 일어나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수화기를 들었을 때 들려온 음성의 주인공은 일주일 전 한국에서 안식년을 마치시고 아스타나로 돌아오신 성결교 선교사님이셨습니다.

"이 선생님이세요...밤 늦게 죄송합니다. 우리 태희(5살)가 좀 전부터 배가 많이 아프다고 하면서 잠을 못 자고 있어요...."

선교사님의 말인즉, 혹시 맹장염(충수돌기염)이 아닌가 싶어 밤이 늦었지만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였습니다. 배꼽 주위가 아프면서 약간 열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밤 1시에...그 곳을 달려가기엔 상황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아기들에게는 충수돌기염이 잘 안 생기거든요...몇 가지 동반 증상을 확인한 뒤...일단 아침까지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아기가 설사를 하는지도 봐야 할 것 같았지요.

아침 8시...다시 선교사님 댁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태희는 여전히 배가 아프고 열이 달아 올라 엄마에게 안겨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봐야 겠다 싶어 1시간 후에 가겠다고 말한 뒤 진료 가방에 진료도구랑 기본 약들을 챙겨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 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습니다.

이번에는 작년 여름부터 아스타나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장로교 선교사님의 음성이셨습니다.

"이 선생님이세요...다름이 아니고...우리 성민이가 귀가 아프다고 해요...한국에서도 중이염을 자주 앓았었거든요...그리고 아내의 피부 증상(알러지 피부염 증상)도 다시 생겼어요..."

성민이가 다시 감기를 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1시간 후에 들르겠다고 얘기한 뒤 사모님께 드릴 항히스타민제와 성민이에게 먹일 항생제와 진통제를 챙겨 밖으로 나왔습니다.  

전 매일 아침마다 드럼 레슨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회관 지하에 스튜디오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 드럼이 세팅되어 있고 작년 11월부터 시작한 드럼 수업을 공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마다 계속하고 있지요. 벌써 7개월째입니다.

1시간 동안의 드럼 레슨이 마친 뒤 급히 성결교 선교사님 댁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스베치키' 라고 부르는 터어키 건설회사가 세운 높은 아파트 14층에 살고 계시는데...아스타나에서 보기 드문 엘리베이터 시설을 갖춘 곳이죠.

벨을 누르고 들어가 태희를 진찰했습니다. 태희의 편도선은 아주 비대했고 울혈, 출혈이 보였습니다. 안식년을 들어가 있는 동안 소아과에서 편도선 절제술을 권유 받았지만 한방 치료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태희의 복통은 편도선염에 기인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장염이나 식중독이 아니더라도 감기 때문에 복통을 호소하기도 한답니다. 물론 아무 이유없이 복통이 생기기도 하지요.  항생제를 줘야 하겠는데...어쩔 수 없이 다음 집에서 사용해야 할 성민이의 항생제를 주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 주고 돌아 왔습니다.

하지만...성민이에게 약을 주기 위해선 다시 집으로 돌아 와 약을 챙겨야 했습니다.

집으로 들어 와 다시 약을 챙기고 있을 때 장로교 선교사님 댁에서 전화가 다시 걸려 왔습니다. 1시간 후에 오겠다는 사람이 소식이 없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안부 전화를 걸어 오신 것이었습니다.

사연을 설명해 드리고...성민이와 사모님께 드릴 약을 챙겨 다시 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면 중이염이 아니더라도 귀가 아플 수 있고 전에 생겼던 중이염이 재발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리고 몇 가지 주의 사항과 함께 약을 전해 드리고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은 이미 달구어진 햇볕에 온 도시가 찜통에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이 날은 5월 9일..까작스딴의 공휴일(승리의 날) 이었습니다.

아스타나의 한국인 내과 의사는 오늘도 아기가 살고 있는 집들을 드나들며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해도 선교사 가정과 교회들을 돌며 왕진을 다니는 제 맘은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형민이의 친구들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3/05/22 (20:13:56) 조 회 108

겨울이 끝나자마자 이내 시작된 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선 적당한 휴식 공간을 찾기 힘든 아스타나인지라 람스토르 2층의 '피트니스 센터'를 발견한 것은 우리 가족을 위한 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는 수영장, 사우나장, 헬쓰장, 아기방 등이 다 포함되어 있는 최신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대사관 직원 신분이라 거의 50% 정도 할인 혜택도 받고 있지요.)

우린 시간이 날 때마다 아기들을 데리고 이곳에 나들이를 오는데 최근 이곳에 엄마, 아빠를 따라온 아기들이 늘어나면서 형민이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또 이곳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에 외국인이 많은지라 자연스레 외국인 아이들과도 어울리게 되었지요.    

사진에서 맨 왼쪽이 터어키 아이, 중간이 이곳의 까작아이, 맨 오른쪽이 형민인데요...집에선 늘 형민이의 눈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국제적인 비교를 해보니 눈 크기로 유명한 까작인, 터어키인(둘 다 투르크 인종이네요..)들에게는 역시 눈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놀이방 한 쪽에서 노는 이 세 녀석들은 서로 대화를 나눌 순 없어도 아주 재미있게 놉니다. 터어키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미숙한 한국어가 가끔씩 섞여지는 것을 보는 것도 우스운 일이구요...

블록 쌓기도 하고 화이트 보드에 그리기도 하지만...가장 재미있게 노는 놀이는 "소리 지르기","서로 잡으러 뛰어 다니기" 등과 같이 특별한 언어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면 노는 것들이랍니다.

사진의 아이들은 만 4-5살로 형민이보다 나이가 많긴 하지만...형민이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나라는 달라도 언어는 달라도 아이들의 세상은 하나인가 봅니다.  

10만원 치를 560원에...  

름 이선화 날 짜 2003/06/02 (18:43:53) 조 회 146

까작스딴에 온 지 2주년을 넘겼습니다. 알마티에는 9기 협력의사 부부가 도착하고 저희와 동기인 7기협력의사 가족들은 이제 귀국 준비를 하는 시기가 되었지요.

그동안 많이 적응하고 살고 있지만 먹거리는 늘 아쉽습니다. 물론 이번에 한국에서 들어올 때 각종 나물 거리와 마른 찬거리들을 넉넉하게 가져왔지만.... 여기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셔보는 요즘입니다.

지난주에는 뼈국(용어정리가 필요한데 우리가 흔히 곰탕, 곰국이라고 하는 것을 저희 시댁에서는 뼈국이라고 부릅니다) 생각이 나서 뼈를 사려고 시장에 갔습니다.

사실 이곳 쇠고기는 값은 싸지만 질기고 잘 못 사면 냄새가 나고 또... 큰 덩어리를 용도에 맞게 사용하기가 쉽지 않아 잘 먹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어느 선교사님이 소 꼬리뼈를 주셔서 먹어본 이후로 다시 용기를 내 본 것입니다.

날씨가 더워서 노천 시장인 중앙 시장에 가지 않고 건물 안에 있는 에브라지아 시장로 갔습니다. 토요일이라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많았는데 우리 가족 4명도 이 틈에 끼어 들었지요.

(위 사진은 올 겨울 에브라지야 바자르 앞에 서 있는 선화와 아이들입니다.)

먼저 사전을 보고 익혀온 단어들을 되살리며 "야 하추 꾸삣찌 꼬스찌" (뼈 사고 싶은데요)하니가 아주머니들이 밑에 놓여있던 뼈들을 꺼내놓았습니다.

"베드린나야 꼬스찌, 깔레나?"(대퇴뼈, 무릎뼈)하면서 한국에서 맛있다고 들었던 대퇴뼈와 무릎뼈를 찾았지요.

그중에 깨끗하고 누런 기름이 없는 무릎뼈 두개를 골라 얼마냐고 물으니까 "빠 드바짜찌"라고 했습니다. '빠'는 어떠 단위를 말할 때 쓰이는데 보통 1kg당 얼마... 이런 식으로 쓰지요. 그런데 오늘은 아줌마가 하나에 20텡게(160원정도)라고 하는 것 같아서 40텡게를 줄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울에 올려놓더니 1.3kg이라면서 25텡게를 달라더군요.

그리고 다시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다리뼈 두쪽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3.2kg정도 되었는데 kg에 15텡게(120원쯤)해서 모두 45텡게 주었습니다.

4.5kg의 뼈가 묵직했습니다. 우리는 100텡게(800원)짜리 지페 한장으로 뼈를 넉넉하게 사고도 잔돈이 남을 걸보고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뼈를 먹지 않거든요. 그냥 버리는 것을 열심히 골라서 사가는 우리가 신기해보였을겁니다.

국물과 함께 먹을 고기를 1kg에에 350 텡게(3000원)에 사고 바자르를 나왔습니다.한국에서는 10만원쯤 줘야 살 수 있는 뼈를 단돈 560원에 샀습니다.

뼈국을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시부모님들이 아스타나에 오신다면 정말 맘놓고 많이 해 드릴 수 있을텐데... 하면서 오늘도 우리 가족은 뽀얀 국물을 놓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뜻 밖의 선물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3/06/11 (02:37:08) 조 회 119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며 돕는 그룹 중에는 새벽별 이라고 부르는 '부산의대 기독학생회 학사모임' 이 있습니다.

대학시절...의료봉사 활동. 병원에서의 병동 찬양, 캠퍼스 내 여러 종류의 기독 활동 등을 함께 하면서 보낸 우리들은 졸업 이후 병원 생활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진실된 교제가 계속 되었고...이젠 각자의 삶에 없어선 안될 가장 든든한 기둥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소중한 동역자들입니다.  

새벽별은 우리 가정이 까작스딴에 온 뒤로도 많은 관심과 후원을 보내 왔는데 이와 관련해선 인터넷의 공이 컸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교제가 가능한 인터넷을 통해 저희 가족의 소식들은 한국에 있는 것처럼 공동체 지체들에게 보여지게 되었고 저 역시 새벽별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에 두고 온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환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교제 뿐 아니라 새벽별은 까작스딴에 와 있는 우리 가족을 위해 식료품을 비롯한 많은 물품들을 공급해 왔습니다.

교민 수를 다 합쳐 봐야 30명 남짓 밖에 안되는 이곳 아스타나에서는 된장, 고추장, 콩나물, 두부, 라면, 김...거의 모든 한국 음식들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선 우체국을 통해 한국에서 이런 물건들을 공수받아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벽별 지체들이 보내 주는 식료품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른 미역, 마른 멸치, 카레, 짜장...이런 것 뿐 아니라 공 CD, 영화 CD, 필기구 까지...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여겼음직한 물건들까지 다 모아 우리 가족에게로 보내 왔습니다.

몇 주 전....새벽별에서 다시 저희 가족에게 물품을 보내 주겠다며 물품 리스트를 알려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이제 이렇게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도 하지만 일전에 올렸다 짜파게티 이야기처럼, 라면과 짜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생각에 라면을 보내 달라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라면 두 박스(또는 짜파게티)를 보냈다는 연락과 함께 또 하나의 box를 특급으로 부쳤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특급 소포의 내용은 비밀이라는 단서와 함께....

또 다시 이런 은혜를 입자 우리 부부는 고마움에 겨웠고 앞으로 우리가 한국에 들어가면 은혜를 꼭 갚을 거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오늘 우체국에 가 보았습니다. 우체국 사서함을 여는 순간 소포가 배달되었음을 알리는 통지문 한 장이 보였습니다. 보통 소포 하나 당 한 장의 통지문이 들어 있게 되는데 한 장만 있는 걸로 봐선 아마 특급으로 보냈다는 그 소포만 도착한 모양이었습니다.

뭘까? ...

새벽별에서 우리 가족에게 보내는 물품은 새벽별에서 후원을 하는 것이지만 상당 부분은 몇 몇 개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로선 이 특급 우편물은 새벽별에서 물품 발송을 담당하는 박태성(부산대병원 임상병리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보낸 것이란 걸 이미 알아채고 있었습니다.  

소포의 내용물을 뜯어 본 뒤 우린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아니...이게 뭐야...."

소포의 내용물은 LG 전자의 DVD player 였습니다. "초슬림형 43mm DVD"라고 적힌 걸 봐선 아마 신제품인 것 같은데 한 눈에 값비싼 전자 제품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까작스딴으로 오기 직전에도 한국에서는 이미 DVD 붐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렇게 대중화되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까작스딴에 온 이후 한국에는 DVD 대여점이 생길 정도로 많이 보급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우리 부부로선 먼 나라의 얘기로만 들릴 뿐....실감이 되지 않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인터넷 전용선을 사용해 본 적도 없습니다.)  

"어떻게 태성이가 DVD 플레이어를 보냈을까?"

지난 겨울... 출산 차 한국에 들어간 선화는 새벽별 모임에서 DVD 영화 상영회가 있을 때 그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때 우연히 박태성 선생님에게 우리 가정은 DVD에 대해선 전혀 생소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선화의 이 말을 들은 한국의 박 선생님이 마음에 둗고 있다 우리에게 이 선물을 보냈을 거라고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고맙고...너무 놀랍고...솔직히 약간은 부담스러운 이 큰 선물을 앞에 두고 우리 부부는 한 참을 넋 나간 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뒤...결국 우린 '우리가 받은 이 사랑'을 갚으며 살아가자고 얘기했습니다.

(DVD플레이어를 보고 있는 선화와 형민이)

이렇게...우리 가정에도 DVD 플레이어가 생겨 버렸습니다. 함께 동봉해 온 "한국-이탈리아 월드컵 경기"와 "Rules of Engagement"라는 영화도 단숨에 시청했지요. 화질도 좋아서 AV 시스템이 조금만 받쳐 주면 정말 영화관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빌어 선물을 보내 준 박태성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앞으로 도착할 두 box의 라면도 너무 반가울 것 같습니다. 비단 박태성 선생님 뿐 아니라 물품 리스트와 주소를 보내 달라고 협박(?)을 해 왔던 이현국 선생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또 이 지원 물품은 새벽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보내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고국의 사랑하는 새벽별 지체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큰 선물을 받았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이런 선물을 보낼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우린 행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까작스딴에서 받은 DVD 플레이어....가슴 벅찬 뜻 밖의 선물이었습니다.

'태성아...고맙다.'

'새벽별 여러분...감사해요'

 

끝 없는 체력전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3/06/23 (02:57:36) 조 회 96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어린 시절 5월 8일 어버이 날 마다 불렀던 노래의 한 소절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노래를 부르면서조차도 기르실 때 밤낮으로 고생하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요즘 두 아이와 씨름하며 지내면서 아기를 기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일단 체력적으로 많은 힘이 소요됩니다. 아침에 눈 뜨자 말자 시작되는 두 아이와의 삶은 말 그대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끝없는 전쟁의 연속입니다.

게다가 아기들의 체력은 얼마나 좋은지...선화 말대로 '조금만 자고 일어나도 120% 회복' 되는 게 아기들의 체력인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들의 회복 능력은 이에 못 미치지요.

챙기면 어지럽히고..닦아 놓으면 엎지르고...갈아 입히면 음식 묻히고...하루 종일 안고 있다가도 잠시 내려 놓으면 다시 앉아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체력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선화와 전...교대로 1시간씩 자고 와서 아이들을 보고 있습니다. 함께 한 명씩 맡고 놀다가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 오면 한 사람이 슬며시 옆 방 침대로 가 쓰러지지요.

그러면 남은 사람이 두 아이를 맡아 봐야 합니다. 형민이에게 비디오 시청을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난 뒤로는 더욱 더 많은 시간을 창의적으로 형민이와 함께 보내야만 되게 되었습니다.  

형민이는 책도 읽어 달라고 가져오고..비행기 태워 달라고 바닥에 눕히고...심지어 테니스 가방에 있는 테니스 라켓까지 가져와서 공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불쌍한 아빠는 풍선을 거실에서 튕구면서 형민이를 등에 태운 채 말처럼 돌아 다녀야 하지요.

만 6개월이 다 되가면서 더욱 무게가 나가는 시은이는 예사롭지 않은 눈알을 이리 저리 굴리면서 아빠, 엄마를 감별해 가며 놀아 달라고 야단입니다. 유난히 바닥에 누워 있지 않고 사람 품을 찾는 시은이는 요즘 낯을 가리는 시절과도 겹쳐 엄마, 아빠의 물리적 힘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교회를 다녀와서 미국에서 온 선교팀 student life 팀에서 준비했다는 뮤지컬을 보기 위해 오페라 발레 극장까지 다녀온 터라 우리들의 체력은 그야 말로 고갈 상태에 빠져 버렸습니다.

간신히 두 아이를 재운 뒤 거실에서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을 줍던 우리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야 말로 만신창이가 된 채...바닥난 체력이 한 눈에 들어  오는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엉망인 거실 바닥을 보며) 그래도...재미있재? 아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바닥을 어지럽히겠니? 이런 전쟁터도 이제 몇 년 후면 끝날 거야..."

"맞아요...나중에는 이 시절이 그리워 질 거예요...아마 나중에는 엄마, 아빠가 시시하다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을 걸요..."

아이들과 하루 종일 몸을 부대끼느라 온 몸이 쑤시고 아플 정도지만 우리 아이들과 놀아 주는 일은 헛된 시간이 아니라 소중한 시간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아이들이 어서 자라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노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아래 사진은 오늘 올린 새 글 '아스타나 천도 기념일'의 뒷 얘기쯤 되겠네요. 도시가 축제로 요란하던 이 날 두 아이를 데리고 도시를 누비고 다닌 우리 가족은 집에 돌아올 때 쯤에는 그야말로 모두들 녹초가 되어 곯아 떨어졌었지요.

 

"엄마... 기도..."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3/07/04 (02:57:22) 조 회 44

형민이의 말이 많이 늘었습니다. 자기 표현을 분명히 하고 감정 표현까지 확실해 졌습니다. 예를 들면... "너무 힘들어..." ,"억수로 재밌다...."(경상도 사투리), "맛있다..." , "무서워..." ," 애기 좋아..." 등등.... 형민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요즘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형민이를 나무랄 일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안되는 일에 억지를 부린다거나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손으로 뭔가를 집어 먹는다든지 어떤 물건에 손을 대게 되면 저희도 매를 들곤 하지요.

저는 형민이를 혼낼 때 우선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야기하고 이해시킬려고 합니다.

형민이는 우선 엄마의 표정이 달라진 걸 보고 잔뜩 주눅이 드는데..... 형민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이야기해 준 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게 하고 "그래도 형민이가 잘못했으니까 손바닥 세대를 맞아야한다" 고 하고 말한 다음 채벌을 가합니다.

형민이는 맞지 않을려고 하지만 제 마음이 아프더라도 매를 댑니다.

이렇게 매를 대고 나면 "형민아 기도하자"하고 꼭 안고 회개 기도를 하는데.... 나도 너무 화가 나면 금방 안아주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냥 "저쪽방에 가 있어!" 하고 말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요즘엔 매를 맞고 나면 형민이가 먼저 "엄마... 기도..."하고 기도하자고 말합니다.  

그럼 저도... 형민이를 품에 안고 쓸데없는 감정을 지워달라고 그리고 형민이가 좀 더 착한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때 형민이는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흐느끼는 소리를 함께 냅니다. 정말 슬퍼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형민이 스스로도 기도를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고 있다는 후련한 마음(카타르시스?)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형민이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슬픈 얼굴로 "엄마.... 기도...."하면서 안길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식사 시간의 일입니다. 시은이를 보행기에 앉혀놓고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물먹으러 왔다갔다 하던 형민이가 다시 의자에 앉을 때 오빠 의자 가까이에서 놀고 있던 시은이의 팔이 형민이의 의자와 보행기 모서리 사이에 끼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꼭 끼인 것은 아니었지만 시은이는 서럽게 울었고 이 상황을 잘 몰랐던 아빠는 형민이를 나무랐지요. 전 "아니에요... 형민이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의자에 앉느라고 시은이 팔이 잠시 끼었던 거에요....." 라고 형민이 편을 들었습니다.

형민이는 약간 시무룩해졌지만 이내 잊어 버렸고 즐거운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재미있게 놀다가 자기 위해 침대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때...침대에 올라온 형민이가 "엄마.... 기도.... 아까....애기 손 아야.... 애기 애-----.... 엄마 기도..."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통역을 하자면 아까 식사시간에 시은이 손을 자기가 아프게 해서 시은이가 울었기 때문에 회개기도를 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형민이를 꼭 안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까 형민이가 실수로 시은이 팔을 아프게 했지만.... 일부러 그런게 아니고 모르고 그랬어요. 앞으로 형민이가 좀 더 조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제는 괜찮지요?....."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형민이는 눈물없이 슬피 우는 소리를 냈지요.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의 영혼.... 요즘은 형민이를 보면서 왜 예수님이 이런 어린아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