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 천도 기념일

6월 10일은 까작스딴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가장 큰 명절입니다.  아래에 까작스딴의 공휴일을 정리해 두었는데 사실 이것 말고도 더 많은 기념일들이 있지만 법정 공휴일로 온 나라가 일하지 않는 날은 아래의 날들 뿐입니다. 이 중 까작스딴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큰 명절로는 1월 1일, 새해와 3월 22일 나우리즈를 손꼽고 있고 독립 기념일도 연말 분위기와 어우러져 큰 명절로 지키고 있지요.

날짜

명절 또는 공휴일

비고

1월 1-3일

새해(노븨 고드)

경우에 따라서는 앞, 뒤의 일요일을 일하게 하고 한 주동안 휴일로 쉽니다.

3월 8일

여성의 날

남자의 날, 스승의 날..다 휴일이 아닌데..여성의 날은 휴일이더군요.

3월 22일

나우리즈

까작민족의 설날입니다. 춘분을 새해의 시작으로 생각합니다.

5월 1일

온 국민 하나되는 날(젠 이진스트바)

예전 '노동절'로 지키던 명절인데...독립 후 '국민 대화합의 날'로 지킵니다.

5월 9일

승전기념일(젠 빠베듸)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하던 독일을 격퇴한 것을 기념하는 날

6월 10일

아스타나 천도 기념일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긴 것을 기념하는 날(아마 아스타나만 휴일일 거예요)

8월 26일

제헌절(젠 깐스뚜찌야)

헌법을 만들어 공화국의 기초를 놓은 날

10월 25일

공화국의 날(젠 리스뿌브리끼)

공화국 성립의 날

12월 16일

독립기념일

구 소련에서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

하지만 까작스딴의 수도 아스타나에서만큼은 가장 큰 명절은 6월 10일 천도 기념일 입니다.

까작스딴은 소련 연방 시절에도 다른 민족 공화국들보다 늦은 1925년에야 자치 공화국으로 출범했습니다. 처음에는 끄질오르다에 수도를 두고 있었지만 1929년에 알마티로 수도를 옮겼었지요. 이후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1991년 12월 25일, 독립 국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후에도 여전히 수도를 알마티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난 1997년 12월,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결단에 의해 70년 가까이 수도로 사용되던 알마티를 떠나 까작 초원의 한 복판 아끄몰라(지금의 아스타나)로 까작스딴의 수도를 옮깁니다.

이후 아끄몰라는 아스타나(까작어로 '수도' 라는 뜻)로 명칭이 바뀌면서 수도로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되지요. 그리고 아스타나에 사는 사람들은 수도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이 날을 그 어떤 명절보다 화려하고 즐겁게 지키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은... 또 하나의 아스타나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족이 본 '6월 10일' 천도 기념일 행사의 모습을 스케치 하려고 합니다.

선화와 형민이가 보이는 이곳은 '아스타나의 얼굴' 이라고 할 수 있는 도로인 '리스푸브리까' 의 모습입니다. 이 날 만큼은 이 큰 도로가 완전히 '차 없는 날'로 변하게 됩니다. 각종 축하 행렬이나 공연이 길을 따라 지나가게 되고 길 가에는 위 사진처럼 장난감과 먹을 것을 파는 소매상인들로 넘쳐 나지요.

위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한국 상표인 "LG" 마크가 선명한 광고판도 보일 테고 길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물웅덩이들도 눈에 띄실 겁니다.  이른 아침에 비가 왔었거든요....아스타나 천도 기념일인 6월 10일은 바로 이 '비' 와 관련된 징크스가 있습니다.

1998년이 아스타나가 수도가 된 첫 해이고...그 이듬해인 1999년부터 6월 10일을 기념일로 지켜 각종 행사를 벌이고 있는데 유독 6월 10일만 되면 비가 왔었다는 사실이 징크스의 내용입니다. 제 러시아어 선생님(갈리나 이바노브나)의 증언에 의하면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역시 6월 10일만 되면 이전까지 맑은 날씨를 보이던 하늘이 돌변하면서 비를 뿌렸다고 하는데 작년 6월 10일에 비가 많이 왔던 것은 저 역시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과 미국의 월드컵 경기가 벌어진 날이였거든요....우산을 쓰고 축구 경기를 보러 이 도시의 유일한 영화관으로 달려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하늘을 보면 아시겠지만 2003년에도 역시나... 6월 10일 아침에 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조금만 내리다가 멎더군요.

이 날 하루를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음을 알게 된다면 비가 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축제 속의 도시를 누벼야 할 우리 가족으로선 따가운 햇살을 쬐지 않아도 된다는 행운을 얻은 셈입니다.

이 날이 되면 아스타나 도시 전체는 오색 풍선과 인형들, 각종 깃발, 장식 건축물들로 가득 채워집니다. 사실...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이 날이 큰 명절로 다가올 리 만무하지만...며칠 전부터 고조되어 온 축제 분위기에다 아침 일찍부터 도시 곳곳에서 들려 오는 음악 소리와 넘쳐나는 인파로 인해 우리 역시 집 안에 가만 있질 못하고 온 가족과 함께 거리로 떠밀려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은이가 유모차에 타고 형민이는 아빠 손을 잡고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모차 자리는 형민이의 것으로 바뀌었고 누군가 시은이를 안아야만 했지요.

이곳의 축제 분위기는 재미있습니다. 나우리즈 때도 마찬가지지만... 큰 명절이 되면 도시 곳곳에 임시 무대를 가설해 놓고 각종 축하 공연을 벌이는 게 이곳 축제 문화의 특징입니다. 한국 같으면 중앙 무대를 하나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들이 그 곳에 몰려 와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게 하겠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앙 집권식이 아니라 한 도로를 끼고서도 몇 군데의 무대를 만들어 놓고 각 무대마다 사회자와 다양한 출연진들을 출연시켜 가면서 하루 종일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데... 바로 옆 무대의 스피커 소리가 쩌렁쩌렁 울러 퍼지는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수와 댄서들이 올라와 자신의 노래를 불러 댑니다. 마치 서로 지지 않으려는 듯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와 함성 소리로 인해 우리 같이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정신을 못 차릴 정도지요. 시은이로선 한 마디로 눈이 휘둥그래지는 일입니다.  

그래도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연을 보러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위 사진은 람스토르 바로 앞에 세워진 가설 무대인데....무대 위에서 까작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과 몰려 온 사람들이 보입니다. 초여름인데도 이렇게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온 뒤에는 옷을 잘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해지는 게 이곳 기후랍니다.

바로 맞은 편 대통령 운화 센터 앞 무대에서는 이 싸늘한 날씨에도 수영복 입은 모델 아가씨들의 패션 쇼(?)가 십여 분 동안 펼쳐지기도 했는데 비록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많이 끌긴 했지만 이 추운 날씨에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 공연에는 저 보다 선화의 호응도가 훨씬 높았음을 참고로 전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축하 공연 무대를 다 찾아 가 보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 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였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지치고 배도 고파지자 햄버거로 요기를 하고 차를 타고 이심강변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도 뭔가 재미있는 공연이 있을 것 같아서였지요. 가는 길에 이심강 다리 위에까지 가설 무대가 세워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이곳 사람들은 이 명절(쁘라즈닉) 분위기 하나 때문에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구나....' 란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지요. 그냥 도시 전체가 축제 속으로 푹 빠져 든 것 같았습니다.

이심강의 인도교와 건너 편 수도 공원에도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강변에 세워진 아이들의 놀이터(환타지아) 안에도 무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젊은 남녀들이 마이크를 겁내지 않고 많은 인파 앞에서 노래하고 춤 추는 걸 보면서 이곳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환타지아 놀이 공원에서 원시인의 모습을 한 장난스런 인형 뒤로 가서 사진을 찍고 난 뒤 이 도시의 가장 중심부인 주 광장(main square) 앞에도 가 보았습니다.

그 곳에선 싸이클, 마라톤, 스케이트 등 각종 스포츠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야외 유도 경기가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까작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이 심판을 보고 있더군요.

천도 기념일의 하이라이트 행사는 한 밤의 불꽃 놀이와 저녁에 벌어지는 시가 행진입니다. 마치 남미의 축제나 카니발 처럼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시가 행진을 벌이는데 대부분 학교와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참가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마 학교 단위로 이 행사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나 봅니다.

시가 행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위치한 도로 '바라예바' 에서 시작해서 우회전을 한 뒤 도시 중심인 '리스푸브리까' 거리로 이어지는데...덕분에 움집한 사람들을 집 안에서 여유있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 행진이 시작된 것은 저녁 9시 경이었습니다. 각종 다양한 의상과 인형들이 동원된 이 시가 행진을 구경하려고 형민이를 안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한국의 축제 문화에는 이런 시가 행진이 낯선 게 사실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한 때는 각종 경축일에 학생들이 동원된 이런 시가 행진을 벌였던 적이 있지만 요즘은 이런 일에 사회적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요. 하지만...이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에 참가하고 있었고 비단 가장 행렬을 벌이는 학생들 뿐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이 행렬을 따라 가며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까작스딴은 너무 살기 힘든 곳입니다. 물론 극소수의 부자들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족한 살림살이와 환경 속에서 그저 하루 하루를 이어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꿈이나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더 나은 것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기 보다는 환경에 순응하며 지금의 삶이 이어지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월 평균 급여가 100불(13만원)에도 못 미치는 이곳 사람들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모든 필요를 배급에 의해서만 충족 받던 사회주의 체제 속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 소련 시절....집단의 목표를 위해 매일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량을 완수해야 했고, 알려지지 않은 일에 대해선 호기심이나 궁금증 마저도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육체 노동에 시달려야 했지만 일년에 몇 차례 있는 이런 명절에는 코가 비뚤어지도록 놀고 즐겨야 한다는 게 사회주의 때부터 내려온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었지요. 또 그렇게 해야만 삶에 불평없이 또 다시 똑같은 일에 전과 같이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바뀌어 세상은 자본주의로 접어 들었고 이전에 없던 빈민들과 부랑자들은 늘어가고 사회 문제는 불안하게 대두되고 있지만 지금도 그 옛날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의 억압된 마음과 불평과 고통들이 해소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축제 문화를 통해서죠.

이곳에선 축제는 마치 진통제와 같습니다. 괴로운 현실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은 축제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공휴일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스 쁘라즈니깜"(명절을 축하합니다.) 이라는 인삿말을 건네고 법정 공휴일이 아닌 많은 기념일들까지 명절로 삼아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살아가고 있지요.

아래는 시가 행렬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놀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해도 해결되지 않는, 자기와 가족을 둘러 싼 고통스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아스타나 전체가 몰입해 들어가는 축하 행렬 속에서 그들 마음 속에 뻥 뚫려 있는 공허함과 안타까움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축제가 끝나면 삶은 다시 다음 축제를 기다리는 의미없는 반복으로 돌아가겠지요. 어쩌면... 그들은 사람의 공허한 마음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기본 진리를 이미 깨닫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 날의 즐거움에 그저 자신의 삶을 내 맡기고 즐기는 거겠지요.

삶의 이유와 목표를 알지 못한 채 헤매는 사람들...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하루를 잊어 버리고 싶은 사람들... 이곳에도 예수가 필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03.6.22

 

 

아래 사진은 작년 2002년 천도 기념일에 촬영한 아스타나의 중심 리스푸브리카 거리의 모습입니다. 이 날은 오전에 큰 비가 왔었고 오후 들어선 활짝 갠 날씨를 보였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