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이 지난 시은이

시은이는 이제 만 5개월이 지난 아기입니다. 포동포동하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까닭에 안아 주려고 들어 보면 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이젠 엄마, 아빠와 옹알이를 하며 마음을 주고 받는 어엿한 우리 가족의 새 일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은이를 키우는 저희 부부는 형민이를 기를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기쁨들을 더 많이 깨닫는 것 같습니다. 첫 아이보다 양육에 대한 두려움이 덜해서인지 아기가 자라는 과정의 신기함을 바라 볼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시은이는 지난 5월 9일 그러니까 만 4개월 11일 되던 날 '뒤집기'를 처음으로 성공했습니다. 물론 더 일찍부터 뒤집기를 해 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그동안 제대로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시은이는 형민이와는 다르게 뒤집기가 잘 안 되면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편한 속내를 온 가족들에게 드러내 보이는데... 마치 짜증을 내는 듯한 이 모습을 보며 우린 곧잘 "여자애들은 뒤집기 할 적부터 다른가봐..." 라며 시은이의 뒤집기를 거들어 주곤 했습니다. 뒤집기에 성공한 뒤로는 '뒤집기'를 한 자세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질 못해 뒤집기만 한 채로 다시 찡찡거리고 있지요.

어쨋든 이런 시은이의 소리까지 가세한 우리 집은 전보다 훨씬 더 시끌시끌한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말문이 트인 형민이는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쫒아 다니며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고... 수십가지가 넘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곡들을 하루 종일 불러 대면서 시은이를 웃겨 준다며 시은이가 누워 있는 침대 위에서 폴짝 폴짝 뛰며 시은이의 웃음을 유도하곤 합니다.

이젠 사람을 똑똑히 알아보는 시은이는 제 눈에도 자그마하게 보이는 오빠가 다가 와서 티없이 웃어 주고 재롱을 부리는 게 즐거운가 봅니다. 오누이는 이렇게 대화를 나누기 전부터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나 봅니다.

시은이는 형민이와 무척 닮았습니다. 물론 두 아이 모두 자세히 분석(?)해 보면 엄마, 아빠를 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시은이가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바로 오빠 형민입니다. 아래에 가지런히 놓인 5개월 된 시은이와 7개월 적 형민이의 모습을 보시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시은 (만 5개월:2003년 5월)

                      형민 (만 7개월:2001년 5월)

모습

외모

1.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이 적고 지금도 거의 희박(?)함

2. 피부색은 엄마를 닮아 흰 색

1.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많았고 5개월 적에는 하늘로 치솟아 오름

2. 피부색은 아빠를 닮아 검은 편, 옷을 들춰보면 속살도 검다나요

성격

1.까다롭지 않고 순함

2.계속 안아 줘서 그런지 바닥에 혼자 누워 노는 일이 없음

3.별로 가리지 않고 분유를 잘 먹는 편임

4. 심하게 낯을 가리진 않지만 덥고 습기 많은 곳을 싫어함

5.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 있음

6. 손가락을 빤다.

1. 까다롭기로 유명한 녀석

2. 가끔은 방바닥에서 30분 정도 혼자 뒹굴뒹굴 놀기도 했었음

3. 제 정신으로는 절대로  우유가 든 젖병을 빨지 않음

4. 낯을 엄청나게 가렸음. 교회에서 제대로 예배드린 적이 없음.

5. 유모차에 앉아 있었던 적이 없음

6. 손가락은 빨지 않고 노리개 젖꼭지를 달고 다녔음

특징

1. 좋아하는 장난감: 오빠 형민

1. 좋아하는 장난감: 광등이(형광등)

 

두 아이를 돌보는게 어려울거라며 아기들의 아빠는 되도록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 주며 집안 일을 돕습니다. 주로 형민이는 아빠가 man to man 으로 맡는 일이 많지요.

전 아무래도 둘째를 기르며 옛날 형민이 때를 자주 떠 올리게 됩니다. 비슷한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은이와 형민이는 너무 다르거든요...시은이는 기르기가 훨씬 수월하답니다.

우선 형민이를 기르는 데 있어 최대의 어려움은 백일이 지나면서부터 거부했던 우유를 어떻게 하면 먹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우유라는 걸 알면 절대로 젖병을 빨지 않던 형민이... 그래서 잠이 들면 무의식 중에 우유를 먹길 기대하며 젖병을 물리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형민이는 돌이 지나고 만 20개월이 될 때까지 밤중 수유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한밤 중에 두 번씩이나요....

낮에는 절대로 우유(분유)를 먹지 않았던 형민이었기에 밤 중에 자는 도중 형민이가 뒤치닥 거린다 싶으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로 이해했었죠...) 살짝 분유병을 먹여 키워야 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시은이는 요즘 효녀중에 효녀입니다. 최근 들어 우유는 딱 4시간 간격으로 먹고 있는데...잠들기 전, 밤 10시 경에 우유병 한 통을 비우고 나면 아침 7시나 8시에 깰 때까지 한 번도 엄마를 깨우지 않고 푹 잡니다.

시은이의 경우에는 육아책에 나와 있는대로 자연스럽게 밤중수유가 없어지고 수유 간격도 늘어나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떤 특별한 노력이 있어야 밤에 깨지 않고 잘 자는가 싶어 '밤에는 우유 대신 물을 먹여 볼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교과서대로 자라 주니 어찌나 기특한지 모릅니다.

아들을 기르는 것과 딸을 기르는 것도 다른 경험인 것 같습니다. 시은이는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하거든요.... 형민이는 5개월쯤에는 주변환경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었답니다. 통통 튀는 공이나 그네 타는 아이들을 보면 발을 버둥거리면서 깔깔거렸고, 목욕할 때는 손으로 물을 쳐 내 온 방을 물바다로 만드는데 이 때도 자지러지게 웃곤 했었습니다. 형민이의 경우에는 움직이는 것들을 보면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형민이는 소리에 아주 민감해서 이때 쯤(생후 5개월)이면 진공청소기나 헤어 드라이기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놀라서 한참 동안이나 울어 대기 때문입니다. 까작스딴에 온다고 이삿짐 박스에 짐을 넣을 때도 스카치 테잎 뜯는 소리에 놀라 불안해하는 형민이 덕택에 일을 미루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반면.....시은이는 좀 더 정적이고 형민이와 같은 과장된 반응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큰 소리로 웃을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형민이가 시은이를 재미있게 해 준다고 방 안이나 침대 위에서 뛰며 소리를 지르며 놀아 줄 때입니다. 이 때는 시은이도 깔깔거리고 웃지요. 우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커서도 둘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길 기대합니다.  

(사진은 첫 이유식을 시작할 때의 모습입니다. 그냥 숟가락으로 물만 떠 먹이는 수준입니다.)

뒤집기에 성공하면서부터 시은이의 이유식도 시작되었습니다. 아스타나에 함께 와 있는 외과 선생님네를 통해 추천받은 책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참고로 해서 시행하고 있는데..... 기본은 '시중에 파는 이유식을 먹이는 게 아니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준다' 는 것입니다. 이 또한 형민이 때와는 다른데 우유를 안 먹는 형민이에게는 다른 영양식이 필요했기에 좋다는 이유식은 다 사 먹여 봤었거든요...하지만 형민이는 우유와 마찬가지로 걸죽한 이유식은 더더욱 입에 가까이 대질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시은이는 하루에 한 번 쌀 미음을 먹고 있습니다. 이유식이란 '영양 보충식이 아니라 앞으로 밥을 먹기위한 준비단계' 에 해당되기에 각종 식품이 다 들어간 시중 이유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앞에서 말한 책의 저자의 생각에 공감해서입니다. 지난 겨울 한국에 있을 때 어떤 소아과 의원에서 이유식을 만들어 배달해 준다는 광고도 하는 걸 봤었는데..... 전 이렇게 쌀과 야채, 고기를 이용해서 먹여갈 생각입니다. 아직은 시은이가 거의 다 흘리는 수준이지만 점차 좋아지겠지요.

이제 사물이 보이면 손을 뻗어 잡아 보려고 하는 시은이는 가끔씩 사고도 치기 시작합니다. 지난 달에는 식탁 곁에 앉아 있다가 국그릇을 끌어 당기는 바람에 국을 엎질러 큰일날 뻔하기도 했지요. 손에 뭔가가 잡히면 일단 입으로 가져 가긴 하는데 아직 조정능력이 없어 물건들은 시은이 얼굴 어딘가에 쿵 부딪히고 말지요. 빨고 싶은 욕구들이 한참 증가하는 시기입니다.

(지난 5월 까작스딴의 대표적 초 여름 과일 살구(아브리꼬스)가 나왔을 때의 모습입니다. 시은이도 아빠가 먹고 있는 살구를 입에 가져가 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요?)

시은이는 손가락을 빱니다. 왼손 엄지손가락을.....

형민이는 이렇게 손가락을 빤 적이 없어 잘 몰랐었는데... 아기들이 손가락 빠는 모습은 너무나 귀엽습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심한 경우 손가락이 헐기도 해서 문제가 되지만 적당하게 빠는 건 머리도 좋게하고 아기의 욕구 불만도 해소되면서 좋은 위안이 된다고 하네요. 어쨌든 시은이가 손가락을 빨기 때문에 밤에 엄마를 안 깨우고 더 잘 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형민이의 경우에는 밤에 깨면 늘 노리게 젖꼭지를 물려 줘야 했었거든요.

우리가 뭔가를 먹고 있으면 시은이는 부럽고도 신기한 눈으로 먹거리를 쳐다봅니다. 이런 시은이의 모습을 보는 형민이는 시은이가 자기가 먹는 걸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재미있는지 음식을 입에 가까이 가져다 주는 척 하다가 다시 되돌리면서 "아니야.... 애기 우유(애기는 우유만 먹어야 해).... 키 크면 먹어" 하면서 놀리기도 한답니다. 이 때 시은이의 섭섭한 표정이란.... 너무 재미있습니다. 가끔 재미 삼아 입술에 갖다주면 열심히 탐색전을 벌이는데.... 저희도 좀 더 자란 시은이에게 이것 저것 먹여보는 즐거움을 갖고 싶네요.

유모차에 대한 반응도 시은이와 형민이는 다릅니다. 6개월쯤 되었을 때 형민이를 처음 유모차에 앉혔었는데 편안하게 뒤로 눕지 않고 앞 쪽으로 바짝 몸을 기울여 앉아 있는 탓에 가끔 덜컹거리면서 몸이 젖혀지기라도 하면 어느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혀 울곤 했었지요.

게다가 한국에서 까작스딴으로 보낸 짐이 도착하는데 2개월이 넘게 걸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유모차를 싫어하던 형민이가 유모차에 적응하는 시기도 놓쳐 버린지라 형민이와 유모차는 가까이할 수 없는 인연이었습니다.

그래도 무거운 형민이를 안고 다니기 힘들어 알마티에 살 적엔(2001년 5월-8월) 아빠가 출근한 오전에 가끔씩 형민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사말 람스또르까지 내려 가곤 했었습니다. 우리가 살던 집에서 10 분 거리에 있는 곳이라 자주 가곤 했었는데 갈 때는 약간의 내리막길입니다.  처음에는 유모차에 좀 앉아 있길래 무사히 데리고 내려가긴 하지만 나중에 올라 올 때는 유모차에 안 오르겠다고 찡찡거리는 바람에 한 손에 는 형민이를 안고 또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면서 오르막을 오르던 더웠던 여름날이 생각납니다. 생각만 해도 숨이 찰려고 하네요.....

그러나 다행히 시은이는 제법 잘 앉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따가운 햇볕이 한풀 꺽어지고 나면 우리 모두는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갑니다. 가끔 시은이 대신 형민이가 앉아서 가기도 하지만.... 이제야 유모차가 제 주인을 만난거지요.

(시은이는 이렇게 엎드려 자기도 합니다. 아마 손가락을 빨다가 그대로 자 버리는 것 같은데...귀엽지요?)

지금도 내 옆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습니다. 아기가 자는 모습....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가끔 우리 부부는 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자는 모습이 귀엽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얘기하곤 합니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변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잘 때의 표정'일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잘 때 피곤에 찌든 모습이나 깊게 패인 주름살만큼 괴로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지만 아기들은 말 그대로 평화롭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 듭니다. 어떨 때는 마치 웃고 있는 모습으로 자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만 2살 8개월인 형민이의 자는 모습도 여전히 행복하고 평화로운 미소입니다. 언젠가....형민이의 자고 있는 모습이 변했다고 느껴질 때면 어느 덧 수십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린 때이겠지요.

아기들을 기르면 아기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아기를 사랑하면 할수록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자라고 감정이 자라는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마치 정해진 스케줄 대로 다음 발달 단계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아기들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생명입니다.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또 하나의 그 분의 백성들이기에 잠시 내게 맡겨진 이 아기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 매일 우리 부부의 어깨를 누릅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책임감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게 만드는 아기들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초롱초롱한 눈빛은 이 일이 얼마나 기쁜 일임을 내게 가르쳐 주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더 소중한 것임을 깨우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부부는 두 아이를 안고 거실에 앉아 가정 예배를 드리며 까작스딴에서 기르는 이 두 아이가 하나님 안에서 겸손하고 지혜로운 인격으로 자라게 해 달라고 그 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200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