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 선교지 탐방 - 9. 어즈거하바르 카우옴 (복음 교회)

계절은 뜨거운 여름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시간이 많은 탓에 얼굴은 이미 검게 그을렸고 조금만 다니더라도 얼굴은 이내 땀범벅으로 변합니다.

이번에 소개드릴 교회는 한국인 선교사의 교회가 아니라 현지인 사역자에 의해 2년전부터 아스타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까작스딴에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많은 선교사가 들어와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주로 알마티,침켄트,쟘불 등의 남쪽 도시들과 아스타나, 가라간다 등의 중북부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선교사 못지 않게 까작스딴이나 구소련 권에서 태어나 자란 많은 현지인 목회자들이 까작스딴의 대도시들은 물론이고 인구가 얼마 되지 않는 중소도시에까지 파고 들어가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들 중에는 구 소련권에서 45년 이상 개신교 신앙을 지켜온 침례교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신앙 때문에 구 소련 시절 손가락이 잘리는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의 후예들입니다. 침례교 외에도 비교적 최근 들어 LA의 한인은혜교회 선교부에서 모스크바에 세운 은혜 신학교를 졸업한 많은 현지인 사역자들이 구소련 전역에서 '은혜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이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데 그들의 운동력은 너무도 엄청나서 대도시마다 1-2만명의 교세를 가진 대형교회를 세우고 있을 정도지요. 그 외... 새사도교회 나 새생명 교회 같은 많은 개신교회들이 선교사들이 없는 지역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지인 사역자들의 교회입니다.

사진은 요즘 아스타나 모습입니다. 아스타나는 강을 끼고 있는 도시인 거 아시죠? 강변의 2층 건물에서 멀리 강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인데 여유롭고 평화로와 보입니다. 그동안 주로 강 건너편 쪽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었는데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교회 이름은 '어즈거하바르 카우옴'입니다.

일전에 한국인 선교사 남성택/박용주 선교사님 부부의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을 소개할 때 알려드린 대로 '카우옴'이란 단어는 까작어로 '모임'을 뜻하는 전통단어입니다.

까작인들만을 위한 교회를 세울 경우에는 까작인들의 귀에 거슬리는 '교회'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 '카우옴'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아스타나에서 까작인만들이 모이는 교회는 오늘 소개해 드릴 '어즈거 하바르 카우옴'과 일전에 소개한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이 대표적입니다.

오늘 '어즈거 하바르'라는 말의 뜻은 '기쁜 소식' 이란 의미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복음'이라고 의역할 수도 있을 테니 '기쁜 소식 교회' 혹은 '복음교회'라고도 풀어 말할 수 있겠지요. 담임 목회자의 성함은 '아델' 인데 그는 알마티에 세워져 있는 칼텍 신학교를 졸업하고 아스타나로 올라온 분입니다.

까작스딴이 분리 독립한 뒤 가장 먼저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친 교단이 바로 한국의 침례교입니다. 많은 침례교 선교사님들이 12년 전에 벌써 까작스딴을 찾아 왔었고 그 때 세워진 교회들은 지금도 알마티에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큰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칼텍 신학교 역시 이러한 침례교단에서 알마티에 세운 신학교인데 까작스딴은 물론이고 인근 국가에서도 많은 목회장 지망생들이 이 칼텍 신학교를 찾아 오고 있습니다. 이 신학교는 한국처럼 목회학 석사 같은 학위가 주어지는 학교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까작스딴에서 신학을 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안이 되어 주고 있는데 아델 목사님 역시 이 칼텍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개척 사역을 위해 아스타나로 올라 오신 것입니다.

교회가 위치한 바우만 23번지는 아스타나에서도 외곽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물론 가까운 곳에 '빠베다' 라는 큰 도로가 지나가긴 하지만 교회까지 찾아 오려면 포장되지 않은 돌길을 한참 걸어야만 하지요.

제 차가 서 있는 좁은 흙길이 바로 '바우만' 거리이고 파란 대문 집이 임시로 사용되는 모임 장소 입니다.

대강 보면 아시겠지만 이 지역은 모두 이런 낡은 흙집들로 이루어져 있고, 제대로 된 가로수 하나 없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거리를 바라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곳이죠.

언젠가 아델 목사님 집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스타나 기차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차분하게 보이는 사모님과 함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구요.

이 교회를 알게 된 것은 아스타나에서 NGO 사역을 하시던 침례교 선교사님 한 분을 통해서였습니다. 까작어 사역을 계획하시던 그 침례교 선교사님은 아델 목사님의 까작 교회를 출석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제가 아스타나의 여러 교회를 돌아가며 의료 사역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아델 목사님께 전했더니 자신의 교회도 방문해 주었으면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이 분을 만나게 되었고 교회 사정과 여러 얘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까작인들에게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민족과 가문을 저버리는 행위로 여겨집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 신자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고 한 사람을 둘러 싸고 있는 많은 인간 관계들은 도무지 주위를 떨쳐 버리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도록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하지만...참으로 귀하게도 까작인 '아델' 은 복음 전파자의 길을 가겠다고 헌신했고 신학교에 들어갔고 다행스럽게 비전과 맞는 자매와 결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가 졸업한 칼텍 신학교는 신학교 졸업 성적이 우수한 3-5명의 학생들에게 교회 개척을 할 수 있도록 매달 적은 금액의 후원비를 제공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외국인 선교사가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인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통역없이 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기에 칼텍에서는 졸업생들에게 이런 노력도 기울이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아델 목사님은 이런 신학교 후원금과 여러 곳에 들어오는 헌금들을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고 살아가고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지금 모임 장소로 사용되는 바우만의 작은 집도 월세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고 그의 아파트 역시 임대해서 사용하는 것이라 안정된 생활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 삶에 만족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에는 늘 미소와 여유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즈거 하바르 카우옴' 의 교인들의 모습인데 가운데 줄 중간에 넥타이 맨 분이 바로 담임인 아델 목사님입니다. 그가 아스타나에 온 뒤 모임 장소를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 교회 인가를 받기 위해 시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아스타나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이미 많은 교회를 등록했고 인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지요.

하지만 시청에서는 까작인 아델 목사님께 교회 허가를 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가 들은 얘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와서 교회를 열고 허가를 해달라고 신청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 주지만 당신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신은 까작 사람이 아니냐? 까작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고 교회를 열 수 있느냐? 까작스딴의 수도인 아스타나에서 까작인 목사가 일하는 교회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미 생긴 건 할 수 없지만 새로 내 줄 순 없는 일이다"

까작스딴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까작스딴이야말로 여러 민족, 여러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이슬람권의 유일한 국가라고 자랑하고 다닙니다. 작년 말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도 그런 인터뷰를 했었죠.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까작스딴을 이슬람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까작인들의 민족 종교라 할 수 있는 이슬람교와 오랜 세월동안 함께 살아 온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다른 종교에 대해선 경계의 눈빛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입니다. 국제법에 의거해 서류를 갖춰오는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종교단체 허가를 내 주긴 하지만 자국민 까작인에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위와 같이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는 곳이죠. 불과 1년전만 하더라도 선교활동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신(新)  종교법'을 제정하려 기도하다 국제 인권 단체와 외국의 압력에 의해 대통령이 중단을 선언한 바 있어 까작스딴 행정부의 반 개신교적 생각은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교회 수속을 위해 서류를 가지고 찾아 간 지 2년째...아직도 '어즈거 하바르 카우옴' 은 종교 단체 등록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아델 목사님의 얼굴에는 전혀 초조해 하거나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변의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헌법은 국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약속하고 있다. 까작인으로서 목사가 되고 수도 아스타나에서 교회를 열고 목회하는 모습을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 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아델 목사님은 자기 교회 뿐 아니라 한국인 선교사 남성택 선교사님의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을 찾아 와 매 달 마지막 토요일에 정기적인 찬양 모임을 인도하겠노라고 말하는 등 다른 사역자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 선교사들이 아델 목사님의 교회를 여러 모양으로 돕고 있기도 하지요.

이런 배경 아래에서 저 역시 지난 2003년 1월부터 아델 목사님의 '어즈거 하바르 카우옴' 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혈압계, 청진기, 약가방을 들고서 말이죠...

왼쪽 그림은 어즈거 하바르 교회에서 배포하는 안내지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모임의 내용과 시간 그리고 위치 등을 알려 주기 위해 만든 일종의 전도지 인 셈이죠.

주일 모임 시간을 소개하는 내용 아래를 보시면 매 달 두 번씩 금요일 오후 3시에 이 교회에서 진행되는 무료 진료에 대한 홍보 내용이 적혀 있는 것도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가 아니라 까작어로 적혀 있어 저 역시 이 내용을 읽을 수 없지만 15:00 라는 시간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즈거 하바르'로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는 한국인 선교사의 교회가 아닌 곳에서 시작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편안하게 오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 곳을 찾아 진료하던 날 통역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이 교회는 어느 교단에 속해 있냐?" 고 물었다가 목사님께 실례를 범하기도 했었습니다.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을 피하셨던 목사님은 진료가 끝난 뒤 살짝 통역 아주머니를 불러 "우리 교회는 침례 교회에 속해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 출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그런 것은 모르고 자신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대부분 처음 출석하는 사람들이라 지금은 그저 서로 친해지고 가깝게 교제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서로 친밀해지고 비밀까지도 털어 놓을 정도가 되면 그제서야 이사(예수의 까작어)에 대해서 조금씩 얘기한답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얘기했다가는 아무도 우리 모임을 찾지 않을 거예요.."  그제서야 알았다고 미안해하는 통역 아주머니에게 오히려 괜찮다며 웃음짓는 그의 모습은 까작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사역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교회에 들러 진료를 할 때면 이렇게 방바닥에 앉아서 약을 펼쳐 놓고 환자를 대합니다.

제가 진료 사역을 하고 있는 다른 다섯 군데(베라교회, 미추리나 크리스챤 센터, 수이어스펜설록 카우옴, 양로원,악골교회)에는 진료를 할 수 있는 책상과 의자들이 구비되어 있지만 '어즈거 하바르 카우옴' 만큼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 이렇게 자그마한 방에 앉아야 하는 것이죠.

게다가 어즈거하바르 카우옴은 제가 진료하는 곳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환자가 모이는 곳입니다. 어떨 때는 교회당으로 사용되는 집을 지키며 살고 있는 젊은이들만 보일 뿐 환자는 단 한 명도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냥 약가방을 들고 돌아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오늘은 한 사람도 안 아픈 모양이네요. 좋은 날인가봐요..." 서로 미안해 하는 인삿말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애쓰는 서로의 맘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즈거 하바르 카우옴'은 조만간 모임 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집을 옮겨야만 합니다. 집 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비워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저의 진료 장소도 바우만 거리가 아닌 또 다른 외곽 지역으로 옮겨질 지도 모르겠지만 선교지의 최전선에서 까작인 사역자와 동역하는 이 일은 제겐 더 할 수 없는 행복이고 기쁨입니다.

오늘도 까작스딴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고 있는 수 많은 현지인 사역자들...특별히 가족과 가문과 민족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고 헌신하고 일어서는 까작인 사역자들의 앞 날에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이 뜨겁게 내리 쬐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0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