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타나 선교지 이야기 - 15.카자흐인을 위한 발렌타인 데이

선교지 까작스딴에서 크리스챤으로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곳에서의 삶이 그저 낯선 곳에서의 유희에 그치지 않도록 끝없이 자신을 살피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백성 사이에 섞여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선교라고 말들 하지만 자신이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보여지기를 사모하는 것이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챤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제협력의사로서 현지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과 선교지 교회를 돌아가며 이동 진료를 하는 일은 당장은 특별한 열매를 찾기 힘든 일일 수 있지만 이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현지인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부딪히면서 '사랑' 이라는 기독교의 정신을 나눌 수 있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와 무신론으로 꽁꽁 얼어 붙어 있었던 이 곳을 다시 따뜻하게 녹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진료 가방을 챙겨 듭니다.

특별히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보게 되는 것은 이곳 대다수 주민들의 헐벗은 경제 상황인지라...하루에도 몇 번 씩 '가난은 나랏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더라...' 는 옛 말만 중얼거리게 됩니다. 우리 한국 땅에 처음 개신교가 전래되었을 때에도 많은 의료 선교사들이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보며 똑같은 마음을 가졌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당을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직접적인 복음 전파와 함께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병자를 돌보기 위한 병원을 세웠고 미래를 이끌 지도자을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이끌었습니다. 이런 기관들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중요한 사학과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아스타나에 살면서도 똑같은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교회당을 세우고 복음 전파하는 일 외에도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특별히 이곳에서 외국인 의사로서 일하면서 상식 이하의 진료, 확진없이 이루어지는 수 많은 절제술,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입원 진료의 현실을 접하며 남다른 안따까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혈관 촬영 되는 CT 한 대 없고....대부분의 병원급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진단 장비는 손 바닥만한 구식 초음파 뿐인 이곳에서는 서구 의학이 닦아 놓은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의료(Evidence based Medicine)"를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미신과 민간 처방이 난무하는 곳이 이곳이지요.

국가 전체적으로 의료나 복지 부문에 투여할 재정이 없다 보니 빚어진 일이지만 '먼저 기독교를 받아 들인 우리 나라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선교 병원을 아스타나에 세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희망섞인 바램이 생긴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살던 부산만 하더라도 호주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일신 기독병원, 중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를 기리기 위해 한국에 세워졌다는 왈레스 기념 침례병원 등...많은 선교 병원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초창기의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는 사립병원으로 바뀌었지만 이런 병원들이 부산에 끼친 영향력은 참으로 어마어마했습니다.

아스타나에 한국인 기독 의사들에 의해 선교 병원이 세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즘은 20-30년 후 아스타나에서 진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떠 올려 보는 버릇이 생겨 버렸습니다.

까작스딴의 주류 민족으로 떠 오른 까작 민족은 오래 전부터 이슬람화된 투르크 민족의 한 갈래 인지라 기독교에 대한 포교 활동은 어렵기만 한 게 현실입니다. 기독교적 가치관 위에 세워진 상담, 의료, 교육 등의 시설과 지식들이 이곳 아스타나에 유입되어 사회적 분위기가 기독교에 대해 친근함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먀말로 장기적으로 까작인의 국가 까작스딴에서 기독교의 영향력과 뿌리가 깊어지게 만들 수 있는 또 다른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합니다.

까작스딴에 살면서 누구보다 더 영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바로 파송받고 이곳에 나와 있는 직업 선교사들이라 할 수 있지요...본국에서 보내 주는 기도와 선교 헌금등을 바탕으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는 하루 하루의 삶이 까작스딴 복음화에 직결되어야 한다는 말 못하는 중압감을 안고 사는 이들입니다.

오늘은 아스타나에서 까작 민족만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는 수이어스펜설록 교회(남성택/박용주 선교사) 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진은 지난 2월 14일...발렌타인 데이 때 주변의 까작인들을 초청해서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교회는 다른 한인 선교사들과는 달리 까작 민족만을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다민족 사역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이 곳에서 공용어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곳에선 까작어 만을 사용해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 교회를 통해서도 예수를 영접하는 까작인이 생겨나고 있긴 있지만...러시아와 러시아의 민족 종교인 정교회 치하에서 몇 백년 동안 억눌려 왔던 까작인들에게는 러시아어로 교제가 이루어지는 교회에 가서...러시아인들이 믿던 그 신(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사실은 자기 민족을 저 버리는 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게 일반적인 정서입니다.

게다가 까작 민족이 주류가 된 자신의 나라가 생기고 난 뒤로는 까작 민족을 내세우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어 까작 민족의 전통과 습관을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까작어로 모임을 진행되는 지역 교회가 더욱 필요해진 것이죠. 이런 교회들은 '쩨르꼬비(교회)'라는 단어보다는 까작인들의 공동체를 뜻하는 '카움'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처음부터 하나님이나 복음에 대한 얘기를 바로 꺼내지 않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까작인들은 놀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놀기 싫어하는 민족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까작인들은 더 유별나게 명절이나 절기를 챙기며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밤새도록 즐기는 것이 유목민족 까작인의 습성 중 한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많은 다른 민족으로부터 "게으르다...일을 못한다..." 는 혹평을 받고 있습니다. 까작스딴에선 이미 그들이 주류 민족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민족이 까작인입니다. 심지어 까작인 스스로도 "까작인은 믿을 수 없다. 러시아인에게 일을 시켜라..." 는 얘기를 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어떤 민족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적용할 순 없겠지요. 제가 만난 까작인들 중에는 훌륭하고 믿을 만한 사람도 있었음을 밝혀 드립니다.)

어쨋든 까작인들의 일반적인 성향이 그렇다보니 까작인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는 교회에서는 특별한 명절이나 절기가 되면 주변의 까작인들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행사를 여는데...그 동안 접촉하기 힘들었던 까작인들을 이 기회를 통해 손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외국인이 와서 살고 있는 그 집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까작인들도 명절을 맞아 잔치를 연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 두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수이어스펜설록 교회에서는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사랑의 날' 이라는 부제를 달고 행사를 가졌습니다. 음식을 차리고 게임과 노래를 준비하고 손님을 청했던 것이죠.

까작인의 전통 명절도 아닌 발렌타인 데이에 이렇게 많은 까작인들이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왔습니다. 까작스딴에서는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뿐 만 아니라 4월 1일 만우절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웃음의 날' 이라고 부르던데...가벼운 농담을 하며 그 날을 보내는 건 우리 나라와 똑같더군요.

사실 발렌타인 데이의 기원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려진 게 없고 그저 여러 가지 설만 무성할 뿐입니다. 이를 적극 이용하는 제과업계의 상술이 지금의 현상을 낳았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지만 몇 가지 잘 알려진 얘기를 소개하자면...B.C 3세기 클라디우스 2세가 황제였을 때 군 전력 유지를 위해 법으로 젊은이들의 결혼을 금지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발렌타인이라는 이름의 사제가 몰래 젊은이들을 결혼시키다가 사형되었다는 얘기가 좀 유명하고...이교도 축제를 기독교화 하기 위해 교황이 BC 498년 2월 14일을 발렌타인 데이로 선포했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8세기 중엽까지는 작은 선물이나 편지를 전하다가 인쇄술의 발달로 카드를 보내는 풍습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성탄절 다음으로 가장 많은 카드가 발송되는 날이 발렌타인 데이라고 합니다.

까작인을 위한 복음 전파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수이어스펜셜록 교회는 바로 이 발렌타인 데이를 맞춰 '사랑의 날' 이라는 글자를 벽 한 쪽에 크게 붙였고 풍선도 여기 저기 매달았습니다. 모임 전에는 까작어로 사랑에 관한 몇 가지 노래가 불리워 졌고 ...음식이 차려진 뒤로는 즐겁게 대화하며 노래하는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이 날 교회가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사랑의 날'을 축하하는 얘기를 할 때 자연스럽게 복음을 제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얘기한 다음...아가페 적인 사랑에 대해 설명할 때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소개한다는 것이죠.

위 사진을 보시면 까작인 자매 하나가 까작 전통 악기인 '돔브라'를 연주하고 있지요? 돔브라는 줄이 2개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왼손 위치도 빨리 바꾸어야 하고 빠른 리듬을 구사하는 게 일반적이지요...까작스딴에선 전통 악기 돔브라를 연주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쉽게 돔브라를 들고 연주하더군요.  

이 날...교회에 처음 들어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수이어스펜설록 교회에서 하고 있는 한글 학교를 통해 이 행사가 주로 홍보되었기에 주로 젊은이들이 많았기에 분위기도 밝고 좋았지요.

식사 하기 전에는 이렇게 빙 둘러 앉아 함께 게임을 했는데...한국에서도 했음직한 놀이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옆 사람을 좋아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 사람이 "아니요!" 라고 대답하면 그 좌우에 있던 사람이 재빨리 서로의 자리를 바꾸는 놀이인데...자리를 바꾸기 위해 두 사람이 일어 났을 때 질문을 던진 사람도 빈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해야 한다고 하네요...이 상황 속에서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된 사람은 다시 술래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계속 하던데...단순하지만....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자리를 바꿔가며 인사하기에는 딱 좋은 놀이인 것 같았습니다.

식사 후에는 저도 기타 곡을 두어 개 연주하면서 흥을 돋우었고...모임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까작인들의 특징은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모든 일을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약속 시간을 정하면 보통 1시간 정도 지나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어서 코리안 타임을 무색하게 만듭니다....이 날도 모임 시간이 5시였는데 6시가 되서야 사람들이 제대로 모이더군요. 음식을 놓고 식사할 때도 그 여유는 유감 없이 발휘되는데 1시간도 좋고...2시간도 좋은 식사 시간이 밤새도록 이어집니다. 차도 얼마나 많이 마시는지...까작인들과 친구를 하려면 한 자리에 앉아 차 3-4잔은 마셔야 한다는 얘길 할 정도지요...

그래도...120 여 민족이 섞여 사는 까작스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다른 민족과 함께 어울리는 것 자체에 아무런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는 포용성을 가진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맨 뒷줄의 저와 앞 줄에 앉은 주황색 옷의 선교사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까작인들이지만....한국인들과도 별 차이가 없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민족이기도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슬람인이라고 생각하는 까작인들이지만 기독교적 색채가 뚜렷한 발렌타인 데이를 축하하는 걸 보면 다른 지역의 이슬람 교도들에 비해 비교적 열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 백년간 러시아와 접촉하면서 생겨난 그들의 새로운 전통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제과업계의 상혼이 깃든 껍데기 뿐인 기념일이라는 비판이 혹독한 발렌타인 데이...아스타나의 한 교회당에선 그 발렌타인 데이를 빌미로 현지인들을 만나보려는 선교사들의 열심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선 발렌타인 데이 뿐 아니라 더한 것이라도 도구로 삼을 수 있다는 그들의 마음은 잃어 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2003.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