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이의 백일

지난 4월 7일은 시은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떨어져 지내야 했던 어려웠던  그 시절...2002년 12월 28일 부산 대학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격려 속에 태어났던 시은이는 한국에 있는 시간 동안 두 번 감기에 걸리긴 했었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랐고 생후 53일 만에 아빠가 있는 까작스딴으로 엄마와 형민이 오빠를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그 후 엄마, 아빠 뿐 아니라 형민이 오빠의 극진한(?) 시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란 시은이는 마침내 지난 7일 백일을 맞았습니다.

오늘 아침 아스타나 기온은 영하 1도였습니다. 거리에 쌓여 있던 눈들이 녹으면서 만들어 내는 물웅덩이 탓에 자동차와 도시 전체가 지저분해 지고 있고 한 낮의 햇살은 따갑기만 한...그야말로 봄볕입니다. 낮 기온도 10도를 오르 내리고 있지만 아직 겨우 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은 푸른 싹을 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 2주 정도 지나 5월이 되면 아스타나의 온 세상도 파릇파릇 돋아 올라오는 풀밭이 만들어 내는 초록 세상을 변해갈 겁니다.

이렇게 살얼음이 어는 쌀쌀한 계절이지만 시은이의 백일을 맞아 아스타나에 살고 계시는 한인들을 모시고 조촐한 백일 잔치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아스타나의 한인들이라고 해 봤자 KOICA 단원 아니면 선교사님들인데...연령의 차이도 있고 해서 오후 1시에는 선교사님들만의 모임을 가지고 저녁 7시에는 이곳에 파견된 KOICA 단원들이 함께 모여 시은이의 백일을 축하하는 모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사실 아스타나의 선교사들은 매 달 첫번째 월요일마다 각 회원 가정을 돌아가며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시은이의 백일인 4월 7일이 마침 4월의 첫 번째 월요일인지라 순서를 바꿔 4월 모임을 저희 집에서 가지기로 했습니다. 사실...따로 선교사님들을 초청해 모임을 가지기도 쉽지 않은데 선교사 협의회 날짜에 딱 맞춰 백일을 지키게 되어 그 또한 감사했습니다.

오후 1시 경 아스타나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 뒤 시은이의 백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는데....나사렛 교회의 박유석/진도예 선교사님, 벧엘 교회의 박선회 선교사님, 수이어스펜셜록(사랑) 교회의 남성택/박용주 선교사님, 미추리나 크리스챤 센터의 지미 박 목사님, 아스타나 UBF 변찬석 선교사님, 장로교회의 김명희/이영분 선교사님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거실 정면에 "시은이의 백일을 축하합니다." 라는 글자를 크게 써서 크레파스로 색칠한 뒤 붙였고... 컴퓨터를 설치해 놓았던 탁자도 거실로 옮겼습니다. 보통은 식탁 하나로도 충분하지만 이 날은 뷔페 식으로 잔치(?)를 해야 하기에 식탁이 좀 더 필요했거든요.... 시은이에게는 장모님이 백일이 되면 입히라고 준비해 주신 조그마한 치마(원피스)를 입혔습니다.

며칠 전부터 음식 메뉴를 짜고 장을 보느라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 전에 발생한 접촉 사고 탓에 자동차가 일주일 정도 정비 공장에 들어가는 바람에 음식 준비하러 장을 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우린 하나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 날을 준비했습니다.

시은이와 함께 가족이 까작스딴을 들어왔을 때...전 선화와 함께 달력을 넘겨 가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백일까지만 키우면 한결 쉬워질 거야...형민이 때도 그랬거든...보자...백일이 언제지? 어...4월 7일이구나...이 날까지 별 일없이 잘 보낸다면 시은이도 까작스딴에서 잘 적응해갈 거야...형민이 처럼..."

그리고 약속했던 그 날은 다가 왔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까작스딴에서 적응하며 살아야 했던 지난 백일 동안 우리 하나님은 시은이를 꼭 지켜 주셨고 자동차 사고로 의기 소침해 있던 우리 가정은 시은이의 백일을 통해 하나님의 따스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지켜 주고 계심을 시은이의 백일을 통해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왼쪽은 선교사님들 모임 때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그 날 저녁에 가졌던 KOICA 식구들끼리의 축하 모임입니다. 아스타나에서 활동하는 KOICA단원들은 다들 나이가 젊고 혼자 생활하고 있기에 자주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이국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며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백일 잔치를 했다면 어떤 음식을 만들었을까요? 아스타나는 교민 수가 30명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남쪽 알마티처럼 한국 음식 재료를 구할 수 없습니다. 저희 가정의 경우도 고추장, 된장, 라면 같은 기본적인 한국 음식들은 우체국을 통해 한국에서 받아 먹고 있습니다. 콩나물도 없고...두부도 못 구하고...콩도 없고...단무지나 나물 류 등은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이곳에서 한국 음식 특히 잔치상을 차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건 당연합니다.

다행히 선화는 이번에 한국에서의 출산을 마치고 들어올 때 몇 가지 먹거리를 준비해 왔습니다. 특히 당면(한국 당면처럼 맛있는 건 여기에 없습니다. 중국 것도 못 따라오지요...)과 단무지 등을 가져 왔기에 잡채와 김밥을 만들 수 있었고 선화가 이번에 한국에서 마련한 비장의 무기인 녹즙기와 녹두를 이용해 빈대떡을 부칠 수도 있었습니다. 까작스딴에 한국보다 나은 게 있다면 육류 가격이 엄청 싸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쇠갈비를 얼마든지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습니다. 이번 잔치에도 쇠갈비와 닭다리를 오븐에 넣고 굽는 '버터 닭다리 구이(선화가 부친 이름)'를 준비했습니다.

게다가 시은이가 백일을 맞는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선교사님들께서 여러 음식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김목사님 네는 약밥과 떡을, 남목사님 네는 불고기와 식혜를, 박목사님 네는 샐러드 두 종류를 만들어 오시는 바람에 잔치상이 더욱 풍성해 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일을 맞는 시은이에겐 많은 선물이 주어졌는데... 미추리나의 박목사님의 경우 장난감을 하나 가득 준비해 오셨습니다. 왼쪽 사진을 보시면 예쁜 여자 인형을 품에 앉고 V자를 그리는 형민이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시은이 선물인데...)

뿐만 아니라 금일봉을 전달해 주신 분도 계셨지요.....이 모든 것을 받으면서 우리가 기뻐 준비한 백일 잔치가 행여나 선교사님들께 부담을 안겨 드린 게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 글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은이의 백일을 축하해 주신 분들은 하나같이 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운해 하시겠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하긴...형민이의 돌잔치도 아스타나에서 했었고 시은이의 경우도 백일은 물론 돌잔치까지도 아스타나에서 해야 하는 셈이니...한국에 계신 어른들께서는 아이들의 즐거운 잔칫날에 참여하실 수 없는 아쉬움이 크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계시는 어른들께는 이 홈페이지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곳을 통해 중앙 아시아의 한가운데 위치한 까작스딴 아스타나의 어떤 집에서 가지고 있는 시은이의 백일 잔치 모습을 생생하게 보실 수 있으시니까요...

아버님, 어머님...우리 부부는 내년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본가와 친가를 두루 다니면 더욱 열심히 어른들을 섬길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백일을 맞는 시은이를 축하하기 위해 형민이도 넥타이를 맸습니다. 의젓하게 시은이를 안고 함께 백일을 축하하는 형민이를 보면 까작스딴에서 살았던 우리의 지난 날들이 헛되게 지나가지만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걷지도 못하던 생후 7개월의 형민이를 데리고 까작스딴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이렇게 둘째의 백일을 함께 축하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날도 시은이의 이름을 두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셨습니다. "베풀 시, 은혜 은"을 사용했고 성경에 나오는 법궤 뚜껑 "시은소"에서 따온 단어임을 얘기드렸드니...한 목사님께서 법궤를 덮는 시은소는 단어 그대로 풀자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장소' 가 되겠지만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 이해했다고 하시면서 시은이에게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기도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거하시는 아이...시은이의 백일을 맞으면서 우리 가정은 바로 우리 가정에 늘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아시면서도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 가정 역시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지만 때 묻고 녹슨 우리 마음을 닦으시면서 당신의 귀한 일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교사와 선교지 교회에서 매일 같이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겐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말보다 더 큰 힘과 위로가 되는 말은 없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모두가 가고 난 빈 자리에...시은이의 백일을 축하한다고 써 붙인 글귀 앞에서 가족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일은 이젠 전혀 어색하지 않는 온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모습은 이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분들이 여러 곳에서 보시겠지만... 이 모습을 보고 계실 또 한 분을 의식합니다.

하나님은 시은이의 백일에도...이 사진을 찍는 이 순간에도 우리 가정을 바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형민이를 바라보면서 답답해 하고 잔소리하게 되는 것처럼...우리 모습을 보고 답답해 하실 때도 계시겠지만....역시 우리가 형민이를 보며 한없는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길을 느낍니다.

봄이 다가 오는 이 계절에....하나님 앞에서 바라기는...제발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만 말고 흡족하게 만드는 우리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맘 뿐입니다.   2003.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