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민이 사랑하심 시은이 사랑하심 (2년 5개월 된 형민이)

3월 중순이 다가 오고 있지만 아스타나는 여전히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막 돌아 온 우리집 아기들은 추운 날씨 탓에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전보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변화와 함께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 4일(화)부터 7일(금)까지 3박 4일 동안 알마티에서는 국제협력단 소속 해외봉사단원들의 2003년 상반기 현지평가대회가 열렸습니다.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이 평가대회 때마다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알마티를 방문했었지만 올해는 2개월된 시은이를 데리고 알마티로 가는 게 여의치 않아 저 혼자 3박 4일 이라는 꽤 긴 시간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만 했습니다. 선화에게는 남편의 도움 없이 두 아이를 길러야 하는 부담이 주어졌던 것이죠.

평가대회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항공편으로 아스타나로 돌아왔던 금요일 오후...알마티에서 사 가지고 온 짜파게티, 참기름, 떡, 카레 등을 가득 담은 비닐 봉지를 가득 들고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잠시 후...문이 열리면서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반겨 주었습니다.

"아빠다...아빠...."

알마티에서 가져 온 선물들을 구경하며 눈이 휘둥그래진 형민이를 바라보며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느라 힘들었을 선화에게 지난 4일동안 어땠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 정말 잘 지냈어요. 밤에는 시은이랑 형민이가 보채지 않아 푹 잘 수 있었구요. 낮에도 형민이는 혼자서도 신나게 놀았아요. 신기한 건... 형민이와 혼자 있을 때보다 시은이와 함께 있는 지금이 더 편하다는 거예요. 형민이는 이제 다 커서 혼자서도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욕실에서 손을 씻고 돌아올 줄 알거든요. 게다가 시은이 기저귀 심부름을 하면서 아기 보는 일에도 제법 많은 도움을 주니까...아기 보기가 오히려 더 쉬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둘째 기르는 게 첫째 기르는 것보다 쉽고 셋째 기를 때는 더 쉬워진다는 얘기를 하는가 봐요. "

2년 5개월 된 형민이는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시은이를 보면 자신을 가리키며 "오빠야...오빠" 라고 얘기하며 자신이 오빠임을 여러 번 강조합니다. 시은이가 울면 우리 등을 떠 밀며 아기가 우니까 가 보라고 하기도 하고 시은이가 딸꾹질을 하기라도 하면 아기에게 물을 주라고 엄마에게 얘기합니다.

시은이를 귀여워 하는 형민이는 이제 아기라기보다는 어엿한 꼬마가 된 것 같아...우리 부부는 형민이는 다 컸다는 얘기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합니다.

일전에 '형민이의 고민' 이라는 글에서 동생이 생긴 형민이가 겪어야 했던 심리적 어려움을 얘기드린 적이 있었지만...형민이는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한 것 같습니다.

침대나 소파에 누워 있는 시은이를 보면 달려가 아기의 눈을 바라보며 사랑스런 눈빛을 보냅니다. 아기의 파닥거리는 손짓이나 눈동자를 따라가면서 신기해 하는 형민이를 보고 있으면 형민이를 길렀던 지난 시간이 마치 먼 나라의 얘기처럼 느껴집니다.

한국에서 가족이 돌아온 후 네 식구는 늘 함께 움직입니다. 식사 준비를 위해 부엌에 가게 되면 시은이를 품에 안고 형민이와 함께 음식 준비를 하는 선화 곁에 모이고... 형민이가 좋아하는 "아기 생쥐 메이지" 비디오 테잎을 보는 시간에도 거실 소파는 시은이의 자리가 되고 우리 부부는 함께 형민이의 재롱을 흐믓한 모습으로 바라봅니다. 

밤에 잘 때는 네 사람이 함께 침대에 눕습니다. 큰 더블 침대 한 쪽에 아기 침대를 붙여 만든 넓은 공간에 '시은이-선화-형민이-나' 이런 순서로 네 사람이 가지런하게 누워 잠을 청하는데 시은이가 가끔씩 밤에 울고 뒤척인다 해도 형민이는 깊은 잠에 빠져 세상 모르고 잠을 잡니다.

어느 날 아침...선화가 자고 있는 시은이를 자기 자기에 옮겨다 놓고 찍은 사진입니다.

항상 엎드려 자는 바람에 아침 마다 새 집(House of Birds) 이 생기는 제 옆에는 몸부림이 심한 형민이..그리고 항상 만세를 하면서 자는 시은이가 노리개 젖꼭지를 물고 자고 있네요.

이렇게 한 침대에 누워 자면서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점점 익숙해지고 눈빛만 봐도 능숙한 팀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한 팀으로 다듬어지고 있는 것이죠.

2년 5개월 된 형민이는 모든 면에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더구나 백일이라는 시간동안 형민이를 보지 못했던 저로선 형민이의 눈부신 발전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입니다.

형민이를 다시 만났을 때 제일 먼저 발견한 변화는 형민이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노래 때문입니다. 알마티에서 여기 저기에 쌓여 있는 눈덩이들을 본 형민이는 금새 "펄 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 나라 선녀님들이 송이 송이 하얀 솜을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자꾸 자꾸 뿌려줍니다...." 하고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그게 어찌나 신기하든지...비록 몇 군데 발음은 정확하지 않지만 한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형민이의 언어적 진보에 벅찬 감격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형민이가 부르는 노래는 열 가지가 넘습니다. 베스트 5를 적어 보면 "펄펄 눈이 옵니다....", " 산토끼 토끼야....", "나비야 나비야....", "예수 사랑하심은...", "호산나 호산나..." 이고 그 외에도 "샛별 같은 두 눈을..." "둥근 해가 떳습니다...." 등이 애창곡입니다.

우리를 소파에 앉혀 놓고는 각종 율동을 선 보이곤 하는데 관중들의 박수를 유도하고 함께 참여하는 시간도 마련하는 등...다양한 레퍼토리로 팬들을 즐겁게 하는 콘서트를 벌입니다. 꼭 마이크를 들고 하고 한 손은 허리에 붙이고 노래를 하지요.

형민이의 눈부신 변화는 기도 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형민이와 예배 시간에 함께 기도한 것은 형민이가 숟가락을 들면서부터 시작한 일입니다. 항상 식사 시간에는 기도해야 했었고 밤마다 드리는 가정 예배 시간에 아빠, 엄마의 기도 소리를 늘 들었던 형민이는 동생 시은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식탁에 앉으면 늘...기도하자고 엄마에게 재촉하곤 했습니다.

그런데...이제는 식탁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아빠나 엄마가 아니라 형민이로 바뀌었습니다. 밥을 뜨고 국을 놓고 반찬이 마련되면 형민이는 자기 자리에 앉아 자기가 기도하겠다고 얘기합니다. 형민이의 기도 내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에서 알 게 된 할머니, 할아버지, 양산 할머니(외할머니...정확하게 양산이라는 발음을 합니다.), 고마니(고모를 일컫는 말), 고마니 아기(고종 사촌 우진이, 현재 생후 3개월), 삼촌 등등...이들을 하나 하나 부르고 나선 뭔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지만...형민이에게도 할 말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항상 "아멘.." 하고 기도를 마치는 형민이에게 "형민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말하고 아멘 해야지...." 하고 거들지만 형민이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고 하고는 다시 한 번 "아멘..." 하고 기도를 맺지요.

한국의 보내 준 귀한 조기를 식탁에 올려 놓고... 이곳 사람들이 먹을 줄 모르는 소 꼬리를 삶은 곰탕을 준비한 자리에서 형민이가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형민이가 기도할 때는 우리는 각자의 식사 기도를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형민이의 기도 내용을 유심히 듣기도 하지요.

비록 기도의 대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린 형민이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형민이의 변화는 가정 예배 시간에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저나 선화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탓에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유산 중 하나로 가정 예배를 손꼽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SFC에서 나온 '날마다 주님과' 라는 QT집을 가지고 온 가족이 밤 10시에 모여 드렸던 가정 예배...중고등학교 시절 그 바쁜 등교 시간 전에도 아침 시간을 이용해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 조마조마 했던 이른 아침...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한 난로가에서 가정 예배를 드렸던 지난 전통들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가정 예배를 드렸던 가정에서 자란 우리 부부는 결혼한 첫 날 밤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정의 예배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저 자신의 성경,찬송을 뒤적이며 예배에 수동적으로 참석했던 형민이가 요즘 큰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돌아가며 성경을 읽는 시간에도 자신도 성경책을 읽겠다며 엄마, 아빠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얘기합니다. 기도 시간에는 기도도 하고...무엇보다 달라진 건 찬송 시간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는 꼭 찬송가 411장 "예수 사랑하심을..."을 부르자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 가정 예배 시간의 찬송은 항상 411장입니다. 형민이가 이 찬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멜로디보다는 가사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요? 한국에 가 있는 100일동안 외할머니가 형민이에게 이 찬송의 후렴 부분의 가사를 이렇게 바꿔 불러 줬습니다. '날 사랑하심...형민이 사랑하심...시은이 사랑하심...성경에 써 있네..."

형민이는 이 찬송의 1절 가사는 완벽하게 알고 크게 부르지만 2-4절까지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후렴 부분에서는 큰 소리로 부릅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형민이 사랑하심 시은이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형민이 사랑하심 시은이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형민이의 찬송 소리는 크고 힘이 있습니다.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계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하소서...."라는 가사를 부르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찬송하는 형민이의 모습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제 맘을 추스리게 됩니다. 어린 아기의 입을 통해 찬양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에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돌려 드립니다.

한국에서 갓 돌아왔을 때 공항을 빠져 나오는 차 속에서 한국의 할머니 집으로 돌아 가고 싶다면 눈물을 흘렸던 형민이지만....아스타나의 집으로 돌아와선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 쑥 들어갔습니다.

이곳에는 지난 2년 동안 형민이의 손때가 묻은 많은 장난감들이 수북히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물안경을 머리에 걸치고 자신의 보물 1호인 "빵빵 자동차"를 타고 흐믓해 하고 있는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며칠 전 이곳 람스토르(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고무 찰흙을 사다가 형민이에게 선물 했더니 그게 맘에 드는 지 책상에 앉아 고무 찰흙으로 산토끼도 만들고 눈사람도 만들며 뭔가를 만드는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빠와 거실에서 비치 발리볼과 고무공으로 축구를 하거나 전등 맞추기도 하고...자신이 좋아하는 CD를 직접 선택해 CD 플레이어에 직접 집어 넣고는 노래에 맞춰 온 몸으로 춤을 추는 귀여운 형민이는 이미 유치원이 필요할 정도로 성장한 꼬마가 되었습니다.

밤에 잘 때는 기저귀를 하지 않고 소변을 보고 자는 형민이의 어휘도 아주 풍부합니다. "같이...","잠깐만..","기다려..","위에..","밑에..","아기가 운다"," 기저귀 해야지","쉬하고 싶어...","같이 가자..","잠이 온다","안 잘 거야..","자기 싫어.." 이렇게 적고 있으려니..이제 형민이는 이런 걸 적기에는 너무 커 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민이의 아기 사랑은 극진합니다. 자기 직전...엄마가 자기 옆에 있지 않고 아기를 앉고 있으면 섭섭해 눈물을 흘리곤 하지만...엄마가 없어도 아빠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잘 정도로 아기를 위해선 엄마를 양보할 줄 아는 형민입니다.

동생 시은이에게 입 맞추려고 하는 형민이...동생에게 질투하는 게 일반적인데 비해 아기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형민이를 보고 있으면 "형민이 사랑하심 시은이 사랑하심.." 이라고 불렀던 것이 그저 입으로만 부른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곤 합니다.

형민이는 자기가 사랑받아야 하는 것처럼...시은이도 사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7개월 된 형민이 하나 데리고 까작스딴으로 왔던 우리 가정은 이제 이렇게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형민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전 속으로 앞으로 형민이를 어떻게 가르칠까...형민이에게 어떤 경험을 하도록 안내할까...하고 많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아이로...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면서 생각이 깊은 아이로 자라길 원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나님 안에서...교회 울타리 안에서 믿음의 본이 될 만한 여러 모델들을 만나며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겠지요.

2년 5개월 된 형민이가 맑고 밝게 자라 주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맡기신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의 맘이 변질되지 않고 무엇보다 귀한 주님을 고스란히 이 아이에게 물려 주길 간절히 원합니다. 지난 시간동안 이 아이를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감사드립니다.    20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