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일 간의 꿈

늘 적막함만 감돌던 거실은 선화가 한국에서 가지고 들어 온 가스펠계의 샛별 '소향'의 CD가 뿜어 내는 놀라운 가창력으로 채워 지고 있습니다. 거실 한 쪽에는 동생을 위해 안방을 양보한 형민이의 책상, 동화책 그리고 장난감들로 가지런하게 정리된 새로운 공간이 보이고 있고 그 동안 형민이가 사용했던 아기 침대는 다시 깨끗하게 단장된 채 시은이를 위해 넓고 깨끗한 안방 한 쪽에 놓여 있습니다.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이 방 저 방으로 돌아 다니는 형민이는 한 동안 부를 수 없었던 "아빠..." 라는 단어를 외치며 한국에서 배운 노래들을 들어 보라며 목청을 높이고 있고 창 밖으로 보이는 차디찬 눈보라를 지켜 보던 선화는 "작년 겨울 지냈던 집 보다 따뜻한 것 같다" 며 난방 시설에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전...부엌에 앉아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쇠고기를 얇게 썰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고기를 얇게 썰어 주는 기계가 없는 이곳에선 손으로 고기를 얇게 써는 수고를 해야만 맛있는 불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화와 아기들이 돌아 온 지 오늘로 4일...모든 게 제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아니...이전 보다 더 감격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변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비록...이 마음이 평생 지속될 수 없을진 몰라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 어느 것과도 바꾸기 싫은 행복의 시간입니다.

가족이 돌아올 시간을 가슴 졸이며 지내야 했던 지난 기억들은 이미 봄볕에 눈 녹듯 사라졌고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내려 주신 축복으로 인해 한 없이 감사드리며 사는 요즘입니다.   

선화와 아기들의 귀국은 우리가 기도했던 대로 지난 2월 21일 무사히 이루어졌습니다. 걱정했던 시은이의 비자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21일 당일 오전에 극적으로 발부되었고... 친정 부모님들께서 인천 국제 공항까지 배웅을 해 주시는 바람에 두 아기를 데리고 까작스딴으로 들어 와야 했던 선화의 여행길은 한층 더 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시간 저녁 7시 4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이라는 시차를 거슬러 올라가 까작스딴 시간 11시 10분 정각에 알마티 국제 공항에 도착하기 까지 6시간 30분 동안 비행해야 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다행히도 형민이는 깊은 잠에 빠졌고 시은이만이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선화 곁을 지켰다고 합니다. 형민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특합니다. 2001년 까작스딴으로 오는 첫 비행기를 탈 때부터 비행기만 타면 깊은 잠에 빠지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요...비행기가 체질인 모양입니다.

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일찍 알마티에 내려온 저는 선화를 위해 VIP 입국을 신청했습니다. VIP 입국 절차를 밟게 되면 해당 승객은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착하자 말자 공항 직원들에 의해 별도의 차량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해서 공항 건물 내로 들어오게 되고 알마티 공항 건물 입구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VIP 라운지에서 쉬고 있는 동안 짐도 찾아 주고 입국 사증 확인 등의 서비스를 한 번에 다 받을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됩니다. 원래 알마티 국제공항의 일반적인 입국 절차는 활주로에서 공항 건물로 들어 오면 2층으로 바로 올라가 여권 및 입국 사증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짐 찿기, 관세 구역 통과 등의 순서를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 과정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드는 과정인지... 까작스딴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첫 인상을 나쁘게 심어 주는 주범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VIP 입국을 신청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선화가 직접 아기들을  데리고 짐을 들고 나와야 하는 상황인지라...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하나 뿐인 '공항 출입 허가증'을 빌리기 위해 주 까작스딴 한국 대사관을 찾았습니다(두 개가 있는데 다른 하나는 대사님 소유입니다.) KOICA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라 어렵사리 이 '공항 패쓰'를 빌릴 수 있었고...덕택에 일반인들은 통과할 수 없는 알마티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장, 관세 구역을 지나 법적으로는 까작스딴 국외 지역인 활주로에서 청사로 들어오는 바로 입구에 제가 직접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

도착 시간이 가까워 왔고...곧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공항 직원들이 VIP 인도를 위해 활주로로 나갈 무렵 저 역시 활주로에서 들어오는 입구에 서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곧 나타날 반가운 얼굴들을 떠 올렸습니다.

'형민이보다 선화 이름을 먼저 불러야지...'

'사진을 먼저 찍고 이름을 부를까...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찍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기다리기를 몇 분....마침내 활주로에서 달려 온 VIP 라고 적힌 작은 승합차 하나 청사 입구에 서더니 몇몇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속에 있겠구나' 싶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낯익은 얼굴을 찾는 순간...아! 드디어...반가운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렇게도 오래 기다렸던 순간들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찾아 왔습니다. 전...공항 건물로 들어 서는 선화를 바라 보며 외쳤습니다.  

"선화야! ....."

"오빠....."

선화는 옛날 형민이 어릴 때처럼 앞쪽으로 시은이를 안고 있었고 장난감 핸드폰을 손에 든 형민이가 선화 앞서 걸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사진 후레쉬도 한 번 터뜨린 뒤...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상봉을 했습니다. 많은 말을 할 것 같았지만....막상 만나고 나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선화야...." 하는 말만 맴돌았습니다. "잘 지냈어요?" "그래..." 짧은 인사였지만 이 시간만 바라고 참고 지냈던 지난 세월만큼이나 긴 인사였습니다. 얼떨떨해 하는 형민이를 안고서는 "형민아! 아빠야...아빠 알지?" 하고 외쳤습니다.

관세구역, 입국심사를 거치기 전에... VIP 라운지에서 잠시 머물고 있었던 선화와 아기들의 모습입니다. 바로 이 모습으로 까작스딴에 도착했습니다. 멀리 시계가 밤 1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네요...

100일의 긴 세월동안 아빠를 보지 못했던 형민이는 아빠를 보자 말자 얼마나 낯설어 하는지...못 알아 보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빠 손은 잡으려고 하지 않고 엄마 손만 잡고 VIP 라운지로 들어 왔지요.

그 곳에서 선화는 시은이에게 젖병을 물렸고 전...형민이의 옛날 기억을 되찾게 해 주려고 형민이가 좋아했던 제 지갑을 꺼내 보이기도 하고...화장실에 가려는 형민이를 데리고 들어가 옛날에 형민이와 익숙하게 하던 대로 수도꼭지 틀고 비누 묻혀 손을 씻는 등...아빠와 익숙하게 했던 지난 일들을 새로 하나씩 시작했습니다. 형민이는 아빠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100일 이나 떨어져 있었던 탓에 아빠에 대한 감정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그저 수화기로만 들리던 소리였으니까요...

오랜 세월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던 남편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된 선화는 불과 몇 시간 만에 한국이 아닌 까작스딴에서...그것도 다시 옛날 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오빠...우리가 떨어져 있었던 시간들이 마치 꿈 속에 있었던 일 같아요...하룻밤 사이에 벌어졌던 일 처럼....." 라며 중얼거렸습니다. 저 역시...100일간의 꿈 속에서 막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선화는 저처럼 외교관에 준하는 신분 보장을 받고 있기에 관세구역을 아무 검사없이 통과했고...마침내 공항 건물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알마티에서 활동 중인 국제협력의사 안병재 선생님 가족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 선생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대학 시절 부터 '부산의대 기독학생회'라는 모임에서 선후배로 절친하게 지냈던 사이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한국이 아니라 까작스딴에까지 우리 두 부부가 건너와 여러 가지 일들을 하도록 인도하셨고 까작스딴에 파견된 내과 의사는 부산의대, 부산대병원 출신의 우리 두 사람이 전부인지라... 이국 땅에서의 이루어진 이 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 때마다 신기할 뿐입니다.

차를 타고 안선생님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형민이는 "왕할머니(증조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 며 계속 울먹였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까작스딴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형민이가 알 턱이 없지요.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아빠에게도 멀찌감치 떨어진 채 할머니 집으로 돌아 가자며 엄마에게 보채기만 하는 형민이를 보면서 시간과 공간을 갑작스럽게 이동해야만 했던 우리 아기들의 어려움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형민아...이제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다시는 엄마, 아빠랑 떨어지지 말고 함께 살자....'

안병재 선생님 집의 방 안에서 우리 네 식구는 첫 날 밤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듯 아빠 곁에 가까이 누우려고 하지 않는 형민이였지만 조금씩 엄마, 아빠와 살던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되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다음 날 아침 7시...어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난 형민이와 전....동이 트기 전부터 부엌과 거실 등을 돌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옛날 처럼 거실에서 축구도 하고...안 선생님 집에 있는 여러 모형들을 꺼내 놀이도 하고...예전 처럼 부엌 그릇들을 꺼내 상을 차리기도 하고...컵을 다 꺼내 놓고 물 따르는 놀이도 했습니다. 다 형민이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오전에는 형민이와 단 둘이서 아스타나 행 비행기 표를 끊기 위해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길거리 상점에 들러 형민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 주기도 하면서 우리 부자의 관계를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안 선생님 댁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뒤 아스타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무렵에는 다시 옛날처럼 우리 네 사람은 한 팀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사진처럼 한 집에 모여 네 식구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살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야 했던 그 암담한 세월들을 뼈저리게 경험한 탓에 요즘 제가 보내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지 모르겠습니다.

예상대로 아직 생후 2개월도 안 된 시은이는 옛날 형민이 때처럼 엄마, 아빠가 돌아가며 돌봐야 할 만큼 힘든 시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다시 한 가족을 이룬 기쁨에 휩싸여 있는 우리 부부로서는 울지 않고 떼를 쓰는 시은이를 기르는 어려움 조차도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작은 일일 뿐입니다.

매일 한 두 번은 인터넷에 접속했던 저였지만....지난 나흘 중 이틀 동안은 인터넷에 한 번도 접속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 만큼 새로 태어난 시은이와 함께 살아야 하는 생활에 적응하는라 무척 바빴다는 말이겠지요. 그래도...형민이가 한국으로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많이 자란 덕분에 둘째 시은이를 기르기가 영 수월합니다. 예전에는 엄마, 아빠를 꼭 앉혀 놓고 나서야 놀던 형민이었는데 요즘은 혼자서도 재미있게 놀더군요.

지금은...우리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을 많은 독자들을 생각하며 모두가 잠든 밤...저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아빠를 찾는 형민이를 잘 돌봐 주기 위해 빨리 이 글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도 적고 싶네요.

가족과 떨어져 있는 동안 형민이를 보고 싶은 생각은 좀 유별났습니다.

그건...매일 메일을 나누고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눴던 선화와는 달리...형민이는 저와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어린 아기였기 때문입니다. 형민이에 대한 감정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었고...  다시 만났을 때 아빠를 몰라볼 정도로 어린 형민이기에...떨어져 있는 동안 애처로운 맘이 보고 싶은 맘과 겹쳐져 묘한 그리움으로 짙게 드리웠던 것 같습니다.

작은 방 구석에 놓아 둔 연습용 드럼 세트에서 두 사람이 함께 스틱을 들고 연습판을 내리 치고 있습니다. 형민이로선 한국에서보다 훨씬 구미가 당기는 놀이터를 하나 더 발견한 셈입니다.

선화가 돌아 온 뒤....지난 4개월 동안 제가 갈고 닦았던 실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도 준비하고... 돼지 고기를 사와 '두부김치' 라는 신종 요리를 선 보이기도 하고... 선화가 챙기기 전에 세탁기 돌리고 방 청소 하고...지난 시간 동안 혼자 살아 가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을 지금은 기쁨에 겨워 즐거움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눈보라가 날리는 영하 20도의 추위 탓에 매일 제가 장을 보고 들어 오는데,  양손에 먹을 거리를 담은 비닐 봉지를 가득 안은 채 초인종을 누르는 제 마음은... 맛있는 것을 사 들고 들어오는 아빠를 반기는 형민이의 맘보다 훨씬 더 뿌듯하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둘째 시은이를 돌보면서는 형민이 어릴 때를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생후 2개월 때 형민이를 돌보면서 적은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시은이 역시 우리 아기인 탓인지 형민이와 비슷한 습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 손에서 안 떨어지려고 하고... 광등이(형광등)를 좋아하고...아빠 어깨에 걸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전 형민이 때 처럼 시은이를 품에 바짝 끌어 안고 시은이 귀에 아빠 심장 소리가 들리도록 해 줍니다. 시은이에게 호흡으로 인해 움직이는 아빠 가슴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낮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 거릴 때는 가능한 한 몸을 바로 세워 사방의 모든 물건들을 보게  도와 줍니다.

지금 시은이의 눈에 보이는 건...사물의 윤곽이나 전체적인 크기뿐인데 창 가에 걸쳐져 있는 커튼 자락이나 자기 옆에 놓여 있는 쿠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시은이의 눈망울을 보면서...잠시 잊고 지냈던 형민이 기르던 시절의 기억들을 떠 올리기도 하고 이제 곧 이 아기가 금새 자랄 거라는 행복한 기대감에 젖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은이를 돌보는 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또...시은이는 둘째 아기이기에 첫째 아기 때보다 훨씬 더 여유를 가지고 아기를 돌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가족이 재회한 우리 홈페이지에도 다시 활기가 돌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전처럼 선교지 까작스딴의 여러 모습과 함께 새로워진 우리 가족의 모습이 소개되겠지요? 이렇게 좋은 일이 우리 가족에게 주어졌지만... 우리 부부는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기쁜 일 중에도...슬픈 일 중에도...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겸손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마음이 가난하게 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이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는 준비된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는 걸 우리 부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맘이 높은 곳에 있을 때...우리의 기도가 약해져 있을 때...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부르짖게 하시기에 오늘 처럼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에는....섬길수록 귀한 그 분 앞에 더욱 더 합당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하나님...참 고맙습니다.  2003.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