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그리운 밤

 24일부터 26일까지 이어진 성탄 연휴는 조금도 쉴 틈이 없는 강행군의 연속이었습니다.

27일 월요일 아침 출근할 때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갔습니다. 왼쪽 눈에는 눈병이 생기고 코피가 나고 온 몸에는 몸살 기운이 돌고 .....

이렇게 시작된 월요일 아침 입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내겐 선화가 차린 상을 대하고 따뜻한 방에 앉아 쉬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식사 후 함께 오랜만에 TV를 보았습니다. EBS를 보았습니다.

 윤동주의 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중이었습니다. 아마도 고등학생 국어 교육 방송인 듯해 보였지만 내겐 기억에서 아련히 멀어지는 윤동주의 시를 그리워 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참 회 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이십사년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 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1942.1.24>

 

 

 

 

           자 화 상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 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 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십 자 가

 

쫒아 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읍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1941.5.31>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5.10>

 

 

 

 

     또 다른 고향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쫒는 것일게다

 

가자 가자

쫒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1941.9>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쉽게 쓰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삼는 최초의 악수                   <1942.6.3>

 

 

 

 

윤동주를 저항 시인이라고 합니다. 윤동주가 쓴 시의 대부분은 1941-1942년에 씌어진 글입니다.

윤동주는 독특하게 시의 끝에 날짜를 표시합니다.

41-42년은 일본의 조선 강점이 극에 달할 때입니다. 암흑기라고 불리는 시기입니다. 조선말이

금지되고 이름도 바뀌고 대동아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수탈되고 문인들도 천황의 이름으로

일본어로 작품을 쓰던 시대입니다.

그 때 윤동주는 끝까지 우리말로 우리의 의지를 노래합니다.

 

윤동주의 시에는 두 가지 자아가 항상 나옵니다.

하나는 높은 윤리적 기준과  기독교적 이상을 가진 자아입니다.

또 하나는 현실과 타협하는 비겁한 자아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윤동주를 만납니다.

식민지 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지키려는 윤동주를 봅니다.

 

고등학교 때 서시를 배울 때에도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지금 몸은 피곤하고 성탄 연휴에 지쳐 있지만

윤동주의 시를 읽으니 맘이 새로와 집니다.

 

내게도 두가지 자아가 있습니다.

하나는 속 사람이고 하나는 겉 사람입니다.

하나는 성령의 법을 따르려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육신의 법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윤동주처럼.........

 

윤동주처럼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