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민이의 고민

지겹도록 긴 아스타나의 겨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영하 24도....영하 40도를 육박하는 강추위는 지난 연말 이후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백색의 눈과 얼음의 세상은 오늘도 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 춥고 긴 겨울....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제 생활은 단순하고 반복된 일과로 짜여져 있습니다. 행여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도록...한 치의 어긋남없이 예정된 일정표대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는데...교회 방문 진료 등을 포함한 진료 일정과 드럼, 수영, 기타, 러시아어 공부, 홈페이지 관리, 교회 모임 그리고 끼니 때마다 해야 하는 식사 준비 등으로 이리 저리 뛰어 다니다 보면 하루는 금방 지나가고....매일 같이 아무도 없는 방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 위에 누워 오늘도 하루가 빨리 지나갔음을 감사하며 잠을 청하곤 합니다.

그래도...걱정되는 게 있다면 역시나 한국에 있는 가족들입니다. 특별히 선화와 형민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가 제일 궁금합니다. 그래서...매일 저녁 선화로부터 날아오는 전자 메일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Outlook 에 들어 오면 그게 가장 반가운 일입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를 잘 보냈구나...하고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로 선화는 출산한 지 17일 째가 됩니다. 아직 3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긴 하지만...선화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첫 아기를 제왕절개수술로 분만했던 선화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 저도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수술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온 몸이 심한 몸살에 걸린 것처럼 아팠었는데...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  몸이 좋아지니까 집에만 있는게 갑갑하지만... 두 아이와 함께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네요. " (03년 1월 13일, 출산 후 15일 째)

아기를 돌보는 일에 있어서 친정 부모님들이 많이 도와 주시긴 하지만...출근이나 외출도 하셔야 하기에...두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은 누구보다 선화입니다.  출산 직후...하나님이 순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음에 감사드리며 새로 태어난 아기와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선화는 두 아이와 함께 주로 방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최근 보내온 메일에서 형민이에게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물론...새로 아기가 태어나면 형민이가 정서적으로 힘들어 할 거라고 모두들 얘기했지만....그저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겼었는데 마침내 현실화 되고 말았습니다.

선화의 메일에서 동생이 생긴 형민이에 대한 가장 첫 반응이 나타난 것은 병원에서 퇴원한 바로 그 날 도착한 메일에서였습니다.

" 휴.... 정신을 좀 차리고 앉아서 오빠가 올린 새 글과 방명록을 봤어요. 아!... 꿈만 같이 흘러간 지난 3일간 이었답니다.  지금 형민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따라 가습기 사러 나갔고 아기는 자고 있어요... 집에 돌아와서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모두들 한참 분주했어요. 형민이는 기저귀도 자기가... 우유 물리는 것도 자기가 직접 해야 한다며 난리를 피우네요...아기 목욕 시키는 걸 보고 난 뒤로는 아기 머리 감겨준다며 아기가 자지 못하게 하길래 좀 말렸더니 서럽게 울기도 했답니다.  엄마는 미역국 끓이느라....젖병 소독하느라... 바쁘시구요. 휴.... 이제 모두들 정신을 좀 차렸어요. 아직은 형민이를 안정시키는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형민이는 아기가 너무 좋긴 하지만 엄마가 젖을 물리고 있으니까 좀 싫기도 하나 봐요. 막 밀어내기도 하고... 이때 아빠가 있으면 정말 한결 마음이 놓일텐데.....그래도 형민이도 한단계 자라나는 시간이 되어야겠지요?" (02년 12월 30일, 출산 후 3일째)

출산하기 3주 전 찍은 사진인데요...형민이는 엄마의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까작스딴에서 세 식구만 살다가...낯선 한국에 들어온 뒤로는 하루 온 종일 엄마와 아스타나에서 하던 대로 책도 펴고...글라스데코도 하고...스티커 붙이기 놀이도 하면서 지냈다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엄마가 병원에 3일 다녀 온 뒤로... 꼬물꼬물 거리는 조그만 아기가 자기 집에 나타난 것이죠. 이 아기와 자신이 어떤 관계에 놓여져 있는지 알 턱이 없는 형민이는 지금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지만...처음에는 형민이가 잘 적응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선화의 메일을 보세요.

" 전... 낮에 아기가 잘 자서 같이 오전, 오후로 쉴 수 있답니다. 형민이도 많이 자립했는데...전에 같으면 '응가(대변)' 할 때는 엄마가 등 쓸어주면서 반드시 옆에 같이 앉아 있어야 했는데....요즘은 앉혀 주면 혼자 할 수 있다고 엄마보고 가라고 한답니다.

밥도 혼자 떠 먹어야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냉장고 열어서 꺼내먹는데...예를 들면, 치즈 같은 건... 전에는 비닐을 벗긴 뒤 먹기 좋게 접어서 손에 쥐여 줬지만 요즘엔 자기가 알아서 비닐 포장을 벗긴 뒤 뜯어 먹는 답니다. 신기하지요? 형민이를 세세하게 돌봐주지 못하는 난 미안하기만 한데... 형민이는 스스로 뭔가를 한다는게 기쁜 것 같아요. 물론 혼자 뭘 먹는다고 자주 옷이 더러워지긴 하지만.... 동생이 생겨도 형민이가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같아 참 다행이에요.

단지... 잠 잘때는 아기 옆에 가지 말고 자기랑만 침대에 가서 전처럼 같이 자자고 엄마 베게랑 형민이 베개를 들고 오는데.... 아기랑 같이 방에 가서 자자고 하면 서럽게 운답니다. 오빠... 우리가 형민이랑 같이 자는 시간 알죠? 형민이에게는 재미있고 포근한 시간이었는데 이젠 엄마가  토닥거려주지도 못하고 노래도 같이 잘 못하니까... 그 시간만큼은 떼를 쓴답니다. 그래도 얼마나 착한지... (03년 1월 2일, 출산 후 6일째)

이 내용을 읽어 보면... 새로 생긴 동생 때문에 혼자 해야 할 일이 많아진 형민이를 보게 됩니다. 물론 형민이도...그걸 원하고 있는 시기인지라...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하는 것처럼 글에는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자기에게 쏠리던 관심이 줄어든 것을 알 게 된 형민이는 차차 저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오늘은 형민이가 일찍 잠에 들었어요. 형민이가 아기를 이뻐하고(쁘다... 이쁘다는 뜻) 좋아하지만 엄마가 안고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먹일때는 아기를 눕히고 같이 가자고 엄청 조른답니다. 그리고 전보다 과장된 행동들을 많이 하는데 형민이에게도 큰 변화의 시기인 것 같아요.
전처럼 하나하나 챙겨주지 못하고 해서 맘이 아프고 또 아무래도 조심시켜야할 일이 많으니까 많이 나무라게 되기도 한데... 이런 형민이 맘이 평안하길 늘 기도해야겠어요. (03년 1월 7일, 출산 후 11일째)

" 형민이가 어제 밤에 약간 열이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까 약한 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 잘 놀고 있지만... 오늘은 형민이로 인해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든 날이에요. 형민이로선 보통때와 같지만.... 나는 나름대로 아기때문에 바쁘고 몸도 불편한데... 형민이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네요.... 물론 그게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좀 더 조심해주면 좋겠는데... 아기 젖병을 손으로 막 만진다든지, 옷에 오줌을 조금씩 계속 싸는 것, 엄마가 욕실에 갈 때 자꾸 따라 들어 오려고 하는 것 등등... 출산 전처럼 내 몸이 자연스러우면 얼마든지 챙겨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니까....나도 잔소리 하게 되고... 요즘 그런 일이 잦아지면서 형민이가 소침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 형민이가 불쌍하지만.. 또 일을 저질러 놓으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기도 하고...
전에는 내가 혼내더라고 이내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오늘 아기 목욕시키면서 자기도 거들다가 옷을 다 버렸어요. 그래서 옷을 벗겨 놓았는데 또 물에 손을 대길래 한 소리 했지요.  아기를 좀 오래 보고 있으면 잠시 있다 "엄마 가자..." 하면서 자꾸 보채고... 그렇게 몇 번 혼나고 하더니...슬그머니 방에서 나가 거실에 혼자 앉아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얼굴에 나타난 형민이의 마음이...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하루 종일 이런 일들의 연속이에요. 아기를 좋아하지만 엄마 사랑을 더 많이 받고 싶어하는 형민이.... 아직은 형민이도 어린데.... 우린 좀 더 어른스러워지길 바라니....
오빠, 내일은 주일이네요... 형민이가 이번주에는 날씨가 추워서 한번도 밖에 안 나갔답니다. 내일 주일 할아버지랑 교회에 다녀오면 형민이도 기분도 좀 좋아지겠지요?" (03년 1월 11일, 산후 15일 째)

이 메일을 읽으면서 가슴이 쓰리도록 아팠습니다. 무엇보다도 형민이가 불쌍해서였지요...사실 형민이는 아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제게는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여동생은 우리 부부가 결혼한 후... 6개월 뒤에... 포항 충진교회의 이태훈 강도사님과 결혼을 하고 사모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진은 선화와 여동생(주훈)이 까작스딴으로 오기 직전 남포동 거리를 함께 걷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번에 선화는 12월 28일에 출산했지만...여동생은 그 보다 한 달 앞선 11월 29일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선화는 시댁(여동생은 친정이겠죠?)에서 몸조리 차...와 있는 여동생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잠시 후면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할 선화이기에....약간은 부러운 맘으로 여동생과 아기(우진이)를 만났겠지요? 그런데 그 때...형민이는 금방 태어난 사촌 동생(고모의 아기니까요...)을 자주 접했었는데...형민이가 어찌나 이 아기에게 잘했는지...만일 형민이에게 친동생이 생기면 아주 동생을 귀여워해 줄거라고 모두들 얘기했습니다. 선화도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 형민이는 부민동(시댁)에 있으면서 아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수시로 들어가서 유심히 쳐다보고, 살짝 만져보고.... 기저귀도 갖다주는 등... 심부름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어제는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하니까...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면서 막 우는거에요. 다들 웃었어요. 친동생한테도 그러면 좋겠는데.... 글쎄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으면 다르게 행동할지 어떨지 모르겠어요.."(02년 12월 12일, 출산 16일 전)"

하지만...역시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해 온 형민이로선 동생이 생겼을 때에는 사촌 동생에게 하듯 할 순 없었는 모양입니다. 선화가 형민이 문제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느낀 전...그 다음 날 아침(한국 시간으로는 오후)...선화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서로 격려하는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이렇게 답장했지요

" 선화야...나도 전화를 하고 나니...기분이 좋아졌다. 한 번씩 이렇게 전화로 음성을 듣는 게 서로에게 심리적으로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형민이에게 계속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게 쉽지 않겠지만....그래도 불쌍한 우리 형민이..많이 귀여워 해 주길 바래...어떻게 보면..지금 둘째는 아직 뭐가 뭔지 몰라서 엄마가 좀 등안히 해도 되지만...형민이는 알 건 다 알거든...만약 형민이랑 둘째가 같이 울면 형민이에게 먼저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어쨋든 선화가 고생이 많은데..조금만 참아 주렴..."(03년 1월 13일)

형민이에게는... 아빠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군사 훈련 기간 2개월(형민이 생후 5-6개월)을 제외하면....아빠가 늘 형민이의 삶을 지켜 보고 있었으니까요...

형민이가 생후 7개월일 때...까작스딴으로 온 우리 가정은 이곳에서 더욱 강한 결속력을 다져 갔습니다. 그 속에서 형민이도 아빠의 역할을 크게 느꼈을 게 분명합니다.

(사진은 2001년 5월 23일...까작스딴에 처음 도착한 당일 찍은 사진입니다. 군사 훈련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제 모습이 제 눈에도 낯설 게 보이네요....)

그런데...이렇게 형민이가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아빠로서 형민이 옆을 지켜 주지 못하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갓난 아기를 돌봐야 하는 선화로선 줄 수 없는 사랑을 아빠가 옆에서 마음껏 안겨 줘야 하는데....그렇게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아쉽기만 합니다.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제 방 창문가에는 형민이 액자가 세워져 있습니다. 터어키 여행 갔을 때...파묵칼레 라는 곳에서 찍은 사진인데...그 사진 속의 형민이는 1년 6개월 된... 제법 소년 티가 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전...형민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사진을 보면서 "형민아...빨리 온나..."하고 중얼거립니다.

어떤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하더군요..."누가 더 보고 싶나요? 아내예요 아니면 아들이예요?" ...이런 바보같은 질문에는 대답할 생각도 없지만....형민이도 선화 만큼 보고 싶습니다. 사실....금방 태어난 둘째 아기는 사진으로만 얼굴을 봤을 뿐이기에...아직까지 제 맘 속에는 둘째 아기에 대한 감정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저...어서 보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형민이는 그것보다 훨씬 깊고 애끓는 정이 느껴집니다. 형민이와 함께 보냈던 2년 3개월의 시간이 아버지로서 형민이를 사랑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글세요...아버지의 사랑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본능적이라고 말하지만....형민이와 함께 지냈던 지난 시간들이 형민이에 대해 제 맘이 더 사랑스럽고 보고 싶게 만들었을 겁니다.

형민이가 만 두 살 되던 날...그러니까 선화와 형민이가 한국으로 떠나기 3주 전...우리는 형민이와 함께 생일 축하 파티를 했습니다. 첫 돌 때에는 아스타나의 한인들을 모두 모시고 성대하게(?) 치뤘지만...두 돌 때는 이렇게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생일 축하 파티라고 하지만...케잌도 없고...그저 토마토에 장식용 초 2개을 밝힌 뒤 ...과자 몇 개 놓고...형민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뒤 형민이에게 촛불을 끄게 하는 게 다입니다. 하지만...형민이가 이걸 얼마나 즐거워 했는지 모릅니다....엄마랑 아빠랑 함께 노래 부르며 웃는 것....이게 형민이가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지금...형민이가 얻어야 할 사랑의 한 축이 빠져 있습니다. 가끔 선화와 형민이가 있는 한국의 처가집에 전화를 하면...영락없이 형민이가 먼저 전화를 받습니다.

형민: "예...."

아빠: "형민아...아빠야.. 아빠...."

형민: "하아....아빠...아빠...뱅기..람또르...." (아...아빠예요? 아빠! 비행기 타고 갈 거예요...아빠랑 람스토르 갈 거예요....)

밤마다 선화는 형민이와 함께 자리에 누워... "형민아...우리 조금만 더 있다가 비행기 타고 아빠한테 가자...그러면 람스토르도 갈 거야..." 라고 얘기한 탓에 형민이는 아빠의 음성을 알아 듣고는 연신 "비행기" 얘기를 해댑니다.

전요....형민이 음성을 전화로 듣고 있으면 너무 보고 싶어 차마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저...형민이가 아빠 음성을 잊지 않도록....평소에 아스타나에서 제가 자주 얘기하던 내용들(아빠가 주로 형민이에게 했던 얘기들...)을 반복하면서...아빠가 지금도 형민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전화기로 무슨 많은 것을 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랑스런 형민이가 지금...이렇게 힘든 일을 겪고 있다니...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 오빠.... 오늘은 꼬맹이 둘이 일찍 재웠어요. 물론 작은 꼬맹이는 언제 깰지 모르지만요... 형민이랑  병원에 갈려고 했는데 오후에 형민이가 자는 바람에 가질 못했어요. 요즘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건 형민이 인것 같아요. 엄마와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다가 갑자가 혼자가 된 듯한 형민이.... 자신도 모르게 찡찡... 잘 보채고 울고... 형민아 그렇게 하면 안돼... 하면 더 과격하게 행동하곤 한답니다.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울고...
오늘도 밥 먹다가 잘 안먹고 그러길래 참기름 넣고 비벼줬지요. 자기가 참기름을 붓겠다고 해서 저랑 함께 조금씩 넣었는데 "또 또..." 하면서 더 넣으려고 하길래... "안돼... " 하고는 병을 놓으라고 했는데... 그냥 확... 붓는 거에요. 이런 식의 줄다리기가 하루종일 계속된답니다. 전보다 더 말을 안 듣고 못들은 척 하기도 하고...
이런 형민이의 심리는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그럴 때마다 저도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작은 방에 데려와 매를 들기도 하는데.... 어떻게 하면 형민이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동생을 예뻐하면서도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으면 " 다 먹었다" 하면서 우유병을 뺏을려고 할때는.... 오빠.... 형민이가 불쌍하면서도... 겪어야하는 시기란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지혜롭게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오후에 낮잠을 자고 나서는... 형민이랑 수퍼마켓에도 가고 문방구에도 가서 형민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 줬어요. 글라스데코를 샀거든요. 어묵도 하나씩 사 먹으면서 맘을 달래줬는데... 형민이 얼굴이 전보다 어두워진 것 같이 느껴질 때는 맘이 아파요. 얼마나 잘 웃고 밝은 형민이인데.. " (03년 1월 15일, 출산 후 17일째)

 어제 받은 이 메일을 읽고 나서는...이대로 놔 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도 둘째지만....형민이에게는 아빠가 지금 필요하다는 생각이 불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바로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냈습니다.

" 선화야...오빠다...오늘 네가 보낸 편지를 읽고 나니...빨리 형민이가 이곳 까작스딴으로 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냉정하게 생각해 볼때...일단 둘째가 있는 한...형민이에게 전과 같은 관심을 가져 줄 수가 없는 것 당연한 현실이란다.

몸이 불편하고 아기가 있는 선화는 형민이를 전처럼 옆에서 돌봐 줄 수 없으니 누군가가 옆에 붙어서 형민이와 함께 다녀야 겠는데...양산 부모님도 그렇게 하실 수 없는 형편인 것 같구나...또...부모가 아니면...형민이의 맘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지.. 오로지...오빠만 할 수 있지....

그리고 형민이는 특별한 아이란다...아빠와 늘 함께 지냈던 아이였지... 태어나서 두 달간 오빠가 대전에 가 있었던 적을 빼면...형민이는 늘 아빠와 함께 있었고 아빠가 형민이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해 왔지 않니?  오빠 생각으로는  형민이가 변화를 겪는게 당연하다고 얘기하며 그냥 두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적극적으로 형민이의 맘을 어루 만지는 시도가 필요한데..지금 양산 상황으로는 힘들 것 같다. 오빠가 형민이 옆에 있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형민이의 문제에 대해 부모는 당연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고...형민이가 이런 상황 속에서 최대의 피해자가 되도록 그냥 둬서는 안 될 것 같다. 둘째도 귀하지만...형민이도 귀하지 않니...사실 오빠는 둘째 얼굴을 보지 못해...둘째 생각은 전혀 안 한단다...오로지 형민이 생각 뿐이란다. 그런데...형민이가 그렇게 마음이 힘들다고 하니....오빠 역시 견딜 수 없구나...

오빠가 생각하기로는...예정보다 빨리 네가 이곳으로 와야 할 것 같다. 이게...형민이가 받는 상처를 줄이고 이로 인해 네 맘 속에 생기는 미안한 맘과 어두운 맘을 줄이는 길인 것 같다.

빨리 들어온다면...너무 갑작스러워서 부담이 되겠지만....산후 두 달 후에 들어오는 거나 산후 한 달 반에 들어오는 거나 별 차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비행기 5시간 타는 일인데...오빠 생각으로는 형민이를 지금처럼 그대로 둬서는 안 될 것 같다. (중략...)  그래서...오빠 생각으로는 네가 힘들더라도 2월 11일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게 어떨지 싶다. 하루라도 빨리 가족을 보고 싶고...형민이와 선화(선화도 혼자 떨어져 있은 지 오래 되어 많이 힘들 것 같다)의  정서적인 많은 문제들을 이제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란다.

우린 늘...예상보다 빨리 모든 것을 해 왔지...결혼도 그랬고...형민이 얘기를 읽으면서 형민이를 하루라도 빨리 이곳으로 데려 와야만 하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하 생략....)" (03년 1월 15일, 산후 17일 째)

이렇게 메일을 써 보내고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 말자...선화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나..형민이가 전화를 받더군요...형민이는 마음이 힘들더라도 아빠에게 하는 얘기는 항상 똑같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람스토를 보러 아빠한테 가겠다는 거지요...

선화와 통화를 했을 때...선화는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아 자신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늦어도 21일 까지는 까작스딴으로 돌아오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산후 보름밖에 안된 선화로선...이십일 후 위 사진처럼...형민이와 또 다른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까작으로 날아간다는 사실이 아직은 자신이 없나 봅니다.

이 글을 쓰는 16일 새벽(한국 시간)...선화에게서 온 또 다른 메일을 열어 보니...낮에 제가 얘기했던 대로 빨리 까작스딴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저 역시..선화가 무리를 해서 이곳으로 오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화의 몸 상태가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입니다.

해결이 쉽지 않은 형민이의 고민...이 고민을 우리 부부는 함께 지고 있습니다. 동생이 생긴 형민이...이제 막 태어난 15일 된 아기....그리고 까작스딴으로 빨리 들어 오라는 남편...아직 몸이 정상 상태가 아닌 아내...

어쨋든...형민이는 당분간 자신의 고민을 계속 안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이것도 형민이가 커 가는 과정이겠지만...어서 빨리 이 문제가 잘 해결되어져서 형민이가 전처럼...엄마,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우리 부부는 오늘도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리고...까작에 혼자 남아 있는 전....이전 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준비하는 아빠가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이제 곧 한국에서 날아 올 가족에게 사랑을 퍼 주는 아빠와 남편이 될 거라고...몇 번이고 굳게 다짐합니다. 200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