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엄마가 된 선화
선화가 아스타나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간 것은 분만 예정일을 6주 남긴 시점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그렇게 일찍 한국으로 들어가느냐고 의아해 하기도 하셨지만...남편 없이 혼자 출산의 어려움을 짊어져야 할 선화로서는 형민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익숙해 지는데 걸리는 시간을 충분히 계산해야 했고... 지난 번 형민이의 출산 때처럼 예정일보다 2주 빨리 출산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기에 일찌감치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습니다. 또...생후 7개월 만에 한국을 떠나야 했던 형민이가 이제 막 우리 말을 배우려 하던 때라...조금이라도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더 접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도 깔려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간 지 한 달쯤 지나면서부터... 선화는 빨리 아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 했고 마냥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에 답답해 했습니다. 하지만... 빨리 낳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기에 그저....진통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였지요...
그러면서... 분만 예정일(27일)을 3일 앞둘 때까지.... 특별한 변화 없이 시간만 흘러 갔습니다. 선화가 보낸 메일 내용의 일부입니다.
"오늘 병원에서는 NST만 했구요... 초음파는 안봤어요. 선생님이 "진통이 규칙적으로 오면 병원에 오세요..."하시는데... 이제 정말 때가 되었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형민이 때보다 훨씬 마음이 든든하고 별로 두렵지 않아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주고 있다는게 느껴진답니다. (예정일 12일 전....)
"내일이나 모레는 나가서 젖병, 내복 등 아기 용품을 좀 살까 싶어요.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하고 있는데.... 아기가 잘 나오겠죠? 병원에 가게 되면 오빠에게 전화하고 출발할게요. 혹시 오빠가 없는 시간이면 메일을 보낼께요. (예정일 11일 전...)"
"지금 뱃속에서 아기가 많이 움직여요. 안에서 기지개를 켜나봐요........오빠... 난 아기가 좀 늦게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물론 알수는 없지만....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고... 형민이 덕분에 적절하게 운동도 되는 것 같아요. (예정일 9일 전...)"
"또 한주가 지나갔네요. 이번주에는 정말 소식이 있을지... 지난 번 병원 갔을때 2병동에 근무하는 동기를 만났어요. 작년에 첫째를 낳고 연년생으로 아기를 또 가졌더라구요. 나랑 거의 날짜도 같고... 모레 병원에 가면 그 친구가 아기 낳았는지 알아봐아겠어요. (예정일 6일 전)"
매일 받아 보는 메일을 읽으면서... 선화가 아기를 무척 기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화 뿐 아니라 저 역시...예정일이 다가올 수록 초조함은 더해 갔는데... 왜냐하면....선화는 첫번째 아기를 제왕절개술을 통해 낳았기 때문입니다.
첫 아기 형민이를 분만할 당시... 예정일을 2주 앞둔 시점에서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양수가 먼저 터졌고...그래서... 24시간 내에 출산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던 지라 유도 분만을 시행해야 했습니다. 자정부터 시작한 유도 분만은 11시간 동안 계속되었지만....분만은 진행되지 않았고 태아(형민)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는 등...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자 고생은 고생대로 한 뒤 제왕절개수술을 시행해야만 했었지요. (그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적은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당시...고통 속에 있는 선화의 손을 잡고 울며 함께 아파하며 위로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 부부로서는.... 예정일이 다가 옴에도 정상적으로 진통이 찾아 오지 않자...혹시나 다시 유도 분만을 거쳐 제왕절개술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염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제왕절개술의 빈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첫 아기를 제왕절개를 통해 출산했던 산모라면 둘째 아기의 경우... 거의 어김없이 수술을 통해 낳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이곳 아스타나에 계시는 선교사님 사모님들도 우리 부부가 정상 분만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자....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셨습니다.
"안돼요....고집부리지 말고 그냥 수술해요....산모만 실컷 고생하고 결국 수술하게 된다니까..."
"첫째 아기를 수술로 분만했다면....둘째 아기를 정상 분만할 때는 첫째를 분만하는 것과 같은 고통이 뒤따를테고...이미 첫 아기를 수술했기에 오랫동안 진통을 하는 것 자체가 산모에게 위험할 지 몰라요...."
"제가 알기로는 제왕절개를 한 뒤 정상 분만을 하려면 만 3년이 경과해야 한다던데요...."
어디서 이런 얘기들을 들으셨는지....비전문가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들...저마다의 정련된 논리로 의사인 절 나무라듯...'정상분만 시도 불가론'을 활발히 제시하시더군요.
실제로 한국의 현실은 이같은 사람들의 통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90년 18.1%이던 제왕절개율이 매년 2%포인트씩 증가해서 최근에는 40.5%까지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유럽이나 일본의 2배 수준이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치를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10명의 아기가 태어난다면 그 중 4명은 수술을 통해 출생했다는 말입니다.
물론... 분만 횟수의 감소로 임산부의 반 이상이 초산부이므로 초산부에서 발생율이 높은 난산이나 임신 중독증의 빈도가 그만큼 증가하고 노령 임산부의 수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그래도 세계적 추세에 비쳐 볼 때 우리 나라가 유독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선화의 경우처럼...만일 어느 산모가 첫째 아기를 제왕절개술을 통해 출산했다면 한국에서는 당연히 둘째도 제왕절개술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과서적으로 볼 때...첫번째 제왕절개술의 이유가 산모 골반의 해부학적 이상 때문이 아니라면 둘째 아기의 출산 때에 반드시 제왕절개술을 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제왕절개술 후에도 안전하게 질식분만(정상분만)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검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아니 반복 제왕절개술 보다 정상 분만이 더 안전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1985년 Flamm등의 보고에 따르면 첫째 아기를 제왕절개술로 분만한 6258명의 산모 중 86%에 해당하는 5356명이 질식분만(정상분만)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으로 나옵니다. 나머지 산모(14%)들만이 반복 제왕절개술을 시행한 것이죠.
대부분의 산과 의사들이 제왕절개술 후 질식분만의 시도를 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궁파열 또는 파열의 위험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1981년 Sullivan등이 8000건의 분만 경험을 모아 발표한 보고에 의하면 반복 제왕절개술의 경우 자궁 파열이나 파열의 발생률이 1.8%인데 비해...질식 분만의 경우 0.5% 밖에 되지 않아 질식 분만이 반복 제왕절개술보다 더 안전하며 잘 선택된 환자에서 더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하지만...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가정이 이제 아기를 한 둘 정도만 가지게 되었고...제왕절개술을 통해 쉽게 낳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상 분만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가 책정되어진 제왕절개술은 앞의 보고들이 무색할 정도로 보편화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가 둘째 아기를 정상 분만을 통해 출산하려고 한다면...일단 정상적으로 진통이 와야 하고 자궁 수축력도 좋아야 하기에....예정일이 가까와 질수록 조금씩 초조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분만일을 넘겼는데도 진통이 오지 않는 경우나 지난 번 처럼 진통이 오기 전에 파수(양수가 나오는 것)가 먼저 되는 일이 생기면...어쩔 수 없이 유도 분만을 해야 할 테고...그러다 보면 지난 번과 같은 전례를 밟을 것 같아 우리 부부는 내심 조마조마 가슴을 졸여야 했던 것이죠.
게다가 지난 번에는 예정일보다 2주 앞서 출산했는데...이번에는 예정일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은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정상 분만에 집착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선화는 늘...형민이를 바라 보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오빠...전 웬지 형민이를 볼 때마다...형민이를 낳을 때 내가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다 겪지 못하고 피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웬지 그 과정을 겪어야 엄마로서 자격이 있는 거 같고...괜히 미안한 맘도 들고...그럴 필요 없는데....."
"오빠....난 모유를 먹이고 싶은데...수술 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탓에.... 출생 후 며칠 동안 형민이에게 젖을 먹일 수 없었고 형민이는 그동안 신생아실에서 젖병을 빨아야 했어요....그 후로는 형민이는 엄마 젖꼭지 빠는 게 힘드는지 빨려고 하지 않았어요....아기는 배가 고파 울고...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젖병을 물렸지요...하지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모유를 먹이고 싶어요...사실 젖병을 사용하면 여러 가지가 복잡하고 성가신 것도 있구요..."
"삼남매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하지만....이번 아기도 수술을 해서 낳게 된다면....세 번째 아기까지 생각하기 어렵겠지요?"
하지만...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우리 가정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면서 때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설사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그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지요.
그러던 중...12월 24일...그러니까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선화에게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래로 뭔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양수는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화장실에 갔는데, 약간의 붉은 빛이 도는 분비물이 나왔답니다. 약간의 물 같은 것도.... 혹시 또 양수가 먼저 터졌나 싶어서 약간 긴장했는데.... 파수 된 것 같지는 않았답니다. 그랬다면 계속 주르르 흘렀을테니까요. 아마 이슬이 비친 것 같아요. 아기는 최대한으로 내려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앉고 서기가 좀 힘들답니다. 약간의 분비물들이 조금씩 있으니까 그것도 몸을 좀 불편하게 하네요. 하지만 오빠...... 아주 정상적인 코스로 가는 것 같아요. 곧 (5-6일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진통이 오고 아기를 낳게 되겠지요. (예정일 3일 전...)"
이 메일을 받은 뒤부터는 자주 전화 통화를 했고...선화에게 찾아 온 변화를 예의 주시했습니다. 진통이 곧 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그러나...이슬이 비치던 24일은 하루 종일 간헐적으로 아랫 배가 아파오면서 진통이 시작되는 것 같았지만 그 다음 날부터는 진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저 약한 진통만 왔다 갔다 했는데...제대로 진통으로 발전하지 않는 것만 같아 선화는 불안해 졌습니다. 혹시 제대로 진통이 오지 않는 게 아닌지...분만의 진행이 더딘 건 아닌지...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면서 초조해 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자고 다짐했습니다.
"아까 오빠랑 통화하고 나니까 너무 좋았어요. 병원에 갈까 어쩔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냥 맘이 편해졌답니다. .......전 변함없이 약한 진통이 간헐적으로 나타날 뿐이네요... 마음같으면 이제 차차 진행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기가 이틀 사이에 아주 많이 내려와서 골반뼈에 머리가 닿는게 느껴질 정도랍니다. 거기다가 발로 차도 갈비뼈까지 올라오지 않는걸로 봐서 우리 둘째는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 엄마의 준비가 더딘가봐요. ........오빠 말대로 이런 약한, 규칙적인 진통(지금은 간헐적)이 내일도 계속된다면 그 다음날에는 병원에 가 볼께요. (예정일 2일 전...)"
"아침에는 배도 규칙적으로 아픈 것 같고 움직이기가 힘들어 예배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어요. 형민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교회 갈 건지, 엄마랑 집에 있을 건지 한참 생각하더니 교회에 가겠다고 나서더군요. "엄마, 안농."을 외치면서 당당히 나서는데... 많이 자랐구나 싶었어요. 교회에서도 예배도 잘 드리고 교회에 있는 강아지에게 빵도 주고, 점심도 잘 받아먹고.... 그랬대요. (예정일 1일 전...)"
"오늘도 조용히 넘어갑니다. 내일은 김기형 선생님이 아침에 외래를 보시니까.... 외래로 한번 전화를 해 볼까 싶어요. 그동안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계속 이렇다면 월요일에는 입원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날 예약도 되어있고 신년이 되기 전에 아기를 낳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예정일 당일....)"
예정일인 27일까지도 규칙적인 진통은 찾아 오지 않았습니다. 27일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선화는 오는 월요일...그러니까 30일...산부인과 외래 방문이 예약되어 있는데 그 때 외래로 가서 유도 분만을 위해 입원하는 건 어떤지 의견을 물어 왔습니다. 예정일보다 일 주일 정도 늦게 까지 기다려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어차피 예정일도 지난 마당에 올해가 가기 전에 유도 분만을 해서 출산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정일인 27일...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오래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오는 월요일까지는 기다려 보고 그 때까지도 변화가 없으면 주치의 선생님과 면담을 해서 유도 분만을 시행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날 밤...저는 자기 전...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수 백번 기도했지만...이 날의 기도 내용은 좀 달랐습니다. "월요일 까지 진통이 올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라는 것이 기도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선화가 순산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였지만....이 날 만큼 날짜까지 제시해 가면서...다소 공격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때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떠 오르더군요. '내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한까지 명시해서 간구했으니...하나님께선 반드시 월요일까지 진통이 찾아 오게 하실 거다....' 라구요.
사실 저의 기도 스타일은...하나님께 억지를 부리며 졸라대듯이 하는 기도가 아니라...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식의 광범위한 기도인 경우가 많은데...이 날 밤 만큼은 절박하게 억지를 부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28일) 아침에 확인한 메일에도 여전히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이 되니까 전 좀 답답하고... 빨리 진통이 오든지... 어떻게 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오빠 말대로 조바심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안정되게 ... 기쁘게 기다려야겠어요. (28일 오전)"
그런데...오후 2시 50분 경...선화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진통이 사라지지 않고 규칙적으로 계속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병원에 가야 할 지 망설이고 있다는 선화의 말을 들으면서....이번에는 제대로 찾아 온 진통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10분 간격의 규칙적 진통이 아니라는 말에....3시간만 더 기다리자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 경...선화와 다시 전화 통화를 했을 때...선화는 이미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통증은 10분 간격으로 더욱 세어졌다고 얘기했습니다. 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한 선화는 친정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떠날 차비를 했고...까작스딴에 남은 저는 선화와 고통의 시간으로 함께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6시 50분 경 병원으로 떠난다는 연락이 왔고...7시 30분 경 병원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싣고 있는 선화와 나눈 통화 내용에는 7분 간격으로 진통이 온다는 얘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지요..
성훈 : "아마 병원 가서 내진해 보면 (자궁 경부가) 3cm 쯤 열렸다고 할 지도 몰라...."
선화: "그렇다면 정말 좋겠는데요...아기가 쑥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 힘 있는 선화의 말씨였지만....대화 끝에 찾아오는 진통에...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빨리 휴대폰을 끊는 것을 보며 통증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화는 산전 진찰을 받았던 부산대학병원으로 향했는데... 응급실을 통해 분만실로 올라갈 예정이었습니다. 전... 새로 지어졌다는 부산대학병원 응급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수련의 시절만 해도 부산대학병원 내부를 꿰차고 있었는데...선화와 함께 있지 못한데다...응급실 그림까지 떠 오르지 않는 상황은 죄스럽고 답답한 것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첫 아이 형민이의 분만을 위해 입원해 있을 때의 모습입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선화와 통화를 한 뒤...인터넷에 접속해 한국에 있는 새벽별(부산의대기독학생회 학사모임) 게시판과 친구 이현국 선생님 홈페이지에 들어가 남편 없이 출산하는 선화를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남겼습니다. 고통의 순간이 계속될 때... 누군가 옆에 있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하필 이 날은 선화의 학교 후배 지희가 결혼하는 날이라...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갔을 것이고...게시판에 들어 오는 사람도 다른 날에 비해 적을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 날 따라 '라이코스' 서버에 문제가 있는지 게시판 접속 마저 쉽지 않더군요.
밤 8시 20분 경...선화와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양산의 친정집을 출발했던 선화는 이제 막 응급실에 도착했고....분만실로 입원하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수화기로 들리는 선화의 음성은....심각했습니다. 고통을 참아가며 겨우 겨우 말을 잇고 있었고...통화는 금새 끊어졌습니다.
'응급실 인턴 선생님들...꾸물거리고 있는 거 아냐....빨리 분만실로 올려야지....'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좌충우돌하던 저의 인턴 시절을 떠 올리며...분만실에 빨리 입원되도록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 부민동 본가로 전화를 걸어...어머님이 응급실로 오시도록 연락을 취했고...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아스타나의 날씨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습니다. 온도는 영하 27도 정도....세찬 바람에 이는 눈보라 때문에 창 밖의 도시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였지요...이렇게 바람이 불면 차가 더 빨리 얼어 버리기에...나가서...차 시동을 한 번 걸어 본 뒤 다시 집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밤 9시 10분...다시 선화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받는 사람이 없더군요...불안한 맘에 한 번 더 걸었더니...장인 어른께서 받으셨습니다. 선화는 지금 막 분만실로 올라가는 중이고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선화가 첫 번째 아기를 출산할 때는 제가 부산대병원 레지던트(전공의) 였는지라...분만실 안에 같이 들어가 선화의 손을 꼭 잡고 있었는데....보호자라고 분만실 밖에 서 계시다는 말씀을 듣자 더욱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혹시나 싶어...새벽별 게시판에 다시 들어가 보았습니다. 제가 올린 글을 읽은 사람은 두 시간이 지난 그 때까지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나 한 명이라도 제 글을 본다면...병원에서 근무하는 후배들에게 연락을 취해 줄 텐데....선화 곁에 못 있는지라...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후배들이 선화의 곁을 지켜 주길 바랬던 전...아무도 제대로 연락되지 않자 더욱 걱정되고 안타까와 졌습니다.
찬양 CD를 틀어 놓고 거실을 뱅뱅 돌았습니다. 오로지 선화가 무사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밤 9시 50분...다시 한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장인 어른이 받으셨고....선화만 분만실 안에 있고 보호자들은 밖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전 이 때 선화의 상태를 파악하고 싶었는데...의학적 소견을 애기 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선화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고...어머니께서 휴대폰을 분만실 안으로 넣어 주셨습니다.
분만실 안으로 들어 간 휴대폰은 선화의 침대 가까이에 가면서...선화가 고통에 못이겨 내는 신음 소리를 그대로 제 귀에 전해 주고 있었습니다. 첫째 아기 형민이를 출산할 때 함께 겪었던 괴로움의 순간들이 다시 눈 앞에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듣고 싶은 선화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성훈: "선화야...아프재? 선화야...지금 몇 cm 이고?"
선화: "예....5cm 열렸거든요...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고통에 못 이겨 제대로 말도 못하고 있었고...전화는 바로 끊어졌습니다.
선화가 첫 아이 형민이를 출산할 때....11시간 동안 유도 분만을 시도했지만...자궁 경부는 4-5cm 이상 확장되지 않았었습니다. 5cm 이라는 얘길 듣는 순간....선화가 이 고통의 순간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기도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궁 경부가 10cm로 완전히 열려야.... 분만 2기 그러니까 태아가 밖으로 나오는 단계가 시작됩니다. 자궁 경부가 10cm 까지 완전히 열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초산부는 평균 8시간, 경산부(2번째 출산)는 5시간 정도죠.. 지금 5cm 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5시간 정도 더...이런 고통의 시간이 계속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1시간에 1cm 정도 열린다고 생각하니까요...
안방으로 가서...우리 침대와 형민이 침대가 나란히 놓인 자리에 앉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제 입에서 나온 기도 내용은 그저..."하나님...선화를 도와 주세요...." 라는 말뿐이었습니다. "하나님...선화가 겪는 고통의 시간을 줄여 주세요...." 눈물만 쏟아지고....다른 어떤 말도 필요없었습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선화가 겪고 있을 고통을 생각하니....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거실로 가서 뱅글뱅글 돌다가....기타를 잡고 찬양을 해 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마음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다시 안방으로 가서 형민이 침대에 무릎 꿇고 앉아 찬송가를 폈습니다. 1장부터 차례대로 부르기로 생각했습니다.
찬송가에는 총 558곡이 들어 있습니다. 1장부터 부르기 시작하는 제 맘 속에는 558 장까지 다 불러도 어쩌면 출산을 못하는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찬송을 부르는 것을 통해...사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친히 선화를 찾아 가 주시길 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겨 달라는 전적인 의탁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목이 쉬도록 크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울기도 하고...목소리를 가다듬기도 하면서....2년 전...형민이를 출산할 때 괴로와 했던 선화의 모습을 떠 올리며 기도하는 맘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밤 11시 10분 경...자동차를 주차장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3시간 째 영하 30도의 추위를 맞고 있기에 잘못하면 그대로 얼어 붙기 때문입니다. 찬송가는 27장을 막 마친 때였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고....내려가...역시나 잘 걸리지 않는 시동을 힘들게 건 뒤....주차장에 차를 집어 넣고...2시간 간격으로 차 시동을 걸어 달라고 50뗑게를 건네 주고 집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 때가 밤 11시 반 경입니다.
집으로 들어 와 다시 찬송을 하기 전....혹시 출산에 관련된 새 소식이 있을 까 싶어...인터넷을 접속해 새벽별 게시판에 들어 갔는데...누군가 제가 쓴 글을 보았는지...조회 수에 "1"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보았구나....그렇다면 선화에게 새벽별 동기들이나 후배들이 찿아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책상에서 일어나는데....전화벨이 "때르릉...." 울렸습니다. 급히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는데...전화가 끊겨 있었습니다. 순간...이건 한국에서 온 전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제전화는 한 번씩 그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전화는 다시 걸려 왔고....장인 어른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 서방...축하 하네...선화가 순산했네....."
아니...이게 무슨 소리야.....휴대폰을 넘겨 받은 어머니가 계속 말을 이어셨습니다.
"성훈아....신기하게 이번에는 아기(선화)가 너무 쉽게 출산을 했다....정확하게 11시 11분에 출산을 했는데...분만실에 온 지 2시간 만에 정상 분만을 했어...."
아.........정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제 머리에 제일 먼저 떠 오른 생각이 뭔지 아세요? 바로.....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눈빛이었습니다. 남편 없이...제왕절개술 후 정상 분만을 시도하는 외로운 선화의 고통 속에서....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줄여 달라는 외마디 외침에 응답하신 하나님은....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초스피드로 2시간만에 둘째 아기를 순산하도록 하셨습니다. 11시 11분이라면...제가 찬송을 부르다 차 시동을 걸기 위해 현관문을 열던 바로 그 시간인데...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도움을 구하는 찬송 소리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 후의 시간이 제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29일 새벽 3시 경...분만실에서 7층 병실로 선화가 옮겨 졌고....우리는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성훈: "선화야...수고했다. 많이 아팠재?"
선화: "그래도 지나고 나니까 덜한 것 같네요...나... 아주 빨리 아이를 낳았지요? 병원에 온 게 9시 였는데...11시 11분에 출산했어요..."
성훈:"그래...하나님이 여러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 거야...."
선화:"예...저도 그렇게 생각해요...하나님이 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셨어요...."
성훈:"정상 분만해서 너무 기쁘지? 우리 그걸 원했잖아....모유도 먹이고....형민이도 엄마가 빨리 돌아오면 좋아할 거고..."
선화:"이번에는 꼭 모유를 먹일 거예요...."
성훈:"많이 아팠재?...."
선화:"저번 때와는 통증이 달랐어요...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아팠어요...."
성훈:"오빠가 옆에 못 있어 미안하다....이제 끝났으니..한 숨 푹 자라...내가 내일 또 전화 할께....아기는 봤나?"
선화:"예....예쁘게 생겼어요..."
성훈:"에이...예쁘기는...아직 사람 모양도 아닐 텐데...."
선화:"아니예요...형민이 때보다는 훨씬 살도 많이 찌고 윤곽이 뚜렷해요...예쁘게 생겼어요...."
형민이는 출생 다시 2.7Kg였습니다. 이번 아기는 3.2Kg 라고 합니다.
성훈:"그래...현국이도 왔재?...병실도 잡아 주고 했다면서...그래...오빠가 없어서 여러 가지 불편할 텐데 현국이가 많은 도움을 줬구나..."
선화:"예...그리고 내가 진통하는 동안...기욱이(현국이의 아내)가 제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성훈:"그래...형민이 때 오빠가 그렇게 잡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내일 다시 전화하기로 하고 수화기를 내렸습니다. 아마...내일은 더욱 힘을 내어 즐겁게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없는 어려운 출산이었지만....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시간을 줄여 주셨고...바쁜 와중에서도 이현국 선생님 부부(새벽별 동기)가 선화를 격려할 수 있도록 보내 주셨습니다.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제게는 선화의 출산과 관련된 어떤 사진도 없습니다.
이 사진은...선화가 형민이에게 젖병을 물리던 때의 모습입니다.
이제...선화에게는 그렇게도 원하던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정상 분만을 했다고 모유 수유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유축기도 갖추고 있고 유두 함몰 교정기 등을 사용해 이전부터 모유 먹일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선화에게는 행복한 시간들이 남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전화 통화에서...이제 마음 편하게 몸 조리 잘 한 뒤....2개월 후 다시 까작스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가정을 불쌍히 여기시고...고통의 신음 중에서 드린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찬송가 끝까지 부를 필요없이 27장 까지만 부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그리고....출산을 위해 수고하신 양가 부모님...그리고 이현국 선생님 부부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선화야....너무 수고했다...오빠가 함께 못 있어서 너무 미안하다...우리 조금만 더 참고 있다가 다시 만나자....네가 너무 자랑스럽다...사랑해...." 2002.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