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까작스딴 이야기 (7)  2002.10.12 -11.29

진짜 멋진 삶...하나님을 높이는 대사(ambassador)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0/12 (01:35:15)   조 회 96

지난 8월 까작스딴에는 새로운 대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주 까작스딴 한국 대사로 수고하셨던 최승호 대사님은 귀국하시고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해 오신 태석원 대사님이 새로 까작스딴으로 부임하신 것입니다.  사실...까작스딴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일반 교민이라면 대사님과 마주칠 일이 많지 않을 것이고 한국 대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 큰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대사관이 위치해 있고 대부분의 교민들이 살고 있는 알마티가 아니라 교민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사람...특히 그 사람이 저 같은 공무원의 신분으로 와 있다면 대사님과의 접촉은 잦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임 대사님은 6개월에 한 번 꼴로 수도인 아스타나를 방문하셨습니다. 주로 외교부에 관여된 일이나 대통령과의 면담 등으로 오시는 것이였는데... 그 때마다 연락 사무소 하나 없는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유일한 공무원인 전 항상 아스타나에 오실 때마다 공항에 영접하러 나가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알마티의 코이카 사무소에서 대사님이 아스타나로 가신다고 말하면서 공항에 영접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서 나간 것이지만....몇 번 나가다 보니...대사님과 정도 들고 어느 덧...아스타나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근황이 어떠신지 만나 뵙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나가게 되었습니다.   

전임 대사님은 학자 스타일의 청렴 결백한 공무원이셨습니다. 뭐...제가 그 분의 재정 장부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그 분을 접해 본 기간을 통해 느껴진 것은 한국의 모든 공무원들이 이 분 같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사리가 분명하시고 좌우로 치우지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전임 대사님이 이임 인사를 위해 마지막으로 아스타나를 방문하셨던 지난 8월...가시는 것이 참 섭섭했고 저희 가정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리고...이번에 새 대사님이 오게 되신 것입니다.

새 대사님이 처음 아스타나로 오신 금요일 낮 2시 30분 ...저를 비롯한 몇몇 코이카 단원은 아스타나 공항에서 신임 대사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직 얼굴도 못 뵈었기에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렸건만...결국 공항에서는 만나 뵙지 못했지요. 신임장을 받기 위해 아스타나에 처음 올라온 한국 대사를 위해 까작스딴 외교부에서 나온 특별 차량이 활주로에서 대사님을 실어 나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리들은 텅 빈 공항에서 한참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오후 6시 반...이곳 식당 미림에서 이곳에 사는 한인들과 이곳의 고려인 협회 임원들과 함께 하는 상견례가 열렸습니다.  장소가 협소해 코이카 단원들은 가족을 포함해서 모두 참석했지만 선교사님들은 남자분들만 참석하셨습니다. 주로 목사님들이셨지요.. 전 30분 일찍..약속 장소로 나가 대사님을 기다렸습니다...그래도 명색이 이곳에 파견된 전문직 공무원이니까요...그리고 잠시 후...대사님이 들어 오셨습니다.

큰 키에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90년부터 러시아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셨다고 하시더군요. 코이카 단원을 다 소개하고 이곳 목사님과도 인사를 나누시고 이곳에 나와 있는 고려인 협회 사람들과도 일일이 러시아어로 인사를 나눈 대사님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모두들 준비된 식탁에 다 앉았고....식사를 시작할 때가 되어..식사를 시작하자는 말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사님이 입을 여셨습니다.

"이 자리에 목사님도 오셨는데...목사님 중 한 분이 식사 기도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때...제가 얼마나 놀랐던지....순간 불신자인 코이카 단원의 당황해 하는 눈빛과 몇몇 고려인 협회 사람들의 의아해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지만...이내 목사님의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식사 기도가 끝난 뒤...식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식사 내내...대사님과의 대화 내용 중..많은 내용들이 대사님 부부가 크리스챤임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대사님 사모님은 "평소부터 까작스딴에 대사로 오고 싶어 기도하기도 했었어요..." 라고 말씀하셔서 이 분들이 크리스챤임을 확신할 수 있었지요..

이것이 오늘 제가 경험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은 목사나 선교사만 하는 일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 주신 자신의 직업과 달란트를 통해 모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 하더라도...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손에 그 일이 맡겨져 있을 때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 선전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이 되고 맙니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 대사님의 행동을 보면서...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대사라면...고려인 협회 관계자가 나와 있고 불특정 다수의 한인들이 있는 공적인 자리..그것도 첫 만남의 자리에서 식사 기도를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라고 말입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배려한다고 얘기를 듣는 저로선...어쩌면 여러 사람을 의식해 모두에게 식사 기도를 하자고 얘기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오늘 새로 부임한 태석원 주 까작스딴 한국 대사님은 기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전..그 사실이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자리에 참석한 선교사님들도 한결 의기양양해 지신 것 같았습니다. 선교 현장에는 크리스챤 협력의사, 크리스챤 교육원장...더 나아가 크리스챤 대사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합리적으로 아름답게 처리해서...주변 사람들로부터 크리스챤인 그가 모든 일을 깨끗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한다는 칭송을 받는다면...그가 크리스챤이라는 사실도 함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때..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지요..이것은 모든 직업에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종 다양한 일터로 보내고 그 일 속에서 평생 거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또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길 원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식사 기도가 어색하거나 불쾌했던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어떤 사람들에겐(특히 이곳 고려인들에겐) 한국의 대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준 중요한 사건이었고 ...이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대한민국의 대사가 저토록 기도하는가 라고...생각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10월 11일 저녁 6시 반...한국 식당 미림에서의 저녁 식사는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 사건이었습니다.  떠나가는 대사님의 차량을 보며...그 분의 일이 앞으로 하나님 안에서 잘 이루어지길 빌었고...집으로 돌아와 드린 가정 예배 시간에도 대사님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사....멋지지 않습니까?

저 역시...나의 일터에서 하나님을 높이며 살아가는 멋진 경험을 늘 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시죠?

 

첫 눈이 내리는 날...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0/13 (20:22:32)   조 회 99

2002년 10월 13일 주일 아침...기다리던 첫 눈이 왔습니다. 이곳에 사는 까작스딴 현지 사람들에게야...그 지긋지긋한 겨울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되나보다' 라며.. 움츠려 들겠지만... 한국..그것도 가장 따뜻한 남쪽 나라 부산에서 살다 온 우리로선 눈이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작년과 달리..올 가을은 아스타나에서 비 구경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하얀색의 우리 차가 항상 꺼멓게 변한 채 도시를 달렸었는데..올 가을 동안은 제대로 내린 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며칠 전 밤엔  거실 밖으로 내다 보이는 아스타나 도심을 바라보며...한국에서 자주 듣던 창문 두드리는 빗 소리를 듣고 싶다는 얘기를 선화와 나누기도 했었지요.

계절은 속일 수 없는 법이라...올해도 작년 처럼 따뜻한 겨울이 될 거라는 조심스러운 예상이 나도는 가운데...영하의 날씨가 찾아 오더니...드디어 첫 눈이 내렸습니다. 그래도 아스타나는 겨울 풍경이 더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작년에 왔을 때부터...제 머리에 남아 있는 아스타나의 인상은 이렇게 눈과 바람으로 대표되는 도시입니다.  

아스타나는 바람이 많은 동네입니다. 바람 많은 곳은 제주도라고 하지만...부산 같은 해안 지방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바람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산 사람들인 우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아스타나에는 강한 바람이 몰아 칩니다. 특히 영하 30도 혹은 40도 대의 날씨에 이런 바람이 몰아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리에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눈이 오더라도...우아하게 솜털 떨어지듯 조용하게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바람이 없기로 유명한 남쪽 알마티에는 겨울이 되면 사뿐 사뿐 내려 앉는 눈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눈꽃으로 온 도시가 동화의 나라처럼 변하곤 합니다. 하지만....바람이 몰아치는 아스타나에는 눈꽃이 매달리지 않습니다. 나무에 눈이 쌓일 수 없을 만큼 사방에서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눈 뜨고 앞을 보기 힘듭니다. 도로 위의 눈들이 밀가루 날리듯이 이리 저리 밀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회오리 바람처럼 눈보라가 소용 돌이를 그리며 도시의 곳곳으로 파고 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선화와 형민이는 ...첫 눈이 오면 같이 사진을 찍자고 계획했었지만...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낼 만큼 밀어 닥치는 눈바람 때문에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사양하고 안방 창 가에서 밖에 쌓여 있는 눈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밖은 아무리 추워도 집 안은 따뜻합니다. 까작스딴의 난방 방식은 온돌이 아니라 라디에이터 난방인데...우리 집의 라디에이터(여기선 빠떼리 라고 부릅니다.) 는 크기도 크고 숫자도 많아 작년 겨울 보다 훨씬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년 겨울에 살던 집은 겨울 내내 부엌 창문 안에 두껍게 얼음이 얼어 있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틈새로 들어오던 추운 집이었거든요... 첫 눈이 내리니까...기분도 좋고...한국에 있는 분들에게 소개도 하고 싶어 몇 자 적었습니다. 날씨는 비록 추워졌지만...우리 맘은 더욱 따뜻합니다. 빠떼리가 들어와서가 아니라...이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 우리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감사하게 와 닿기 때문입니다. 아울러...한 달 후 한국으로 떠날 선화와 형민이와 함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죠...

모두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아스타나의 최근 날씨가 추워지고 있으니..3-4일 후 한국도 추워질 겁니다. 어차피 시베리아  대륙성 고기압 영향을 함께 받을 테니까요...건강하세요..

 

너무 나이 든 남자와 살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10/22 (19:57:42)   조 회 125

아스타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늘 혹독한 추위와 바람을 이야기 합니다. 겨울이 되면 영하 30-40도의 대륙에서 불어온 세찬 바람이 말 그대로 뼛속까지 들어오는 듯한 추위.... 모스크바나 상트 페테스부르크에서 온 사람들도 이곳 추위에 혀를 내두르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또 최근 며칠 동안 이상 온난 현상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10월 초에 첫눈과 함께 추위가 시작되는 듯 했는데 다시 기온이 올라가면서 오늘 낮에는 영상 15도의 기온까지 보이고 있으니까요. 다시 추워지겠지만 어쩄든 저희는 지금 기온에 만족합니다.  

10월달은 우리 가정에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날짜별로 보면 5일이 형민이 생일이고 16일은 결혼 기념일, 그리고 18일은 성훈이 오빠의 생일입니다. 그래서 성훈이 오빠의 생일날을 맞아 아스타나 코이카 식구들이 저희 집에 모였습니다. 생일이란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그냥 식사 모임을 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단원들이 선물까지 준비해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소고기, 두부 전골을 주 메뉴로 준비하였는데 다들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사후 케익에 촛불을 켜고 노래도 불렀지요. 이날 형민이는 자기가 촛불을 끄는 주인공인줄 알고 잔뜩 신이 났습니다. 지난 형민이 두 돌때 엄마, 아빠와 했던 파티에서 촛불 끄기가 그렇게 재미 있었나봅니다. 성훈이 오빠는 만 31살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만난 건 제가 만 18살, 오빠가 만 22살때였는데....(제가 부산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해서 바로 오빠를 봤으니까요...) 벌써 30대라니.... 너무 늙은 남자와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우스개 소리도 나눴지요.

다음달 11일이면 우린 긴 이별을 해야합니다. 아무래도 오빠 혼자 두고 가는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 시간들이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으로 만들자고 매일매일 다짐을 합니다. 함께 축하해주세요....

 

당장 보싸리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0/31 (14:01:11)   14 조 회 82

까작스딴에 와서 산 지 1년 6개월...이곳에서의 생활에 저나 선화나..모두 대만족입니다. 국제협력단에서 파견된 의사로 이곳 사람들을 진료할 수 있어서 좋고... 선교지의 교회들과 동역할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게다가...한국과 달리 선화는 물론 형민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아빠와의 특별한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는 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합니다.

하지만...이렇게 만족스러운 까작스딴의 생활 중에도 문득 문득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 안에서 제가 느끼는 편안함과 좋아하는 것들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먹거리 하나만 하더라도...아무리 이곳에서 맛있다는 것을 먹어도 한국에서 먹던 그야말로 맛있는 음식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돌아가면 송도에 가서 회 한 접시에다...보쌈에다..돼지국밥에다... 이런 생각이 가끔 듭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게 급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참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까작스딴이 싫어지면서....한국으로 바로 가고 싶은 경우가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바로 이발소에 갈 때입니다. 여기도 한국처럼...남자 이발소가 있긴 하지만...대부분 미장원을 이용합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살면서 한국에서 처럼...1달에 한 번 미장원에 가서 이발을 합니다.  하지만 늘...다른 곳에서 이발을 합니다. 왜냐구요...할 때마다 매번 옮겨 다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가위질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고 믿음이 가지 않아서지요. 아무리 손 재주가 없다지만....한국에서 보듯이 그렇게 깔끔한 스포츠 형 머리는 도무지 나오지 않습니다.

절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제가 원래 외모에 그리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과 비슷하기만 하면 되지요..전 그저 스포츠 형으로 머리를 깎고 다닙니다. 형민이도 스포츠 형..저도 스포츠 형이지요. 그런데...이곳의 사정은 정말 특별합니다. 한 번은 미장원에 들어가 스포츠형으로 깎아 달라고 했더니...1시간 30분 동안 바리깡 들고 동분 서주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정말 그 시간 동안 한국으로 빨리 날아가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 찾아간 곳도 마찬가지였고...이번에는 한 수 더 뜨서 머리를 거칠게 이리 저리 돌리기만 하지....머리카락 끝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하더군요.  한국은 한 10분이면 시원 시원하게 스포츠 형으로 깎아 주는데....여긴 앞 머리도 그냥 가위로 일자 모양으로 쭉 끊어 버리는 게 다 입니다.   선화는 제가 이발만 하고 오는 날이면..."사람을 뭐 이렇게 만들었어요?" 하며...혀를 내 두릅니다.

가끔 알마티에 내려가면..전 알마티에 유일하게 있는 한국인 이발소 "마돈나"에 들러 이발을 하고 올라옵니다. 그 때마다..대만족을 하고 아스타나로 올라오지요..하지만... 그 기쁨도 한 달이 지나면 끝나 버리고...다시 이름 모를 아스타나의 어느 이발소에서 답답한 맘으로 나와야 합니다. 형민이 이발은 선화가 도맡아 하고 있기에...가끔 선화가 제 머리를 깎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마다..."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라며...또 다른 미장원을 찾아 나서지요.

빨리 실력 좋은 이발사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10분 만에 스포츠형으로 시원하게 자르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까작스딴이 더 좋아질 것 같은데 말이죠...

 

10월 마지막 날 우리 세식구....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10/31 (19:03:02)    조 회 84

오늘이 10월을 마지막 날이네요. 한국은 많이 춥다지요? 이곳은 이상 고온 현상이 계속 되면서 낯기온이 영상 1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오는 빳데리(난방용 라디에이터)는 아주 뜨겁게 들어오고 있어서 우리는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야합니다. 추우면 뜨겁게, 더우면 좀 적게 보내주면 될텐데.... 모든 일을 일률적으로 하는 공산주의의 잔재가 남아서인지 도무지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라입니다.

때론 지루한 이곳 생활이지만 형민이에게는 매일매일이 신기하고 즐거운가봅니다. 두돌이 지나면서 눈에 띄는 변화는 우리의 말을 열심히 따라한다는 것입니다. 따과, 빼, 앰, 엉아, 아영아, 깜 이런 것들인데 통역하면 사과, 배, 햄, 형아, 나영아, 감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침시간에 하는 학습활동(그림 그리기, 책읽기 등)도 계속 되고 있는데 크레파스나 색종이를 가지고 놀면서 저는 색깔을 가르칠려고 애를 써 봅니다. 유일하게 알아듣고 바르게 집는 것이 노랑색이고 그 외에 것들은 혼동스러운가 봅니다.

형민이에게 심부름 시키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좀 더 지나면 귀찮아하겠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심부름들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하거든요. 머리를 감다가 "형민아 방에 가서 빗 가져올래?"하면 재빨리 가서 가져옵니다. 여러 가지 물건 가져오기, 수저 놓기,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기 등등.... 잘 해냅니다. 가끔 "형민아 코 자는 방에 가면 파란 통이 있거든.. 그것 가져와."하면 손가락으로 방을 가르키면서 "어,어"합니다. 그런데 '파란 통'과 같은 정확한 사물명이 아닌 것들은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지 한참을 되묻습니다. 그리고 가더라도 도로 그냥 오거나 엉뚱한 것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집에 전화를 하신다면 먼저 형민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화를 받는 역할은 늘 형민이가 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전화중에 보채고 울기때문에 아예 처음 받는 걸 형민이에게 시킵니다. 그리고 수시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데 꼭 전화기가 아니어도 형민이는 가능합니다. 전가 계산기, 명함, 때론 기타 피크까지 들고 전화를 하는데 대상은 주로 아빠와 김대동 선생님의 1살된 딸인 나영이 입니다.

형민이의 제일 좋은 친구는 아빠입니다. 아빠는 약간 무서운 면도 있지만 형민이를 가장 재미있게 해 주는 사람이거든요. 밤에 자다가는 반드시 한번 깨서 아빠를 확인하고 품에 안겨 다시 잡니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찾는 사람도 바로 아빠구요. 밥먹을때 반드시 물컵을 꺼내서 아빠 옆에 두고, 과일을 먹을 때는 반드시 아빠에게 먼저 갖다줍니다.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 부부에게도 추억이 많은 날입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지금 형민이는 아빠 품에 안겨 낮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눈 오는 날의 외교 비화(숨겨진 이야기)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1/08 (13:06:18)   조 회 72

11월 7-8일 양일간 한국에서 산업자원부 장관 일행과 자원 개발팀, 기업체 인사 등 20여명의 정부, 재계 인사들이 까작스딴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수도 아스타나에는 8일 장관 일행이 도착할 예정이었고 7일 오후 2시 30분 아스타나 도착 비행기로 선발대가 올라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유일한 공무원인 전...이 사람들을 공항에서 맞아 호텔로 인도하기 위해 공항로를 다시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마침 7일은 이곳 아스타나에 밤새 많은 눈이 내린 날이었고...하루 종일 눈이 그칠 줄 몰랐습니다. 갑작스럽게 내린 눈에 금새 도로는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전 이곳에 계시는 한국어 코이카 단원 한 분과 함께 공항에 가기 위해 서둘러야 했습니다. 평소 공항로는 시속 120Km로 달리는 여유있는 도로이지만...눈으로 인해 스케이트 장으로 변한 도로에서 달리려면 3-4배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서둘러...눈보라를 헤치고 공항에 도착한 뒤...공항 상황판을 본 순간....아직 알마티에서 어떤 비행기도 이륙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날에는 공항에 전화라도 해 보고 와야 했는데...허겁지겁 달려와서야 비행기가 알마티에서 뜨지도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이죠.

사실...오늘 올라오는 이 분들을 위해 이곳 인터콘티넨탈 호텔방에 컴퓨터도 설치하는 등...급하게 많은 준비를 해야 했는데..정작 올라와야 할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린 다시...잠시 집으로 돌아와 공항에 문의 전화를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고....전...이날 원래 예정되어 있던 러시아어 수업을 위해 선생님 집을 방문했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지 30분 쯤 지나...집에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비행기가 오후 4시에야 이륙했대요...빨리 공항으로 가야 겠어요.."

이미 시간은 5시 가까이 되었고 해는 서쪽 지평선에 걸려 있을 무렵...우리는 꽁꽁 얼어 붙은 시내 도로를 조심 조심 빠져 나와...아이스하키장과 같은 공항로를 달려(60Km) 공항 청사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산자부의 과장 한 분과 사무관 한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꽁꽁 얼어 붙은 자동차에 올라 타고 호텔까지 가는 길에서 농담도 나누면서...낯선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비행기가 늦게 뜨는 바람에...그 날 예정되어 있던 까작스딴 정부 사람들과의 면담도 취소되어..이분들은 이날 그냥 호텔에 들어가셔야 했지요. 장관이 올라오긴 하지만...언제나 그렇듯 그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장관의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 수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눈은 그쳤고 7일 밤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8일 아침 7시 20분..."선생님..지금 깨신 것 아니죠?" 하고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깜깜한 밤인데...역시 한국 공무원들은 부지런하다고 느끼며...8시 30분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지요... 아직 어두컴컴한 아침...주차장에 가서..꽁꽁 얼어붙은 자동차를 녹여 거리로 빠져 나왔습니다.  아침 기온은 영하 14도...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아 따뜻하게 느껴졌고...도로 바닥에 딱딱하게 들어 붙은 얼음 때문에 약간 쿵쿵거리긴 했지만...자동차 엔진 소리도 좋았습니다.

다시..두 사람을 만나...오늘 아침에 있다는 이곳의 "에너지 및 광물 자원부"(우리나라의 산업자원부에 해당)까지 태워다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이 때...아침 9시 10분에 아스타나에 도착하기로 한 장관 일행이 알마티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비행기는 이륙했지만...전 날...결항한 비행기 탓에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몰렸고...이 때문에 외교 방문을 위해 이곳까지 온 장관 일행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죠. 어제 장관 일행은 알마티의 대통령 궁에서 만찬까지 했다는데...장관을 잘 모시라는 대통령의 말을 들은 의전 담당관들은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까작스딴이야..돈 많은 사람들이나 권력층의 위력이 대단한 나라니...다른 나라의 장관이 안중에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외교 인사들까지 비행기에 못 태우는 이 나라의 빈약한 행정력에 할 말을 잃습니다.

어쨋든 전...이틀 동안 한국의 산업자원부 팀의 방문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한국에 있을 때..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어느 나라 어디 어디를 장관이 다녀왔다" 기사는 그 이면에 많은 얘깃 거리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준비하고 진행했을 테니까요...장관 일행은 잠시 후 12시 50분 비행기로 아스타나에 올라오신다는데...부디 까작스딴에서의 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시고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까작스딴에 살면서 어느 날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게 된 이틀 간이었습니다.

 

나 홀로 집에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1/15 (02:05:24)    조 회 66

선화와의 이별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저 혼자 살아 본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해 입대했을 때도 단체 생활을 했었고 끼니 마다 식사가 주어졌으니까요....선화는 출국 하기 직전까지...밥솥, 세탁기, 부엌 등... 내가 알아야 할 여러 공지 사항들을 적어 두었고 생활의 어려움이 없도록 반찬도 많이 준비해 두고 나갔습니다. 하지만..이 모든 것을 내가 잘 해 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했었지요...

오늘 아스타나에 도착하면서...혼자만의 생활이 현실로 다가오자 저 역시 걱정스러웠습니다.  4일간 비어 있었던 아스타나의 집에 들어가...곳곳에 널려 있는 형민이의 장난감, 가족 사진들을 바라 보고는 알마티에서 가져 온 여러 짐들을 먼저 정리했습니다.  무엇보다도...알마티에 가져 갔던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들을 다운 받아...홈의 새 글을 올릴 준비를 했고 알마티에서 가져 온 한국에서 공급된 약품들을 정리했지요.

그리고...아스타나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한국의 선화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걸었을 때...수화기를 받은 사람은 바로...형민이었습니다.  아스타나에서 살 때도 우리 집에 걸려 오는 전화는 모두 형민이가 받았었고...혹시 우리가 받기라도 하는 날에는 난리가 났었는데..한국에 가서도 형민이는 여전히 전화를 제일 먼저 받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목소리를 알았는지..."아!...아빠...아빠..." 하며 반가와 했고..저 역시 그런 형민이의 모습이 자꾸 눈에 선하고...벌써부터 형민이가 그리워 지더군요..

선화 역시..집에 무사히 도착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고...우리는 앞으로 자주 전화하기로 했습니다. 전 선화에게 혼자 들어와 보니...밥 할 엄두가 안 나서...일단 오늘 저녁은 사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고... 선화도..그렇게 하라고 한 뒤...우리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난 뒤...맘이 변하더군요. 당장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빈 전기밥솥을 열어 쌀을 씻어 넣은 뒤 새로 밥을 하도록 취사 버턴을 눌렀습니다. 알마티에서 가져 온 빨랫 거리도 세탁기에 집어 넣고 세제 반 스푼을 넣은 뒤...중간과 가장 오른쪽의 버턴을 동시에 눌렀습니다. (빨래가 작은 경우 그렇게 하라고 선화가 써 놓았더군요.)

알마티에서 자취 생활을 위해 몇 가지 사온 물품이 있었는데..그 중 짜파게티 하나를 꺼내 먹기로 하고...물을 끓였습니다.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정수기를 통한 물을 사용해야 하는데...기존에 고여 있던 물은 버리고...정수기를 깨끗하게 씻은 뒤 다시 물을 걸러 냄비에 부었습니다. 욕실로 가서...욕조에 더운 물을 가득 받아...목욕을 했습니다. 우리 욕조는 다른 집보다 좀 크기 때문에 편안하게 온 몸을 담글 수 있지요...알마티에서 지낸 3박 4일의 먼지들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냄비에 물이 끓자...짜파게티를 넣어 끓이고...냉장고에 있는 선화가 남겨 놓은 김치도 꺼내 썰어 접시에 담았습니다. 선화가 해 놓은 깻잎도 식탁에 놓았지요. 오랫동안 집을 비웠기에 사용해야 할 수저는 다시 한 번 행궜고....세탁이 끝난 빨래는 건조대에 널었습니다. 그 중에는 형민이 옷도 섞여 있더군요...형민이 옷을 잠시 바라 보았습니다. "이 녀석이 지금 쯤 뭘하고 있을까..."

이미 어두워진 창 밖을 내다보며...박물관과 람스토르의 불빛을 잠시 바라 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뒤에서..."아빠..."하고 외치며 달려 올 것 같아 뒤를 돌아 봅니다. 캄캄한 방...일부러 불을 켜 놓지 않아 어두운 저 구석에 형민이가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부엌으로 가서...전기 밥솥을 열어 다 된 밥을 식탁에 놓고 짜파게티도 냄비 채 식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선화가 없이 출발하는 아스타나의 첫 날....밖에서 음식을 사 먹은 게 아니라...스스로 해결했음을 알리고 싶습니다. 특히 선화에게요...출발이 순조로왔으니...앞으로의 생활도 잘 이루어질 것만 같습니다.

 

일년 사이에 달라진 한국...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11/16 (17:09:07)    조 회 86

지난 9월말 한국을 다녀간 뒤 13개월만에 다시 이땅을 찾았습니다. 저녁 11시 알마티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뒤 내내 깜깜한 하늘만 날다가 갑자기 불빛이 가득한 도시를 지나게 되는데 아마 북경, 아니면 상하이 인 것 같습니다. 기내 TV화면에 지나가는 곳이 표시되는데 내 자리가 멀어서 잘 볼 수가 없었지만... 대충 그정도 위치인 것 같았습니다.

그 도시를 지나가고 좀 있으면 멀리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지상에서 보는 해돋이와 달리 하늘 중간에 걸려있는 빛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빛을 향해 달리면서 기내는 점점 밝아오고 스튜이어스들은 승객을 깨우기 위한 음료수 배달을 합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듯한 인천에 도착하여 형민이와 나오는데.... 아!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크고 넓은 것이.... 형민이도 모든 게 신기한듯 "엄마, 어?" 하고 내내 묻더군요. 에어 까작스딴 항공사는 인천공항에서 가장 왼쪽 끝 탑승구를 이용합니다. 그래서 입국 심사장까지 거리가 꽤 되지요. 긴 복도를 지나 입국장에 서니, 다시 한번 까작스딴과 비교를 하게 되면서 "역시 한국이군"하고 어깨를 으쓱거려 보았습니다.

공항을 나오면서 느낀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까작스딴에서는 나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못 알아듣고 다른 사람도 내 이야기를 못알아들으니까 불편한 점도, 편리한 점도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많은 소리들이 내 귀를 자극하더군요. 그리고 좀 불편한 점은... 다른 사람도 내 말을 알아들으니까 좀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까작에서는 우리 가족이 길을 가다가 좀 나쁜 장면을 보게 되면 "이 사람들은 안돼... 무슨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가..." 혹은 "형민아 저 형아처럼 하면 나쁜 아이야..." "이 옷은 좀 나쁘다, 다른 집에 가봅시다"하면서 흉을 보곤 하는데 여기선 안되니까요.

형민이가 두돌이 지났기때문에 75%의 국내선 요금을 받더군요. 까작에서는 나이같은 것은 속일 수 없도록 철저하게 신분을 조사하기때문에 그런 생활에 적응이 되어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20개월이에요"했으면 그냥 탈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속이는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 감사해야겠지요.

한국의 쌀쌀하지만 습기 있는 공기가 아주 좋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건조 주의보 이야기이지만 까작에 비하면 이곳의 공기에는 습기가 아주 많습니다.  버스는 작년에도 600원이었던 것 같은데.... 그대로이고, 도로 중앙선에 기둥모양 광고용 풍선들이 군데 군데 서 있는 것이 달라진 점이었습니다. 남포동에 '렛츠 미화당' 백화점은 아예 다른 곳으로 바뀌었고.... 부산 국제 영화제 때문인지 극장가 주변 일부 도로는 막아놓았더군요.

부민동 시댁 주위에는 원룸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고 병원 주위에 있던 복사집들이 사라진 것, 주택은행이라는 간판이 사라진 것...... 그런 것들이 달라진 점입니다. 형민이에게는 신기한 동네인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목욕탕에 간 형민이는 한참 울고 난리를 부리더니 탕에 들어가서 물을 보는 순간 신이 나서 1시간동안 샤워기로 놀곤 했습니다. 횟집을 지나가면서 물고기 구경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간판들도 신기하고....

아빠를 잊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생각외로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형민이입니다. 가끔 아빠에게서 전화가 오면 너무 반갑게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누가 "아빠 어디에 있어?"하고 물으면 테니스 치는 시늉을 하면서 운동하러 갔다고 한답니다. 이곳 생활의 스타일은 까작과 많이 다르지만 역시 몸에 배인 곳이라 금방 익숙해지네요. 하지만 세식구가 뛰어다니던 아스타나 집도 자주 생각납니다. 그 큰 집을 혼자 지키고 있을 아빠도 늘 마음에 찡-하게 남아있구요. 꿈에서는 여전히 배추 사는 꿈을 꾸고, 돈도 사이즈가 작은 텡게(까작 화폐 단위)에 비해 이곳 동전이 너무 커서 불편하구요.....

앞으로 3개월 우리에게는 힘들고도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형민이에게 한국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된 것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1년 이상을 더 까작에서 보내야하기에 이번 시간이 참 유용할 것 같습니다.  일년만에 찾은 한국... 여전히 내 동네, 내 집이네요...

 

테니스를 오랫동안 치는 아빠...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11/20 (17:23:25)    조 회 61

아스타나에는 눈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그곳에 있는 '니싼 써니' 우리 자동차도 본격적으로 스노우 타이어로 신발을 갈아신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처음 왔을 때는 한국이 더 춥게 느껴졌는데... 발도 안 시리고 장갑, 모자가 없어도 괜찮은 걸보니 역시 까작스딴이 춥기 추웠던 것 같습니다.

형민이와 부민동 시댁에서 일주일간 지내다가 친정으로 건너왔습니다. 거기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숙모와 낯을 다 익히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왔는데 형민이는 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아이들의 적응력은 정말 대단하지요.

아스타나를 떠나기 전까지 그렇게도 좋아하던 아빠가 없는데 이렇게도 잘 지내고 있는 형민이를 보면서 혹시 아빠가 보면 섭섭해하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형민이의 생활은 즐겁습니다. 누군가 "아빠 어디 있니?"하면 테니스 치는 흉내를 내면서 아빠가 운동하러 갔다고 합니다. 전에도 다른 일로 아빠가 나가면 따라갈려고 그렇게도 보채더니 테니스 치러 간다고 하면 문 앞에서 종알종알 잘 다녀오라고 즐겁게 보내곤 했었는데... 형민이는 테니스 치는 아빠가 자랑스러운가 봅니다.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산동성 짜장은 아직 먹지 못했는데 집에서 먹는 반찬만으로도 그동안의 갈증이 해소 되는 것 같습니다. 무김치, 고등어, 칼국수 등등.... 모든게 맛있답니다. 난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먹고 있는데 혼자서 김치와 김만 놓고 밥을 먹고 있는 형민 아빠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쩬-- 하네요. 그래도 요즘에는 여러가지 일들을 시작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고 아빠의 일을 교묘하게 방해하던 세력이 없어진 지금,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맘껏 하고 또 성취해나가길 바랍니다. 저도 형민이와 한국의 추억을 많이 담아서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우리 가정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고 추억하게 되도록 말이지요...

 

추수 감사절과 쓰레기통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1/25 (03:31:01)    조 회 55

한국에서는 보통 11월 세째 주일을 추수 감사 주일로 지키지요? 이곳 까작스딴의 경우 오랫동안 정교회에서 해 왔던 관습을 존중해서 10월 중에 지키는 교회도 있고 한국처럼 11월 3째 주일에 지키기도 합니다. 또..다른 날을 정해 지키기도 하는데...제가 출석하는 아스타나 장로 교회에서는 바로 오늘...그러니까 11월 네째 주일을 추수 감사절로 지켰습니다.

벌써..이곳에서 두번째로 맞는 감사주일인데...선화와 형민이가 없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두 사람을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도록 해 주신 하나님...그리고 그곳에서 잘 적응하면서 좋은 시간들을 보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형민이는 한국에서 귤을 그렇게 열심히 먹고 있다네요...이곳은 귤을 구경할 수도 없는데...)

혼자 남아 있는 제가 부지런하게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도 감사의 제목이고... 우리를 까작스딴에 보내 주신 것도...이곳에서 사고 없이 무사히 살고 있게 하신 것도...이곳에서 여러 일을 맡겨 주신 것도...모두 감사의 제목들입니다.  

이곳에서도 한국처럼...야채와 과일들을 앞에 차려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중 찬양 시간에도 감사 찬양을 불렀고 성가대도 한국 찬송가 "감사하는 성도여"를 러시아어로 번역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성가대도 있습니다. 뭐..성가대라고 하기에는 우습지만...예배 시간 중에 앞에 나와서 특별 찬양을 부르는 팀입니다.  여기에는 자밀라, 까밀라, 작은 세르게이, 그리고 저와 코이카 특수교육 단원 구정아 선생님, 성악을 공부한 나제즈다(나쟈) 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 아이들은 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아주 소흘히 하는 모양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청년도 포함)의 대부분은 악보를 읽을 줄 모릅니다. 악보야 그렇다 치더라도...한 옥타브의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한국 말로 하면 음치죠.

유달리 음치가 많은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한국에서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학생들과 성가대의 찬양은 하늘의 소리였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데(노래방도 있고)...이곳 사람들은 "나는 목소리가 없어요..." 라고 얘기하며 노래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이곳에 나온 아이들은...노래를 못 부르지만..찬양을 하고 싶어서 성가대에 선 아이들입니다. 물끄러미..찬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자기도 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죠.야채와 과일들을 앞에 놓고 드린 감사 예배...하나님이 기뻐 받으셨을 거라 믿습니다. 비록 이곳은 절대 다수 국민이 절대 빈곤에 처해 있는 곳이지만(상위 1%는 어마어마하게 잘 삽니다)...감사할 때...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필요한 복을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작년에는 선화, 형민이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감사 예배가 마친 뒤..감사의 기도제목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올해는 함께 할 수 없어 아쉽지만 한국에서 마찬가지로 의미있는 추수감사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곳은 미술관 홀을 임대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도시 중심에 차지하고 있는 이 건물을 시간제로 빌리고 있는데..점점 임대료가 올라가고 있지요. 교회에서는 더욱 효과적인 선교 사업을 위해...교회 건물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놓여진 야채와 과일들은 예배가 마친 뒤 일부는 먹게 되고...나머지 전부는 이곳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눕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이 추운 날씨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많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곳 까작스딴은 한국보다 훨씬 더 많이...추운 겨울에도 비닐 봉지를 하나 들고 커다란 쓰레기통 옆에서 남은 음식물이나 빈병을 주워 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 쓰레기터를 찾아서...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과일들을 나눠 줬었지요...

까작스딴에서 맞는 추수 감사절...비록 혼자 이곳에서 살고 있어 쓸쓸한 가운데 맞는 절기였지만...지금까지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나라를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몸살을 앓는 형민이...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11/29 (23:26:38)   조 회 42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3주째에 접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형민이 아빠도 잘 적응하고 있고 계획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오히려 잠시 틈만 나도 뭔가 일을 시작하는 오빠의 모습에 가끔 내가 바가지를 긁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오빠가 보기 좋습니다.

형민이도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좋아하던 아빠를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아빠가 보면 서운해 할 것 같지만... 항상 '아빠는 테니스 치는 중'이라고 대답하는 걸 보면 아빠를 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지난 화요일부터 형민이가 심한 몸살, 감기에 걸렸습니다. 아마 형민이 나름대로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아스타나에서와는 달리 장시간 차를 타고 다니는 것들이 힘들었나봅니다.  열은 이틀동안 계속 이어졌는데 전에는 좌약 하나면 열이 잘 내렸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전에는 안하던 가래 끓는 기침때문이었어요. 안그래도 연일 독감 주의보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요즘....

다행이 어제부터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기침도 많이 줄었습니다. 우리가 아스타나에 있을 때 형민이 아빠는 다른 선교사님네 아이들이 감기 걸렸다고 하면 즉시 약을 갖다주면서도 형민이에게는 해열제외에는 절대 약을 안 먹였었거든요... 가끔 내가 "형민이도 항생제 먹어야 안되나요?"하면 감기나 설사의 기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약이 필요없다고 하곤 했지요. 그래서인지 이번 감기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약을 먹이자... 병원에 가자... 하지만 형민이 아빠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선뜻 약에 손이 안갔습니다.

감기는 회복되어가는 중이지만.... 문제는 이번 일로 형민이가 엄마에 대해 더욱 의존적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형민이는 잘때 토닥거리거나 만져주는 걸 싫어하고 혼자 독자적으로 뒹굴다가 자곤 했는데.... 이곳에 와서부터는 엄마베개에 자기 머리도 올려놓고 엄마랑 얼굴을 붙이고.... 또  엄마 팔을 품에 꼭 끼고 자는 것입니다. 아플때는 자다가도 여러번 '엄마, 엄마--'찾다가 자구요.... 낯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손이든, 다리에든 살을 맞대로 있을려고 한답니다.

알게 모르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형민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스타나에서는 형민이가 엄마에게 꾸중을 들으면 아빠에게 위로 받을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엄마가 화가 나면 형민이는 마음 둘 곳이 없어지니까.... 심하게 나무랄 수도 없고...

한달 뒤면 동생이 태어날텐데... 그걸 예상하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로 떼어 놓는 연습을 할려고 하는데.... 형민이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형민이를 꼭 안고 자야겠습니다. 나중에 반대편에 아빠가 눕는 날이 오면 다시 뒹굴뒹굴 장난을 치다가 잠이 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