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까작스딴 이야기 (6)  2002.8.9 -10.1

이번 여름...형민이 네는 바쁩니다.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08/09 (03:33:10) 조 회 99

이번 여름....아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소개해 드린 대로 지난 한 주간동안 바라보예 라는 곳에서 3박 4일 간의 수련회를 가졌었습니다. 수련회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형민이는 일주일 새 부쩍 더 자란 것 같습니다. 오늘도 형민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더니...자기 키보다 큰 철봉에 손을 얹더니 매달리는 것이였습니다. 매달릴 뿐만 아니라 그네 타듯이 몸을 흔들기도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형민이 처럼..우리 가족도 이번 여름을 통해 더욱 성장했으면 합니다.

수련회 떠나기 바로 전 날...올해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된 14기 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들이 저희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이중 두 사람은 올해 8월 중으로 아스타나로 새로 파견될 분들이라..더욱 반가운 얼굴이었습니다. 이 뿐 아니라 곧 이곳으로 올라오시게 될 외과 김대동 선생님 가정이 오시게 되면...아스타나의 코이카 가족이 모두 9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지금 아스타나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이 23명인데..9명이라면 큰 숫자인 셈입니다. 수련회 가기 전 날 까지...신임 코이카 단원들과 식사도 하고 좋은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또 오는 8월 12일부터 20일까지 우리 가족은 알마티로 내려가게 됩니다. 알마티에서 열리는 코이카 현지평가대회도 참여하고 그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정든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 입니다. 마침..요즘 제가 근무하는 1병원 수리로 인해 잠시 진료실을 비워야 할 것 같아...겸사 겸사해서 알마티에서 좀 머물 예정입니다. 아마도..이번에 새로 파견된 내과 안병재 선생님 집에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다음 주에는 알마티에서 손님들이 찾아 오십니다. 아스타나와 바라보예를 둘러 보시기 위해 오시는 귀한 분들인데...다음 주에 있을 만남이 기대가 됩니다. 이번 주에도 미추리나와 베라 교회의 의료 사역이 이어지고...다음 주에는 다시 한 번 악골교회(아스타나 북쪽 100Km) 를 진료를 위해 악골로 차를 몰아야 합니다. 바쁜 여름..많은 일로 분주하고 이동이 많아지지만...한국에서 바쁘게 보냈던 여름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 봅니다. 무엇보다 이번 수련회를 참석했던 불신자들의 마음 속에 뿌려진 작은 씨앗들이 잘 자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02년 여름..우리 가정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의사인 사실이 너무도 고마울 때......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08/09 (03:35:41)   조 회 154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을 느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까작스딴..아스타나...한국 교민 23명 사는 이 곳에서 유일한 한국인 의사로 살아가는 나의 생활은 그런 면에서도 행복한 생활입니다. 최근 이곳에서 사역하시는 UBF선교사님 가정에 두번째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사모님(물론 선교사님이시죠)께서는 한국에서 출산한 뒤..생후 1개월 밖에 안 된 아이를 까작스딴으로 데리고 들어 오셨습니다. 너무도 작은 아기입니다.

그런데..어제부터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실...태어난 지 6개월까지는 엄마의 항체가 아기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크게 아플 일이 없는데..다니엘(아기 이름)은 38도를 오르 내리는 발열과 함께 고르지 않은 변 상태, 하루종일 보채고 우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사모님의 전화를 자주 받아야 했었고..전 전화를 통해 안심시켜 드리면서 발열 자체가 문제가 되기에..찬물 수건이나 해열제로 발열 자체를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바이러스 감염으로 보이니 한 일주일 정도 증세가 지속될 거라는 얘기를 드렸습니다. 물론 해열제의 양도 말씀 드렸고..하루 이틀은 아기도 엄마도 힘들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또 전화가 왔습니다. 애기가 여전히 아프고 힘들어 한다는 거지요..사실 까작스딴의 의료 수준은 아주 낮고 병원의 위생 상태도 불량하며 한국적 의료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주문도 많아..이곳의 선교사님들은 현지 병원을 찾기 어렵습니다. 오늘 저녁...아기가 아픈 선교사님댁을 방문하고 돌아 왔습니다. 왕진인 셈이죠...아스타나에서 살면서 이런 일은 흔하게 생깁니다.

한 번은 이곳 나사렛 교회 목사님께서 토요일 저녁 심한 감기로 다음날 설교를 하시기도 힘드시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제가 오른 쪽 손가락을 심하게 다친 날이었죠..육중한 철문에 끼어 손톱이 빠져 버렸습니다. 하지만..마침 그 날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잘 사용하지 못하는 오른 손이지만...약품을 준비해 목사님 댁으로 가서 주사를 놔 드리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사실..주사에 필요한 약은 진료실에 두는 데..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현지 병원이라..토요일 저녁에는 문을 굳게 닫아 둡니다.(외래 병원이라 그렇지요.)..한 밤...추운 겨울이었는데..병원 문을 두드려 숙직하던 사람을 깨워 진료실에 올라 가 가져온 주사약이었습니다. 찬 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목사님 댁에 가서 진료한 다음 날...그 주사약을 맞고 목사님은 금방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설교 준비를 할 수 있으셨다고 고마와 하실 때..참 기뻤습니다.

또 한 번은 장로교회 사모님이 갑작스런 복통과 함께 허탈에 빠지셔서..수액과 함께 3일 내내 집을 방문해서 상태를 체크한 적도 있습니다. 오늘도 아기로 인해 근심이 가득한 이 가정을 방문해서 청진기로 아기의 폐 상태를 확인하고 피부의 발진 여부도 보고..아기의 변도 본 뒤...사모님을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겠지만..같은 말이라 하더라도 의사의 말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위력을 가집니다.

옛날에는 동네의 가장 나이 많은 지혜로운 어른이 의사의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약초를 피우든..주문을 외우든..물을 뿌리던..그런 주술적 행위를 통해서 부족 내의 사람들이 안심시켰을 것입니다. 전 가끔 의사 생활을 하면서..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때로는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지만...의학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객관적 지식과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함으로서 안정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그 사람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약이나 시술이 아니고..내가 의사이기 때문에..그가 내 말을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그를 안심시켜야 할 책임이 내게 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다니엘의 상황을 보면서..마찬가지로 지혜로운 늙은이처럼...차근차근 사모님께 객관적 설명(때로는 병리적 지식, 약리학적 지식을 쉽게 풀어서...)으로 안심시켜 드렸습니다. 사모님이 그러시더군요...한국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있는 선교단체인 UBF이지만 CIS권에선...한의사 한 분외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인력이 선교사로 나와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우리는 이 선생님이 계시니 걱정할 게 없어 너무 좋아요..." 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많은 위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가 필요한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잘 아시다시피..전 내과 레지던트 4년차 때 "의약분업 대란"을 겪었습니다. 전...의사가 소신껏 진료할 수 없는 풍토에 분노했었고....다른 전공의들과 함께 병원을 나왔었습니다. 많은 뉴스 매체에서 의사를 비난하는 얘기를 들으면서....한 없이 괴로와 했었습니다. '환자를 위해 내 삶을 쪼개며 살아온 레지던트 생활이었는데...왜 다른 사람들은 의사를 비난하기만 할까?..' 때로는 의사 선배들을 때로는 공평을 잃은 언론을 미워하기도 했었습니다.

까작스딴 아스타나에서..전 내가 의사인 것에 너무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의대 6년, 전공의 5년의 경험이 가져다 준 객관적 지식과 통찰력이 지금에 와서 참으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달란트는 누가 뭐래도 "아픈 사람을 도와 주는 것" 입니다. 까작스딴 아스타나에서 하나님의 의사로 날 불러주셨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뜨거운 여름..뜨거운 아스타나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08/09 (03:38:38)     조 회 73

이곳의 여름도 한국처럼 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스타나' 하면 일단...추운 곳이라는 게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의 추위가 3차례 정도 밀어 닥치고 10월에 강물이 얼고 나서 시작된 겨울은 5월 중순에도 눈을 뿌릴 만큼 오래 지속되지요. 하지만 겨울이 길고 추운 이곳에도 약 두어 달 정도 여름 더위가 찾아 옵니다. 작년 여름..우리가 아스타나에 올라왔을 땐 영상 40도까지 경험했었는데..올해는 아직 그 정도의 수은주는 보질 못했습니다. 35-36도 정도가 요즘 온도입니다. 온도로 따지자면 남쪽의 알마티, 침켄트, 쟘불 같은 곳이 더 더운 동네입니다. 하지만...아스타나의 여름이 그 도시들보다 더 덥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나무가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남쪽은 식물원처럼 키 큰 나무들이 여름 내내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아무리 덥더라고 나무 그늘 아래 가기만 하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지요.하지만..이곳은 키 큰 나무를 도시 전체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겨우 1-2미터 되는 나무들이 이제 막 심겨져 있을 뿐 신도시 아스타나에서 나무 그늘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 대신 건물에 의해 만들어진 그늘이 유일한 쉼터입니다.

이곳은 햇볕은 한국보다 훨씬 따갑고 강력합니다. 햇볕을 30초만 받고 있으면 온 몸에서 열이 오르고 땀이 나고 지쳐 버리게 되지요. 그래서 주차도 반드시 그늘을 찾아서 해야 하고..낮에는 절대 외출을 해선 안됩니다. 낮에 운전할 땐 반드시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하는데..그냥 운전 했다가는 하루 종일 따끔거리는 눈 때문에 고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뜨거운 여름이...까작스딴에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아 오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수 많은 단기선교팀, 선교여행팀이 이곳을 찾기 때문이죠. 어제도 아스타나 장로교회에 한국에서 찾아 온 자매 두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찾아 온 것인데...교회에서 율동과 찬양, 간증 등으로 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까작스딴의 여름이 아무리 뜨겁다 해도.. 영혼을 사랑하는 시원한 발걸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바라 본 형민이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08/09 (03:39:58)      조 회 110

형민이가 이제 22개월이 되었습니다. 이젠 개월수로 나이를 계산하기보다는 2살, 3살.... 이렇게 불러야할 만큼 많이 자랐답니다. 저의 생활은 여전히 하루 종일 형민이와 얽혀있습니다. 엄마가 하는 건 뭐든지 해 보고 싶어하는 형민이가 주로 담당하는 일은 세탁기 작동 버튼 누르기, 빨래 널때 세탁물을 하나씩 건네기, 쌀 푸기, 정수기 꼭지 열기, 양념 저어주기 등입니다.

의사표현도 확실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엄마, 아빠는 형민이 표정만 봐도 다 알지요. 대부분 몇가지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는데 요즘은 많이 늘어서 아빠, 엄마가 들어줄 것 같지 않으면 검지 손가락을 코 옆에 대면서 딱 한번만이라고 간청하는 눈빛을 보내기도하고 또는 씩 웃으면서 원하는 걸 손가락으로 살짝 가르키기도 합니다.

노래도 제법 따라하는데 형민이의 가사를 잘 들어보면 주로 아빠, 엄마.... 가 들어갑니다. 아--빠 아빠---- 엄--------마------- 엄마------ 이런 형민이의 노래를 들으면 모두들 우습다고 난리입니다.

요즘 저녁이 되면 형민이가 엄마와 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바로 놀이터로 나가는 것이지요. 낮에는 해가 너무 뜨거워서 엄두를 낼 수 없고 저녁 먹은 후 8시쯤 되면 아파트 앞 놀이터로 나갑니다. '형민아 놀아터 깔까?'하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TV와 오디오를 끄고 현관 앞으로 달려갑니다. 이 시간쯤이면 동네아이들도 많이 나와서 놉니다. 큰 아이들은 그네도 타고 축구도 하지만 형민이 또래에게 가장 적합한 놀이는 뭐니뭐니해도 모래장난입니다.

아이들은 자기의 소꼽 도구나 장난감 삽, 호미, 통 등을 가지고 나와 흙을 담았다가 쏟았다가 하면서 놉니다. 형민이는 아직 이 도구들을 못 사주어서 집에서 뒹구는 각종 통과 꾸껑들을 내 주었는데 이것도 아이들에게 제법 인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놀다가 비둘기나 고양이가 나타나면 작은 돌을 쥐어서 '맘마, 맘마'하고 따라 다닙니다. 터키 여행중에 양에게 풀을 먹여본 이후로 주위에서 동물들만 봤다하면 돌이나 잡초를 들고 '맘마, 맘마....'하면서 따라다닙니다.

이렇게 아이들 틈에 있으면 집에서 보던 형민이의 또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집에서는 모든게 자기 세상인냥 큰 소리도 지르고 뛰어다니는데 우선 밖에서 낯선 아이들을 보면 우선 조용해집니다. 형민이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잘 주는 편인데 '형민아 친구야한테 하나 줘야지..'하면 기꺼이 자기가 가진 도구들을 하나씩 줍니다.

어떤 때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빼앗아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그럴때면 형민이는 엄마에게 '엄마---'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전 다른 것을 쥐어주면서 '친구야가 좀 갖고 놀다가 준단다'하고 이야기하면 잘 알아듣고 그런 것으로 칭얼거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형민이는 내성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시쯤 되어 해가 지려고 하면 드디어 형민이가 일어섭니다. 현관 문 앞에서 '아빠!'하고 크게 부르면 아빠가 문을 열고 형민이를 맞아주지요. 그리고 목욕하고 잠이들면 또 하루가 넘어갑니다. 많이 자란 형민이.... 이제 쉬야랑 응가도 가리고 노리개 젖꼭지도 뗐습니다. 밤에 자다가 우유 먹는 것만 떼면 이젠 어엿한 소년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바라보예에서.......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08/09 (04:17:11)    조 회 76

지난 6(화)-7(수) 1박 2일 동안 알마티에서 귀한 손님이 저희 가정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분들은 다름 아닌 알마티 한카병원에서 지난 2년 2개월동안 진료하시다 올 10월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시는 김동환 선생님 가정과 그 후임으로 알마티에 새로 부임한 안병재 선생님입니다. 김동환 선생님 가정은 1년 2개월 전..우리가 처음 까작스딴 알마티에 왔을 때..저희 가정에게 물심양면으로 여러 도움을 주셨고...그 뒤로도 저희가 알마티에 내려 갈 때마다 집을 내어 주셔서 그 집에 지내곤 했었습니다.

안병재 선생님은 제 대학 및 수련 병원 1년 후배로서 누구보다 아끼고 존경하는 후배지요. 두 가정 모두...하나님 안에서 세워진 가정이고..특별히 안병재 선생님은 올 11월 잠시 한국으로 들어가 결혼을 한 뒤 다시 까작스딴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 두 가정을 맞은 저희 가정은 기쁨과 설레임으로 이틀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알마티에서 온 두 가정 모두...아스타나는 처음인지라 아스타나를 둘러 보는 시간을 가졌고... 무엇보다 까작스딴의 스위스라 불리우는 바라보예를 방문했습니다.

오전 11시 50분 기차를 타고 가서 밤 8시 40분 기차로 내려오는 그야 말로 짧은 시간동안의 바라보예 투어 였지만...아주 알차게 시간을 사용했기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체바치예 호수가 보이는 바라보예 호수 근처 언덕에서 김동환 선생님 가정과 안병재 선생님..그리고 선화와 형민이의 모습입니다. 저는 사진을 찍었지요. 다시 알마티로 가야 하는 분들이라 떠날 때는 아쉬웠지만..떨어져 있으니 이렇게 즐거운 만남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도 오는 13일 알마티로 내려 가는데 코이카 현지 평가대회를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알마티로 내려 가서..다시 정든 얼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무엇보다도 알마티라는 도시가 너무 아름답고 정겹기에 알마티행이 기다려집니다. 이번에 아스타나를 방문하신 두 분 선생님 가정에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한 자동차 접촉 사고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08/11 (19:25:35)    조 회 114

까작스딴에서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여러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동차 타이어 교체 같은 일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이젠 도로변에서 펑크 난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일에도 자신이 생길만큼 많은 경험을 했고...자동차 부품을 구하기 위해 폐차장을 뒤지기도 하고 시내의 자동차 부품상 여기 저기를 이잡듯 뒤져 보기도 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두어 차례의 접촉 사고도 있었는데...작년 11월..이곳 람스토르 앞에서 볼보와 가볍게(?) 충돌하는 바람에 왼쪽 헤드라이트와 범퍼가 부서진 일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미 소개해 드렸습니다.

어제...오후 5시 경..병원에 입원한 통역 아주머니 문병을 위해 쟝길지나 라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뒤에 차가 따라 오는 것을 미쳐 보지 못하고 후진하는 바람에 제 차 오른쪽 뒤와 상대방 차 옆부분이 충돌했습니다.  큰 충돌은 아니고 살짝 부딪히는 정도였지만...저쪽 차는 문이 약간 찌그러졌고..제 차는 우측 미등과 범퍼가 부서져 버렸습니다.

요즘은 이런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도 않습니다. 오랜 까작스딴 생활에 불시에 닥치는 여러 일을 겪으면서 침착해졌는지도 모르지요. 어쨋든 이번 사고는 제가 더 많이 잘못한 경우였고...손해 배상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전 까작스딴에서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한 번 보험료를 내면 되는데 2800텡게 정도입니다. 우리돈으로 25000원 정도인데...과실이 제게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 차의 모든 보상은 물론 제 차도 200불 범위 안에서 보상해 주는 보험입니다.  아스타나에서 지난 1월 가입한 것입니다.

까작스딴에선 교통 사고가 나면 보험이 있다고 하더라도..서로 돈을 주고 받고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상대방 차보다 제 차의 손상이 더 크기 때문에..이번 건은 보험을 통해 해결해 보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도 배우는 거니까요... 보험을 통해 손해 배상을 받으려면 먼저 교통 경찰을 불러야 합니다. 상대방 아저씨도 좋은 사람이라 제 말에 수긍했고..우린 경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2시간 30분 기다리고 나서야...교통 경찰이 왔습니다. 우리는 사고가 난 상태로 차를 세워 두지 않고 도로 교통을 위해 차를 빼 두었는데..이것을 본 경찰은 이렇게 차를 맘대로 움직이면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얘기가 잘 되어..별 문제없이 일이 처리 될 수 있었습니다. 교통 경찰에 의한 사고 기록 다음....우리에게 떨어진 명령은 알콜이나 약물 복용의 증거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습관성 약물 복용 환자 만을 입원 시키는 병원을 방문해서 의사를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원을 가서 의사와 면담하고 조그만한 종이 한 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이미 밤 10시를 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 밖은 환하지만요..

다음 경찰서로 가서...사건 경위서를 적어야 했고(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요)...그 다음 제 신분에 대한 여러 가지 확인 절차를 거쳐 월요일 오전 11시에 증명서를 받으러 오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증명서를 받고 화요일 오후 3시 또 다른 부서에서 몇 가지 서류만 확보하면 바로 보험 회사로 갈 수 있다는 얘기도 곁들어 주더군요. 접촉 사고가 생기지 않으면 제일 좋지만...기왕 생긴 접촉 사고를 해당하는 보험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까작스딴에 사는 많은 사람들(외국인들도 포함해서...)이 접촉 사고가 있을 때 보험으로 해결하지 않고 서로 서로 돈을 주고 받고 끝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200불 가량 지출이 예상되었던 접촉 사고에서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여간 다행한 것이 아닙니다. 저 뿐 아니라 앞으로 이곳을 찾을 다른 협력의사들에게 참고가 되기 위해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오후 5시에 사고가 난 뒤...밤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 왔기에...선화가 많이 걱정해야만 했습니다.  사고가 나고 나서야...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 법이죠.. 여러분들도 미리 미리 조심하세요..  여하튼.... 어려움 속에서 일이 무사히 잘 처리될 수 있었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라나는 아이...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08/28 (02:07:15)   조 회 89

한국은 아직 햇볕이 따갑겠지요..... 여름내내 태풍과 장마와 더위로 몸살을 앓고 이제는 곡식이 무르익는 계절이 되었겠네요. 이곳은요.... 40도 가까이 올라가던 기온이 갑자기 10도때로 떨어지면서 준비도 안되었는데 가을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뭇잎과 잔디는 벌써 누렇게 변했구요.... 할머니들은 털 스위터에 모자까지 꼭 쓰고 나옵니다.

이번 여름도 아주 바쁘게 보냈습니다. 손님도 많았고 몇차례 여행도 있었는데 그중에 형민이는 아주 많이 자랐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바깥 외출이 뜸했던 형민이에게 이번 여름은 대단한 변화의 시간들입니다. 이젠 잘 놀아주는 형아나 선생님이 있으면 엄마, 아빠는 빠이빠이.... 작년 2월 평가대회차 알마티에 갔을때와는 180도 변한 모습입니다. 그때는 낯선곳에 가면 내내 엄마 등에 업혀있었는데.... 이젠 한두시간이 지나도 엄마를 찾지 않습니다.

기억력도 상당합니다. 전에 목사님댁에서 모임이 있어서 갔다가 거기 있던 메니큐어를 재미삼아 형민이 발톱에 발라줬었어요. 그런데 어제 시장에서 메니큐어가 잔득 놓인 것을 보더니 자기 발을 가르키면서 '에에...'하는 거에요. 자기 발톱에도 발랐었다는 것이지요. 단 한번의 경험이었을 뿐인데.... 이런 비슷한 일들이 자주 있는데 그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반대로 경험이 없는 일들은 전혀 모르지요. 예를들면 지난번 평가대회 장소였던 곳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물에 세진이(5살)와 나란이 앉아 놀았었어요. 이모야들이 (여자 봉사 단원들) 낚시대를 만들어서 하나씩 쥐어줬는데 세진이는 그걸로 열심히 이것저것 끌면서 낚시질을 했습니다. 형민이는 그걸 반대로 쥐고는 흔들다가 결국 부러뜨리곤 멀리 던져버리더군요. 그러고는 곧 물병에 물을 넣었다가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자기가 아는 놀이에 열심이었습니다.  낚시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형민이에게는 당연한 일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끼게 되었답니다.

요즘 우리 집에서는 '아빠--'하고 부르짖는 울을 소리를 자주 듣게 되는데 그건 아빠가 나갈때마다 따라 나가려는 형민이의 울음소리입니다. 아침 출근시간 뿐 아니라 볼일을 보러 나갈때마다 한바탕 집이 시끄러워집니다.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울 때도 있는데 이런 건 무조건 나무랄수도 없고.... 또 그때마다 데리고 나갈수도 없고..... 참 힘듭니다. 친정 엄마가 저도 어릴때 아빠가 나갈때면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바깥 세상이 그렇게도 신가하고 좋은가봅니다.

요즘 형민이의 행동을 가만히 보면 자기가 잘 못하는 것은 늘 '아빠, 아빠...'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이건 아빠가 하는 것'인데... 형민이에게 아빠는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만능 수퍼맨입니다. 또 먹을 것이 있으면 반드시(정말로 반드시)아빠 먼저 챙깁니다. 이건 엄마가 어릴 때부터 '아빠 먼저 드리고..'하면서 가르쳤던 결과인 것 같은데..... 어쨌든 유달리 아빠를 좋아하고 챙깁니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사람 또한 아빠입니다. 엄마는 하루종일 같이 붙어있으니까 만만하게 보이나본데.... 엄마 선에서 그치지 않고 사건이 아빠에게 넘어가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납니다. 이렇게 혼나는 경우는 무슨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그만해야하는데 계속 하려고 때를 쓸 때입니다. 예를 들면 세수하고 화장품 바르겠다고 크림통을 열어줬는데 한두번을 찍어바르고도 계속 하겠다고 버틸 때, 혹은 컴퓨터를 껐는데도 다시 켜달라고 조를 때, 자기전에 장난감 정리할려고 하는데 더 놀겠다고 막 흩어버릴 때.... 뭐 그럴 때입니다. 아이들에게 적절한 선을 가르치는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형민이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이제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문장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 에에 쉬-' 이말은 '엄마, 아빠랑 형민이랑 쉬하고 왔어요'하는 말입니다. 이정도면 이제 말이 트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외국에 있다는게 말을 늦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겨울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게 형민이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행이 기대가 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다시 외출이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름 형민이는 정말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

 

꽃게랑과 형민이....  

이 름 이선화   날 짜 2002/09/04 (17:53:34)   조 회 95

오늘도 형민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곳에도 한국 과자가 들어오는데 대표적인 것이 쵸코파이입니다. 오리지날인 오리온 쵸코파이도 들어오고 롯데 제품도 들어옵니다. 그리고  최근에 보이기 시작한 게 빙그래 꽃게랑입니다. 이곳에서는 '크랍 칩스'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데 가격이 60-65 텡게 한국돈으로 550원-600원 하지요. 오늘도 가게에 갔다가 꽃게랑 한봉지를 샀습니다. 형민이도 이 과자를 아주 좋아하는데 이곳에서는 도저히 이런 스낵을 볼 수 없답니다.

오전에 과자를 충분히 먹고 점심도 먹었는데 계속 과자를 들고서는..... 급기야 한봉지를 다 먹을 것 같아서 이렇게 꼬셨지요.

"형민아, 이만큼 덜어놓은 것은 형민이가 먹고 이건 나중에 아빠 드려야지...."

이러면 형민이는 자기 것과 아빠 것을 다시 한번 확인 합니다.

"에에, 아빠 아빠"

그러더니 과자가 남은 봉지를 들고 악골 교회 진료를 마치고 들어와 잠시 자고 있는 아빠에게 갔다 오더군요. 과자를 다 먹고 오디오에서 나오는 노래에 좀 흥얼거리더니 갑자기 조용해진 형민이..... 보니까 곰돌이 그림의 쿠션에 기대어 잠이 든 것입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 보다가 방에 눕히러 안고 갔습니다. 형민이를 눕히고 옆을 보니 자고 있는 아빠의 머리맡에 꽃게랑 봉지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아빠꺼라면서 가지고 가더니 아빠 머리곁에 조용히 두고 나온 형민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지만 아빠를 위해 남겨두는 것..... 형민이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빠를 좋아하니까요...

 

한 낮의 구출 작전(갇혀 버린 형민이)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09/11 (18:52:40)   조 회 112

형민이는 최근 들어 방문을 닫고 안에서 문을 잠그는 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제가 안 방 침대에 누워 있는데...방 안으로 들어온 형민이는 이내 안에서 문을 잠궜고..."형민아...문 열어!"라는 엄마의 외침을 듣고 잠긴 문을 열어 보려고 했지만...혼자 힘으로는 못 여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민이는 문을 잠글 수는 있어도 반대로 방향으로 잠금 장치를 돌려 여는 것은 아직 터득하진 못했습니다. 다행히 그 날은 제가 안방 안에 있었기에...형민이 대신 방문을 열어 줄 수 있었지만...속으로 형민이 혼자 방 안에 들어간 채 안에서 문을 잠궈 버리면 꼼짝없이 갇히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3일 후...

걱정하던 일이 터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엄마에게 "빠이 빠이.." 손짓을 한 형민이는 안방으로 혼자 들어가 버렸고 안에서 잠금장치를 돌려 버렸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내 형민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밖에서 문을 열라는 엄마, 아빠의 말 소리에 문고리가 잡았다 놓을 뿐 잠금 장치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 안 형민이는 무섭고 놀라서 정신이 없는 듯 했습니다. 너무 놀란 데다가 우는 바람에 형민이는 밖에서 우리가 하는 얘기를 알아 들을 수 없었고(물론 형민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몇 가지 단어만 빼고...) 답답해하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 소리만 들을 뿐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안방 문의 잠금장치 정도라면 안에서 잠궜다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칼이나 젓가락 같은 얇고 딱딱한 도구를 이용하면 쉽게 열 수 있습니다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안에서 잠그기만 하면...밖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도저히 열 수 없는 강력한 장치입니다.

우리는 30분 동안..놀란 형민이의 맘을 달래며 문쪽으로 다가 올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평소에 형민이와 자주 나누던 얘기들을 해 가며 형민이의 맘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놀란 형민이는 방 저쪽 구석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형민이로부터 "예!" 라는 답이 나올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도 했고...형민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방 안쪽으로 종이 같은 것을 집어 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형민아..이거 잡아 당겨...그래...걱정하지 마...엄마는 밖에 있다..."

하지만..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방문 손잡이 아래에 있는 잠금 장치를 왼쪽으로 2바퀴 돌리라는 얘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안쪽에서는 오른쪽으로 2번이나 돌려 깊숙하게 잠궈 놓고선...다시 반대로 열라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지칠 때까지 형민이와 대화를 해 보았지만...문 쪽으로 다가온 형민이는 손잡이만 돌릴 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형민이의 울음은 커져만 갔습니다.

문을 열어 보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하던 우리는...어쩔 수 없이 잠금장치가 있는 문 한쪽을 헐어 버리기로 했습니다. 한국처럼 열쇠공을 불러 쉽게 문을 열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옆집에도 아무도 없고... 일자 드라이브와 망치를 이용해서 잠금장치가 들어가는 문과 접한 벽을 헐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문 주변부는 나무로 되어 있어 망치와 끌 대용의 드라이브로 허물 수 있었습니다.  잠금장치가 걸린 방문이 열리기 위해선 잠금 장치가 걸려 있는 금속 장치를 깨 부숴야 했는데...이것 역시 망치와 끌 대용의 드라이브를 이용해서 힘껏 두드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큰 소리를 내며...안 방 문짝이 접한 벽면을 헐어 버리고 금속 장치를 깨뜨린 뒤...눈물 범벅이 된 형민이를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랬던지...엄마에게 바로 안긴 형민이는 다시 엄마 등에 업혀 이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한 번 안아 보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거부해 버리고 그냥 잠이 들더군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어 형민이를 구출했지만 형민이에는 외면을 당해 버린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참 다행스러웠습니다. 안 방 뿐 아니라 부엌, 거실, 화장실, 작은 방에도 똑같은 잠금장치가 있는데...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지금은 잠이 들었지만...깨어 나고 나면...절대로 방 안에선 문을 잠그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세 식구가 사는 집이지만..늘 생각 못한 일들이 발생하는 바람에 쉽지 않은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WEC 소속 선교사 브루스가 날 찾는 이유...  

이 름 이성훈   날 짜 2002/10/01 (23:54:31)   조 회 69

아스타나에는 한국인 선교사 말고도  외국인 선교사가 많다는 얘기를 전해 드린 적이 있지요? 이 중 WEG 소속의 선교사들도 4가정이나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는데...주로 미혼모 상담이나 빈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이 중 호주 출신의 데이빗&리즈 부부는 저희 가족이 알마티에 있을 때보다 알고 지냈지만 다른 WEG 소속의 선교사님들은 만날 기회가 없었었지요.

그런데..며칠 전 자신을 "브루스" 라고 소개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랐지요..비록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아스타나에 있는 WEG 팀의 대표가 브루스 라는 사실을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주 억양이 강한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는 그의 말을 듣고 전..브루스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브루스의 집으로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WEG 팀에서 하고 있는 사역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할까?'

'혹시 가족 중에 누가 아픈 게 아닐까?'

'한국 의사가 와 있다는 얘길 듣고 새로운 협력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는 걸까?'

미크로라이언 III에 있는 브루스의 집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 건물에 일전에 방문했던 데이빗&리즈 부부의 집이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4층에 올라서서 문을 두드렸고...부드러운 표정을 지닌 젊은 선교사 브루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금새 왜 날 불렀는지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매우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의 말로는...

약 4주 동안..물 설사가 계속되면서 심한 두통과 근육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간간히 먹었다는 약을 보니 퀴놀론 계열의 항생제 였고..어떤 약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혹시...중앙 아시아의 풍토병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중앙 아시아의 풍토병이라니?  그는 "지아디아시스" 라는 기생충 감염 질환도 언급하면서...자신의 변을 정밀 검사해 봤으면 좋겠다며 모아 놓은 변이 담긴 유리병을 제게 건네 주었습니다. 물론 그의 행동이나 말에는 미안함이 깊게 배여 있었지만...자신의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지지 않고 있기에 이것 저것 가릴 형편이 아닌 듯 싶었습니다. 그의 독일인 아내도 그의 증세에 심한 염려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변은 검사실에 전해 주겠다고 말하고..잠시 후에 약을 가져다 주겠다고 말한 뒤..그의 증세에 맞는 약을 조제해서 그의 집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비록 3일치의 약이지만...그의 주증세인 설사를 멈추게 하고 인플루엔자와 같은 증상이 호전될 거라고 격려하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4일 후...

다시 브루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약간 좋아지긴 했지만...아직 정상이 아니라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설사는 멎었고..지금의 주 증세는 감기와 유사한 증세였습니다 다시 집을 방문해서 한국식으로 감기약을 조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3일 후...

이번에는 제가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받는 브루스의 음성은 밝았습니다. 그는 씻은 듯이 나았다며 연거푸 감사하는 말을 연발했지요. 나도 역시 기쁘다는 말로 대화를 마친 내 마음 역시 밝아졌습니다.  이곳의 영어권 선교사들에게는 서구식 의료를 배운 유일한 의사인 저의 존재가 반가운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다들 하나같이 젊은 부부들임에도 아스타나까지 찾아와 선교활동을 벌이는 그들의 존재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입니다.  비단 한국인 선교사 말고도 이런 서구권 선교사들이 이곳에서 활약하고 있기에...아스타나의 미래는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