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내려 앉은 알마티의 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이별....그 이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정대로 우리를 찾아 왔습니다. 선화와 형민이가 떠나야만 하는 11월 11일 오전.... 커다란 이민 가방에 이것 저것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짐들을 가득 채우는 우리 부부의 맘 속에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이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잘 할 수 있겠죠?"   ."응...물론이지...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지내다 와......" 떠나는 선화에게 애써 자신감을 내보이지만....결혼 후 처음으로 혼자 살아야 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는 선화의 맘은 마지막 까지 편치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맛 보게 될 맛있는 음식 얘기를 꺼내도....오빠와 함께 가지 않는데 뭐가 맛있겠느냐며 얼굴을 돌렸고... 편안한 우리의 보금자리는 이미 한국이 아니라 까작스딴에 있다며 타지에서 보낼 4개월의 시간이 편하지만은 않을 거라며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 시간 후면 한국 땅에 있게 된다는 엄청난 뉴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 채...짐 싸느라 바쁜  엄마, 아빠 사이를 뛰어 다니며 놀고 있는 형민이를 보고 있으면 그 동안 우리에게 일어났던 변화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생후 7개월에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이제 두 돌이 지난 어엿한 장난꾸러기로 무사히 자랐고...또 다른 생명이 우리 가정에 주어졌고....마지막 출산을 위해 한국으로 출국할 때까지 산모와 태아가 건강하게 외국에서의 임신 기간을 마쳤으니...이 사실만 하더라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 두 돌이 지나면서 언어 습득 능력에 가속도가 불고 있는 형민이에게는 이번 여행이 아주 유익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동안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건너 와 자라고 있는 많은 한국 아이들을 만났었는데....상당수의 아이들이 3살이 지나도 언어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기들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2-3세 정도가 되면 자신의 모국어를 결정하게 되고 언어를 매개로 하는 고급 사고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갓난 아기 때부터 오랜 외국 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아이들이....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보다 언어 영역에서 뒤쳐지고 있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최근 형민이는 뭔가를 생각한 뒤 자신의 말로 어떤 얘기를 엄마, 아빠에게 자주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들어 보면 유창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제대로 된 발음은 아직  못하는 말문이 트이기 바로 직전의 단계 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엄마, 아빠의 말에 의존해서 열심히 한국어를 익히려는 만 두 살의 형민이를 보면서....엄마, 아빠 외에는 온통 러시아어, 까작어, 영어로 혼동스러운 이 곳에서 행여나 자신의 모국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나름대로 염려를 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물론...우리처럼 3년 정도의 외국 생활 가지고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그래도 부모의 입장은 "혹시나?" 에도 주의할 수 밖에 없더군요. 장차 학문을 익히고 더 깊은 고급 사고를 하기 위한 매개가 언어이기에 한국어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고등 학문을 익히기 위한 논리 체계로서의 언어가 잘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은....이 민감한 시기를 한국에서 보냈으면 하고 생각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그 외 많은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과 일상 생활 속에서 들리는 한국어를 통해 제대로 모국어가 자리 잡히길 바라는 거지요...

아스타나 공항 2층 라운지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이제 한 동안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슬픔이 제게 밀려 왔습니다.

항상 어디를 가더라도 이 두 사람과 함께 움직였는데...오늘은 알마티 까지만 따라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형민이는 이곳 2층 라운지에서 어떤 특별한 느낌을 받았는지...아빠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나중에 알마티 공항에서도 이렇게 내 품에 안겨 있으려고만 하면 어쩌지....하고 염려가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선화는 의외로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다는 듯이....형민이를 바라보며..."형민아...오늘은 엄마하고만 한국에 가는 거야...한국에 가서 스티커 살 거지? 아빠는 못 가...엄마하고 형민이만 가는 거야...알겠지?"  하고 다시 한 번 다짐시킵니다. 형민이는 이미 이런 얘기를 몇 달 전부터 들어 왔기에..."예...."하면서 아빠 품을 파고 듭니다.

형민이가 4개월 일 때 전 8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해 형민이와 떨어져 대전 군의학교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4주의 훈련이 마치고 주어지던 첫 첫 외박 날 날....선화와 함께 부산 역에 나온 5개월의 형민이는 아빠를 알 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었습니다. 웬 낯선 사람이 푸른색의 군복을 입고 다가오니 놀랐던 것이죠...

그 때는 아빠를 잊었었지만...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미 만 두 살이 지났고...아빠는 형민이의 인생의 50%를 차지하고 있었으니....아마도 한국에 돌아가고 나서도 아빠를 문득 문득 떠올릴 게 분명할 테니까요...그래서 전 선화에게 말했습니다. "형민이에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내 모습을 자주 보여 주고...전화를 걸면 형민이도 자주 바꿔 줘....전처럼 아빠를 잊으면 안 되니까...."

11월 11일 오후 3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지만...우린 세 사람만 함께 하는 시간을 가능한 오래 가지기 위해 일찍 수속을 마치고 공항 여기 저기를 다니며...석별의 정을 달랬습니다.  

공항 2층의 탑승 장소에 연결된 통로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가 탈 비행기의 모습입니다. "에어 아스타나" 의 보잉 747 비행기 이지요.

4일 전...폭설이 내려 거의 하루 종일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되어야 했던 아스타나 공항이지만... 오늘 만큼은 한국으로 무사히 가야 하는 두 사람을 위해서인지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었고 기온도 따뜻한 편이었습니다.

전...또 한 번의 비행을 해야 하는 형민이를 보며...도대체 이 조그마한 아기가 얼마나 많은 비행을 했는지 계산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후 7개월부터 국제선을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기 시작한 형민이는 이미 비행기에 익숙해져 있었고...창 밖에 비친 비행기를 보며...빨리 타자고 아빠의 손을 재촉했습니다.

형민이의 비행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시

나이

비행 경로

비행 시간

항공기

비행 거리

비행 목적

2001.5.22

7개월

부산-->서울

50분

KAL

450Km

인천 공항 행

2001.5.22

7개월

인천-->알마티

6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7200Km

까작스딴으로 출국

2001.8.13

10개월

알마티-->아스타나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아스타나로 이사

2001.9.18

11개월

아스타나-->알마티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알마티 공항 행

2001.9.18

11개월

알마티-->인천

5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7200Km

조부상 일시귀국

2001.9.18

11개월

인천-->부산

50분

KAL

450Km

본가 행

2001.9.25

11개월

부산-->인천

1시간 30분

KAL

450Km

인천 공항 행

2001.9.25

11개월

인천-->알마티

6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7200Km

아빠 근무처로 귀임

2001.9.31

11개월

알마티-->아스타나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집으로

2002.2.16

1년 4개월

아스타나-->알마티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평가대회 참석

2002.2.23

1년 4개월

알마티-->아스타나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집으로 귀환

2002.4.7

1년 6개월

아스타나-->알마티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알마티 공항 행

2002.4.8

1년 6개월

알마티-->이스탄불

7시간

에어 까작스딴

7800Km

소아시아 여행

2002.4.22

1년 6개월

이스탄불-->알마티

6시간

에어 까작스딴

7800Km

까작스딴으로 복귀

2002.4.23

1년 6개월

알마티-->아스타나

1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1200Km

집으로

2002.8.12

1년 10개월

아스타나-->알마티

1시간 30분

에어 아스타나

1200Km

평가대회 참석

2002.8.17

1년 10개월

알마티-->아스타나

1시간 30분

에어 아스타나

1200Km

집으로 복귀

2002.11.11

2년 1개월

아스타나-->알마티

1시간 30분

에어 아스타나

1200Km

알마티 공항으로

2002.11.11

2년 1개월

알마티-->인천

6시간 30분

에어 까작스딴

7200Km

엄마 출산 차 한국행

2002.11.12

2년 1개월

인천-->부산

50분

KAL

450Km

본가로

   계

 

 

57시간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가면...만 2살 1개월의 형민이는 총 57 시간의 비행 시간을 기록하는 셈입니다. 높은 고도에서 이루어지는 항공 여행의 경우 미약하지만 우주에서 유리되어 오는 방사선에 노출되게 되는데...이렇게 오랜 시간 비행을 해도 괜찮을지  걱정이 될 정도지요....

탑승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 탄 우리 세 식구는 이별 전의 마지막 비행을 준비합니다. 이륙을 위해 큰 엔진 소리를 내며 기체가 흔들려도 형민이는 엄마나 아빠 무릎 위에 앉는 게 아니라 좌석 하나를 차지 하고 앉아 제법 의젓하게 앉아 조용히 물을 마십니다.

이윽고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아스타나 공항을 한 바퀴 돌아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지요...

이륙 후 아스타나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포착한 지상의 모습입니다. 정상 궤도로 진입하고 나면...이미 구름 위로 올라가 버리기에...이륙하자 말자 촬영한 것입니다.

구릉지 하나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 아직 녹지 않은 눈으로 덮여 있는 벌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아스타나 주변은 이렇게 차가운 눈으로 덮여 있지만...우리가 가야 할 알마티...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한국의 부산은 산도 많고 푸른 상록수가 있는 곳이지요...

1년 3개월의 아스타나 생활을 일단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화를 향해 마치....마지막 작별 인사라도 하고 있는 듯한 눈 덮인 아스타나의 벌판을 물끄러미 바라본 뒤...우리는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스타나와 알마티는 12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부산에서 중국의 선양 까지의 거리에 해당하지만...이 나라에선 그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국내선 항로일 뿐입니다.  이 노선의 비행시간은 딱 1시간 30분이고 항상 기내식이 제공되고 있는데 식사 시간에는 스테이크와 빵이 나오고 그렇지 않은 경우...햄버거와 과일 등이 제공됩니다 .

형민이는 기내식이 나오면 신이 납니다. 비닐 포장이 된 하나 하나를 벗겨 내고 그 안에 감추어진 과일과 빵, 고기등을 찾아 내 열심히 먹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케찹이 나왔는데...케찹의 짭짤하고 새콤한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숟가락을 들고 케찹을 퍼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처음에 까작스딴으로 올 때는 비행기 안에서 정신없이 자기만 하던 작은 아기였는데...이제 이렇게 큰 아이로 자라 한국으로 들어가니...형민이를 기다리고 있는 한국의 가족들은 무척 놀랄 거라며 선화와 전....지난 시간을 회고했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곧 아스타나 공항에 도착할 거라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고...창 밖으로는 천산 산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알마티의 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천산 산맥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구름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비행기 날개가 보이는 왼쪽 사진은 천산 산맥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촬영한 항공 사진(?) 입니다. 산 위에도 구름 뿐이고 산 아래에도 구름 만 보이는 이 풍경은....한참 동안 구름 뿐인 높은 하늘에서 갑자기 마주 친 모습이기에 더욱 신비로왔습니다.

오후 5시 경...알마티 공항에 우리 가족은 무사히 착륙했고...어려운 과정을 거쳐 짐을 찾고 난 뒤(알마티 공항의 어수선한 서비스 정신은 이미 여러 차례 말씀 드렸었지요?) 우리를 마중 나온 안병재 선생님(알마티 한카병원 내과 선생님)을 만났고...저녁 식사를 제공하시기로 한 선종욱 선생님(한카병원 한방 선생님, 정부파견의사) 댁으로 향했습니다. 이 때는 벌써 해가 진 뒤였고 캄캄한 알마티의 밤 풍경이 차창 밖으로 펼쳐 지고 있었습니다.

선종욱 선생님 댁에서 장재필 선생님(한카병원 치과 선생님)과도 만나....함께 식사를 하면서...혼자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야 하는 선화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작년(2001년) 5월에 처음 알마티에 왔을 때부터 선종욱 선생님은 저희 가정에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데....이 날도 많은 신세를 진 것 같습니다.

밤 9시....11시에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안병재 선생님의 차에 모두 올라타고 알마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부부와 형민이 그리고 안병재, 장재필 선생님이 동행해 주셨습니다.

선화가 가지고 나가야 할 짐은 큰 이민 가방 하나, 슈트 케이스 하나, 등에 맨 배낭 그리고 형민이 입니다. 알마티 공항은 보안이 까다로와 항공권을 가진 사람만 공항 청사로 들어갈 수 있는지라...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선화가 혼자서 어떻게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칠지 많은 걱정을 했었습니다. 하지만...우리는 "VIP 출국" 이라는 방법을 찾아 냈고 일반 출국장이 아니라 VIP 출국장을 통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VIP 출국장을 사용하면...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고 세관 검사를 하는 일들이 한 번 만에 처리되고....선화가 비행기에 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돈이 좀 드는데...우리 처럼 외교관 신분 보장을 받는 official card가 있는 경우 10 달러 정도만 내면 VIP 출국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반인은 50달러) 우리는 주저함 없이 VIP 출국을 택했습니다.

VIP 출국장 입구에서 환송객이 너무 많다는 제제를 받기도 했었지만...우리 가족은 어려움 없이 출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선화와 형민이는 그냥 의자에 앉아 있게 하고...제가 가서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는 수속을 마쳤습니다. 세관 검사의 경우 official card가 있는 경우에는 면제 된다고 해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모든 수속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친 뒤....2층 출국 대기 장소에 올라간 시간은 밤 10시 15분....15분 정도 있으면 탑승이 시작될 것 같았습니다. 함께 우리를 도와 주었던 장재필 선생님은 마지막 이별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주려는 듯....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나갔고...우리 세 사람 만의 마지막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끝까지 담담한 맘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출국장 대기 장소 의자에 앉아 있는 형민이의 눈망울을 바라 보면서...이제 또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려야 다시 만날 수 있을 지...그리움과 쓸쓸함으로 출렁거렸습니다. 서로에 대한 위로도 잊지 않았고...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고 다시 만나자는 목 메이는 약속도 잊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공항 직원이 들어와 한국행 비행기의 탑승 수속을 시작한다는 안내를 했고...대기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어수선함 속에서 전 말했습니다. "선화야...우리 마지막 기도하고 헤어지자...."    "예......"

"하나님...감사합니다. 지난 1년 7개월 동안 까작스딴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을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셨는데...이제 선화가 형민이를 데리고 출산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과 형민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선화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어려움이 없게 해 주시고......"

기도를 잇지 못할 정도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목이 메였습니다. 짧은 기도를 마쳤을 때...선화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안경 밑으로 보이는 선화의 충혈된 눈에서 우리가 정말 헤어지기 싫어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가자...."

형민이를 마지막으로 안았습니다. 형민이는 늘 제가 안고 다녔는데...이제 한국으로 가고 나면 아빠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지....아직까지도 아빠와의 이별을 알지 못하는 형민이는 아빠의 어깨를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탑승구로 가기 전....선화에게 형민이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형민이와 함께 있는 마지막 모습이니까요...

화장실 옆 복도 한 쪽에 붙어 형민이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이제 이 글을 올리면...한국에 있는 선화가 형민이에게 이 사진을 보여 주며 아빠를 가리킬 것 같습니다.

"형민아...이게 누구야...아빠지? 아빠...아빠..."

사진을 찍고 마지막 입구까지 형민이를 안고 갔습니다. 형민이는 여전히 제 품에 꼭 안겨 있었지요.. 이제 형민이를 내려 놓고 선화와 걸어 들어가도록 해야 하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하나님...형민이가 마지막 순간에 아빠에게서 잘 떨어질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제가 형민이를 내려 놓으려 하자 형민이는 늘 그렇듯이 안 내려 오려고 제 품을 꼭 잡았습니다. 그 때 선화가 얘기했습니다. "형민아...알지? 아빠는 가셔야 돼...엄마랑 같이 가자...." 이 말을 들은 형민이는 거짓말 같이 바닥에 내려 왔고 엄마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타기 위한 통로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형민이의 손을 잡은 선화도 뒤돌아 보며 잘 있으라는 말을 한 뒤...멀어져 갔습니다. ....전 나가는 모습을 보다...다시 한 번 "선화야...."하고 불러 보았습니다. 다시 뒤돌아 본 선화와 전... 안심하라고 얘기하는 듯한 미소를 서로 지어 보이면서 그렇게 이별의 순간을 맞았습니다.

선화와 형민이가 빠져나간 뒤....고독함과 함께 이제 끝났다는 비장함이 밀려 왔습니다. 이제...남아 있는 내가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하게...그리고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나야 한다는 결의도 찾아 왔습니다.

VIP 출국장을 빠져 나와 보니...캄캄한 알마티의 밤은 휘황 찬란한 나트룸등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뒤돌아 서서 선화와 형민이가 나간 출국장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 보았습니다. (왼쪽 사진)

이젠 형민이의 웃음 소리도... 선화의 모습도 볼 수 없지만...이별이 내려 앉은 알마티 공항의 밤을 밝히는 불빛들은 내게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쌀쌀한 밤 공기는 슬픔을 식혀 주려는 듯 부드럽게  귓가를 지나갔고, 캄캄한 밤은 슬픈 내 모습을 감쳐 주려는 듯....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차를 타고 알마티 시내로 들어와 새로 이사한 안병재 선생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밤 11시가 넘는 순간에...."하나님...무사히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기도했고....12시가 넘었을 때에는 "하나님...중국 땅을 날고 있을 비행기가 산맥을 잘 넘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라고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전기 장판이 따끈한 침대에 병재와 함께 누웠습니다. 옆의 누운 병재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었지만....전 그렇지 못했습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내 맘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마치...옆에 전처럼 선화와 형민이가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엔진 소리 시끄러운 비행기 안에서 잠이 들 것 같은 형민이를 어깨에 안고 있을 것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 거렸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침대에 깔린 전기 장판이 뜨거워지자...선화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도 전기 장판을 사용해서 겨울을 보내는데...선화는 전기 장판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도록 항상 숫자 1에 맞춰 두고 전기 장판을 켜곤 했습니다. '선화가 옆에 있다면...지금 숫자를 낮췄을 텐데....' 밤새도록 내 맘은 이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때르릉........" 아침 7시....새벽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번쩍 일어나....전화기로 뛰어 갔습니다. '분명히 선화일거야......'

아니나 다를까....선화의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렸습니다.

"오빠...거기..아직 새벽이죠? 나 무사히 잘 도착했어요...여기 김포예요....인천에 무사히 도착한 뒤에 부산 가는 비행기 타러 지금 김포까지 나왔어요....이제 곧 부산행 비행기 탈 거예요.."

사실...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뭘 물어야 될지도 모르겠더군요..

"그래...고맙다...정우(처남)는 나왔니? 현금 카드는 별 문제없이 작동하니?"   "예...정우도 나왔고..형민이도 잘 따르고 있어요...현금카드로 15만원도 인출했어요..이제 부산행 비행기를 탈 거예요..."

"그래....부산 집(시댁,처가)에 전화하고...부산에 도착하고 난 뒤 다시 연락하자....무사히 도착했다니 나도 이제 안심이다....."

전화를 끊고 난 뒤에서야  제 정신이 들었고....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4개월 간의 헤어짐이 우리 앞에 있긴 하지만...이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기회로 활용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이 홈을 통해 한국의 처와 형민이... 까작스딴의 저...그리고 제가 알지 못하는 수 많은 방문객들 사이에...국경을 넘는 교제와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 번....무사히 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2.11.14